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독립 전쟁
전쟁, 독립운동, 역사
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1:08:05
네덜란드 독립 전쟁은 1567년부터 1648년까지 무려 80년간 지속된 대규모 분쟁입니다. 저지대 지방의 네덜란드 17주가 강력한 스페인 합스부르크 군주국에 맞서 독립을 쟁취한 이 전쟁은 이후 네덜란드 공화국을 탄생시키고 해상 무역과 과학 예술 문화의 중심지로 급성장하는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종교적 갈등에서 시작해 국제전으로 비화하며 유럽 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독립과 자유를 향한 길고 긴 여정의 기록입니다.
- 카를 5세의 양위와 펠리페 2세의 강경책
- 네덜란드 전역을 휩쓴 성상 파괴 운동
- 알바 공의 폭정 시작과 '피의 법정' 운영
- 80년 전쟁의 서막, 헤일리게레 전투 승리
- 괴젠의 브리엘 점령 성공
- 남북 네덜란드의 화합, 간트 협약 체결
- 빌렘 1세의 '위트레흐트 동맹' 결성
- ★네덜란드 독립 선언과 공화국 수립★
- 네덜란드 독립의 아버지, 빌렘 1세 암살
- 영국의 네덜란드 지원과 안트베르펜 함락
- ★스페인 무적함대의 역사적 패배★
- 마우리츠의 영토 수복 작전 개시
- 니우포르트 및 지브롤터 해전 승리
-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 설립과 식민지 진출★
- 헤이그 휴전 조약 체결
- 평화 협상 결렬과 30년 전쟁으로의 확전
- ★베스트팔렌 조약 체결과 네덜란드 독립 승인★
1477
[합스부르크 왕가의 네덜란드 지배 시작]
합스부르크 왕가는 결혼과 정복으로 영토를 확장했고, 프랑스령이던 부르고뉴 지역(네덜란드 17주 포함)이 막시밀리안 1세와 마리 1세의 혼인으로 합스부르크 영지가 됩니다.
1506
[카를 5세의 등장과 광대한 제국 형성]
네덜란드 겐트에서 태어난 카를 5세가 부르고뉴 공국(네덜란드 포함)의 군주가 됩니다.
그는 조부로부터 오스트리아를, 외조부로부터 스페인과 남미 식민지 등을 상속받아 광대한 제국의 통치자가 됩니다.
1517
[종교개혁의 확산과 갈등의 씨앗]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 이후 개신교가 북유럽으로 빠르게 확산됩니다.
무역 기반의 네덜란드 지방 정부는 자유와 관용의 분위기 속에서 개신교에 관대했지만, 합스부르크 군주들은 이를 이단으로 보고 억압하기 시작합니다.
1531
[중앙집권화 정책과 네덜란드의 반발]
카를 5세와 펠리페 2세는 네덜란드 지방 분권을 중앙 권력으로 귀속시키려 했고, 이는 네덜란드 전통 귀족과 상인 계급의 반발을 삽니다.
브레덴부르크 성 건설은 이러한 의심을 확증하는 상징으로 여겨졌습니다.
1531년부터 1555년까지 네덜란드 의회가 실제 권력을 확보하며 주지사와 귀족의 권한은 약해집니다.
1555
[카를 5세의 양위와 펠리페 2세의 강경책]
카를 5세가 아들 펠리페 2세에게 왕좌를 양위합니다.
네덜란드를 자신의 고향처럼 여겼던 카를 5세와 달리, 스페인에서 태어나 자란 펠리페 2세는 네덜란드에 대해 더욱 무거운 세금, 개신교 탄압, 중앙집권 정책을 추진하며 네덜란드의 독립 의지를 자극합니다.
1558
[네덜란드 귀족들의 스페인 왕실에 대한 청원]
네덜란드에서 스페인 군대 철수와 세금 감면에 대한 요구가 쏟아집니다.
하급 귀족들이 주도한 이 청원에는 에그몬트 백작, 흄 백작, 오라녜공 빌렘 1세 등 상급 귀족들도 가담하여 의원직을 사퇴하고 그란베일 소환을 요구합니다.
1564
[펠리페 2세의 강경 대응과 반발 심화]
귀족들이 반란을 경고했음에도 펠리페 2세는 오직 억압으로 일관합니다.
이후 네덜란드에서는 로마 가톨릭의 개신교 박해에 반대하는 여론이 더욱 확산됩니다.
1565
[경제 침체와 사회 불안정 심화]
북방 7년 전쟁의 여파와 흉년이 겹쳐 네덜란드는 경제 침체와 생활고에 시달립니다.
이러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칼뱅주의를 신봉하는 개혁교회 신자들을 중심으로 반란의 기운이 고조됩니다.
1566
[괴젠(거지)의 탄생]
하급 귀족 400명이 펠리페 2세에게 청원서를 전달하자, 한 참모가 이들을 '괴젠'(거지)이라 조롱합니다.
그러나 이들은 이 모욕적인 칭호를 기꺼이 받아들여 자신들의 정체성을 삼습니다.
[네덜란드 전역을 휩쓴 성상 파괴 운동]
플랜더스의 혼트슈테 교회를 시작으로 칼뱅주의자들이 교회 내 가톨릭 성인 성상을 파괴하는 '성상 파괴 운동'(Beeldenstorm)을 벌입니다.
성상파괴는 칼뱅주의자들이 십계명에서 금지한 우상 숭배를 비판하며 정당화했고, 지방 정부는 이를 방관합니다.
이는 네덜란드 귀족들을 양분시켰고, 펠리페 2세는 군대 파견을 결정합니다.
1567
[알바 공의 폭정 시작과 '피의 법정' 운영]
스페인의 알바 공이 1만 군대를 이끌고 브뤼셀에 주둔하며 국왕을 비방한 자들을 처벌하는 특별 법정, 이른바 '피의 법정'을 세웁니다.
상급 귀족인 에그몬트 백작과 흄 백작마저 참수당하며 알바 공은 '강철 대공'이라는 악명을 떨칩니다.
이러한 무자비한 탄압은 네덜란드인들의 분노를 폭발시킵니다.
[파르마의 마르가레테 총독 사퇴]
알바 공이 파르마의 마르가레테 총독의 지위를 무시하자, 그녀는 결국 총독직을 사퇴합니다.
이로써 네덜란드에 대한 스페인의 직접적인 통치가 더욱 강화됩니다.
1568
[80년 전쟁의 서막, 헤일리게레 전투 승리]
스페인의 체포를 피해 영지를 떠났던 오라녜 공 빌렘 1세가 헤일리게레 전투에서 스페인 군대에 맞서 승리합니다.
이는 80년간 이어질 '80년 전쟁'의 서막을 알리는 결정적인 사건이었습니다.
비록 이후 군대가 해산되지만, 빌렘 1세는 네덜란드 독립의 상징으로 떠오릅니다.
1570
[알바 공의 '1할세' 강행과 주민들의 분노]
알바 공은 군대 유지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모든 판매수익과 토지수익의 1할을 세금으로 내는 '1할세'를 강행합니다.
이는 로마 가톨릭 신자든 개신교 신자든 모든 네덜란드 주민들의 강력한 불만을 초래하며 반란을 더욱 거세게 만듭니다.
1572
[빌렘 1세의 반군 회동과 북부 네덜란드 장악]
오라녜 공 빌렘 1세가 도르드레히트에서 홀란트, 젤란트, 위트레흐트, 프리스란트 등 반군 지도자들과 회동하여 오라녜 왕가와 국가의 권력 분립을 합의합니다.
1578년까지 북부 네덜란드 대부분이 반군에 합류하며 독립 운동은 결정적인 국면을 맞습니다.
[엘리자베스 1세의 '괴젠' 추방]
잉글랜드의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이 '바다의 거지들'이라 불리던 네덜란드 반군 '괴젠'을 영국 항구에서 추방하여 네덜란드로 보냅니다.
이는 반군에게 예상치 못한 기회를 제공합니다.
[괴젠의 브리엘 점령 성공]
라마르크의 빌렘 2세가 이끄는 괴젠이 거의 무방비 상태였던 브리엘을 점령합니다.
이 사건을 기점으로 반군은 북 네덜란드 여러 지역으로 영향력을 확대하며 저지대 개신교도들의 반군 결성을 이끌어냅니다.
1573
[스페인 사령관 교체와 재정 파산]
스페인은 네덜란드 반란을 진압하지 못하자 알바 공을 루이스 데 레케센스로 교체합니다.
레케센스는 화해 정책을 추진하지만, 스페인의 재정 파산과 용병들의 안트베르펜 약탈('스페인 약탈')은 반군에게 정당성을 부여합니다.
[오라녜 공 빌렘 1세의 개신교 전향]
오라녜 공 빌렘 1세는 애초에 종교적으로 중립이었으나, 스페인에 맞서 칼뱅주의자들이 적극 가담하자 점차 칼뱅주의로 기울어 개신교로 전향합니다.
1576
[남북 네덜란드의 화합, 간트 협약 체결]
저지대 지방의 남부와 북부가 종교적 차이를 넘어 스페인 축출을 위해 협력하는 '간트 협약'을 체결합니다.
스페인의 안트베르펜 약탈을 목격한 가톨릭 교도들마저 반군에 가담하게 되는 계기가 됩니다.
1579
[가톨릭 진영의 '아라 동맹' 결성]
페르네세가 북부 네덜란드와 개신교에 대항하는 가톨릭 교도들을 중심으로 '아라 동맹'을 결성합니다.
이로써 3년간 유지되던 간트 협약은 붕괴되고, 종교적 관용을 바탕으로 한 네덜란드 17주의 독립 목표에도 변화가 생깁니다.
[빌렘 1세의 '위트레흐트 동맹' 결성]
오라녜 공 빌렘 1세가 아라 동맹에 맞서 북부 네덜란드를 중심으로 하는 '위트레흐트 동맹'을 결성합니다.
이로써 네덜란드 17주는 스페인 국왕 휘하의 남부와 반군 통치하의 북부로 완전히 양분됩니다.
1581
[앙주 공 프랑소와, 네덜란드 총독으로 임명]
펠리페 2세가 프랑스와의 관계 개선을 위해 앙주 공 프랑소와를 네덜란드의 신임 총독으로 임명합니다.
그러나 네덜란드 의회는 그의 결정에 반대합니다.
[★네덜란드 독립 선언과 공화국 수립★]
네덜란드 의회가 '네덜란드 독립 선언'(Plakkaat van Verlatinghe)을 통해 펠리페 2세에 대한 충성을 공식적으로 거부하고 사실상 독립을 선포하며 '네덜란드 공화국'을 수립합니다.
이는 세계 역사상 중요한 공화정 국가의 탄생을 알리는 순간이었습니다.
1583
[앙주 공의 퇴장과 네덜란드의 공화국 지향]
앙주 공은 자신에게 비협조적인 도시들에 군사력을 행사하며 권력을 유지하려 했으나 결국 영향력을 잃고 네덜란드를 떠납니다.
이후 네덜란드는 외국 국왕의 후원을 기대하는 것을 포기하고 공화국으로서의 독립을 모색하게 됩니다.
1584
[네덜란드 독립의 아버지, 빌렘 1세 암살]
펠리페 2세에게 '무법자'로 선포되었던 오라녜 공 빌렘 1세가 펠리페 2세의 사주를 받은 암살자 발타자르 게라트에 의해 암살당합니다.
네덜란드 독립의 정신적 지주를 잃은 큰 비극이었으나, 그의 아들 마우리츠가 뒤를 잇습니다.
1585
[영국의 네덜란드 지원과 안트베르펜 함락]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이 네덜란드와 '논서치 협약'을 맺고 반군을 공식 지원합니다.
이는 펠리페 2세에게 배반으로 여겨져 아일랜드 지원과 무적함대 파병으로 이어지는 영국-스페인 전쟁의 불씨가 됩니다.
같은 해 당시 저지대 지방 최대 도시였던 안트베르펜이 스페인 군대에 함락되며 인구가 절반으로 줄어드는 비극을 겪습니다.
1587
[레스터 백작의 실패와 마우리츠의 등장]
영국이 네덜란드 지원을 위해 레스터 백작이 이끄는 병력을 파병하지만, 그의 부족한 자질과 강경한 칼뱅주의 편향으로 대중의 지지를 잃고 영국으로 돌아갑니다.
이후 네덜란드 의회는 20세의 오라녜 공 마우리츠를 네덜란드군 대원수로 임명하며 새로운 국면을 맞습니다.
1588
[★스페인 무적함대의 역사적 패배★]
스페인은 네덜란드 공화국을 지원하는 영국을 저지하기 위해 22척의 전함과 108척의 무장 상선으로 '무적함대'를 구성해 원정을 시도합니다.
그러나 찰스 하워드가 이끄는 영국 함대와의 해전에서 괴멸적인 패배를 당하며 해상 강국 영국의 기반을 다지게 됩니다.
[마우리츠의 영토 수복 작전 개시]
오라녜 공 마우리츠는 스페인이 영국과 프랑스와의 전쟁으로 약화된 틈을 타 베르겐, 브레다, 흐로닝언 등 네덜란드의 주요 도시들을 차례로 점령해 나갑니다.
그의 군사적 활약으로 네덜란드는 오늘날의 국경과 유사한 형태를 갖추게 됩니다.
1595
[프랑스-스페인 전쟁과 베르빙 조약 체결]
프랑스의 앙리 4세가 에스파냐에 전쟁을 선포하고 승리합니다.
전쟁으로 인한 재정 압박에 시달리던 펠리페 2세는 앙리 4세의 왕권을 인정하고 프랑스 내정에 간섭하지 않겠다는 '베르빙 조약'을 체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1600
[니우포르트 및 지브롤터 해전 승리]
네덜란드가 니우포르트 전투와 1607년 지브롤터 해전에서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며 스페인의 지배에 종지부를 찍습니다.
이 승리로 네덜란드 공화국은 막강한 해군력을 바탕으로 유럽 열강의 대열에 합류합니다.
1602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 설립과 식민지 진출★]
네덜란드는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를 설립하고 해외 식민지 쟁탈전에 뛰어듭니다.
이는 세계 최초의 주식회사 중 하나로, 주식 발행을 통해 대규모 자본을 모아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등을 식민 지배하며 네덜란드 제국 확장의 발판이 됩니다.
1609
[헤이그 휴전 조약 체결]
북부 네덜란드와 남부 네덜란드가 영국과 프랑스의 입회하에 헤이그에서 휴전 조약을 맺습니다.
이 휴전기 동안 네덜란드에서는 종교적 관용을 주장하는 온건 칼뱅주의 교파인 아르메니우스파가 확산되고, 강경 칼뱅주의자들과의 갈등이 심화됩니다.
1617
[칼뱅주의 강경파와 온건파의 갈등 심화]
강경 칼뱅주의자들의 지지를 받던 모리스가 온건 아르메니우스파에 반대하는 법령을 공포합니다.
휘호 그로티우스 등 온건파 지도자들은 탄압을 피해 도피해야 했습니다.
1618
[평화 협상 결렬과 30년 전쟁으로의 확전]
영구 평화 조약 체결을 위한 스페인과 네덜란드의 협상이 결렬되면서 전쟁은 재개됩니다.
종교적 자유와 식민지 권리 문제가 주요 쟁점이었으며, 이는 양국이 '30년 전쟁'에서 충돌하는 계기가 됩니다.
1622
[30년 전쟁과 브레다 함락]
30년 전쟁 초기 스페인은 브레다 함락 등 선전했지만, 결국 프랑스와 네덜란드가 주축이 된 동맹군에 패배합니다.
네덜란드는 개신교 동맹의 승전국 지위를 획득하며 국제적 위상을 높입니다.
1648
[★베스트팔렌 조약 체결과 네덜란드 독립 승인★]
독일 베스트팔렌에서 '베스트팔렌 조약'이 체결되며 80년간 이어져 온 네덜란드 독립 전쟁과 30년 전쟁이 마침내 종결됩니다.
이 조약을 통해 유럽 각국의 개신교도들이 종교적 자유를 인정받았고, 네덜란드와 스위스는 국제사회로부터 독립을 공식적으로 승인받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