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케도니아 왕국
고대 왕국, 그리스, 제국
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1:07:50
그리스 반도 북방에 자리했던 고대 왕국. 특히 필리포스 2세와 알렉산드로스 대왕 시기에 그리스를 제패하고 인도 접경까지 이르는 광대한 제국을 건설 고대 세계의 초강대국으로 군림. 로마와의 충돌 끝에 기원전 148년 로마 속주로 편입되며 역사 속으로 사라짐.
BC 9C
[마케도니아 왕국 건국]
펠로폰네소스 반도 아르고스에서 이주해온 전설적인 카라노스가 아이가이를 도읍으로 삼아 마케도니아 왕국을 건국했습니다.
아르게아다이 왕조의 시작이자 마케도니아 역사의 서막을 알리는 순간이었습니다.
마케도니아의 첫 기지인 아이가이(Αιγαί) 주변 땅은 여러 민족들이 살던 곳이었으나, 전설에 따르면 카라노스가 수많은 그리스인을 데리고 새 터전을 찾아와 에데사에 정착하여 이 곳 이름을 아이가이로 개칭하고, 자신의 새로운 왕국을 세웠습니다. 아르고스 왕조의 통치를 받는 마케도니아 부족도 아르게아다이 사람('아르고스에서 전래한'이란 뜻)으로 불렸을 것입니다. 페르디카스 1세 임금(혹은 아르가이오스 1세)이 오늘날 베리아 시 주변에 아이가이를 도읍으로 세웠습니다.
BC 5C
[펠로폰네소스 전쟁 참여]
그리스 세계의 패권을 다투던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발발하자, 마케도니아는 2류 국가로서 스파르타와 아테나이를 번갈아 지원하며 복잡한 국제 정세 속에서 생존 전략을 모색했습니다.
기나긴 펠로폰네소스 전쟁 시대에 마케도니아는 직접적인 강국은 아니었으나, 그리스 내 주요 도시 국가인 스파르타와 아테나이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며 번갈아 지원하는 외교적 입장을 취했습니다. 이는 당시 마케도니아의 역량과 한계를 보여주는 동시에, 향후 그리스 정세 개입의 기반을 다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BC 4C
[필리포스 2세의 왕위 계승]
뛰어난 전략가이자 개혁가인 필리포스 2세가 마케도니아의 왕위에 오르며 왕국을 재건하고 군사 개혁을 단행했습니다.
그의 집권은 마케도니아가 그리스 세계의 패자로 부상하는 결정적인 전환점이 됩니다.
아뮌타스 3세의 셋째 아들인 필리포스 2세는 형인 페르디카스 3세의 어린 후계자를 폐위하고 스스로 왕이 되었습니다. 그는 전통적인 호플리테스 군대에 여러 변화를 주어 마케도니아 군대를 개혁하고, 중무장 기병대인 헤타이로이와 경보병대를 신설하는 등 강력한 군사력을 구축했습니다. 이는 마케도니아가 그리스를 지배하는 시대를 열 준비를 마쳤음을 의미했습니다.
[크로코스 평야 전투 승리]
제3차 신성 전쟁 중, 필리포스 2세가 크로코스 평야 전투에서 포키스와 아테나이 동맹군을 상대로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이 승리로 마케도니아는 근린 동맹의 패자가 되고 그리스 정계의 중심에 서게 됩니다.
기원전 356년에 시작된 제3차 신성 전쟁에서 테바이가 마케도니아의 군대를 끌어들였습니다. 필리포스 2세는 이 전투에서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었고, 이는 마케도니아가 퓌티아 경기의 수장이 되는 등 그리스 정계의 패권을 다지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 승리는 필리포스 2세의 군사적, 정치적 역량을 여실히 보여주었습니다.
[카이로네이아 전투 승리 및 그리스 제패]
필리포스 2세가 데모스테네스가 이끈 아테나이 및 테바이 연합군을 카이로네이아 전투에서 대파하며, 마케도니아는 명실상부한 그리스의 지배자로 등극했습니다.
이는 고대 그리스 폴리스 시대의 종말을 알리는 상징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아테나이는 마케도니아의 부상을 심대한 위협으로 인식하고 데모스테네스의 지도로 여러 주요 국가들과 연대를 창설했으며, 강력한 육군을 보유한 테바이도 이에 동참했습니다. 그러나 카이로네이아 전투에서 동맹군은 마케도니아와 맞붙어 대패했고, 이로써 필리포스와 마케도니아군은 확실하게 그리스의 지배자가 되었습니다. 이는 그리스 역사상 중요한 전환점이었습니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즉위 및 대정복 시작]
필리포스 2세의 아들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왕위에 오르자마자, 그는 세계 역사상 유례없는 대원정에 나섰습니다.
그리스 도시 국가들을 넘어 이집트, 페르시아 제국을 정복하고 인도 접경까지 진출하며 고대 세계의 초강대국으로 군림했습니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아버지의 뒤를 이어 마케도니아의 왕이 된 후, 정복당한 땅의 정치 형태를 수용하면서도 그리스 문화를 광범위하게 전파했습니다. 그의 대정복은 마케도니아를 단숨에 고대 근동의 헬라스 초강대국으로 만들었으며, 이는 그리스 역사의 헬레니즘 시대를 여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의 통치 기간은 기원전 336년부터 323년까지였습니다.
[알렉산드로스 대왕 사망 및 제국 분할]
세계 정복을 마치지 못한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갑작스럽게 사망하면서, 그가 건설한 광대한 제국은 휘하 장군들(디아도코이)에 의해 분할되어 여러 헬레니즘 정권으로 갈라졌습니다.
이는 헬레니즘 시대의 시작을 알리는 중요한 사건입니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사망은 그가 이룩한 제국을 후계자들(디아도코이) 사이의 오랜 전쟁과 분할로 이끌었습니다. 마케도니아 본토는 안티파트로스 왕조로 넘어가는 등 여러 변화를 겪었지만, 알렉산드로스의 정복이 남긴 문화적 영향력은 헬레니즘 시대를 통해 이어졌습니다.
BC 3C
[안티파트로스 왕조의 마케도니아 지배 시작]
알렉산드로스 대왕 사후 제국 분할 과정에서 마케도니아는 안티파트로스 왕조의 지배를 받게 되었습니다.
이 시기 마케도니아는 내부 갈등에 시달리며 불안정한 시기를 겪습니다.
안티파트로스와 그의 아들 카산드로스는 마케도니아를 지배했으나, 카산드로스 사망 이후 오랫동안 내부 갈등에 휩싸였습니다. 이후 데메트리오스 1세가 잠시 안정을 회복하는 듯했으나, 다시 내전의 소용돌이에 빠져들었습니다. 이 시기는 마케도니아가 강력한 중앙집권적 통치에서 벗어나 여러 세력의 각축장이 되었음을 보여줍니다.
BC 2C
[로마와의 첫 대패 (필리포스 5세)]
점점 강력해지던 로마 공화정과의 충돌이 시작됩니다.
필리포스 5세가 로마에 대패하며 마케도니아는 로마의 압도적인 힘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이는 마케도니아 왕국의 운명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필리포스 5세 시대에 마케도니아 왕국은 새로이 떠오르는 강국 로마와 충돌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대패는 마케도니아가 로마의 영향력 아래 놓이게 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으며, 마케도니아 왕국이 더 이상 지중해 세계의 패권을 쥘 수 없음을 시사했습니다.
[마케도니아 왕국의 종말 (페르세우스)]
마케도니아의 마지막 왕 페르세우스가 로마에 결정적인 패배를 당하며, 안티고노스 왕가가 폐위되고 왕국은 로마에 의해 분할됩니다.
이는 독립적인 마케도니아 왕국의 사실상 종말을 의미했습니다.
필리포스 5세의 아들 페르세우스 시대에도 로마와의 충돌은 계속되었습니다. 기원전 168년에 페르세우스가 로마에 대패하면서 안티고노스 왕가는 완전히 폐위되었고, 마케도니아 왕국은 네 개의 공화정으로 분할되는 비운을 맞았습니다. 이는 마케도니아가 더 이상 독립적인 정치 세력으로 존재할 수 없게 되었음을 분명히 보여주었습니다.
[안드리스코스의 왕국 복원 시도]
'가짜 필리포스'로 불린 안드리스코스가 잠시 마케도니아 왕국을 복원하려 시도했습니다.
하지만 이는 일시적인 부활이었고, 로마의 강력한 힘 앞에서는 역부족이었습니다.
마케도니아 왕국이 분할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안드리스코스는 자신이 필리포스 5세의 아들이라고 주장하며 마케도니아 왕국을 복원하려 했습니다. 그의 시도는 잠시 성공하는 듯했으나, 강력한 로마 공화정의 군사력 앞에서는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마케도니아의 로마 속주 편입]
안드리스코스가 로마에 패배하며 마케도니아는 로마에 직접 지배를 받게 되었고, 마케도니아 속주가 설치되면서 고대 마케도니아 왕국의 역사는 완전히 막을 내렸습니다.
기원전 149년에 왕국을 복원하려 했던 안드리스코스가 이듬해인 기원전 148년에 로마에 최종적으로 패배했습니다. 이로써 마케도니아는 로마 공화정의 직접적인 통치를 받는 '마케도니아 속주'로 편입되었고, 독립적인 고대 왕국으로서의 800여 년 역사를 마무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