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헝가리

군주국, 다민족국가, 유럽 강대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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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1: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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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주국, 다민족국가, 유럽 강대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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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7년 대타협으로 탄생한 유럽의 대표적인 이중군주제 국가입니다. 합스부르크 가문이 통치하며 오스트리아와 헝가리가 동등한 권력을 가졌습니다. 독일인 헝가리인 크로아트인 등 다양한 민족으로 구성된 다민족 국가였으며 존속 기간 동안 유럽의 주요 강대국 중 하나였습니다. 당대 유럽에서 러시아 제국 다음으로 넓은 면적과 세 번째로 많은 인구를 자랑했으며 기계공학 및 전기공학 분야에서는 세계 최상위권의 강국이었습니다. 제1차 세계 대전의 시작을 알렸으나 패전 후 1918년 사실상 멸망하고 1919년 공식적으로 해체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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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8

[헝가리 혁명 발발과 오스트리아의 진압]

19세기 중반, 유럽을 휩쓴 혁명의 물결은 오스트리아 제국까지 뒤흔들었습니다.

특히 헝가리에서는 민족주의와 자치권에 대한 열망이 폭발하며 대규모 혁명이 일어났죠.

오스트리아는 이를 무력으로 진압했지만, 헝가리인들의 불만을 해결해야 한다는 숙제를 안게 됩니다.

이 사건은 훗날 오스트리아-헝가리 이중제국 탄생의 중요한 배경이 되었습니다.

1848년부터 1849년까지 전개된 헝가리 혁명은 오스트리아 당국의 진압으로 무위로 돌아갔으나, 오스트리아 당국으로 하여금 헝가리인들에 대한 통치 방식 변화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만들었습니다.

1859

[이탈리아 독립 전쟁, 오스트리아의 위신 추락]

통일 이탈리아를 꿈꾸는 사르데냐와 프랑스 연합군에 맞서 오스트리아가 전쟁을 벌였습니다.

솔페리노 전투에서 참패하며 롬바르디아 지역을 사르데냐에 할양하는 등 큰 타격을 입었죠.

연이은 패배는 합스부르크 제국의 권위와 영향력을 크게 약화시켰고, 오스트리아는 제국 내 권위 상실의 위기를 직면하게 됩니다.

1859년 7월 11일, 나폴레옹 3세와 프란츠 요제프 1세가 빌라프란카에서 휴전 조약을 맺고, 같은 해 11월 취리히 조약으로 롬바르디아 지역은 사르데냐 왕국에 병합됩니다. 이는 오스트리아의 영향력 상실을 상징하는 사건이었습니다.

1864

[덴마크와의 전쟁 승리, 그러나 프로이센의 부상]

덴마크로부터 슐레스비히와 홀슈타인 공국을 차지하기 위한 전쟁에서 오스트리아와 프로이센은 승리합니다.

그러나 이 승리는 프로이센의 오토 폰 비스마르크 재상이 독일 통일의 주도권을 잡기 위한 발판이 됩니다.

가슈타인 협정을 통해 공국들이 분할 관리되면서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 간의 긴장은 더욱 고조되었죠.

덴마크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후, 1864년 10월 빈 조약이 체결되어 두 공국은 오스트리아와 프로이센에 넘겨졌습니다. 이후 가슈타인 협정에 따라 슐레스비히 공국은 프로이센이, 홀슈타인 공국은 오스트리아가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1866

[프로이센과의 전쟁 패배, 독일 통일 주도권 상실]

덴마크 전쟁 이후 고조된 긴장 속에서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는 결국 전쟁을 벌였고, 프로이센은 불과 7주 만에 오스트리아 제국을 압도하며 승리했습니다.

이 패배로 오스트리아는 독일 연방의 맹주 자리를 프로이센에게 넘겨주었고, 롬바르디아-베네치아 왕국마저 이탈리아에 할양하며 독일어권 내 주도적 위치를 완전히 상실하게 됩니다.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의 패배로 오스트리아 제국은 하노버, 헤센, 슐레스비히, 홀슈타인, 프랑크푸르트 자유시를 프로이센에 할양하고, 이탈리아에게는 롬바르디아-베네치아 왕국을 할양했습니다. 이는 오스트리아의 권위와 영향력 추락을 의미하며, 대타협 체결의 직접적인 배경이 되었습니다.

1867

[오스트리아-헝가리 이중제국 공식 탄생]

프로이센과의 전쟁 패배로 위기에 몰린 오스트리아는 제국 내 가장 큰 소수 민족인 헝가리인들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한 대타협(아우스글라이히)을 체결합니다.

이로써 오스트리아 제국은 '오스트리아-헝가리'라는 이중군주제로 재편되었고, 프란츠 요제프 1세 황제가 헝가리 국왕으로도 즉위하며 합스부르크 군주정의 마지막 단계이자 입헌적 전환기를 맞이합니다.

1867년 3월 20일, 헝가리 의회는 제국 재편을 위한 새로운 입법안을 논의하기 시작했고, 6월 8일 오스트리아 황제의 헝가리 국왕 즉위가 조건으로 통보되었습니다. 최종적으로 7월 28일, 프란츠 요제프 1세 황제가 헝가리 국왕으로 즉위하고 새로운 법률을 승인하며 이중제국이 공식적으로 탄생했습니다.

1868

[크로아티아-슬라보니아 왕국의 자치권 인정]

오스트리아-헝가리 이중제국이 탄생한 다음 해, 헝가리 왕국은 크로아티아-슬라보니아 왕국에 자치권을 부여하는 '크로아티아-헝가리 타협'을 맺습니다.

이로써 크로아티아-슬라보니아는 오스트리아-헝가리의 제3의 연합 구성체로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1878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점령 및 합병과 보스니아 위기]

오스트리아-헝가리는 전략적 요충지인 보스니아와 헤르체고비나를 점령했습니다.

그리고 30년 후인 1908년, 이 지역을 완전히 직할령으로 합병하면서 유럽 강대국들 사이에 '보스니아 위기'를 촉발시켰습니다.

이 합병을 계기로 보스니아의 무슬림 주민들 때문에 이슬람교가 오스트리아-헝가리의 국교로 인정되기도 했습니다.

1878년 보스니아와 헤르체고비나가 오스트리아-헝가리에 점령된 이후, 1908년 완전히 직할령으로 합병된 것은 여러 강대국 사이에 보스니아 위기를 촉발시켰습니다.

1892

[조선과의 수호통상조약 체결]

오스트리아-헝가리는 동아시아의 은둔국 조선과 수교를 맺었습니다.

이는 조선이 서양 열강들에게 문호를 개방하는 과정의 일부였으며, '조오수호통상조약'을 통해 양국 간의 정식 외교 관계가 시작되었습니다.

1897년 대한제국으로 바뀐 후 민영익이 주 오스트리아-헝가리 대사로 임명되었으나 부임하지 못했고, 1900년 6월 이진범이 참사로 부임했습니다. 이후 1905년 을사조약으로 대한제국의 외교권이 일본 제국에 빼앗기면서 양국 관계는 단절되었습니다.

1914

[세계 대전의 서막을 연 선전포고]

오스트리아-헝가리는 세르비아 왕국에 선전포고하며 인류 역사상 가장 거대한 전쟁 중 하나인 제1차 세계 대전의 시작을 알렸습니다.

동맹국의 일원으로서 참전한 오스트리아-헝가리 군대는 전쟁 기간 동안 엄청난 인명 피해를 입으며 국가 존립의 위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오스트리아-헝가리 군대는 제1차 세계 대전 기간 동안 전체 병력의 90%에 달하는 인명 손실을 겪었습니다. 120만 명이 전사하고 360만 명이 부상을 당하는 등 막대한 피해를 입었고, 이는 제국 해체의 결정적인 원인이 됩니다.

1916

[프란츠 요제프 1세 황제 서거]

오스트리아-헝가리를 약 68년간 통치하며 제국의 흥망성쇠를 함께했던 프란츠 요제프 1세 황제가 서거했습니다.

그의 뒤를 이어 카를 1세가 즉위했지만, 이미 기울기 시작한 제국의 운명을 돌리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1918

[빌라주스티 휴전으로 사실상 국가 해체]

제1차 세계 대전의 패색이 짙어지자, 오스트리아-헝가리는 빌라주스티 휴전에 서명하며 사실상 멸망에 이르게 됩니다.

오랫동안 존재했던 다민족 제국은 전란의 소용돌이 속에서 더 이상 유지될 수 없었습니다.

휴전 당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이미 내부적으로 분열이 심화되어 사실상 국가의 기능을 상실한 상태였습니다.

1919

[생제르맹 조약으로 공식 해체 선언]

제1차 세계 대전 패전 후 체결된 생제르맹 조약을 통해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공식적으로 해체가 결정됩니다.

이로써 합스부르크 군주정의 오랜 역사는 막을 내리고, 그 지배를 받던 서슬라브족과 남슬라브족 등 여러 민족이 독립하여 체코슬로바키아, 폴란드, 유고슬라비아 등 새로운 국가들을 세웠습니다.

오스트리아-헝가리의 해체 이후, 헝가리 왕국과 오스트리아 제1공화국이 오스트리아-헝가리를 계승한 국가로 인정받았으며, 루마니아 왕국은 옛 트란스라이타니아의 루마니아인 거주지역에 대한 영유권을 인정받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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