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약진 운동

경제 정책, 사회 운동, 기근, 사회주의, 공산주의, 중국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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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1: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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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정책, 사회 운동, 기근, 사회주의, 공산주의, 중국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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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오쩌둥 주도로 시작된 사회주의 건설 야심작. - 무리한 농공업 증산 정책으로 비현실적 목표를 세움. - 최악의 기근을 불러 약 2 500만 명이 아사한 인류 역사상 비극적인 참사. - 마오의 권위 추락과 문화대혁명 발발의 직접적인 배경이 됨. - 이후 중국이 현실적인 경제 개혁으로 나아가게 한 결정적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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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6

[지식인에게 문을 열다, 백화제방·백가쟁명 운동]

중국 공산당이 지식인들의 자유로운 비판을 허용한 시기.

하지만 이는 잠시뿐이었고, 곧이어 반대파 숙청의 빌미가 되었다.

1957

[지식인 탄압, 반우파 투쟁 개시]

백화제방 운동에서 비판의 목소리를 냈던 지식인들을 대대적으로 탄압하고 숙청했다.

이로 인해 마오쩌둥의 권력은 더욱 공고해졌고, 비판적 목소리는 완전히 사라졌다.

[소련의 미국 추월 선언, 중국을 자극하다]

소련 서기장 흐루쇼프가 15년 내 미국을 공업 및 농업 생산에서 추월하겠다고 선언하며 중국 내부의 경제 발전 경쟁을 부추겼다.

이는 대약진 운동 추진의 한 배경이 되었다.

1958

[인류 역사상 최대 규모의 사회주의 실험, 대약진 운동 시작!]

마오쩌둥의 야심찬 계획으로, 농업과 공업을 빠르게 발전시켜 부강한 사회주의 국가를 만들고자 했다.

하지만 농촌 현실을 무시한 무리한 집단 농장화와 원시적 철강 생산을 추진하며 비극의 서막을 열었다.

기계 대신 사람의 힘에만 의존하는 반마르크스주의적 산업화 방식을 채택했다. 농민들을 농사일뿐 아니라 조악한 작업장의 공업 생산에까지 동원하며 '인민공사' 체제를 수립했다. 또한 농업 집단화를 위해 대규모 인민공사를 설립했고, 농촌 곳곳에 소규모 제철소를 세워 농민들이 직접 철강 생산에 참여하게 했으나, 대부분 품질이 낮고 비효율적이었다. 농민들은 자율성을 잃고 정부의 비현실적인 생산 목표에 시달렸다.

[해로운 참새를 잡으라! 제사해 운동의 참극]

마오쩌둥의 지시로 '참새가 곡식을 훔쳐 먹는다'는 이유로 전국민이 참새 잡기에 나섰다.

그 결과 참새는 거의 사라졌지만, 천적이 없어진 해충이 창궐하여 대흉년을 불러오며 대기근을 가속화했다.

1959

[대약진 비판자의 숙청, 루산 회의의 비극]

루산 회의에서 용감하게 대약진 운동의 문제점을 지적한 공산당 요인 펑더화이가 마오쩌둥의 분노를 사 지지자들과 함께 실각했다.

이로 인해 당내에서 대약진에 대한 비판은 완전히 사라졌고, 현실을 무시한 생산 목표는 더욱더 무리하게 부과되었다.

1960

[재앙을 부른 자연재해, 기근을 심화시키다]

중국 전체 농경지의 절반 가까이가 가뭄, 태풍, 수해 등 '백년 만의 대규모 자연재해'에 휩쓸려 농작물 대부분을 잃었다.

이는 대약진 운동의 실패와 맞물려 역사상 유례없는 대기근의 고통을 더욱 극심하게 만들었다.

1962

[인류 역사상 최악의 기근, 대약진 운동의 처참한 종말]

마오쩌둥의 '대약진 운동'은 결국 참담한 실패로 끝났다.

비현실적인 정책과 자연재해가 겹치며 약 2,500만 명(일부 추정치 5천만 명 이상)이 굶어 죽는 '사상 최악의 대기근'을 초래했으며, 인류 역사상 유례없는 비극으로 기록되었다.

마오쩌둥은 결국 실패를 인정하고 국가주석직에서 사임했다.

이 운동은 인류 역사상 '가장 거대한 규모의 원시 공산주의 실험'으로 평가된다. 대기근으로 사람들은 진흙과 잡초를 먹으며 연명해야 할 만큼 비참한 상황에 내몰렸다. 대약진 운동의 처참한 결과는 중국 공산당 내부에 큰 분열을 일으켰고, 마오쩌둥의 권위가 심각하게 훼손되는 결과를 낳았다. 이는 이후 그의 권력 회복을 위한 '문화대혁명' 발발의 직접적인 불씨가 되었다.

1963

[참혹한 실패 후, 중국 경제 정책의 방향 전환]

대약진 운동의 처참한 실패를 겪은 중국은 사회주의 경제 질서에 맞춰 대공장을 건설하고 농민을 농장, 노동자를 공장으로 돌려보내는 '조정기'에 돌입했다.

이는 생산수단을 축적하는 초공업화를 통해 산업화의 본궤도로 돌아가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1966

[권력 회복의 광기, 문화대혁명의 시작]

대약진 운동의 실패로 실추된 자신의 권위를 되찾기 위해 마오쩌둥이 '문화대혁명'이라는 또 다른 광기 어린 정치 운동을 일으켰다.

대약진의 후폭풍은 중국 사회를 또다시 엄청난 혼란 속으로 몰아넣었다.

1976

[마오쩌둥 사망, 중국에 개혁·개방의 시대가 열리다]

마오쩌둥 사망 이후 덩샤오핑이 집권하며 '흑묘백묘론'을 내세워 중국식 시장 경제의 기반을 다졌다.

인민공사는 폐지되고 농민에게 사유지와 농기구가 돌아가는 '가정연산승포책임제'가 도입되며 대약진의 잔재를 청산하고 경제 개혁의 문을 활짝 열었다.

1977

[두 번째 대약진 운동의 시도와 실패]

화궈펑 집권기에 다시 한번 '대약진 운동'이 시도되었지만, 과거의 실수를 답습하며 큰 성과 없이 실패로 끝났다.

이는 중국 경제에 또 다른 혼란을 가중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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