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달족
고대 민족, 게르만족, 왕국
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1:07:53
반달족은 동게르만족의 일파로 5세기 게르만족 대이동을 주도하며 유럽을 휩쓸었습니다. 스페인을 거쳐 북아프리카에 반달 왕국을 세웠고 한때 지중해의 최강자로 군림하며 로마를 약탈하기도 했습니다. 강력한 해상 세력을 바탕으로 번성했으나 피지배층과의 통합에 실패하며 결국 6세기 비잔티움 제국에 의해 멸망했습니다. 반달리즘이라는 용어는 이들의 이름에서 유래했지만 실제 역사와는 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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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인강을 넘어 서유럽으로]
반달족이 얼어붙은 라인강을 건너 서유럽 깊숙이 진입하며 게르만족의 대이동 시대를 본격적으로 열었습니다.
이들의 침공으로 갈리아 지역이 황폐화되고 아키텐까지 밀려나게 됩니다.
반달족은 프랑크족의 저항을 받았으나, 그해 겨울 라인강이 얼어붙자 이를 기회 삼아 대규모로 강을 건너 갈리아를 남하하며 로마 제국에 큰 혼란을 안겨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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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침공과 새로운 정착지]
반달족이 피레네산맥을 넘어 히스파니아(오늘날 스페인)로 진입하여 새로운 터전을 찾아 정착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곳에서 이들은 알란족을 굴복시키고 해상 활동에도 눈을 뜨게 됩니다.
히스파니아에서 로마 제국의 동맹 부족들과 전쟁을 벌이며 영역을 확장한 반달족은 점차 바이킹족처럼 해적 활동을 벌이며 북아프리카까지 진출하는 계기를 마련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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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아프리카 대규모 침공]
군데리크의 후계자 가이세리크가 약 8만 명의 반달족을 이끌고 지브롤터 해협을 건너 북아프리카를 침공했습니다.
이들은 전략적 요충지인 히포 레기우스 성을 무려 14개월간 포위한 끝에 함락시키는 데 성공했습니다.
히포 레기우스 성 포위 당시 북아프리카 교회의 최고 권위자였던 성 아우구스티누스 주교가 성안에서 피난민들을 돌보다 열병으로 사망했습니다. 이 사건은 로마 제국에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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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타고 점령과 반달 왕국 건국]
가이세리크 왕이 로마와의 평화협정을 파기하고 고대 도시 카르타고를 함락시킨 후, 이곳을 수도로 삼아 강력한 반달 왕국을 공식적으로 건국했습니다.
이는 북아프리카에 새로운 강대국이 탄생했음을 알리는 사건이었습니다.
반달 왕국은 건국 이후 35년 동안 대규모 함대를 조직하여 지중해 연안의 로마 제국 영토를 차례로 침략하고 점령하며 지중해의 질서를 주도하는 세계적인 해상 강국으로 성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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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뒤흔든 로마 약탈]
가이세리크의 반달족이 로마를 침공하여 대대적인 약탈을 감행했습니다.
이 사건은 로마인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주어 '반달리즘'이라는 용어가 탄생하는 계기가 되었지만, 실제로는 대규모 학살이나 파괴 없이 조직적으로 재물을 옮겨갔습니다.
교황 레오 1세가 가이세리크와 담판을 벌여 로마의 파괴를 최소화하는 데 기여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나, 이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반달족은 주로 로마의 보물과 귀중품을 북아프리카로 운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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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중해 최강국으로 우뚝 서다]
반달 왕국은 북아프리카 전역을 넘어 시칠리아, 사르데냐, 코르시카 등 지중해의 주요 섬들을 모두 지배하며 명실상부한 지중해 최강국으로 군림하게 됩니다.
이는 반달 왕국의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확보한 시기였습니다.
강력한 해상 세력을 바탕으로 지중해 무역로를 장악하고 로마의 해상 진출을 저지하며 전성기를 누렸습니다. 그러나 피지배 민족과의 종교적(아리우스파 vs 가톨릭) 갈등은 내재된 약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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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왕 가이세리크의 죽음]
반달 왕국을 전성기로 이끌었던 위대한 지도자 가이세리크가 사망하고, 그의 아들 훈네리크가 왕위를 승계했습니다.
가이세리크의 죽음은 반달 왕국이 서서히 쇠퇴의 길을 걷기 시작하는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훈네리크는 치세 말기에 가톨릭 교회와 마니교를 심하게 박해하여 피지배 민족과의 갈등을 심화시켰습니다. 반달 왕국은 이 시기부터 동고트족에게 시칠리아 대부분을 빼앗기는 등 영토를 상실하기 시작했습니다.
533
[왕위 찬탈과 비잔티움의 침공]
힐데리크 왕이 겔리메르에 의해 왕위에서 축출되자, 비잔티움 제국의 유스티니아누스 1세 황제는 이를 구실로 반달 왕국과의 전쟁을 선포했습니다.
벨리사리우스 장군이 이끄는 비잔티움 대군이 북아프리카로 향하며 반달 왕국의 운명이 걸린 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힐데리크는 가톨릭에 우호적이고 친로마 정책을 폈으나, 이를 반대하는 겔리메르의 쿠데타로 왕좌를 잃었습니다. 유스티니아누스 황제는 정통성 회복을 명분 삼아 강력한 정복 전쟁을 개시했습니다.
534
[반달 왕국의 비극적인 종말]
비잔티움 제국의 벨리사리우스 장군이 카르타고와 히포 레기우스를 연이어 함락시키며 반달군을 궤멸시켰고, 겔리메르 왕이 항복하면서 반달 왕국은 건국 약 95년 만에 완전히 멸망했습니다.
이로써 북아프리카는 다시 로마의 지배를 받게 되었습니다.
반달 왕국은 게르만족 왕국 중 가장 오랜 기간 독립을 유지한 왕국 중 하나였으나, 피지배층과의 통합 실패와 내부 갈등으로 인해 결국 비잔티움 제국의 막강한 군사력 앞에 무릎 꿇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