킬링필드

집단살해, 학살, 캄보디아 역사, 인류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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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1: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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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살해, 학살, 캄보디아 역사, 인류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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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링필드는 1975년부터 1979년까지 폴 포트의 크메르 루주 정권이 캄보디아에서 자행한 대규모 집단 학살입니다. 약 25%의 인구가 사망하며 캄보디아 역사상 가장 비극적인 시기로 기록되었습니다. 극단적인 공산주의 정책으로 지식인 부유층 등 수백만 명이 희생되었으며 현재까지 2만 개 이상의 집단 매장지가 발견되었습니다. 이 참상은 영화 킬링필드로 제작되어 전 세계에 알려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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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

[크메르 루주, 프놈펜 장악 및 킬링필드 시작]

베트남 전쟁 종결 후, 미국의 지원을 받던 론 놀 정권이 약해진 틈을 타 폴 포트가 이끄는 크메르 루주가 수도 프놈펜에 입성하여 국명을 민주 캄푸치아로 개칭했습니다.

이들은 혼란한 국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화폐제도 폐지, 도시 주민의 강제 농촌 이주 등 극단적인 공산주의 정책을 도입하며, 대규모 학살을 시작하는 비극적인 역사의 서막을 열었습니다.

혼란을 타개한다는 명목 하에, 크메르 루주는 기존의 산업시설을 모두 파괴하고 기업인, 유학생, 부유층, 구 정권 관계자, 심지어 크메르 루주 내의 친 월남파까지도 반동분자로 몰아 학살했습니다. 이로 인해 캄보디아 인구의 약 25%가 급감하는 참혹한 결과가 초래되었습니다.

[세계 최대 규모의 집단 학살, 킬링필드의 참상]

폴 포트가 이끄는 민주 캄푸치아의 준군사 조직 크메르 루주가 자행한 대규모 집단 학살이 캄보디아 전역을 피로 물들였습니다.

이 기간 동안 당시 캄보디아 인구 약 800만 명 중 170만 명에서 250만 명가량이 희생된 것으로 추정되며, 이는 캄보디아 인구의 약 25%에 해당하는 엄청난 규모입니다.

현재까지 20,000개 이상의 집단 매장지, 즉 '킬링필드'가 발견 및 발굴되었습니다.

이는 '세계 최대 규모의 학살지' 중 하나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크메르 루주는 화폐 폐지, 도시 주민의 강제 농촌 이주 등 극단적인 공산주의를 내세워, 기존의 산업시설을 모두 파괴하고, 기업인·유학생·부유층·구 정권의 관계자, 심지어 크메르 루주 내의 친 월남파까지도 반동분자로 몰아 학살했습니다. DC캠 매핑 프로그램과 예일 대학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1,386,734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초기에는 120만 명, 1980년에는 200만 명, 1986년에는 610만 명 등 다양한 희생자 추정치가 발표되기도 했습니다. 일부 학자들은 기아로 사망한 사람을 포함하여 캄보디아 인구의 1/3인 200만 명에 달한다는 주장을 펴기도 합니다. 이 외에도 미군 폭격, 크메르 루주 학살, 기아에 의한 사망자를 모두 합쳐 최대 200만 명 정도로 추산하는 주장도 존재합니다.

1979

[베트남 침공으로 민주 캄푸치아 정권 종말]

잔혹한 킬링필드 시기를 이끌었던 민주 캄푸치아 정권이 베트남의 침공으로 마침내 종말을 고했습니다.

이로써 캄보디아 역사상 가장 어둡고 비극적이었던 대규모 학살의 시대가 공식적으로 막을 내리게 됩니다.

1984

[영화 '킬링필드' 개봉, 전 세계에 비극을 알리다]

캄보디아의 저널리스트 딧 프란과 또 다른 생존자 하잉 응고르가 겪었던 실제 비극을 바탕으로 한 영화 '킬링필드'가 개봉하여 전 세계인의 이목을 집중시켰습니다.

이 영화는 학살의 참상을 생생하게 묘사하며 캄보디아의 고통스러운 역사를 전 세계에 각인시켰습니다.

영화의 개봉으로 '킬링필드'라는 용어는 대규모 학살과 집단 매장지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단어로 자리매김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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