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랜드 대기근

기근, 재앙, 식민사, 아일랜드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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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1:0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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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근, 재앙, 식민사, 아일랜드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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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5년부터 1852년까지 아일랜드섬을 덮친 인류 역사상 최악의 비극 중 하나입니다. 감자 역병으로 시작되었으나 당시 아일랜드를 식민 통치하던 영국의 차별과 착취 정책이 사태를 극도로 악화시켰습니다. 대기근으로 아일랜드 전체 인구의 20~25%에 달하는 100만 명 이상이 사망하고 200만 명 가까이가 해외로 강제 이주하는 참혹한 피해를 입었습니다. 이 사건은 아일랜드인들의 영국에 대한 깊은 적개심과 독립 열망을 증폭시키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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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5

[감자 역병 발발과 대기근의 시작]

아일랜드 전역에 감자 역병이 갑자기 발생하며 대기근의 서막을 알렸습니다.

감자는 당시 아일랜드인들의 주식이었기에, 식량 공급의 핵심이 무너지면서 수많은 이들이 굶주림에 시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단순한 자연재해가 아닌, 영국 지주들의 극심한 착취와 식민 정책이 더해져 더욱 참혹한 결과를 낳게 됩니다.

감자 역병은 일부 요인이었고, 직접적인 원인은 영국인 지주들의 착취였습니다. 그들은 아일랜드인을 소작인으로 부리면서 많은 곡식을 축적했습니다. 당시 아일랜드에는 밀과 옥수수 등 각종 곡식이 많이 자랐으나 수확하는 대로 영국으로 가져가서 아일랜드인은 먹을 것이 없었습니다. 결국 그들에게는 주식이었기에 광범위하게 재배되었던 감자만이 조금 남아 있었으나 감자 역병이 발생했기에 많은 아일랜드인이 사망하게 된 것입니다. 지주는 먹을 것조차 없는 아일랜드 소작인에게 소작료를 요구한 것도 아일랜드인이 대기근 기간 동안 굶주린 이유 중 하나입니다.

[오스만 제국, 아일랜드에 전례 없는 구호품 지원]

오스만 제국의 술탄 압뒬메지트 1세가 아일랜드 농부들을 위해 파격적인 10,000파운드의 원조를 선언했습니다.

이는 당시 영국 빅토리아 여왕이 고작 2,000파운드를 보냈던 것을 훨씬 뛰어넘는 금액이었습니다.

영국 여왕의 요청으로 액수를 1,000파운드로 줄였으나, 술탄은 대신 식량을 가득 실은 배 세 척을 아일랜드로 보내는 통 큰 결정을 내렸습니다.

이 구호선들은 영국 관리들의 저지에도 불구하고 비밀리에 아일랜드 항구에 도착하며 희망의 빛이 되었습니다.

압뒬메지트 1세가 아일랜드 농부들을 위해 10,000파운드를 보내겠다고 선언하자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은 술탄에게 1,000파운드만을 보내라고 요청합니다. 여왕 자신은 2,000파운드만을 보냈던 것입니다. 술탄은 1,000파운드만을 보내는 대신 식량을 실은 배 세 척을 아일랜드로 보냈습니다. 일설에 의하면 영국 관리들의 저지에도 불구하고 식량선은 항구에 비밀리에 도착했다고 합니다.

1848

[영국의 냉혹한 외면과 곡물법 폐지]

영국 정부는 대기근이 '하느님의 뜻'이거나 '아일랜드인들의 게으름 탓'이라며 아일랜드 민중의 고통을 외면했습니다.

심지어 곡물법을 폐지해 밀 수입을 자유화하면서도, 군대를 동원해 아일랜드에서 생산된 밀을 강제로 본국으로 가져갔습니다.

세금을 내지 못한 아일랜드인들은 강제로 쫓겨나 길거리에서 아사하거나 전염병으로 죽어갔고, 전 국토가 거대한 빈민촌으로 변했습니다.

아일랜드인들은 영국인에게 도움을 요청했으나 묵살당했습니다. 당시 아일랜드섬을 지배하고 있던 영국은 대기근이 아일랜드 민중들의 생존권을 존중하지 않는 영국인 지주들의 지나친 착취 때문인데도 하느님의 뜻이라느니, 아일랜드인들을 더 풍유롭게 할 디딤돌이라느니 하면서 외면하였습니다. 심지어는 '멍청하고 게으른' 아일랜드 사람들의 탓으로까지 돌렸습니다. 게다가 1848년에는 곡물법을 폐지시키고 밀 수입을 자유화하였습니다. 그리곤 군대를 동원해 강제로 아일랜드에서 생산한 밀을 본국으로 보냈습니다. 영국인 대지주들은 아일랜드인들이 세금을 내지 못하자 그들을 강제로 내쫓았고 쫓겨난 그들은 벨파스트에 있는 빈민구제기관까지 걸어가야 했습니다. 전 국토에서 빈민들이 몰려들었고 그들은 대부분 길거리에서 아사하거나 전염병으로 인해 죽었습니다.

1852

[대기근의 비극적 종말: 대량 사망과 관선 이주]

1845년부터 1852년까지 이어진 대기근으로 당시 800만 명이었던 아일랜드 인구 중 1/4에 달하는 200여만 명이 사망하거나 해외로 이주했습니다.

특히 '관선(Coffin Ship)'이라 불린 부실한 이민선으로 떠난 100여만 명 중 60%가 바다 위에서 역병으로 숨지는 참혹한 기록을 남겼습니다.

캐나다 몬트리올에는 25,000명이 함께 묻힌 공동묘지가 있을 정도로, 이민 과정 자체가 거대한 비극이었습니다.

이는 19세기 인류 역사상 최대 규모의 재앙 중 하나로 기록됩니다.

생존자들은 너도나도 할 것 없이 외국행 배에 몸을 실었습니다. 그러나 외국으로 가는 배는 영국에서 건조된 배들로서 매우 허술하게 만들어졌습니다. 영국인들은 일부러 배를 부실하게 건조하였고, 내부를 불결하게 방치했습니다. 배에 탄 사람들은 배삯을 구한 이들로서 그나마 운이 좋았었습니다. 이 배들은 현재 일명 관선(Coffin Ship)이라 불립니다. 약 100여 만 명이 이주하였는데 그 중 60%가 육지에 발도 못 디뎌보고 배 안에서 역병으로 죽었습니다. 캐나다 몬트리올에는 무려 25,000명이 함께 매장된 공동묘지가 있습니다. 이곳은 캐나다로 이주한 아일랜드인들의 무덤입니다. 캐나다에 발을 디딘 아일랜드인들은 배에서 감염된 역병으로 순식간에 죽어나갔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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