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바로사 작전
군사 작전, 침공, 제2차 세계 대전
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1:08:12
나치 독일이 소비에트 연방을 침공한 제2차 세계 대전의 동부 전선 작전명. 역사상 최대 규모의 육상 작전으로 히틀러의 나의 투쟁에서 언급된 동방 영토 확보 계획의 일환. 독일군의 단기 결전 목표 달성 실패로 이어져 나치 독일 패배의 결정적 원인이 됨. 소련군의 끈질긴 저항 광대한 러시아 영토 혹독한 겨울 날씨가 작전 실패에 큰 영향. 독소 불가침 조약을 파기하며 시작되었으나 결국 독일에게는 장기 소모전의 시작을 알림.
1941
[독일의 소련 침공 임박 정보 입수]
일본 도쿄에서 활동하던 소련 스파이 리하르트 조르게가 모스크바에 독일군이 6월 20일에 소련을 공격할 것이라는 매우 신빙성 있는 첩보를 보고했습니다.
이 정보는 히틀러가 일본 관리에게 소련 정복 계획을 털어놓은 직후 입수되었습니다.
하지만 스탈린은 이 경고들을 영국의 음모로 치부하며 제대로 된 대비를 하지 않았습니다.
1941년 초부터 독일군의 전쟁 물자가 서부 전선에서 동부로 대거 이동하고 있었으며, 소련 국토 상공을 정찰하는 독일 항공기의 수가 급증했습니다. 5월 중순에는 주소 독일 외교관 가족들이 귀국하기 시작했고, 6월 11일에는 스탈린이 독일 대사관 직원들이 떠날 채비를 하고 있다는 것을 인지했습니다. 심지어 공격 전날인 6월 21일에도 소련 공군은 일상적인 야간 훈련을 마치고 연료 부족 상태였으며, 국경 부대의 방어 준비도 미흡했습니다.
[바르바로사 작전 개시]
나치 독일이 소련을 침공하는 '바르바로사 작전'을 개시했습니다.
이 작전은 독일군을 주축으로 한 추축군 총 300여만 명이 동원된 역사상 최대 규모의 육상 작전으로 기록됩니다.
오전 3시경 독일군 대포 6,000문이 일제히 포문을 열어 소련군 방어거점을 포격했고, 동시에 독일 공군기 편대들이 비행장과 민간 목표물을 집중 폭격하며 전격전의 서막을 알렸습니다.
독일군은 북부 집단군, 중부 집단군, 남부 집단군으로 나뉘어 각각 레닌그라드, 모스크바, 우크라이나의 키예프를 주요 목표로 삼아 소련 영토를 깊숙이 침투할 계획이었습니다. 최종 목표는 아르한겔스크-아스트라한 선까지 진출하여 유럽 러시아를 정복하는 것이었습니다.
[브레스트 요새 방어전]
바르바로사 작전 첫날, 독일 중앙 집단군이 바르샤바-모스크바 철도 및 고속도로의 요충지인 브레스트 요새를 장악하기 위해 공격을 시작했습니다.
소련군은 요새에서 6월 29일까지 끈질기게 저항하며 독일군의 초기 진격에 예상치 못한 어려움을 주었습니다.
이는 소련군의 강한 저항 의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전투가 되었습니다.
[비아위스토크-민스크 포위전]
독일 중앙 집단군이 소련 국경에서 시작한 전투로, 민스크 주변에 대규모 소련군을 포위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 전투는 7월 3일까지 이어졌으며, 바르바로사 작전 초기 독일군의 성공적인 전격전 전술과 소련군의 대규모 병력 손실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발트 작전 (리투아니아-라트비아 방어 작전)]
독일 북부 집단군이 리투아니아, 라트비아, 에스토니아 등 발트 3국 지역에서 벌인 광대한 전투들을 포괄하는 작전입니다.
알리투스 전투, 라세이냐이 전투, 리가 전투 등이 이 작전의 일부로 진행되었으며, 독일군은 7월 9일까지 발트 지역을 장악하고 레닌그라드로 향하는 교두보를 마련했습니다.
[브로디 전차전 (두브나 전투)]
우크라이나 두브나, 로브노, 브로디 삼각지대에서 벌어진 대규모 전차전으로, 6월 30일까지 이어졌습니다.
이 전투는 쿠르스크 전투 이전까지 가장 많은 전차가 동원된 전투였습니다.
소련의 우수한 KV-1과 T-34 전차가 독일군 전차에 큰 충격을 주며, 독일군에게 신형 전차 개발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했습니다.
[스몰렌스크 전투]
독일 국방군의 모스크바 진격을 400km 앞둔 지점에서 2달 동안 지체시킨 중요한 전투입니다.
9월 10일까지 스몰렌스크 주변 지역에서 진행되었으며, 소련군의 끈질긴 저항으로 독일군의 전격전 속도가 현저히 느려졌습니다.
이 지연은 독일군의 모스크바 공략 실패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오데사 포위전]
흑해의 주요 항구 도시 오데사에서 10월 16일까지 벌어진 공방전입니다.
독일군과 루마니아군은 이 요충지를 점령하기 위해 장기간에 걸쳐 치열한 전투를 벌여야 했습니다.
소련군의 끈질긴 방어는 추축군의 진격을 지연시키는 데 기여했습니다.
[키예프 전투]
독일군이 소련령 우크라이나 키예프에서 진행했던 거대한 포위전으로, 9월 26일까지 이어졌습니다.
이 전투는 역사적으로 가장 많은 군이 포위된 전투로 알려져 있습니다.
독일군은 키예프를 크게 우회하여 그 동쪽에서 포위망을 형성, 대규모 소련군을 궤멸시키는 데 성공했습니다.
[모스크바 공방전 (태풍 작전)]
독일 중앙집단군의 최후이자 최대 목표였던 소련 수도 모스크바를 점령하기 위한 '태풍 작전'이 시작되었습니다.
뱌지마, 브랸스크에서 대규모 포위전으로 소련군에게 큰 피해를 입혔으나, 가을의 진흙탕 길과 혹독한 겨울 날씨, 그리고 시베리아 증원군의 끈질긴 저항으로 독일군의 진격은 12월 초 멈추게 됩니다.
독일군은 동계 장비와 보급 부족으로 큰 어려움을 겪었으며, 결국 모스크바 점령에 실패했습니다.
독일군은 모스크바 함락이 곧 소련 굴복으로 이어질 것이라 믿었으나, 소련군의 방위 체제 재구축과 동계 반격으로 인해 큰 타격을 입었습니다. 이 실패는 바르바로사 작전의 궁극적인 실패를 상징하며, 모스크바는 이후 영웅 도시의 칭호를 받게 됩니다.
[브랸스크 전투]
독일군이 모스크바를 향해 진격하는 과정에서 10월 21일까지 진행된 브랸스크주의 전투입니다.
이 전투에 참여했던 미하일 칼라시니코프의 경험은 훗날 AK-47 자동소총 발명의 촉매 역할을 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독일군은 여기서도 대규모 소련군을 포위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세바스토폴 공방전]
크림반도의 전략적 요충지 세바스토폴에서 시작되어 1942년 7월 4일까지 이어진 장기적인 포위전입니다.
이 전투에서 독일군과 루마니아군은 소련군의 끈질긴 저항에 부딪혔으며, 상당한 시간과 자원을 소모하며 독일군의 남부 전선 진격에 부담을 주었습니다.
[바르바로사 작전의 최종 실패와 결과]
나치 독일의 바르바로사 작전은 단기 결전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고 사실상 실패로 끝났습니다.
러시아의 광대한 영토로 인한 보급선 문제, 소련군의 예상치 못한 끈질긴 저항, 그리고 혹독하고 일찍 찾아온 러시아의 겨울이 독일군의 진격을 멈추게 한 주요 원인이었습니다.
레닌그라드와 모스크바 등 주요 도시 점령에 실패하면서, 독일군은 예상치 못한 장기 소모전에 돌입하게 되었습니다.
히틀러의 낙관적인 판단과 병력 분산, 동절기 장비 부족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작전은 실패했습니다. 이 실패는 히틀러의 퇴각 불가 명령으로 인한 장성들의 대량 경질이라는 군 내부 불만으로도 이어졌습니다. 바르바로사 작전의 실패는 제2차 세계 대전의 흐름을 바꾸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으며, 결국 나치 독일 패배의 주요 원인이자 독소 전쟁의 양상을 바꾼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다음 해 독일군은 '청색 작전'을 발동하지만,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결정적인 패배를 겪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