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전 운동

사회 운동, 평화 운동, 반군국주의, 반제국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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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1: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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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운동, 평화 운동, 반군국주의, 반제국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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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나 군사적 개입에 반대하는 사회 운동입니다. 19세기 후반 제국주의 시대부터 대중적 형태로 발전했습니다. 평화주의 반군국주의 반제국주의 사상을 기반으로 합니다. 시위 문학 예술 등 다양한 방식으로 전쟁의 참상을 고발하고 평화를 지지합니다. 주요 세계 전쟁 시기마다 대중적 운동으로 전개되며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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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5

[임마누엘 칸트, '영구 평화론' 발표]

계몽주의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가 저서 '영구 평화론'을 발표하며, 보편적 민주주의와 국제 협력을 통해 영구적인 평화가 보장될 수 있다는 개념을 *최초로 제시*했습니다.

그는 전쟁이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를 파괴하는 악이며, 영구 평화는 인류의 의무라고 역설했습니다.

이 저서는 유한한 인간에게 영구 평화가 영원한 과제임을 강조하며,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조건을 제안했습니다.

1796

[로버트 소티, 초기 현대 반전시 '블렌하임 이후' 발표]

영국 시인 로버트 소티가 반전 문학의 초기 현대적인 예로 평가받는 시 '블렌하임 이후'를 발표했습니다.

이 작품은 영국과 프랑스의 전쟁 상황 속에서 전쟁의 비극적 결과를 비판하며 평화를 염원하는 메시지를 담았습니다.

1814

[프란시스코 고야, 반전 명화 '1808년 5월 3일' 완성]

스페인 화가 프란시스코 고야가 나폴레옹 군대에 의해 자행된 마드리드 시민들의 처형 사건을 주제로 반전 명화 '1808년 5월 3일'을 완성했습니다.

이 작품은 인간이 인간에게 가하는 폭력을 고발하며 전쟁의 비극적인 희생을 생생하게 전달하는 걸작으로 평가받습니다.

고야는 절망에 빠진 피해자들의 생생한 묘사와 기계적이고 비인간적인 가해자들의 모습을 대조시켜 전쟁의 참혹함을 더욱 극대화했습니다.

1914

[버트런드 러셀, 평화주의 운동으로 투옥]

영국의 저명한 철학자이자 분석철학의 창시자 중 한 명인 버트런드 러셀이 제1차 세계 대전 중 평화주의 활동을 이유로 감옥에 수감되었습니다.

그는 반제국주의를 옹호하고 스탈린주의를 비판했으며, 베트남 전쟁에 대한 미국의 개입을 공격하는 등 적극적인 반전 운동을 펼쳤습니다.

1917

[미국, 간첩법 및 선동법 제정으로 반전 운동 탄압]

미국 정부는 '간첩법'과 '선동법'을 제정하여 반전적 견해를 가진 신문사를 폐쇄하고 활동가들을 투옥하며 반전 운동을 강력히 탄압했습니다.

이는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반전 여론을 통제하려는 시도였습니다.

1918

[유진 V. 뎁스, 반전 연설로 체포]

미국의 사회주의 지도자 유진 V.

뎁스가 반전 연설로 인해 1917년 간첩법에 의해 체포되어 10년형을 선고받았습니다.

이후 워런 G.

하딩 대통령에 의해 감형되었습니다.

1924

[에른스트 프리드리히, 반전 사진집 출판]

에른스트 프리드리히가 제1차 세계대전의 참혹한 군사 및 의료 기록 사진들을 담은 를 출판했습니다.

수전 손택은 이 책을 '끔찍하고 사기를 떨어뜨리기 위한 충격 요법으로서의 사진술'이라고 평했습니다.

1927

[국제반제동맹 결성]

제국주의에 억압받던 식민지 민족의 해방 투쟁을 지원하고 제국주의에 반대하기 위해 국제반제동맹이 결성되었습니다.

이는 국제적 규모의 반제국주의 및 민족 독립 지지 운동의 시작점이 되었습니다.

1929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 '서부 전선 이상 없다' 출판]

독일 작가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가 제1차 세계대전의 참상을 고발하는 대표적인 반전 소설 '서부 전선 이상 없다'를 출판했습니다.

이 작품은 여러 매체로 각색되어 *가장 자주 인용되는 반전 작품* 중 하나가 되었으며, 전쟁의 무의미함과 개인의 비극을 생생하게 그려냈습니다.

1932

[알베르트 아인슈타인과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전쟁에 대한 서신 교환]

국제연맹의 요청으로 알베르트 아인슈타인과 지그문트 프로이트가 '인간을 전쟁의 멍에로부터 해방할 수 있을까?'라는 주제로 서신을 교환했습니다.

두 천재는 인간 마음속의 전쟁 유발 장해물과 평화 실현 가능성에 대해 심도 깊은 논의를 나누며, 정치적 해결을 넘어선 심리적, 교육적 접근의 필요성을 시사했습니다.

'친애하는 프로이트, 당신에게 편지를 보내, 내가 선택한 중요한 문제에 대해 논의할 수 있어서 대단히 기쁘게 생각한다.... '인간을 전쟁이라는 멍에로부터 해방할 수 있을까?' 이것이 내가 선택한 주제이다.' 아인슈타인은 각 나라가 주권의 일부를 포기하고 활동에 일정한 틀을 씌워야만 국제적 평화가 가능할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암스테르담 국제반전대회 개최]

제국주의 전쟁에 반대하기 위해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국제반전대회가 열렸습니다.

사상 *최초로 국제적 규모*로 열린 이 대회에는 각국에서 2천여 명이 참가하여 정당, 사상, 신조를 초월한 반전주의자들이 결집했습니다.

이를 계기로 다양한 반전·평화 운동이 반파시즘이라는 긴급 과제에 맞춰 빠르게 결속되었습니다.

정치적으로는 공산주의자 830명, 사회주의자 291명, 그 밖에 1041명이 참석했습니다. 선언문에서는 자본주의 체제를 전쟁의 원인으로 규정하고 소련 방위를 위한 피착취자들의 단결과 각국 부르주아에 맞선 노동자들의 행동 전개를 촉구했습니다. 이러한 반제국주의적 성격의 국제반전대회는 반전 운동이 발전하는 주요 계기가 되었습니다.

1933

[옥스퍼드 서약: '왕과 국가를 위해 싸우지 않겠다' 결의]

영국 옥스퍼드 대학의 옥스퍼드 유니언이 '옥스퍼드 서약'을 통해 '어떤 경우에도 왕과 국가를 위해 싸우지 않겠다'고 결의했습니다.

이는 당시 젊은 세대 사이의 강한 반전 정서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었습니다.

1937

[파블로 피카소, 반전 명화 '게르니카' 제작]

스페인 내전 중 독일군의 게르니카 마을 폭격 사건에 충격받은 파블로 피카소가 대작 '게르니카'를 완성했습니다.

추상주의 기법으로 전쟁의 광포함과 무력한 인간의 비참함을 표현한 이 작품은 전쟁의 부조리와 비극을 고발하는 20세기의 *가장 강력한 반전 예술 작품* 중 하나로 손꼽힙니다.

작품은 거의 흑백 톤으로 이루어져 괴기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내며, 불타는 집, 아이의 시체를 안고 절규하는 여인, 울부짖는 말 등 전쟁터의 비참한 모습들이 뒤엉켜 전쟁의 참상을 극대화합니다.

1955

[핵무기 없는 세계를 호소하는 러셀-아인슈타인 선언 발표]

수소폭탄 실험으로 인류 절멸 위기감이 고조되자, 물리학자 아인슈타인과 철학자 러셀을 포함한 11명의 세계 저명 과학자들이 런던에서 '핵무기 없는 세계와 분쟁의 평화적 해결을 호소하는 선언'을 발표했습니다.

이 선언은 핵무기로 인한 인류의 위험성을 경고하며 평화적 해결을 촉구했습니다.

이 선언에 영향을 받은 과학자들은 1957년 과학자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고 핵무기와 세계 평화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퍼그워시 회의'를 조직하게 됩니다.

[노벨상 수상자 52명, 마이나우 선언 통해 핵무기 반대 선언]

독일 마이나우에서 52명의 노벨상 수상자들이 '마이나우 선언'에 서명하며 핵무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습니다.

과학자들은 '과학이 인류에게 스스로를 파괴할 수단이 되고 있다는 데에 공포를 느낀다'고 밝히며, 핵 억지력 개념의 허상을 지적하고 핵무기로 인한 인류 절멸 위기를 경고했습니다.

이들은 '과학이 군사적인 목적에 사용되면서 땅은 방사능으로 오염되고 사람들이 절멸 위기를 맞고 있다. 핵무기에 대한 두려움을 통해 전쟁을 억제할 수 있다고 믿는다면 그것은 환상이다'라고 선언했습니다.

1957

[라이너스 폴링, 대규모 반핵 서명 운동 주도]

노벨 화학상 수상자 라이너스 폴링이 대기 중 핵실험 금지를 촉구하는 반핵 서명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전 세계 과학자들에게 동참을 권유하고 대중 강연을 통해 핵실험의 위험성을 알렸으며, 그의 노력으로 49개국 11,000여 명의 과학자 서명을 받은 청원서가 1958년 유엔 사무총장에게 전달되었습니다.

폴링은 원자폭탄 투하 후 적극적인 반핵 운동에 참여하며 FBI의 감시와 수사를 받기도 했습니다. 그는 1946년부터 아인슈타인 등이 주도하는 원자 과학자 비상위원회의 회원으로 활동했습니다. 1958년에는 '더 이상의 전쟁은 없어야 한다'는 책을 통해 과학이 평화에 공헌해야 한다고 역설했습니다.

1962

[라이너스 폴링, 노벨 평화상 수상]

핵무기 반대 및 평화 운동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저명한 화학자 라이너스 폴링이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습니다.

그는 과학이 전쟁의 도구가 아닌 평화를 위한 도구가 되어야 함을 끊임없이 역설했습니다.

1964

[미국 대학가, 베트남 전쟁 반대 운동 시작]

미국의 베트남 전쟁 개입에 대한 조직적인 반대가 1964년부터 수많은 대학 캠퍼스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전쟁이 격화되면서 운동은 빠르게 확산되었습니다.

1967

[미국 반전 운동 전국 위원회 결성]

미국 반전 운동 연합이 전국 위원회를 결성하여 1960년대 후반과 1972년 사이에 베트남 전쟁 종결을 위한 대규모 시위를 조직했습니다.

이 운동은 전례 없는 학생 운동, 민권 운동과 맞물려 베이비붐 세대의 참여로 빠르게 성장했습니다.

1969

[미국 전역 '베트남 반전의 날' 대규모 시위 발생]

미국 워싱턴 D.C.를 중심으로 미국 각지에서 '베트남 반전의 날' 대규모 반전 시위가 일어났습니다.

이는 1967년 반전 운동 연합이 조직한 것으로, 당시 미국 역사상 가장 규모가 큰 반전 시위 중 하나였습니다.

이 시위는 그 해 11월, 12월, 그리고 1971년 6월에도 이어졌습니다. 탈주병을 숨겨주거나 보호하려는 움직임도 있었습니다. 시민들은 국제법 준수, 시민 의무로서의 불법 정책 비판, 그리고 국민 여론 환기를 통해 전쟁 종결을 촉구했습니다. 베트남 반전 운동은 미국을 넘어 세계 여러 나라에서 국제적인 연대로 강화되었습니다.

1974

[두브로브니크-필라델피아 성명 발표]

라이너스 폴링을 포함한 6명의 학자들이 '두브로브니크-필라델피아 성명'에 서명하며 군비 축소에 대한 인본주의적 접근을 강조했습니다.

이 성명은 전쟁과 군사적 대결을 넘어선 평화적 해결 방안을 모색하려는 지식인들의 노력을 보여줍니다.

1990

[세르비아, 유고슬라비아 전쟁 반대 대규모 시위 및 '검은 리본 행진']

유고슬라비아 전쟁이 발발하면서 세르비아에서는 수많은 반전 운동이 전개되었습니다.

부코바르 전투, 두브로브니크 포위전, 사라예보 포위전 등에 반대하는 시위가 주를 이루었고, 선전포고와 징병 중단에 대한 국민투표를 요구했습니다.

특히 사라예보와 연대하는 '검은 리본 행진'에는 15만 명 이상이 참여하는 등 대규모 시위가 있었습니다.

유고슬라비아 인민군에서 5만~20만 명의 탈영자가 발생했으며, 세르비아에서 10만~15만 명이 참전을 거부하고 이주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는 밀로셰비치 선전에도 불구하고 세르비아인들의 높은 저항을 보여줍니다.

1999

[NATO 코소보 공습 반대 국제 시위 확산]

코소보 전쟁 중 NATO의 유고슬라비아 폭격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가 전 세계적으로 일어났습니다.

뉴욕에서 세르비아계 미국인 등 2천여 명, 시드니에서 7천여 명 이상이 시위를 벌였으며, 특히 그리스에서 *가장 대규모 시위*가 열렸습니다.

런던, 모스크바, 토론토, 베를린 등 여러 도시에서도 동시다발적인 시위가 이어지며 NATO의 개입 정당성에 대한 논쟁이 확산되었습니다.

2003

[세계 역사상 최대 규모의 국제 반전 시위 발생]

미국과 동맹국들의 이라크 침공 직전인 2003년 2월 15일, 전 세계 6대륙 60여 개국 600여 도시에서 약 2천만 명이 거리로 나와 이라크 전쟁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를 벌였습니다.

이는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세계 역사상 최대 규모의 국제 반전 시위*로 기록됩니다.

남극 국제과학기지에서도 시위가 열릴 만큼 전 지구적 연대를 보여주었습니다.

한국 서울에서도 약 5천 명이 시위에 참여했습니다. 그전인 2002년에는 영국 런던에서 40만 명,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100만 명이 반전 시위를 벌였습니다. 이러한 대규모 운동은 1999년 시애틀 항쟁 이후 발전한 대안 세계화 운동이 반전 운동과 연결되었기에 가능했습니다.

2005

[미국, 이란 군사 공격 가능성 반대 운동 시작]

미국의 이란에 대한 군사 공격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2005~2006년부터 이란 제재 및 군사 개입 반대 캠페인 등 조직적인 풀뿌리 반대 운동이 시작되었습니다.

노벨상 수상자, 국제기구 등 다양한 개인과 단체가 이란 공격에 대한 반대 입장을 공개적으로 표명했습니다.

2014

[러시아 모스크바, 돈바스 전쟁 반대 시위]

동부 우크라이나 돈바스 전쟁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가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발생했습니다.

이는 러시아 내에서 전쟁에 대한 비판적 목소리가 표출된 중요한 사건이었습니다.

2021

[영국 역사상 최대 규모 친팔레스타인 반전 시위 발생]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휴전 다음 날인 5월 22일, 영국 런던 하이드파크에 약 18만 명의 시위대가 모여 *영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친팔레스타인 반전 시위*를 벌였습니다.

반전 운동가와 노동조합원들이 영국 정부에 이스라엘 투자 중단과 제재를 요구하며 '팔레스타인 자유', '전쟁 중단' 등의 구호를 외쳤습니다.

휴전에도 불구하고 시위는 6월까지 이어졌으며, 6월 4일에는 미국 오클랜드에서 시위대가 이스라엘 화물선의 항구 입항을 막으려 시도하기도 했습니다.

2022

[전병삼 작가, 우크라이나 전쟁 종식 촉구 '레드림' 공개]

현대미술가 전병삼 작가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종식을 촉구하는 대형 설치미술 프로젝트 '레드림(REDREAM)'을 공개했습니다.

유엔 공식 발표 민간인 사망자 수와 같은 5,401개의 작은 붉은 양귀비 꽃 사각형 작품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는 피해자들을 위로하고 전쟁 종식을 염원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5,401개의 사각형 블록을 만들기 위해 58만 3,308장의 종이를 접어 완성했습니다. 전 작가는 전쟁이 끝나면 작품을 우크라이나에 기증하고 각 박스를 피해자 가족에게 전달할 계획입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후 전 세계 반전 시위 확산]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시작되면서 전 세계적으로 반전 시위가 격화되었습니다.

러시아 푸틴 대통령은 '가짜 뉴스' 법을 통해 군사 작전을 비판하는 행위에 대해 최대 15년 징역형을 선고할 수 있다고 발표하며 언론 통제를 시도했습니다.

하지만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반전 시위는 전 세계에서 이어졌습니다.

2022년 12월까지 러시아에서는 야당 정치인과 언론인 포함 4천 명 이상이 '가짜 뉴스' 법으로 기소되는 등 강력한 탄압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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