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년 체제
정치 체제, 일본 정치, 양당 체제
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1:08:47
• 1955년부터 일본에 형성된 보수(자유민주당)와 혁신(일본사회당)의 양대 정당 체제. • 자민당은 개헌에 필요한 의석을 얻지 못하고 사회당은 집권하지 못하는 1.5당 체제 고착. • 장기 집권 중인 자민당의 부패 스캔들과 거품경제 붕괴로 지지율 하락. • 1993년 자민당 내각 붕괴와 사회당 쇠퇴로 막을 내림. • 역사적으로 가장 안정적이었던 일본의 정치 체제 중 하나로 평가됨.
1955
[55년 체제 탄생]
태평양 전쟁 이후 난립하던 일본 보수 정당들이 자유민주당으로 뭉치고, 분열되었던 일본사회당이 다시 통합하며 '55년 체제'의 기반을 다졌습니다.
이로써 자민당과 사회당이라는 일본 정치의 양대 산맥이 형성되었죠.
전쟁 후 무산정당 합법화로 사회당과 공산당이 성립하고, 보수 정당들도 난립했습니다. 일본사회당은 1951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과 미일안전보장조약에 대한 태도 차이로 좌파와 우파로 나뉘었으나, 1955년 보수 정권의 역코스(보수화 경향)와 개헌 논의에 대항하기 위해 재통합했습니다. 같은 해, 개헌·보수·안보수호를 내건 자유민주당이 창당하며 '55년 체제'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1958
[국민적 관심 폭발, 사상 최고 투표율 기록]
제28회 중의원 총선거에서 일본 국민들은 자유민주당과 일본사회당의 대결에 뜨거운 관심을 보이며, 남녀 보통선거 실시 이후 일본 역사상 최고인 76.99%의 투표율을 기록했습니다.
이 선거로 양대 정당이 전체 의석의 97%를 차지하는 '1.5당 체제'가 확고히 자리 잡았습니다.
선거 결과, 자유민주당이 287석, 일본사회당이 166석을 획득하며 양대 정당이 총 467석 중 대부분을 차지했습니다. 사회당은 의석을 늘렸으나 개헌저지선(3분의 1) 확보에 만족해야 했으며, 이는 자민당이 사회당의 약 2배 의석을 갖는 '1과 2분의1 정당제'의 고착화를 의미했습니다.
1960
[사회당의 정체성 상실과 장기 저락 시작]
1960년대, 일본 국민에게 신헌법이 정착되고 보수 본류 중심의 경제 정책이 채택되면서 '호헌·반안보'를 내세운 일본사회당의 정체성이 희미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지지 기반이 노동조합 위주로 좁아지며 선거에서 후보자를 줄이는 등 '장기 저락 경향'이 뚜렷해졌습니다.
사회적으로 안보 체제가 수용되면서 사회당은 이탈리아공산당의 구조개혁론을 도입하려 했으나, 의회 경시 및 사회주의 혁명에 경도된 좌파에 의해 배격당했습니다. 결국 좌파 주도의 '호헌·반안보' 고집은 지지 기반을 상실하게 만들었고, 민사당, 일본공산당, 공명당 등 야당의 분열까지 겹쳐 자민당에 대적할 수 있는 세력을 잃게 됩니다. 이는 20세기 말 공산주의 국가 몰락과 냉전 체제 붕괴로 사회주의에 대한 기대감이 사라지면서 더욱 가속화됩니다.
1988
[정치 불신의 서막, 리쿠르트 사건 발발]
일본 정치를 뒤흔든 리쿠르트 사건이 터지며 자유민주당의 부패 스캔들이 수면 위로 떠올랐습니다.
이 사건은 국민들의 정치권에 대한 불신을 극에 달하게 만들었고, 장기 집권 중인 자민당의 아성을 흔드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자민당 내부의 오직 사건 속출과 다나카 가쿠에이로 인한 파벌 균형 붕괴는 이미 혼란을 가속화하고 있었습니다. 리쿠르트 사건은 이러한 정치 불신에 불을 지폈고, 이후 거품 경제 붕괴와 불황까지 겹치며 자민당의 지지율 하락을 가속화했습니다.
1992
[연이은 대형 스캔들, 정치 불신 심화]
리쿠르트 사건에 이어 도쿄 사가와큐빈 사건까지 터지면서 일본 정치권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은 한계점에 도달했습니다.
이는 '55년 체제'의 핵심인 자유민주당의 입지를 더욱 위태롭게 만들었습니다.
계속되는 대형 스캔들은 미야자와 기이치 내각에 대한 불만을 고조시켰고, 특히 정치 개혁 법안에 대한 자민당 의원들의 반발과 대량 탈당으로 이어졌습니다. 하다 쓰토무, 오자와 이치로 등이 신생당을 결성하고 다케무라 마사요시가 신당 사키가케를 창당하는 등 자민당의 분열이 가속화되었습니다.
1993
[자민당 내각 붕괴, 55년 체제의 종언]
제40회 중의원 총선거에서 자유민주당이 의석을 대폭 잃고, 일본사회당마저 참패하는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자민당 탈당파를 중심으로 한 신생당, 일본신당 등이 약진하며 미야자와 기이치 내각이 총사직했고, 호소카와 내각의 출범으로 '55년 체제'는 공식적으로 막을 내렸습니다.
정치 개혁 법안 반발로 자민당 의원들이 대거 탈당하여 신생당, 신당 사키가케 등을 결성했습니다. 이 총선 결과, 신생당, 신당 사키가케, 일본신당, 공명당, 민사당이 약진하며 자민당을 기반으로 한 내각이 무너졌습니다. 야당들은 호소카와 모리히로를 총리로 옹립하는 데 합의했고, 일본사회당과 신당 사키가케도 이에 동참하며 비자민 연립 내각이 출범, 55년 체제의 종언을 알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