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베리아 출병

군사 개입, 전쟁, 국제 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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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1:0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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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 개입, 전쟁, 국제 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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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혁명 직후 볼셰비키 정권 붕괴를 목표로 한 일본군의 대규모 군사 개입입니다. 연합국의 러시아 내전 개입의 일환으로 시베리아에 파병되었습니다. 최대 7만 명 이상의 병력과 막대한 전비를 투입했으나 별다른 성과 없이 철수했습니다. 일본의 영토 확장 야심과 공산주의 확산 저지 목적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습니다. 결과적으로 막대한 인명 및 재산 피해만 남기고 실패로 돌아간 작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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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8

[블라디보스토크 넘어 바이칼호까지, 일본군의 무단 점령]

일본 육군은 연합국과의 '블라디보스토크 이외 지역 진격 금지' 약속을 무시하고 과감히 진격했습니다.

사할린, 연해주, 만주 철도 지역을 침공한 것은 물론, 시베리아 오지의 바이칼호 동부와 서쪽의 이르쿠츠크까지 점령지를 넓혔습니다.

다른 연합국이 철수한 뒤에도 일본은 홀로 주둔하며 점령지에 괴뢰 국가를 세우려는 야심을 드러내, 연합국들마저 일본의 영토 욕심에 의구심을 품게 만들었습니다.

[시베리아 출병의 시작: 볼셰비키를 막아라!]

제1차 세계 대전 말, 러시아 공산 정권이 독일에 단독 강화를 제안하자, 연합국은 이를 막기 위해 러시아 개입을 결정합니다.

영일 동맹의 일원이었던 일본은 지리적 이점과 함께 영토 야심, 이권 확보, 그리고 공산주의 확산 저지라는 복합적인 목적으로 시베리아에 대규모 병력을 파병하며 붉은 군대와의 대규모 전쟁에 뛰어들었습니다.

이는 일본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해외 군사 개입 중 하나로 기록됩니다.

1920

[시베리아의 게릴라전, 그리고 비극적 보복 학살]

광활한 시베리아를 완전히 통제하지 못한 일본군은 교통 요지만을 점령했습니다.

그 빈 공간에서는 붉은 군대와 파르티잔이 게릴라전으로 끈질기게 일본군을 공격했습니다.

이에 일본군은 백군과 협력하여 진압 작전을 벌였고, 자신들의 피해에 대한 보복으로 민간인을 학살하고 게릴라전 배후 마을을 불태우는 잔혹한 대응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무자비한 진압은 오히려 반혁명 세력과 일본군에 대한 현지 주민들의 지지를 떨어뜨리고, 공산당 정부에 대한 민심을 더욱 강화하는 역효과를 불러왔습니다. 이는 결국 일본군의 주둔 명분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1922

[반혁명 세력 붕괴, 일본군의 철수 압박]

시베리아에서 유지되던 반혁명 세력의 핵심이었던 알렉산드르 콜차크 정부가 붉은 군대의 맹공에 붕괴했습니다.

이는 일본군이 시베리아에서 군사적 주둔 명분을 잃고 더 이상 버티기 어렵게 만드는 결정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지지 기반을 상실한 일본군은 이제 철수를 심각하게 고려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4년간의 시베리아 출병, 막대한 손실로 끝나다]

1918년부터 약 4년간 지속되었던 일본의 시베리아 출병은 1922년 6월 24일 최종 철수하며 실패로 막을 내렸습니다.

일본은 볼셰비키 정권 붕괴와 영토 및 이권 확보라는 야심 찬 목표를 세웠으나, 광활한 시베리아에서의 끝없는 게릴라전과 현지 민심 이반, 국제 여론 악화에 직면했습니다.

이 작전으로 일본은 막대한 4억 3천만 엔이 넘는 전비를 낭비했으며, 3천에서 5천여 명에 달하는 소중한 인명 피해를 입고 아무런 실질적인 성과 없이 돌아섰습니다. 소련군의 승리와 극동 공화국 수립, 프리아무례 임시정부 붕괴라는 결과는 일본의 실패를 여실히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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