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구스토 피노체트
칠레의 독재자, 군인, 정치인
최근 수정 시각 : 2025-10-18- 21:41:32
아우구스토 피노체트는 1973년 칠레의 민주적으로 선출된 사회주의 정부를 군사 쿠데타로 전복하고 17년간 철권통치를 펼친 독재자입니다. 수천 명의 인명을 살상하고 수만 명을 고문하며 피의 독재를 자행했지만 동시에 자유 시장 경제 정책으로 칠레의 기적을 이끌었다는 평가도 받습니다. 권좌에서 물러난 후에도 국제적인 사법 처리와 가택 연금을 겪었으나 결국 법의 심판을 받지 않고 2006년 사망했습니다. 그의 유산은 칠레 현대사에 깊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습니다.
1915
[독재자의 탄생]
칠레 발파라이소에서 훗날 칠레 현대사에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기게 될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우가르테가 태어났습니다.
1973
['칠레의 기적'과 피노체트의 경제 정책]
피노체트 정권은 '시카고 보이즈'라 불리는 경제학자들의 조언을 받아 국영 기업 민영화, 규제 철폐 등 자유지상주의적 경제 정책을 강력히 추진했습니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밀튼 프리드먼 등은 이를 '칠레의 기적'이라 칭송했으나, 한편으로는 심각한 실업률 상승과 불평등을 야기했습니다.
아옌데 정권 시절 140%에 달하던 인플레이션율은 피노체트 집권 초기에 더 치솟았고, 이후 점차 하락하여 1980년대 위기 직전 10% 이하로 내려갔습니다. 그러나 1980년대 초 실업률이 20%대로 급상승하는 등 경제적 혼란도 겪었습니다.
[피노체트, 쿠데타로 칠레 장악]
세계 역사상 처음으로 민주 선거를 통해 집권한 살바도르 아옌데의 사회주의 정부가 아우구스토 피노체트의 군부 쿠데타로 붕괴했습니다.
피노체트는 이날부터 칠레를 지배하는 군부 독재자로 등극하며, 칠레의 오랜 민주주의 역사에 종지부를 찍었습니다.
그의 정권은 '피의 독재'로 불리며 수많은 인권 탄압을 자행했습니다.
피노체트의 군부 독재는 17년간 지속되었으며, 칠레 정부의 과거사 조사에 따르면 약 3,197명의 사망자, 수만 명의 고문 피해자, 1,197명의 실종자가 발생했습니다. 축구 경기장이 양심수 학살 장소로 사용되는 등 반인륜적인 만행이 저질러지기도 했습니다.
1974
[대통령 정식 취임]
군사 평의회 의장과 최고지도자를 거쳐, 아우구스토 피노체트가 칠레의 대통령으로 정식 취임했습니다.
이는 그의 권력 기반을 더욱 공고히 하는 상징적인 사건이었습니다.
1990
[민중의 투쟁, 독재의 막을 내리다]
칠레 국민들의 거센 민주화 요구와 비폭력 저항, 그리고 언론 통제 속 인권 탄압 문제를 부각시킨 반 피노체트 진영의 노력으로 결국 피노체트는 권좌에서 물러났습니다.
미국마저 등을 돌리며 그의 17년간의 독재가 공식적으로 막을 내렸습니다.
칠레 로마 가톨릭교회를 중심으로 유대교, 정교회, 개신교 등 여러 종교 단체가 1973년부터 '정의평화위원회'를 구성하여 민주화 운동에 적극 참여했습니다. 7명의 사제가 순교할 정도로 탄압받았지만, 민중들의 시위와 낙선운동은 결국 피노체트를 굴복시켰습니다.
1998
[런던에서 체포된 독재자]
칠레를 떠나 런던에서 요양 중이던 피노체트는 영국 사법 당국에 체포되었습니다.
과거 포클랜드 전쟁 당시 영국의 승리를 도왔던 그는 마가렛 대처 총리의 비호를 받았지만, 토니 블레어 총리 취임 후 군사 독재 척결 기조에 따라 스페인 정부의 국제 수배령에 응한 것이었습니다.
2000
[건강 문제로 석방, 칠레로 송환]
건강 악화를 이유로 영국에서 석방된 피노체트는 칠레로 귀국했습니다.
그러나 칠레 사법부는 독재자를 반드시 처벌하겠다는 신념으로 그를 가택 연금하고 약 300여 건의 국가 범죄 혐의로 기소하며 법적 절차를 이어갔습니다.
2006
[“조국을 사랑한다” 피노체트의 마지막 연설]
91번째 생일을 맞은 아우구스토 피노체트는 지지자들에게 보낸 연설문에서 "나의 죽음이 다가오고 있는 오늘, 어느 누구에게도 원한은 없으며 무엇보다도 나의 조국을 사랑한다.
그동안 행해졌던 모든 것에 대해 내가 책임을 지겠노라"고 전하며 마지막 심경을 밝혔습니다.
연설문은 그의 부인이 대독했습니다. 이는 그의 죽음이 임박했음을 시사하는 동시에, 그가 자신의 행적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했는지 보여주는 상징적인 순간입니다.
[독재자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사망]
심장마비 증세로 병원에 입원해 가택 연금이 해제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아우구스토 피노체트가 울혈성 심부전으로 사망했습니다.
그의 사망 소식에 칠레 산티아고에서는 지지자들과 반대 세력 간의 충돌이 발생했으며, 칠레 정부는 그의 과거 행적을 이유로 국장을 거부했습니다.
당시 칠레 대통령 미첼레 바첼레트의 아버지는 피노체트 쿠데타 이후 투옥되어 사망한 바 있어, 바첼레트 대통령은 "피노체트의 국장에 참여하는 것은 양심에 위배된다"고 밝히며 군장으로 장례를 치르도록 했습니다. 피노체트의 유해는 본인의 뜻에 따라 화장되어 모욕을 막기 위했다고 전해집니다.
2021
[피노체트 헌법, 역사 속으로 사라지다]
피노체트 군부 독재 시절 제정되어 극심한 불평등을 야기한다는 비판을 받아온 '피노체트 헌법'이 칠레 제헌의회의 새 헌법 제정에 따라 마침내 전면 폐기되었습니다.
이는 피노체트의 유산이 청산되는 중요한 역사적 전환점입니다.
피노체트 헌법은 칠레 사회의 불평등 심화에 크게 기여했다는 비판을 받아왔으며, 오랜 진통 끝에 새로운 헌법으로 대체되며 피노체트 시대의 잔재를 청산하는 상징적인 의미를 가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