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 간섭

국제 관계, 외교 사건, 역사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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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1: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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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관계, 외교 사건, 역사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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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일 전쟁 승리 후 일본이 차지한 요동반도를 러시아 독일 프랑스 3국이 반환하라 압박한 사건. • 일본은 굴욕적으로 요동반도를 반환했으나 추가 배상금을 받으며 복수의 칼날을 갈게 됨. • 이 사건은 일본의 군국주의 강화와 러일 전쟁 발발의 결정적 계기가 됨. • 조선에 대한 러시아의 영향력 증대와 아관파천 등 동아시아 정세의 격변을 초래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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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

[분노와 야망, 러일 전쟁의 서막!]

전리품을 빼앗긴 굴욕을 겪은 일본 국민들은 "와신상담하여 국력을 배양해야 한다"는 강력한 여론을 형성합니다.

이를 발판 삼아 일본은 '66 함대 계획' 등 전례 없는 군비 확장에 박차를 가하며 군국주의 국가로 변모합니다.

삼국 간섭은 일본의 복수심을 자극하여 결국 러일 전쟁 발발의 직접적인 도화선이 됩니다.

당시 잡지 《일본인》을 발행하던 미야케 세츠레이는 "결과적으로 모든 것은 국력의 문제로 귀착된다. 국력이 다른 나라의 간섭을 물리칠 수 있다면 어떠한 굴종도 감수할 필요가 없다. 이제부터 우리는 와신상담하여 하루 속히 국력을 배양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토로하며 국민적 분노를 대변했습니다.

[승리의 환희, 시모노세키 조약 체결!]

청일 전쟁의 승리자 일본이 청과 강화 조약을 맺고 엄청난 전리품을 챙깁니다.

조선의 완전한 독립 승인은 물론, 전략적 요충지 요동반도, 타이완, 펑후 제도까지 할양받고 막대한 배상금을 얻어내며 동아시아의 새로운 강자로 떠오릅니다.

특히 뤼순항이 포함된 요동반도는 일본의 대륙 야망을 상징했습니다.

청은 조선의 "완전한 자립"을 승인했고, 요동반도, 타이완, 펑후 제도를 일본에 할양했으며, 배상금 2억량(일본 화폐 3억엔)을 지불했습니다. 또한, 기존 서구 열강이 누리던 통상 특권이 일본에게도 부여되었습니다.

[러시아, 독일, 프랑스의 충격적인 개입!]

일본이 시모노세키 조약으로 요동반도를 차지하자마자, 러시아, 독일, 프랑스 3국의 대사들이 일본을 찾아와 "요동반도 소유는 청과 조선에 영구적인 위협"이라 주장하며 즉각적인 반환을 강력히 요구합니다.

이는 일본의 급부상에 위기감을 느낀 유럽 열강들의 노골적인 견제였습니다.

러시아는 극동 진출을 위한 부동항 확보와 만주 권익 확대를 노렸고, 일본의 요동반도 확보가 이를 위협한다고 보았습니다. 프랑스는 러불 동맹에 따라 러시아를 지지했고, 독일은 극동에서 자국 이권을 얻을 기회로 보고 러시아와 프랑스에 동참했습니다. 영국과 미국은 이 간섭에 반대하며 중립을 지켰습니다.

[굴욕적인 양보, 요동반도를 내주는 일본]

홀로 러시아, 독일, 프랑스 세 열강에 맞설 수 없었던 일본은 결국 굴욕적으로 요동반도 반환 요구를 수용합니다.

대신 청으로부터 3천만 냥(약 4405만 엔)의 추가 배상금을 받는 것으로 합의했지만, 승전국의 전리품을 강탈당한 분노는 일본 내 군국주의 세력을 키우는 불씨가 됩니다.

일본 외무성은 5월 5일 요동반도 환부회답서를 일본 주재 삼국 공사에게 전달하며 요동반도 포기 의사를 밝혔습니다. 이 사건으로 일본은 국제 무대에서 자신의 한계를 깨닫고 국력 강화에 더욱 매진하게 됩니다.

[조선, 러시아를 등에 업고 일본 견제 시도!]

삼국 간섭으로 일본의 영향력이 약화되자, 조선 고종은 이 기회를 틈타 러시아의 힘을 빌려 일본을 견제하려 합니다.

한때 친일로 기울던 민씨 일파마저 태도를 바꿔 러시아에 접근했고, 1895년 윤5월(양력 7월)에는 박영효 등 친일파가 대거 숙청되어 일본으로 망명하는 등 조선 정세가 급격히 변화합니다.

이는 이후 아관파천으로 이어지는 결정적 발판이 됩니다.

이로 인해 조선에 대한 일본의 영향력이 감소하고 러시아의 영향력이 증대되었습니다. 일본 침략자의 내정 간섭에 저항하는 움직임이 일어났고, 사태에 책임을 지고 일본의 이노우에 공사가 소환되었습니다.

1897

[간섭의 대가, 청나라를 찢어발기는 열강들]

삼국 간섭으로 청나라에 대한 영향력이 커진 서양 열강들은 대일 배상금 차관 공여를 빌미로 청의 이권을 노골적으로 침탈하기 시작합니다.

독일은 자오저우만을, 러시아는 만주 동청 철도 부설권과 뤼순·다롄 조차, 영국은 장강 유역 이권을 확보하는 등 탐욕스러운 식민지 경쟁이 격화되며 청은 만신창이가 됩니다.

독일은 1897년 선교사 살해를 이유로 자오저우 만을 점령하고 이듬해 조차했습니다. 러시아는 1898년 뤼순, 다롄 조차권을 얻어 부동항을 확보했으며, 이홍장-로바노프 협정을 통해 만주에 세력권을 확대했습니다. 영국은 1898년 장강 유역의 철도 부설권과 홍콩 대안의 신계 조차권을 얻었습니다. 상하이는 청나라, 영국, 프랑스 조계로 삼분되었습니다. 일본 역시 타이완 옆 푸젠성을 타국에 조차할 수 없다는 약속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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