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

평화 조약, 제1차 세계 대전, 국제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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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1: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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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 조약, 제1차 세계 대전, 국제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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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차 세계 대전 중 소비에트 러시아와 동맹국 간에 체결된 평화 조약입니다. 러시아가 전쟁에서 이탈하고 동부전선이 마무리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발트 3국 우크라이나 등 광대한 영토와 막대한 배상금을 포기하게 한 역사상 가장 가혹한 조약 중 하나였습니다. 이 조약은 결국 파기되었으나 러시아 내전 및 이후 소련의 영토 수복 목표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독일이 연합국에 항복하며 불과 8개월 만에 효력을 잃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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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7

[걷잡을 수 없는 혼란: 러시아 제국의 몰락]

1917년 3월, 러시아 제국은 2월 혁명과 로마노프 왕조의 붕괴로 인해 정치·경제적 대혼란에 빠졌습니다.

이로 인해 러시아는 제1차 세계 대전을 지속하기 힘든 상황에 처했습니다.

[레닌의 등장: 볼셰비키 정권 탈취]

볼셰비키당을 이끌던 블라디미르 레닌은 즉시 휴전을 호소하며 국민적 지지를 얻었고, 11월 7일 '10월 혁명'을 통해 러시아의 정권을 장악했습니다.

[우크라이나의 혼돈: 볼셰비키와 임시정부파 충돌]

볼셰비키 정권 탈취 직후인 11월 10일, 구 러시아 제국령이었던 우크라이나 키이우에서 볼셰비키파와 임시정부파 사이에 군사 충돌이 발생했습니다.

이 틈을 타 우크라이나 중앙 라다 정부가 제2의 임시 정부를 구축하려 했습니다.

[독립의 외침: 우크라이나 인민공화국 선언]

11월 20일, 우크라이나 중앙 라다 정부는 볼셰비키의 폭력적인 혁명을 비판하며 '우크라이나 인민공화국'의 성립을 선언했습니다.

이는 사실상 우크라이나의 독립 선언이었습니다.

[볼셰비키의 좌절: 키이우 무장봉기 실패]

볼셰비키 정부는 중앙 라다 정부를 무력으로 제압하려 했으나, 12월 11일 키예프에서 시도된 볼셰비키파 공작원의 무장봉기는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증원군마저 우크라이나군에 의해 무장해제되며 볼셰비키는 러시아로 추방됩니다.

[숨 돌릴 틈: 볼셰비키, 중앙 동맹국과 휴전]

12월 15일, 볼셰비키 정부는 중앙 동맹국 측과 휴전에 합의하며 한숨 돌렸습니다.

[최후통첩: 전쟁의 서막]

휴전 직후인 12월 17일, 볼셰비키 정부는 우크라이나가 도저히 수용할 수 없는 조건을 담은 최후통첩을 중앙 라다 정부에 보냈습니다.

이는 결국 우크라이나-소비에트 전쟁으로 이어지는 도화선이 됩니다.

[평화의 가능성: 브레스트-리토프스크 협상 개시]

12월 22일, 러시아와 중앙 동맹국 간의 평화 협상이 브레스트-리토프스크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레프 트로츠키 외상이 이끄는 러시아 협상단은 벨라루스와 폴란드의 국경 확정을 주요 의제로 삼았습니다.

러시아의 생명선과도 같았던 우크라이나의 손실을 막기 위해 볼셰비키는 강화 조약 체결에 직면했습니다. 하지만 러시아 측이 '배상금과 영토 병합 없는 평화'를 요구하며 교섭은 곧 난항에 부딪혔습니다.

[또 다른 우크라이나: 볼셰비키 인민공화국 탄생]

12월 25일, 하르키우에서는 볼셰비키파의 '우크라이나 인민공화국' 성립이 선언되며 우크라이나 내 볼셰비키의 새로운 거점이 마련되었습니다.

같은 날 러시아 적색군이 우크라이나 영토 침공을 개시, 1월 초까지 동쪽 우크라이나 대부분을 점령했습니다.

1918

[우크라이나의 독자 행보: 중앙 라다의 브레스트 협상]

1918년 1월 1일, 우크라이나 중앙 라다 정부 대표단이 브레스트에 도착하여 러시아와는 별도로 중앙 동맹국 측과 독자적인 교섭을 시작했습니다.

[역사의 순간: 우크라이나, 세계 최초로 평화 조약 체결!]

1918년 2월 9일, 우크라이나 중앙 라다 대표단은 중앙 동맹국과의 강화 조약인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을 맺었습니다.

이는 제1차 세계 대전에서 맺어진 최초의 강화 조약이자, 우크라이나의 독립이 국제적으로 인정받은 최초의 사례였습니다.

우크라이나는 군사 협력의 대가로 100만 톤의 곡물 제공을 약속했습니다.

[러시아의 오판: 트로츠키의 협상 중단 선언]

우크라이나와 중앙 동맹국 간의 조약 체결에 놀란 러시아 측 대표단 레프 트로츠키는 2월 10일, 협상의 일방적인 중단을 선언했습니다.

볼셰비키 정권은 유럽 노동자들의 궐기를 기대하며 당시 키이우를 포함한 우크라이나 대부분을 점령하여 방심하고 있었습니다.

레닌은 뒤늦게 우크라이나에 회유책을 제시했지만 이미 때는 늦었고, 합동군은 2주 만에 우크라이나를 탈환하고 발트해 연안까지 점령하는 등 독오군의 막강한 힘 앞에 볼셰비키는 더 나쁜 조건의 합의를 피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항복인가 평화인가: 러시아의 굴욕적인 조약 체결]

1918년 3월 3일, 러시아와 중앙 동맹국(독일, 오스트리아-헝가리, 불가리아, 오스만 제국) 간에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이 마침내 조인되었습니다.

이로써 러시아는 제1차 세계 대전에서 공식적으로 이탈하며 동부전선이 마무리되었습니다.

이 조약으로 러시아는 핀란드,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폴란드, 우크라이나 등 광대한 영토와 터키와의 국경 지역에 대한 모든 권리를 포기했습니다. 대부분의 할양지는 사실상 독일 제국에 넘어갔고, 독일의 영향력 아래 독립 국가들이 탄생하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추가 조약을 통해 러시아는 거액의 전쟁 배상금까지 지불하게 되었습니다. 독일 장군참모본부가 내놓은 요구사항은 너무나 혹독해서 독일측 협상 담당자들마저 놀랄 지경이었습니다.

[우크라이나의 격변: 중앙 라다 정부 붕괴]

러시아와의 조약 체결 이후, 우크라이나에서는 4월 29일 중앙 라다 정부가 헤치만의 정변에 의해 무너지고 파울로를 수반으로 하는 '우크라이나 국가'가 성립되었습니다.

[첫 번째 휴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종결]

6월 12일,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와 휴전 협정을 체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휴전으로 제1차 우크라이나-소비에트 전쟁이 종결됩니다.

[굴욕적인 추가 조약: 막대한 배상금의 시작]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 체결 후인 8월 27일 베를린에서 체결된 추가 조약에 따라 러시아는 거액의 전쟁 배상금을 지불하게 되었습니다.

[조약의 종말: 볼셰비키 정부의 파기 선언]

1918년 11월 13일, 중앙 동맹국의 항복과 제1차 세계 대전 종결과 함께 볼셰비키 정부는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을 파기했습니다.

이 조약은 불과 8개월 동안만 효력을 가졌습니다.

1919

[역사의 아이러니: 베르사유 조약으로 인한 조약 해지]

1919년 체결된 베르사유 조약에서 독일은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의 해지를 받아들였습니다.

이는 독일이 베르사유 조약의 가혹함을 성토할 때 연합국이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의 더 큰 가혹함을 지적하는 근거가 되기도 했습니다.

1920

[볼셰비키의 재점령: 우크라이나의 운명]

1920년, 서부 우크라이나를 제외한 우크라이나 대부분은 적색군의 활약과 스파이 공작 활동을 통해 볼셰비키 측에 다시 탈환되었습니다.

그러나 발트해 연안 지역과 폴란드에 귀속된 영토는 제2차 세계 대전까지 소련이 수복하지 못했습니다.

1922

[새로운 시작: 라팔로 조약과 상호 포기]

1922년 라팔로 조약에서 소련과 독일 쌍방은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 관련하여 협의된 모든 지역에 대한 권리와 배상을 상호 포기하기로 합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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