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즈네프 독트린
외교 정책, 독트린, 냉전 시대 정책
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1:08:14
브레즈네프 독트린은 소련이 사회주의 국가의 주권은 제한된다고 선언한 대외 정책입니다. 자국 안보를 위해 동구권 국가의 정치적 이탈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담았죠. 대표적으로 1968년 체코슬로바키아 프라하의 봄 진압과 1979년 아프가니스탄 침공으로 그 위력을 보여주었습니다. 이는 냉전 시대 소련 외교 정책의 핵심 축이자 소련 해체 전까지 동구권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한 정책으로 평가됩니다.
1968
[프라하의 봄 진압을 위한 체코슬로바키아 침공]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를 표방하며 개혁개방을 추진하던 체코슬로바키아의 '프라하의 봄'에 소련과 바르샤바 조약기구군이 탱크와 공수부대를 동원하여 침공했습니다.
이는 브레즈네프 독트린의 실질적인 첫 적용 사례이자 독트린 탄생의 배경이 된 중요한 사건입니다.
대규모 민주화 시위를 벌이던 체코슬로바키아 국민들은 무력으로 진압되었고, 137명의 사망자와 500명 이상의 중상자가 발생했습니다. 개혁을 이끌던 알렉산데르 둡체크 제1서기는 소련 공수부대에 붙잡혀 모스크바로 강제 이송되었습니다.
[코발료프의 프라우다 기고문 발표]
소련 공산당 기관지 '프라우다'에 코발료프가 '주권과 공산주의 국가의 국제적인 의무'라는 글을 기고하며, 소련의 제한적 주권 개념과 사회주의권 국가 개입의 정당성을 처음으로 천명했습니다.
이는 브레즈네프 독트린의 이론적 토대가 되었습니다.
[브레즈네프의 독트린 공식 언급]
소련 공산당 서기장 레오니트 브레즈네프가 폴란드 공산당 제5차 대회 연설에서 이 독트린을 다시 언급하며 공식화했습니다.
이는 서방 제국주의 국가의 공산주의 국가 해체 시도를 소련이 적극 저지하겠다는 의지를 명확히 한 것입니다.
1979
[아프가니스탄 침공]
친소련 아프가니스탄 민주공화국이 무자헤딘에 의해 붕괴 위기에 처하자, 소련은 브레즈네프 독트린을 적용하여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습니다.
소련은 자신만만하게 시작한 이 전쟁에서 큰 소득 없이 10년 뒤 철수하게 됩니다.
이 침공은 브레즈네프 독트린의 마지막 대규모 적용 사례로 기록됩니다.
1980
[폴란드 민주화 운동에 대한 간접 압박]
소련은 1980년부터 1981년까지 폴란드에서 발생하는 민주화 요구 및 시위에 대해 간접적인 압박을 가했습니다.
직접적인 군사 개입보다는 정치적, 경제적 압력을 통해 브레즈네프 독트린의 정신을 유지하려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