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왕국
국가, 왕국, 열강, 식민제국
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1:08:01
이탈리아 왕국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가집니다: - 1861년부터 1946년까지 이탈리아 반도에 존재했던 국가. - 사르데냐 왕국의 통일 운동(리소르지멘토)으로 건국. - 대영 제국 프랑스 등과 함께 식민지를 경영한 열강 중 하나. - 베니토 무솔리니의 파시즘 정권 통치기를 거침. - 제1차 세계 대전과 제2차 세계 대전에 모두 참전. - 1946년 국민투표를 통해 왕정을 해체하고 이탈리아 공화국으로 전환.
- 이탈리아 왕국 건국
- 제3차 이탈리아 독립전쟁 참전 및 베네치아 병합
- 교황령 점령
- 에리트레아 및 소말리아 점령, 식민지 경영 본격화
- 이탈리아-튀르크 전쟁 승리 및 리비아 식민지화
- 제1차 세계 대전 발발 및 이탈리아의 중립 선언
- 런던 비밀 조약 체결 및 연합군 합류
- 파리 강화 회의에서의 좌절 및 국민적 불만 고조
- 파시스트당 창당 및 세력 확장
- 로마 진군 및 무솔리니 총리 취임
- 국제 연맹 탈퇴
- 삼국 동맹 조약 체결 및 추축국 가담
- 연합국 항복 및 무솔리니 해임
- 이탈리아 사회 공화국 수립 및 내전 발발
- 베니토 무솔리니 처형
- 군주제 폐지 국민투표
- 군주제 폐지 및 이탈리아 공화국 전환
1861
[비적 활동 시작 (크로코의 샤르데나 침공)]
이탈리아 통일 후 군대 해체로 실직자가 늘면서 국내가 불안정해졌습니다.
이에 크로코가 이끄는 비적들이 왕국에 반기를 들고, 샤르데나 침공을 시작으로 지주 재산을 약탈하며 민중의 지지를 얻었습니다.
[이탈리아 왕국 건국]
오랜 분열을 끝내고 사르데냐 왕국에 의해 이탈리아가 통일되었고,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가 초대 국왕으로 등극하며 이탈리아 왕국이 드디어 탄생했습니다.
1862
[아스프로몬테 변란 및 계엄령 선포]
걸리버 루디에 의한 아스프로몬테 변란을 계기로 이탈리아 왕국은 계엄령을 선포하며 비적 세력에 대한 강력한 압박을 시작했습니다.
1863
1864
[비적 진압]
민중에게도 피해를 주며 지지를 잃어가던 비적 세력은 내통자의 정보 실토로 인해 단번에 진압되어 이탈리아 국내 불안정이 해소되기 시작했습니다.
1865
1866
[제3차 이탈리아 독립전쟁 참전 및 베네치아 병합]
제3차 이탈리아 독립전쟁에서 프로이센(이후 독일 제국)과 손을 잡고 참전한 이탈리아는 오스트리아 제국으로부터 베네치아를 병합하며 영토를 확장했습니다.
1870
[교황령 점령]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으로 교황령을 수호하던 프랑스군이 철수하자, 이탈리아 왕국은 교황령을 점령하며 이탈리아 통일을 완수했습니다.
1871
1882
[튀니지 식민지화 시도 실패]
통일 직후부터 식민지 경영에 관심을 보인 이탈리아는 튀니지를 식민지로 만들려 했으나, 프랑스가 이미 점령하여 뜻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1883
[에리트레아 및 소말리아 점령, 식민지 경영 본격화]
에리트레아와 소말리아를 점령하며 이탈리아 왕국의 본격적인 식민지 경영이 시작되었습니다.
1884
[조선과의 외교 관계 수립]
조선과 외교 관계를 수립했습니다.
이 관계는 1905년 을사늑약으로 대한제국의 외교권이 일본 제국에 넘어갈 때까지 지속되었습니다.
1901
[중국 대륙 내 조계 설치]
청나라 통치 시기, 영국, 프랑스, 독일과 함께 중국 대륙에 조계를 설치하고 군 병력을 주둔시켰습니다.
이 조계는 1942년까지 유지되었습니다.
1911
[이탈리아-튀르크 전쟁 승리 및 리비아 식민지화]
이탈리아-튀르크 전쟁에서 오스만 제국에 승리하여 아프리카의 리비아를 식민지로 삼으며 식민 제국으로서의 세력을 더욱 확장했습니다.
1914
[제1차 세계 대전 발발 및 이탈리아의 중립 선언]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했지만,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과의 오랜 영토 문제로 이탈리아는 삼국 동맹임에도 불구하고 중립을 선언했습니다.
1915
[런던 비밀 조약 체결 및 연합군 합류]
이탈리아는 달마티아와 남티롤 할양을 조건으로 런던 비밀 조약을 맺어 연합군 측에 가담하며 제1차 세계 대전의 전승국 지위를 얻었습니다.
대전 기간 동안 이탈리아 전역과 중동 전역에 군 병력이 파견되었고, 약 65만 명이 전사하는 막대한 인명 피해를 입었습니다.
1919
[파리 강화 회의에서의 좌절 및 국민적 불만 고조]
제1차 세계 대전의 전승국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파리 강화 회의에서 이탈리아의 영토 확대 요구 대부분이 거부당하자 국민들 사이에서는 '강화 회의의 패전국'이라는 비난이 쏟아졌습니다.
트리에스테와 이스트리아는 병합했으나, 달마티아는 유고슬라비아에 넘어가면서 정부에 대한 불만이 확대되었습니다.
[무솔리니의 파시스트 전사 조직]
불안정한 전후 정세 속에 베니토 무솔리니는 파시스트당의 전신인 '파시스트 전사'를 조직했습니다.
그는 사회 정책 이행과 내셔널리즘을 옹호하며 기존 정당을 비판했습니다.
하지만 밀라노 선거 완패와 일시적인 체포 등으로 초기 활동은 한계를 보였습니다.
1921
[파시스트당 창당 및 세력 확장]
농촌 지역의 지방 세력을 규합하고 중앙집권화를 추진한 무솔리니는 1921년까지 파시스트 전사의 당원을 10만 명 규모로 확대하여 전국 파시스트당으로 개편하며 정치적 입지를 다졌습니다.
이 시기, 도시와 농촌의 갈등 속에서 지주층이 파시스트 세력과 결탁하여 사회당과 노동조합 거점을 습격하는 '징벌 원정'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1922
[로마 진군 및 무솔리니 총리 취임]
무솔리니는 파시스트당 당원들과 '검은 셔츠단'을 이끌고 '로마 진군'이라는 쿠데타에 성공했습니다.
이후 그는 이탈리아 총리로 부임하며 강력한 권력을 손에 쥐었고, 이때부터 이탈리아 왕국은 '파시스트 이탈리아'로 불리기도 합니다.
1929
[가톨릭 국교 인정]
로마 교황청과의 오랜 대립이 무솔리니 정권 시기에 라테란 조약 체결로 해소되었고, 이로써 1929년에 가톨릭이 이탈리아의 국교로 공식 인정되었습니다.
1937
[국제 연맹 탈퇴]
이탈리아는 나치 독일, 일본 제국과 함께 국제 연맹을 탈퇴하며 국제 사회에서의 고립을 자초하고 추축국 블록에 합류하는 수순을 밟았습니다.
1940
[삼국 동맹 조약 체결 및 추축국 가담]
이탈리아는 나치 독일, 일본 제국과 '삼국 동맹 조약'을 체결하고 추축국에 가담하며 제2차 세계 대전의 주요 세력으로 참전했습니다.
1942
[에티오피아 제국의 주권 회복]
이탈리아가 영국 육군에 패배하면서 이탈리아에 의해 불법 점령되었던 에티오피아 제국이 주권을 되찾았습니다.
이는 추축국의 전세가 역전되기 시작한 시점과 맞물립니다.
1943
[연합국 항복 및 무솔리니 해임]
제2차 세계대전 중이던 1943년 가을,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 국왕은 연합국에 항복하고 베니토 무솔리니를 총리직에서 해임했습니다.
뒤이어 피에트로 바돌리오 내각이 성립되었고, 이탈리아에는 영국 중심의 군정부가 세워졌습니다.
[이탈리아 사회 공화국 수립 및 내전 발발]
독일군의 도움을 받아 탈출한 무솔리니는 이탈리아 북부에 친독일 괴뢰 정부인 '이탈리아 사회 공화국'을 세웠고, 이로 인해 이탈리아 내에서 내전이 벌어지는 비극이 시작되었습니다.
1945
[베니토 무솔리니 처형]
제2차 세계 대전 막바지, 무솔리니는 애인과 함께 처형되었고 그의 시신은 광장에 전시되어 많은 시민들에게 격분한 채 훼손되었습니다.
같은 날 아돌프 히틀러도 자살하며 파시스트 독재 시대의 막이 내렸습니다.
1946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 퇴위 및 움베르토 2세 즉위]
전후 혼란 속에서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 국왕은 장남인 움베르토 2세에게 왕위를 물려주었습니다.
[군주제 폐지 국민투표]
움베르토 2세는 군주제 유지 여부를 국민들에게 직접 묻기 위해 국가 형태에 대한 국민투표를 실시했습니다.
[군주제 폐지 및 이탈리아 공화국 전환]
국민투표에서 군주제 반대 표가 압도적으로 많이 나오자, 움베르토 2세는 결국 퇴위했고 이탈리아의 왕정은 완전히 폐지되었습니다.
이로써 이탈리아는 '이탈리아 공화국'으로 국호를 변경하며 새로운 시대를 맞이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