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공화국

고대 국가, 공화국, 옛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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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1:0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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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공화국은 기원전 510년경 왕정을 폐지하고 수백 년간 지중해 세계를 제패한 고대 로마의 공화정 체제입니다. 권력 분리 견제와 균형 원칙에 중점을 두었으며 파트리키와 플레브스 간의 신분 투쟁을 통해 발전했습니다. 지속적인 군사 정복으로 이탈리아반도와 지중해 전역으로 영토를 확장하며 제국주의로 변모했고 현대 국가 및 국제 기구에 법률 입법 라틴어 등 지대한 유산을 남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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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 6C

[로마 공화국 출범]

고대 로마 시대, 약 기원전 510년경 왕정을 폐지하고 로마 정치를 이끈 공화정 체제가 출범했습니다.

이는 권력의 분리와 견제와 균형 원칙에 중점을 둔 복합적인 정치 체제였습니다.

BC 5C

[로마-라티움 동맹 카시우스 조약 체결]

로마는 라티움 지역 도시들의 연맹체인 라티움 동맹과 카시우스 조약을 체결하여 군사 동맹을 맺었습니다.

이는 로마가 수많은 도시들의 연맹체와 동등한 대우를 받을 만큼 강력한 정치적 입지를 확보했음을 보여줍니다.

[평민의 철수 투쟁 및 호민관 선출]

로마 평민들이 귀족들의 부채 노예화와 불평등에 분노하여 아벤티누스 언덕으로 철수 투쟁을 벌였습니다.

이를 통해 평민 자신들만의 민회인 트리부스 평민회를 조직하고 평민 권익의 옹호자인 호민관을 선출하며 중요한 정치적 발언권을 확보했습니다.

역사서에 따르면, 전쟁으로 황폐화된 경작지를 개간하기 위해 돈을 빌린 평민들이 노예화되는 비참한 현실이 드러나자 로마 시민들은 전쟁 수행을 거부했습니다. 이에 대한 약속이 백지화되자 평민들은 집단 철수를 감행했고, 그 결과 호민관 직책과 평민 조영관 직책이 신설되었습니다.

[12표법 제정]

평민들의 법 성문화 요구로 10인 입법 위원회가 구성되어 로마법의 모체가 된 12표법이 제정되었습니다.

이로써 형식적으로나마 법의 평등성이 보장되기 시작했습니다.

[카눌레이우스 법 통과]

심각한 군사 위기 상황에서 평민의 지지가 중요해지자, 귀족과 평민 간의 통혼을 허용하는 카눌레이우스 법이 통과되었습니다.

이로써 유력 평민이 로마 지배 계층에 진출할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BC 4C

[켈트족 로마 점령]

북쪽에서 내려온 켈트족의 침략으로 로마는 카피톨리누스 언덕을 제외한 도시 전체를 7개월간 점령당했습니다.

도시는 크게 파괴되었고 대외 위신이 실추되는 심각한 위기를 겪었습니다.

[리키니우스 섹스티우스 법 통과]

귀족과 평민 간의 오랜 투쟁 끝에 리키니우스 섹스티우스 법이 통과되었습니다.

이 법은 두 명의 집정관 중 한 명은 평민 출신으로 할당하고, 이탈리아 정복 과정에서 늘어난 공유지를 귀족들이 점유하는 데 제약을 두었습니다.

[최초의 평민 출신 독재관 탄생]

리키니우스 섹스티우스 법 이후 유력 평민들이 상당한 권익을 확보하며 귀족들이 독점하던 다른 정무관직에도 진출했습니다.

특히, 로마 공화정 역사상 최초로 평민 출신 독재관이 탄생하는 기록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삼니움 전쟁 승리 및 이탈리아 중부 제패]

기원전 343년부터 약 290년까지 삼니움족과 세 차례의 전쟁을 치러 모두 승리했습니다.

특히 기원전 295년 센티눔 전투에서 켈트족과 에트루리아 연합군을 격파하며 대규모 회전에서 승리했고, 결국 기원전 290년 삼니움족의 굴복을 받아내 이탈리아 중부를 제패했습니다.

1차 삼니움 전쟁은 비교적 쉽게 끝났지만, 2차 삼니움 전쟁(기원전 326~304년)은 22년간 지속되었고, 로마군은 카우디네 협곡에서 전례 없는 참패를 겪기도 했습니다. 3차 삼니움 전쟁에서는 삼니움족, 에트루리아인, 켈트족 연합군과 맞서 센티눔 전투에서 집정관 푸블리우스 데키우스 무스가 적진에 돌진하여 사망하는 희생 끝에 승리했습니다. 이 승리로 로마는 명실상부한 이탈리아의 지배자로 부상했습니다.

[라티움 전쟁 발발 및 동맹 해체]

로마의 동맹 주도에 불만을 품은 라티움 동맹국이 로마에 대항하여 라티움 전쟁을 일으켰으나, 로마의 승리로 끝났습니다.

이로 인해 라티움 동맹은 해체되었고, 로마는 라티움 도시들을 자치 도시로 삼아 정치적으로 흡수했습니다.

[부채 노예제 폐지 (포이텔리우스법)]

포이텔리우스법이 제정되어 부채 노예제가 폐지되었습니다.

이는 빈곤한 평민층이 유력자에 대해 독립적인 지위를 유지하고 생존권을 보호받을 수 있는 중요한 법적 기반이 되었습니다.

BC 3C

[호르텐시우스 법 제정 및 신분 투쟁 종결]

호르텐시우스 법은 트리부스 평민회의 결의가 원로원의 재가 없이 전체 시민에 대해 법적 구속력을 가지도록 규정했습니다.

이로써 공화정기의 오랜 귀족과 평민 간의 신분 투쟁이 사실상 종지부를 찍었습니다.

[피로스 전쟁 승리]

이탈리아 남부 타렌툼의 요청으로 에페이로스의 피로스 왕이 로마를 침공한 피로스 전쟁이 발발했습니다.

피로스는 뛰어난 전술로 로마군에 상당한 승리를 거두었으나, 전투마다 로마군 전사자의 7할에 육박하는 막대한 피해를 입어 '피로스의 승리'라는 말이 유래했습니다.

결국 피로스는 로마의 강력한 저항과 시칠리아에서의 어려움으로 이탈리아에서 철수했으며, 로마는 남부 이탈리아까지 장악하게 되었습니다.

기원전 280년에 이탈리아에 상륙한 피로스는 로마군에게 큰 타격을 주었으나, 그의 승리는 늘 막대한 손실을 동반했습니다. 시칠리아로 잠시 떠났다가 다시 이탈리아로 돌아온 피로스는 베네벤툼 전투 이후 전쟁 의지를 꺾고 철수했습니다. 이 승리로 로마는 명실상부한 이탈리아의 지배자로 부상했습니다.

[제1차 포에니 전쟁 발발 및 승리]

메시나에서의 용병 소요를 계기로 카르타고와의 제1차 포에니 전쟁이 발발했습니다.

로마는 거의 최초로 제대로 된 해군을 창설하여 시칠리아, 카르타고 인근 해역에서 해전과 육전을 거듭했습니다.

기원전 241년 애가테스 섬 해전에서 승리하며 전쟁을 끝냈고, 시칠리아 서부 지역이 로마의 최초 속주로 지정되는 역사적인 이정표가 되었습니다.

로마군은 '까마귀'라는 신식 무기를 활용하여 해전에서 승리했습니다. 아프리카 상륙 후 참패를 겪기도 했으나, 귀족들의 기부금으로 새로운 함대를 편성하여 애가테스 섬 해전에서 카르타고 해군을 격파했습니다. 이 승리로 로마는 광범위한 지중해 세계 문제에 개입하는 주요 해상 국가로 발돋움했습니다.

[제2차 포에니 전쟁 - 한니발의 이탈리아 침공]

카르타고의 천재적인 명장 한니발이 알프스산맥을 넘어 이탈리아를 침공하며 제2차 포에니 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한니발은 티키누스, 트레비아, 트라시메누스 전투에서 로마군을 연파했으며, 특히 기원전 216년 칸나이 전투에서는 로마군 8만 명을 격파하며 로마 역사상 최악의 대패를 안겼습니다.

이 전투는 역사상 전술적으로 가장 빛나는 승리 중 하나로 평가받습니다.

[자마 전투 승리 및 2차 포에니 전쟁 종결]

로마는 독재관 파비우스 막시무스의 지구전법과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의 아프리카 원정 주장으로 전세를 뒤집었습니다.

결국 기원전 202년,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가 자마 전투에서 한니발을 격파하며 제2차 포에니 전쟁을 로마의 승리로 이끌었습니다.

이 승리로 로마는 지중해 패권을 확고히 하게 됩니다.

한니발이 이탈리아반도 내에서 한 번도 패배하지 않았음에도 로마는 한니발이 부재한 지역을 공략하며 전세를 유리하게 만들었습니다. 스페인 지역에서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가 하스두르발을 연파하고, 하스두르발이 이탈리아로 진입하려다 로마군에 의해 전사하면서 한니발은 고립되었습니다. 스키피오의 아프리카 원정은 전쟁을 카르타고 본토로 옮겼고, 자마 전투의 승리로 로마는 카르타고에 엄격한 강화 조약을 강요했습니다.

BC 2C

[퀴노스케팔라이 전투 승리 및 그리스 진출]

제2차 포에니 전쟁 이후 마케도니아와 시리아의 세력 확대로 헬레니즘 세계의 균형이 깨지자 로마는 제2차 마케도니아 전쟁에 개입했습니다.

기원전 197년 퀴노스케팔라이 전투에서 로마 군단은 마케도니아의 육중한 중장보병 밀집대를 격파하며, 로마 군단의 전략적 융통성이 가진 효과를 입증하고 그리스 세계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했습니다.

[제3차 포에니 전쟁 및 카르타고 멸망]

카르타고가 누미디아의 침략에 맞서 로마의 허락 없이 군대를 편성한 것을 빌미로 제3차 포에니 전쟁이 발발했습니다.

이 전쟁의 결과, 로마는 카르타고 도시를 파괴하고 마침내 기원전 146년에 카르타고를 완전히 멸망시키며 지중해 서부의 유일한 강대국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누만티아 함락 및 지중해 세계 제패]

히스파니아 정복 과정에서 끈질긴 저항을 받았던 로마는 기원전 133년에 켈티베리아의 성채 누만티아를 함락했습니다.

또한 소아시아의 페르가몬 왕국을 유증받으며, 70여 년 만에 지중해 세계 상당 부분을 완전히 제패하는 대업을 달성했습니다.

[티베리우스 그라쿠스 농지법 제안 및 암살]

젊은 호민관 티베리우스 그라쿠스는 유력자들이 점유한 공유지를 재분배하는 농지법을 제안했습니다.

그는 관례를 무시하고 원로원 자문 없이 법안을 강행하며 정치적 갈등을 심화시켰고, 결국 자신을 반대하는 원로원 세력에 의해 살해당했습니다.

이는 로마 공화정 사상 최초의 정치 폭력이자, 민중파와 벌족파의 대립을 격화시키는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가이우스 그라쿠스의 개혁 시도]

티베리우스의 동생 가이우스 그라쿠스가 호민관에 선출되어 형의 농지법을 부활시키고 대규모 식민시 건설을 추진했습니다.

또한 도시 빈민을 위한 최초의 곡물법을 제정하고 기사 계급을 끌어들이려 했으나, 정적들의 선동과 정치 폭력으로 희생되면서 그라쿠스 형제의 개혁은 좌절되었습니다.

[마리우스의 병제 개혁]

기사 계급 출신 장군 가이우스 마리우스는 군대 복무를 위한 시민의 재산 자격을 철폐하고 무산자들도 군대에 지원할 수 있도록 병제 개혁을 단행했습니다.

이는 병사들이 국가가 아닌 자신의 군사령관에게 충성하게 만드는 '사병화' 현상을 초래하며 로마 군대의 성격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켰습니다.

BC 1C

[동맹국 전쟁 발발 및 로마 시민권 확대]

로마 시민권을 요구하던 이탈리아 동맹국 시민들에게 시민권을 부여하려는 법안이 제안되었으나 암살되자, 동맹국들은 로마에 대항하여 동맹국 전쟁을 일으켰습니다.

결국 로마는 모든 동맹국의 자유민에게 로마 시민권을 허용하며 시민권이 이탈리아 전역으로 확대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술라의 로마 장악 및 독재관 취임]

마리우스파와 술라 사이에 전면적인 내란이 발발한 후, 미트리다테스 전쟁에서 승리한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술라가 군대를 이끌고 로마로 진격하여 독재관이 되었습니다.

그는 정적들을 무자비하게 숙청하고 퇴역 병사들을 이탈리아에 정착시키며 공화정 헌정 질서를 복구하려 시도했습니다.

[폼페이우스와 크라수스 집정관 취임 및 호민관 권한 부활]

스파르타쿠스의 노예 반란과 카틸리나의 모반 등 불안정한 시기에, 폼페이우스와 크라수스가 집정관이 되어 술라가 약화시킨 호민관의 권한을 다시 부활시켰습니다.

[가비니우스법 제정]

로마 대중의 지지를 받아 가비니우스법이 통과되었습니다.

이 법은 폼페이우스에게 비상시 명령권을 부여하여 지중해 해적 소탕 임무를 맡겼으며, 폼페이우스는 이를 통해 동방에서 대승을 거두며 막강한 군사력을 과시했습니다.

[제1차 삼두 정치 체결]

보수적인 원로원 세력에 맞서 군사적 명성을 얻은 폼페이우스와 대중적 정치 지도자인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그리고 부유한 크라수스 세 사람이 제1차 삼두 정치를 체결했습니다.

이는 원로원의 통제권을 벗어난 개인 권력의 연합으로, 공화정 말기 정치 불안정을 심화시켰습니다.

[카이사르의 루비콘 강 도하 및 로마 장악]

갈리아 속주 총독으로 9년간 갈리아를 정복하며 막대한 군사적 성공을 거둔 카이사르가 원로원의 소환 명령을 무시하고 군대를 이끌고 루비콘 강을 건넜습니다.

이는 '주사위는 던져졌다'는 유명한 말을 남기며 로마 내전의 시작을 알리는 상징적인 사건이 되었습니다.

[율리우스 카이사르 암살]

종신 독재관에 올라 로마의 실질적인 지배자가 된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독재를 우려한 몇몇 원로원 의원들에게 암살당했습니다.

이 사건은 다시 로마를 극심한 내전의 혼란 속으로 몰아넣었습니다.

[로마 공화국 종식 및 제정 시대 개막]

카이사르 암살 이후의 치열한 권력 투쟁에서 옥타비아누스가 승리했습니다.

기원전 27년, 로마 원로원이 옥타비아누스에게 '아우구스투스' 칭호와 특별한 권력을 부여하며, 로마는 공화정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제정이라는 새로운 체제로 이행되었습니다.

이는 450여 년간 이어진 로마 공화정의 종식을 알리는 결정적인 순간이었습니다.

로마 공화국이 로마 제국으로 이행되는 정확한 시점은 학자들에 따라 기원전 44년(카이사르 종신 독재관), 기원전 31년(악티움 해전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패배), 또는 기원전 27년(아우구스투스에게 특별 권력 부여) 등으로 다양하게 해석됩니다. 여기서는 최종적인 체제 전환이 이루어진 기원전 27년을 공화국 종식 시점으로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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