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일 동맹
군사 동맹, 조약, 외교 정책, 제국주의
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1:08:38
영일 동맹은 1902년 영국과 일본이 러시아의 남하를 견제하고자 맺은 군사 동맹입니다. 제국주의 정책을 상호 지원하며 러일전쟁과 제1차 세계대전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세 차례 개정을 거쳐 일본의 조선 보호권을 인정하고 동맹 범위를 확대하는 등 변화를 겪었으며 결국 1923년 공식 폐기되었습니다.
1902
[제1차 영일 동맹 체결]
러시아의 동아시아 남하를 견제하기 위해 영국과 일본이 역사적인 군사 동맹을 체결했습니다.
영국 외무장관 헨리 페티피츠모리스와 일본 공사 하야시 다다스가 런던에서 조인한 이 동맹은 양국이 한 국가와 교전 시 중립을, 두 개국 이상과 교전 시에는 협동 전투에 임한다는 방수 동맹의 성격을 가졌습니다.
이는 당시 국제 정세에서 아시아 국가와 서구 열강 간의 전례 없는 협력으로 큰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1905
[제2차 영일 동맹 개정 및 조인]
영일 동맹이 한층 강화된 형태로 개정 조인되었습니다.
이 조약은 일본의 조선 보호권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동맹 적용 범위를 인도까지 확장했습니다.
특히, 동맹국 중 한쪽이 다른 한 국가와 전쟁을 할 경우에도 동맹국이 참전하는 '공수 동맹'으로 변화하며 군사적 개입의 폭을 넓혔습니다.
이 개정은 러일전쟁 이후 일본이 동아시아 패권을 굳히고, 이후 제2차 한일협약 체결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1911
[제3차 영일 동맹 개정 및 연장]
국제 정세의 변화에 맞춰 영일 동맹이 세 번째로 개정되었습니다.
이 조약을 통해 동맹의 유효 기간을 다시 10년 연장했으며, 주요 위협 대상을 러시아에서 독일로 전환했습니다.
또한, 일본이 가쓰라-태프트 밀약 등을 통해 미국과의 관계를 조율하면서, 미국은 동맹 적용 대상에서 제외되었습니다.
이 개정된 동맹은 훗날 제1차 세계 대전 발발 시 일본이 연합국 진영에 참전하는 중요한 명분이 됩니다.
1921
[워싱턴 회의, 4개국 조약 성립]
제1차 세계 대전 종전 후, 국제 질서 재편을 위한 워싱턴 회의에서 영국, 미국, 프랑스, 일본 4개국이 해군 군축과 태평양 문제 해결을 위한 조약을 체결했습니다.
이 4개국 조약의 성립은 낡은 양자 동맹인 영일 동맹의 필요성을 크게 약화시켰고, 결국 동맹이 해체되는 결정적인 단초가 되었습니다.
이로써 세계 외교 무대의 중심이 변화했음을 알렸습니다.
1923
[영일 동맹 공식 폐기]
1902년에 시작되어 20년 넘게 아시아와 유럽의 외교 지형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던 영일 동맹이 마침내 공식적으로 폐기되었습니다.
1921년 워싱턴 회의에서 4개국 조약이 체결되면서 영일 동맹의 역할은 사실상 종료되었으며, 이 날짜로 국제사회는 하나의 거대한 군사 동맹 시대의 막을 내렸습니다.
이는 새로운 다자 외교 시대로의 전환을 상징하는 중요한 사건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