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초 비야
혁명가, 군인, 농민군 지도자, 무법자
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1:08:30
• 멕시코 혁명의 상징이자 민중의 영웅 판초 비야 •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산적 두목으로 성장 약탈한 재물을 빈민에게 나눠주며 멕시코의 로빈후드로 불림 • 압도적 카리스마와 전설적인 연승 행진으로 북부 멕시코를 장악하며 혁명의 핵심 인물로 부상 • 역사상 세계 최초이자 유일하게 미국 본토를 공격한 인물로 기록됨 • 결국 반대파의 손에 암살당하며 비극적인 최후를 맞았지만 멕시코 역사에 깊은 흔적을 남김
1878
[가난한 농부의 아들, 혁명의 씨앗을 품다]
멕시코 산후안델리오 아시엔다에서 가난한 농장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의 본명은 호세 도로테오 아랑고 아람불라였지만, 후에 '판초 비야'라는 이름으로 멕시코 민중의 영웅이 됩니다.
1894
[산적 두목 '판초 비야'의 탄생]
누이를 강간한 농장주인을 살해하고 산속으로 도피했습니다.
이때 본명 도로테오 아랑고 대신 '프란시스코 비야'라는 이름을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약탈한 재물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며 '멕시코의 로빈후드'로 불리며 민중의 신망을 얻었습니다.
1910
[멕시코 혁명의 불꽃, 북부의 영웅으로 부상]
세력을 키운 판초 비야는 프란시스코 I.
마데로가 주도하는 멕시코 혁명에 뛰어들었습니다.
그의 전설적인 연승과 압도적인 카리스마는 그를 멕시코 북부 일대를 장악한 '민중의 영웅'으로 만들었습니다.
그의 지휘 아래 '북부사단'은 멕시코 북부 치와와주에서 멕시코시티에 이르는 광대한 지역을 장악하며 혁명의 핵심 세력으로 떠올랐습니다.
1915
[운명을 가른 '셀라야 전투' 패배]
1차 혁명 성공 후 민간인으로 돌아갔던 비야는 연이은 반혁명 정권 등장으로 다시 내전에 참전했습니다.
하지만 '셀라야 전투'에서 최대 정적인 베누스티아노 카란사와 알바로 오브레곤에게 결정적으로 패배하며 기반을 잃었습니다.
그는 미국의 카란사 지원이 혁명 실패의 원인이라 여겼습니다.
1916
[세계 최초! 미국 본토를 공격한 유일한 인물]
셀라야 전투 패배 후, 판초 비야는 미국이 카란사를 지원했기 때문에 혁명이 실패했다고 판단했습니다.
이에 분노하여 멕시코와 미국 접경 도시의 미국인들을 공격했고, 뉴멕시코주에서 18명의 인명 피해가 발생했습니다.
이는 역사상 세계 최초로 미국 본토를 공격한 유일한 인물로 기록됩니다.
이에 미국은 존 퍼싱 장군이 수천 명의 병력을 이끌고 비야 토벌에 나섰으나, 결국 판초 비야를 잡는 데 실패했습니다.
1923
[멕시코 민중의 영웅, 비극적인 최후를 맞다]
카란사 정권이 붕괴되자 다시 민간인으로 돌아왔지만, 1923년 7월, 반대파의 손에 암살당했습니다.
그의 죽음 뒤에는 차기 대통령을 노리던 카예스가 비야의 대중적 지명도를 두려워하여 암살을 지시했다는 설이 유력하게 제기됩니다.
암살 직후 라 임페르알에 실린 만평에서 "누가 비야를 죽였지?(¿Quién mató a Villa?)"라는 질문에 "입다물고 있게나.... 친구여 (Cálle....se, amigo)"라고 답한 것은 카예스(Calles)가 배후임을 암시하는 발음으로 당시 상황을 보여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