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연방

국가 연합, 연방화 과정, 식민지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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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1: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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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연합, 연방화 과정, 식민지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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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연방은 1863년부터 1867년까지 약 3년간 영국령 북아메리카 식민지들이 하나의 연방으로 통합된 과정을 의미합니다. 1867년 7월 1일 영국령 북아메리카 법 통과로 캐나다 자치령이 공식 설립되었으며 이는 오늘날 캐나다의 탄생 기반을 마련한 역사적인 사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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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1

[노바스코샤 식민지 시작]

잉글랜드 제임스 1세 국왕의 헌장에 따라 윌리엄 알렉산더 경에게 노바스코샤가 부여되며, 이 지역의 영국 식민지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이는 이후 캐나다 연방의 중요한 구성원이 될 지역의 초석을 다졌습니다.

1713

[위트레흐트 조약으로 노바스코샤 획득]

영국이 프랑스와의 위트레흐트 조약을 통해 오늘날의 노바스코샤 본토를 획득하며 캐나다 동부 영토에 대한 지배권을 공고히 했습니다.

이는 북미 대륙에서 영국의 영향력을 확대하는 중요한 전환점이었습니다.

1755

[아카디아인 추방]

영국 정부가 아카디아 지역의 통제권을 확고히 하고자 프랑스계 주민인 아카디아인들을 대규모로 추방했습니다.

이 강제 이주 정책은 캐나다 역사에 지울 수 없는 상흔을 남겼습니다.

1763

[파리 조약 체결 및 누벨프랑스 영국령화]

7년 전쟁에서 프랑스가 패배한 후, 파리 조약 체결로 누벨프랑스의 잔여 영토가 영국령으로 넘어갔습니다.

이로써 오늘날 캐나다 지역의 대부분이 영국의 지배 아래 놓이게 되며, 캐나다 연방의 지리적 윤곽이 형성되기 시작했습니다.

1769

[프린스 에드워드 아일랜드 식민지 분리]

오늘날 프린스에드워드아일랜드가 아카디아에서 분리되어 '세인트 존스 섬'이라는 이름으로 별도의 영국 식민지로 조직되었습니다.

이는 섬 지역의 독자적인 행정 체계의 시작을 알렸습니다.

1784

[뉴브런즈윅 주 신설]

미국 독립 전쟁 이후 영국에 충성했던 약 5만 명의 로열리스트들이 영국령 북아메리카로 피신했습니다.

영국은 이들이 노바스코샤 서부에 정착한 것을 고려해 '뉴브런즈윅'이라는 별도의 주를 신설했습니다.

1791

[퀘벡주 분할]

1791년 헌법에 따라 퀘벡주가 주로 영어권의 어퍼캐나다와 프랑스어권의 로어캐나다로 분리되었습니다.

이는 각기 다른 문화적 배경을 가진 인구 분포를 반영하여 지역 간의 정치적 균형을 맞추기 위한 조치였습니다.

1798

[프린스 에드워드 아일랜드 개명]

세인트 존스 섬의 명칭이 켄트 및 스트래서른 공작 에드워드 왕자를 기리기 위해 '프린스 에드워드 아일랜드'로 변경되었습니다.

1814

[북아메리카 식민지 연방 구상 최초 제기]

로어캐나다 최고법원장 조너던 스웰이 '북아메리카의 영국 식민지 연방 연합 계획' 보고서를 통해 여러 식민지를 합치는 구상을 처음으로 제기했습니다.

이는 캐나다 연방이라는 거대한 꿈의 씨앗이 되었습니다.

1818

[미국-영국령 북아메리카 국경 확정]

미영 전쟁 이후 체결된 조약을 통해 캐나다 서부와 미국의 국경이 북위 49도선으로 확정되었습니다.

이는 양국 간의 영토 분쟁을 해소하고 안정적인 국경을 설정하는 중요한 합의였습니다.

1839

[더럼 보고서 제출]

1837년 반란 이후, 더럼 경이 어퍼캐나다와 로어캐나다를 합병하고 책임정부를 수립할 것을 권고하는 '더럼 보고서'를 제출했습니다.

이 보고서는 캐나다의 정치 개혁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1840

[연합법 통과]

더럼 보고서의 권고에 따라 영국 의회가 연합법을 통과시켰습니다.

이는 어퍼캐나다와 로어캐나다를 하나의 '캐나다주'로 통합하는 법적 기반을 마련하며 연방화의 중요한 전 단계가 되었습니다.

1841

[캐나다주 설립]

연합법에 따라 어퍼캐나다와 로어캐나다가 합쳐진 '캐나다주'가 공식적으로 설립되었습니다.

이는 캐나다 연방을 향한 실질적인 통합의 시작을 알리는 사건이었습니다.

1848

[캐나다 책임정부 수립 시작]

캐나다 총독 엘긴 경이 노바스코샤를 시작으로 캐나다 전역에 책임정부 도입을 허용했습니다.

이는 식민지 자치권 확대로 이어져, 스스로 운명을 결정할 수 있는 연방화 움직임에 강력한 힘을 실어주었습니다.

1851

[프린스 에드워드 아일랜드 책임정부 수립]

영국 정부가 프린스 에드워드 아일랜드에도 책임정부를 확대 적용하며 식민지의 자치권을 더욱 강화했습니다.

1854

[뉴브런즈윅 책임정부 수립]

뉴브런즈윅에도 책임정부가 도입되어 식민지의 자치권이 확대되었습니다.

이는 연방화 논의의 배경이 된 각 식민지의 자치 역량 강화와 맞물리는 흐름이었습니다.

1855

[뉴펀들랜드 책임정부 수립]

뉴펀들랜드에도 책임정부가 도입되어 식민지의 자치권이 확대되었습니다.

이로써 캐나다 지역의 주요 식민지 대부분이 자치 정부를 갖추게 됩니다.

[브리티시컬럼비아 식민지 수립]

브리티시컬럼비아가 별도의 식민지로 수립되었습니다.

이는 이후 캐나다 연방에 합류하게 될 서부 지역의 중요한 행정 단위가 되었습니다.

1857

[조제프샤를 타셰의 연방 제안]

작가 조제프샤를 타셰가 신문 기사를 통해 연방 설립을 제안하며 대중적 논의를 촉발했습니다.

그의 글은 연방화에 대한 인식을 확산시키는 데 기여했습니다.

1859

[영국 의회, 연방화 제안 거부]

알렉산더 틸로치 갈트 등 캐나다 대표단이 영국 의회에 영국령 북아메리카 식민지의 연방화를 제안했으나, 당시 영국 의회는 이를 정중히 거부했습니다.

이는 초기 연방화 추진의 난관을 명확히 보여주었습니다.

1860

[앨버트 에드워드 왕자 북아메리카 순방]

빅토리아 여왕의 아들 앨버트 에드워드 왕자(훗날 에드워드 7세)의 북아메리카 순방이 식민지 주민들 간의 공통 유대감을 강화하며 통합에 대한 긍정적인 분위기를 조성했습니다.

이는 연방화에 간접적으로 기여했습니다.

1863

[캐나다 연방화 논의 시작]

뉴브런즈윅 부총독 아서 해밀턴고든이 캐나다 연해주 단일화를 제안하며 캐나다 연방화 논의의 물꼬를 텄습니다.

이는 노바스코샤 주지사 찰스 터퍼 등 주요 인물들을 설득하는 과정으로 시작되었습니다.

1864

[대연정(Great Coalition) 형성]

1840년 연합법에 따른 캐나다주 통치의 한계가 명확해지자, 정치 체제 개혁을 위해 영국령 북아메리카 지도자들 사이에 '대연정(Great Coalition)'이 형성되었습니다.

이는 연방화를 위한 강력한 정치적 동력을 제공했습니다.

[정치 개혁 논의 본격화]

캐나다의 정치 체제 개혁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가 시작되었습니다.

이는 연방화 추진의 중요한 단계였으며, 샬럿타운과 퀘벡 회의로 이어지는 기반을 다졌습니다.

[샬럿타운 회의 개최]

캐나다 연방의 법적 기틀을 마련하기 위한 샬럿타운 회의가 열렸습니다.

이 회의는 초기에는 해양 식민지들의 연합을 논의하는 자리였으나, 캐나다주의 대표단이 참여하며 연방화 논의로 확대되는 결정적인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퀘벡 회의 개최]

샬럿타운 회의의 성공에 이어 퀘벡 회의가 열려 캐나다 연방의 법적 기틀을 구체적으로 마련했습니다.

이 회의는 연방 헌법의 초안이 된 '퀘벡 결의'를 도출하며 연방화 추진에 중요한 진전을 이루었습니다.

1866

[런던 회담 개최]

샬럿타운 및 퀘벡 회의에서 합의된 연방화 방안이 런던 회담을 통해 영국 정부에 공식적으로 전달되었습니다.

이는 캐나다 연방 창설을 위한 마지막 단계로, 영국 의회의 승인을 얻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브리티시컬럼비아 식민지 통합]

브리티시컬럼비아 식민지와 밴쿠버섬 식민지가 통합되어 새로운 브리티시컬럼비아 식민지로 재편되었습니다.

이는 연방 가입 전 서부 식민지의 행정 효율성을 높이는 조치였습니다.

1867

[영국령 북아메리카 법 제정]

빅토리아 여왕이 캐나다 자치령 설립의 기반이 될 '영국령 북아메리카 법'을 제정했습니다.

이 법은 캐나다 연방의 헌법적 기틀을 마련했으며, 역사적인 캐나다 탄생을 예고했습니다.

[세계 최초 캐나다 자치령 탄생]

영국령 북아메리카 법이 영국 정부에서 통과됨으로써 캐나다 자치령이 공식적으로 탄생했습니다! 이는 온타리오, 퀘벡, 노바스코샤, 뉴브런즈윅 주로 구성된 캐나다의 건국일로 기념되는 역사적인 순간입니다.

[캐나다 첫 연방 선거 실시]

캐나다 자치령에서 첫 연방 선거가 치러져 존 알렉산더 맥도널드가 초대 총리직을 유지하게 되었습니다.

이는 새로운 국가의 정치 체제를 확립하는 중요한 단계이자, 캐나다 민주주의의 시작을 알리는 사건이었습니다.

[캐나다 제1대 의회 구성]

캐나다 자치령의 제1대 의회가 공식적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이는 새로운 연방 정부의 입법 기관이 실질적으로 활동을 시작했음을 의미하며, 캐나다 연방의 시스템이 본격적으로 가동되었음을 보여줍니다.

1871

[브리티시컬럼비아 캐나다 자치령 가입]

태평양 연안의 중요 식민지였던 브리티시컬럼비아가 캐나다 자치령에 가입하며, 캐나다의 영토가 서쪽 해안까지 확장되는 중요한 진전을 이루었습니다.

이로써 캐나다는 '대서양에서 태평양까지'라는 꿈에 한 발 더 다가섰습니다.

1873

[프린스 에드워드 아일랜드 캐나다 자치령 가입]

샬럿타운 회의와 퀘벡 회의에 참석했음에도 초기에 연방에 합류하지 않았던 프린스에드워드아일랜드주가 캐나다 자치령에 마침내 가입했습니다.

이로써 캐나다 영토가 확장되며 연방의 완전한 모습을 갖춰가기 시작했습니다.

1949

[뉴펀들랜드 연방 가입]

퀘벡 회의에 사절단을 파견했음에도 오랫동안 연방 가입을 보류했던 뉴펀들랜드 식민지가 마침내 캐나다 자치령에 합류하며, 캐나다의 마지막 주요 영토 편입이 이루어졌습니다.

이로써 오늘날의 캐나다 영토가 완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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