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제국

제국, 식민 제국, 군국주의 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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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68년 메이지 유신으로 성립 1947년까지 존속한 제국주의 국가입니다. - 부국강병과 식산흥업 기치 아래 아시아에서 가장 빠르게 산업화와 군사화를 달성했습니다. - 청일 러일 전쟁 승리로 식민 제국을 확장하고 제1차 세계 대전 참전으로 강대국으로 부상했습니다. - 대공황 이후 군국주의를 강화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추축국에 가담하여 수많은 전쟁 범죄를 자행했습니다. - 히로시마·나가사키 원폭 투하와 소련 참전으로 1945년 항복 1947년 일본국 헌법 시행으로 해체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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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8

[메이지 유신 선포 및 메이지 정부 수립]

메이지 유신은 메이지 천황이 왕권 강화를 위해 추진한 대대적인 혁신으로, 약 260년간 이어진 에도 막부 체제를 타도하고 중앙집권적 정부를 수립했습니다.

이를 통해 일본은 근대화와 부국강병의 기틀을 마련했습니다.

1868년 1월 3일, '왕정복고의 대호령'이 선포되며 메이지 정부가 공식적으로 수립되었습니다. 같은 해 7월에는 에도를 도쿄로 개칭하고 이듬해 천도하는 등 수도를 이전하며 새로운 시대의 시작을 알렸습니다. 이 시기에 한 대에 한 연호만 쓰는 일세일원제가 채택되어 천황 중심의 중앙집권 체제가 강화되었습니다.

1869

[판적봉환 단행]

메이지 정부는 중앙집권 강화를 위해 서남웅번의 주도 아래 전국적인 판적봉환을 단행했습니다.

이는 지방 영주들이 영지와 백성에 대한 지배권을 천황에게 반납하는 조치로, 중앙 정부의 통제력을 강화하는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1871

[폐번치현 실시]

메이지 정부는 중앙집권 체제를 더욱 공고히 하고자 폐번치현을 단행했습니다.

이는 기존의 번을 폐지하고 부와 현을 설치하여 중앙 정부에서 임명한 관리들을 파견하는 조치로, 지방 통제력을 극대화하여 강력한 국가 기반을 구축했습니다.

1872

[제1차 류큐 처분]

일본은 1872년 류큐를 침공하여 류큐 국왕을 일방적으로 일본의 다이묘(번주)로 격하시켰습니다.

이는 류큐를 일본의 종속국으로 편입시키기 위한 첫 단계였습니다.

1874

[자유 민권 운동 시작]

이타가키 다이스케 등이 애국공당을 결성하고 민선 의원 설립을 요구하는 건백서를 제출하면서 일본 전국에서 자유 민권 운동이 확산되었습니다.

이는 강력한 중앙 정부에 대한 반발과 서구 민주주의 사상 유입의 영향이었습니다.

1876

[오가사와라 제도 실효 지배 선언]

일본은 1876년 오가사와라 제도에 대한 실효 지배를 선언하며 영토를 확장했습니다.

1879

[제2차 류큐 처분 및 류큐 제도 편입]

일본은 1879년 제2차 류큐 처분을 통해 류큐를 완전히 일본 영토로 흡수했습니다.

이는 류큐국을 폐지하고 오키나와현을 설치함으로써 류큐에 대한 식민 지배를 확립한 조치입니다.

1881

[국회 개설 칙유 발표]

이토 히로부미 등 서남웅번 출신 인사들이 정부 주도권을 장악하고, 1890년까지 국회를 개설하겠다는 '국회 개설의 칙유'를 발표했습니다.

이는 민권 운동을 무마시키고 점진적인 입헌 군주제를 지향하려는 의도였습니다.

1889

[대일본제국 헌법 반포]

1889년 2월 11일, '대일본제국 헌법'(메이지 헌법)이 반포되며 일본은 근대적인 입헌 국가로 도약했습니다.

이 헌법은 천황에게 강력한 권한을 부여하면서도 의회와 법률을 통해 국가를 통치하는 체제를 명시했습니다.

1890

[일본 제국의회 개설]

1890년, 일본 제국의회가 개설되며 천황 중심의 통치 체제가 완성되었습니다.

이는 국회 개설 칙유에 따른 것으로, 형식적이나마 입헌 군주제의 틀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1895

[센카쿠 열도 편입 주장]

일본은 1895년 센카쿠 열도를 오키나와현에 편입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는 현재까지 영토 분쟁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을미사변 자행]

일본 공사 미우라 고로의 지시로 일본군과 낭인들이 경복궁에 침입하여 명성황후를 시해하고 시신을 불태운 잔혹한 사건입니다.

이는 친일 정권 수립을 위한 일본의 무력 간섭이었으며, 조선인들의 강렬한 항일 의병 운동을 촉발시켰습니다.

[청일 전쟁 승리 및 대만 획득]

청일 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시모노세키 조약을 통해 청나라로부터 대만을 할양받아 식민지로 편입했습니다.

이 승리로 일본은 아시아에서의 영향력을 크게 확대하고, 조선에 대한 지배력 강화를 본격적으로 시도하게 되었습니다.

1898

[미나미토리섬 편입]

일본은 1898년 미나미토리섬을 도쿄부 관할 구역으로 편입하며 최동단 영토를 확장했습니다.

1904

[러일 전쟁 발발]

일본은 한반도와 만주 권익을 두고 러시아와 협상이 결렬되자 1904년 러시아에 선전포고하며 러일 전쟁을 시작했습니다.

이 전쟁은 동아시아 패권을 놓고 벌어진 제국주의 열강 간의 충돌이었습니다.

1905

[러일 전쟁 승리 및 영토 확장]

러일 전쟁에서 세계를 놀라게 할 만한 대승을 거둔 일본은 포츠머스 조약을 통해 러시아로부터 사할린섬 남부와 랴오둥반도의 관동주 조차권을 획득했습니다.

이 승리는 일본이 동아시아의 독보적인 강대국으로 부상하고, 한국에 대한 지배권을 확고히 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을사늑약 강제 체결]

러일 전쟁 승리 후, 일본은 대한제국에 을사늑약을 강제로 체결하여 외교권을 박탈하고 통감부를 설치했습니다.

이는 대한제국을 일본의 보호국으로 만들고 내정 간섭을 본격화하는 노골적인 침략 행위였습니다.

1907

[고종 강제 퇴위 및 한일신협약 체결]

일본은 1907년 고종 황제를 강제로 퇴위시키고 한일신협약(정미 7조약)을 체결하여 대한제국의 내정권을 박탈했습니다.

이와 함께 대한제국 군대까지 강제로 해산시켜 한국의 주권을 완전히 침탈했습니다.

1910

[대한제국 강제 병합 (한일 병합)]

일본은 1910년 8월 29일 '한일 병합 조약'을 통해 대한제국을 강제로 병합하며 식민지로 삼고 '조선'으로 국호를 변경했습니다.

이는 한국 역사상 가장 비극적인 사건 중 하나로, 35년간의 일제 강점기가 시작되는 서막이었습니다.

1911

[제2차 사이온지 내각 출범]

1911년 제2차 사이온지 내각이 출범하여 행정 및 재정 정리와 감세를 골자로 하는 긴축 정책을 추진했습니다.

이는 재정 건전성을 확보하려는 노력의 일환이었습니다.

1912

[다이쇼 정변 발발 및 제3차 가쓰라 내각 퇴진]

제국 육군대신의 사임으로 제2차 사이온지 내각이 총사직하고 제3차 가쓰라 내각이 출범했지만, 천황을 앞세운 의회 경시 태도로 비난을 받았습니다.

이에 족벌 타파와 헌정 옹호를 내건 '호헌 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어, 결국 가쓰라 내각은 출범 50일 만에 총사퇴하는 '다이쇼 정변'이 발생했습니다.

1914

[제1차 세계 대전 참전 및 영토 확장]

일본은 1914년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영일 동맹을 명분으로 연합국 측에 가담하여 참전했습니다.

이는 동아시아에서 일본의 지위를 높이고 국제적 발언권을 강화하려는 목적이었으며, 독일령 중국 산둥반도와 남양군도를 점령하는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1915

[21개조 요구 제시]

일본은 1915년 1월, 중국에 대해 만주와 산둥반도 등에서의 일본 이권 반영구화, 남만주와 내몽골 일부의 조차 등 21개조 특혜 조건을 강압적으로 요구했습니다.

중국은 이를 수용할 수밖에 없었으나, 이는 5·4 운동과 같은 격렬한 배일 여론을 촉발시켰습니다.

1917

[러시아 내전 시베리아 파병]

러시아 혁명 이후 발생한 내전에서 일본은 백군을 돕기 위해 7만 2천여 명의 대규모 병력을 시베리아에 파견했으나, 결국 패배하며 시베리아 침략 활동은 실패로 끝났습니다.

1920

[남양 군도 위임 통치령 획득]

제1차 세계 대전 승리 후, 일본은 옛 독일 제국의 식민지였던 남양 군도(미크로네시아)를 국제 연맹 위임 통치령으로 획득했습니다.

이는 일본의 태평양 지역 영향력을 확대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1923

[간토 대지진 발생]

1923년 9월 1일, 간토 대지진이 발생하여 도쿄를 비롯한 게이힌 지역의 상공업 지대가 초토화되었습니다.

이는 일본 경제에 큰 타격을 입히며 기존의 불황을 더욱 심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1929

[세계 대공황으로 인한 경제 위기 심화]

1929년 세계 대공황의 여파로 일본 경제의 불황이 극에 달하자, 국민들의 불만이 고조되었습니다.

이를 틈타 극우 보수 세력과 청년 장교층이 암살과 쿠데타를 일으키며 민간 의회 정부가 전복되고 군부의 영향력이 강화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1930

[하마구치 오사치 총리 암살 미수 사건]

만주 침략에 반대하던 하마구치 오사치 총리가 우파 청년에 의해 총격을 당해 부상을 입었습니다.

이 사건은 일본 내 군부의 압력이 심화되고 민간 정부에 대한 폭력적인 도발이 시작되었음을 보여줍니다.

1931

[오키노토리섬 편입]

일본은 1931년 오키노토리섬을 도쿄부 관할 구역으로 편입하며 최남단 영토를 확장했습니다.

[만주사변 발발 및 만주국 건국]

1931년 9월, 일본 관동군의 주도로 만주사변이 발발하여 일본은 만주 전역을 점령하고 청나라 마지막 황제 푸이를 앞세운 괴뢰 국가 '만주국'을 건국했습니다.

이는 국제 사회의 비난과 일본의 국제 연맹 탈퇴를 초래한 침략 전쟁의 시작이었습니다.

1932

[군부의 국제 연맹 탈퇴 압박]

만주국 건국에 대한 국제 사회의 부정적 여론이 거세지자, 일본 군부는 정부를 압박하여 국제 연맹 탈퇴를 강요했습니다.

이로 인해 일본은 고립 외교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이누카이 쓰요시 총리 암살 (5.15 사건) 및 군부 정치 개입 본격화]

만주 철수를 시도하던 이누카이 쓰요시 총리가 청년 장교들에게 암살당하는 '5.15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정당 내각이 단절되고 군인 출신 총리가 부임하는 등 일본 군부가 정치에 본격적으로 개입하기 시작하여 군국주의 체제로의 전환이 가속화되었습니다.

1936

[독일과의 군사 동맹 체결]

일본은 1936년 독일에 이어 이탈리아와도 군사 동맹을 체결하며 추축국 형성의 기반을 다졌습니다.

이는 국제적 고립 속에서 군국주의 세력의 확장 야욕을 드러낸 행보였습니다.

[2.26 사건 발생]

1936년 2월 26일, 청년 장교들이 주요 대신들을 암살하는 '2.26 사건'을 일으켰습니다.

이 사건은 군부 내의 파벌 간 갈등을 보여주었으나, 결과적으로 일본에서 군부의 영향력을 더욱 막강하게 만들고 군부가 내각을 좌우하는 군국주의 체제를 공고히 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1937

[중일 전쟁 발발 및 난징 대학살]

1937년 7월 7일, 루거우차오 사건을 빌미로 일본은 선전포고 없이 중일 전쟁을 일으켜 중국을 침략했습니다.

같은 해 12월에는 중국의 수도 난징을 점령하고 약 5만~30만 명의 민간인을 학살하며 강간 등을 자행한 '난징 대학살'이라는 인류 역사상 유례없는 잔혹한 전쟁 범죄를 저질렀습니다.

1938

[국가총동원법 제정]

일본은 중일 전쟁 장기화에 대비하여 1938년 '국가총동원법'을 제정했습니다.

이 법은 군부의 권한을 강화하고 인적·물적 자원을 전시 동원에 활용하여 일본 본토와 식민지에서의 경제적 수탈을 정당화하는 수단이 되었습니다.

[스프래틀리 군도 편입]

일본은 1938년 스프래틀리 군도를 편입하며 남중국해 지역으로 영향력을 확대했습니다.

1939

[제2차 세계 대전 발발]

1939년 폴란드를 침공한 나치 독일로 인해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며 세계는 거대한 전쟁의 소용돌이에 휩싸였습니다.

1940

[독일·이탈리아·일본 삼국 동맹 체결 및 남진 정책 결정]

1940년, 일본은 독일, 이탈리아와 군사 동맹을 체결하며 '추축국'으로서 본격적인 연합을 시작했습니다.

동시에 프랑스와 네덜란드의 동남아시아 식민지를 빼앗는 '남진 정책'을 결정하며 태평양 전쟁으로의 확전 가능성을 높였습니다.

1941

[일소 중립 조약 체결]

일본은 소련과의 중립 조약을 체결하여 북방의 위협을 제거하고 남진 정책에 집중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이는 곧 이어질 태평양 전쟁 준비의 일환이었습니다.

[필리핀 제2공화국 수립 (괴뢰 국가)]

일본은 1941년 필리핀을 점령한 후, '필리핀 제2공화국'이라는 괴뢰 국가를 수립하여 현지 통치를 시도했습니다.

이는 일본의 대동아공영권 확립 전략의 일환이었습니다.

[진주만 급습 및 태평양 전쟁 발발]

1941년 12월 8일, 일본은 하와이 진주만을 기습 공격하고 미국과 영국 등 연합국에 선전포고하며 태평양 전쟁을 시작했습니다.

이는 제2차 세계 대전의 전선을 아시아-태평양 지역으로 확대시킨 결정적인 사건으로, 전 세계를 전장의 소용돌이로 몰아넣었습니다.

[영국령 홍콩 점령]

일본군은 진주만 공격과 동시에 영국령 홍콩을 침공하여 점령했습니다.

이는 태평양 전쟁 초기 일본의 빠른 세력 확장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1942

[가라후토 청(남사할린) 내지 편입]

러시아로부터 할양받아 통치하던 남사할린(가라후토 청)이 1942년 공식적으로 일본 본토(내지)에 편입되었습니다.

이는 식민지였던 외지를 내지화하여 제국 영토의 통합을 강화하려는 조치였습니다.

[미드웨이 해전 및 과달카날 전투 패배]

1942년 미드웨이 해전과 과달카날 전투에서 연합군에게 치명적인 패배를 겪으며 일본군의 전력이 크게 약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이 전투들은 태평양 전쟁의 전세를 뒤바꾸는 결정적인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동남아시아 및 오세아니아 지역 대규모 점령]

일본군은 태평양 전쟁 초기에 파죽지세로 동남아시아와 오세아니아 지역을 침공하여 영국령 버마(미얀마), 네덜란드령 동인도(인도네시아), 오스트레일리아령 뉴기니 등 광대한 영토를 점령했습니다.

이는 '대동아공영권'을 표방하며 연합군에게 막대한 타격을 가한 일본의 전쟁 초기 최대 성과였습니다.

1945

[베트남 제국 수립 (괴뢰 국가)]

1945년 3월 11일, 일본군의 압력으로 프랑스 총독부가 항복하고, 응우옌 왕조의 마지막 황제 바오다이가 일본의 괴뢰 정권인 '베트남 제국'을 수립했습니다.

이는 일본이 인도차이나반도에서 세력을 강화하려는 시도였습니다.

[소련의 만주 침공 및 나가사키 원자폭탄 투하]

1945년 8월 9일, 소련이 영토 확장을 위해 만주를 침공하며 일본에 선전포고했습니다.

같은 날, 미국은 나가사키에 두 번째 원자폭탄을 투하하여 일본 본토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혔습니다.

이 두 사건은 일본의 항복을 촉진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소련은 8월 9일 만주 전략공세작전을 개시하며 일본 관동군을 궤멸시켰습니다. 같은 날, 미국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 '팻 맨'을 투하했습니다. 이는 8월 6일 히로시마에 투하된 '리틀 보이'에 이은 두 번째 원폭 투하였습니다. 이로 인해 일본은 전쟁 지속 능력을 상실하고 항복을 결정하게 됩니다.

[포츠담 선언 수락 결정]

소련의 참전과 원자폭탄 투하로 인해 전세가 기울자, 일본은 1945년 8월 14일 포츠담 선언 수락을 선언하며 사실상 항복을 결정했습니다.

이는 제2차 세계 대전 종결의 서막이었습니다.

[쇼와 천황의 항복 선언 (옥음방송)]

1945년 8월 15일, 쇼와 천황이 라디오를 통해 '옥음방송'으로 연합국의 포츠담 선언 수락을 발표하며 일본 제국의 무조건 항복을 전 세계에 알렸습니다.

이로써 제2차 세계 대전은 사실상 종결되었습니다.

[만주국 해체]

일본의 항복 선언 이후, 일본이 세운 괴뢰 국가인 만주국이 1945년 8월 18일 해체되었습니다.

이는 일본 제국의 식민 통치 종식을 알리는 상징적인 사건이었습니다.

[베트남 제국 및 캄보디아 왕국 해체]

일본의 패망에 따라 동남아시아에 수립되었던 일본의 괴뢰 국가인 베트남 제국과 캄보디아 왕국이 1945년 8월 30일 해체되었습니다.

이는 일본 제국의 해외 영토 지배 종식을 의미했습니다.

[일본의 포츠담 선언 공식 서명 및 연합군 군정 시작]

1945년 9월 2일, 일본 외무대신 시게미쓰 마모루가 포츠담 선언에 공식 서명하며 일본 제국은 연합군의 관리 체제에 돌입했습니다.

이로써 일본은 미군 주도의 연합군 최고사령부 군정을 받게 되며 사실상 일본 제국 체제의 해체가 시작되었습니다.

[일본 점령지 대거 해방]

일본의 공식 항복 이후, 1945년 9월 9일을 기점으로 일본이 전쟁 중 점령했던 중국 대륙 일부, 영국령 홍콩, 영국령 버마, 영국령 말레이 연방, 네덜란드령 동인도, 호주령 뉴기니 등 광대한 지역들이 일본의 지배에서 벗어나 해방되었습니다.

1946

[연합군 최고사령부, 일본 제국 헌법 개정 초안 제시]

연합군 최고사령부는 1946년 2월 13일, 일본 제국 헌법 개정 초안을 제시하며 국호를 '일본국'으로 변경할 것을 포함한 새로운 헌법 제정을 요구했습니다.

이는 일본 제국 체제의 완전한 해체와 새로운 국가 체제 수립을 위한 조치였습니다.

1947

[일본국 헌법 시행 및 일본 제국 공식 해체]

'주권 재민'을 명시한 새로운 '일본국 헌법'이 1947년 5월 3일 시행되면서 대일본제국이라는 국호와 함께 일본 제국은 공식적으로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이는 연합군 군정 종식과 함께 현대 일본의 시작을 알리는 중요한 전환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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