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성신문

신문, 일간지, 민족지, 항일 매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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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1:0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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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 일간지, 민족지, 항일 매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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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98년 창간되어 1910년 폐간된 대한제국 시기 대표적인 민족 언론. - 남궁억 장지연 신채호 등 당대 지식인들이 주필로 활동하며 애국적인 논조로 민족의 독립의식을 고취. - 을사조약에 대한 장지연의 시일야방성대곡 게재는 일제에 저항한 언론의 상징으로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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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8

[민족 언론의 시작, 황성신문 창간]

1898년, 남궁억과 나수연 등이 《대한황성신문》판권을 인수받아 황성신문을 창간했습니다.

이는 대한제국 시기 민족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애국정신을 고취한 대표적인 민간 일간지로, 당시 언론 독립의 상징과도 같았습니다.

1899

[논객들의 활약과 지면 확장]

창간 초 주2회 2면으로 발행되던 황성신문은 1899년 11월 23일부터 4단 4면제로 확장 발행되며, 유근, 박은식, 장지연, 신채호 등 당대 최고의 지식인들이 주필로 참여해 국한문 혼용체로 애국적인 논조를 펼치며 대중의 의식을 일깨우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1905

[전국민을 울린 '시일야방성대곡' 사태]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황성신문은 주필 장지연이 비통함을 담아 쓴 논설 '시일야방성대곡'을 게재했습니다.

이 사설은 전국민에게 엄청난 충격과 공분을 일으켰고, 결국 일제의 강압으로 황성신문은 일시 정간되었으나, 이는 일제에 맞선 언론 저항의 상징으로 길이 남게 되었습니다.

사설 게재 후 일본 제국의 압력으로 장지연의 황성신문 복귀는 불가능해졌으며, 신문은 잠시 정간되었다가 1906년 복간되었습니다.

1910

[일제에 의한 강제 폐간]

1910년 경술국치 직후, 일제는 황성신문의 제호를 '한성신문'으로 강제 변경시킨 뒤, 9월 14일 제3470호를 끝으로 신문을 강제로 폐간했습니다.

이는 대한제국 언론의 자유가 완전히 말살되었음을 보여주는 비극적인 사건으로, 황성신문은 일제 강점기 직전까지 민족혼을 지키려 애쓴 마지막 보루 중 하나로 기록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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