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월

시인, 문학가, 민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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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10-12- 00:3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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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월
시인, 문학가, 민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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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에서 일제강점기에 걸쳐 활동한 김소월은 한국인의 한과 민족 고유의 정서를 가장 아름답게 노래한 민족 시인입니다. 33세의 짧은 생애에도 불구하고 『진달래꽃』과 같은 불멸의 명작들을 남겼으며 그의 시는 오늘날 한국 가곡의 20%를 차지하며 대중적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시대의 아픔 속에서 피어난 그의 언어는 한국 문학사에 깊은 울림을 남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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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2

[조선의 서정시인이 태어나다]

일제강점기 시대를 관통하며 한국인의 깊은 정서를 노래할 시인, 김소월(본명 김정식)이 평안북도 구성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삶은 훗날 주옥같은 시로 피어날 민족의 아픔과 함께 시작되었습니다.

1904

[가슴 아픈 가족사, 시인의 운명에 영향을 주다]

아버지가 일본인 목도꾼들에게 폭행당해 정신 이상자가 되는 비극을 겪었습니다.

이 사건은 어린 김소월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고, 그는 광산을 경영하던 할아버지의 보살핌 속에서 성장하게 됩니다.

이 시기, 문학적 영감을 준 숙모 계희영과의 만남 또한 그의 삶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1915

[문학의 길로 이끈 운명적 만남]

평안북도 정주 오산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하여 조만식 선생을 만나고, 평생 문학의 스승이 될 김억 시인을 만났습니다.

김억의 격려로 김소월은 훗날 한국 문학사에 한 획을 긋는 시인이 될 첫걸음을 내딛게 됩니다.

1916

[일생의 반려자를 만나다]

오산학교 재학 중 고향의 홍시옥의 딸 홍단실과 결혼하며 가정을 꾸렸습니다.

짧고 고단했던 그의 삶 속에서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줄 배우자를 맞이한 중요한 해였습니다.

1920

[시인 김소월, 세상에 첫발을 내딛다]

스승 김억의 격려로 동인지 《창조》 5호에 시를 처음 발표하며 공식적으로 문단에 데뷔했습니다.

이는 한국 현대시의 서정적 지평을 연 위대한 시인의 탄생을 알리는 역사적인 순간이었습니다.

1923

[유학의 꿈, 지진으로 좌절되다]

일본 도쿄 상과대학교에 입학했지만, 그해 9월 발생한 관동대지진의 여파로 학업을 중단하고 귀국했습니다.

이 시기 서울에서 나도향과 교류하며 동인지 《영대》 동인으로 활동하는 등 문학적 교류를 이어갔습니다.

1925

[불멸의 명작, 시집 『진달래꽃』 출간]

생전 유일한 시집이자 한국 현대시의 기념비적인 작품인 『진달래꽃』을 발간했습니다.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우리다'로 시작하는 표제작은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시로 남아 있으며, 그의 이름을 영원히 기억하게 했습니다.

1934

[비운의 시인, 33세의 짧은 생을 마치다]

류머티즘으로 고생하던 김소월 시인이 평안북도 곽산 자택에서 향년 33세의 짧은 생을 마감했습니다.

'세상은 참 살기 힘들다'는 마지막 말을 남겼다는 일화는 그의 고단했던 삶을 짐작하게 합니다.

김소월 시인의 사망 원인에 대해서는 뇌졸중으로 인한 병사 설과 아편 과다 복용으로 인한 자살 설 등 여러 추측이 있습니다. 증손녀의 증언에 따르면, 그는 심한 관절염으로 아편을 복용하곤 했다고 전해집니다. 어떤 이유에서든, 그의 요절은 한국 문학계에 큰 슬픔을 안겼습니다.

1977

[43년 만의 놀라운 진실, 스승의 제자 시 표절 드러나다]

김소월 사후 43년 만에 그의 시작 노트가 발견되었고, 여기에 실린 일부 시가 스승 김억이 이미 자신의 시로 발표했다는 충격적인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이는 문학계에 큰 파장을 일으키며 스승의 제자 시 표절 논란을 불러일으켰습니다.

1981

[국가가 인정한 위대한 시인, 금관문화훈장 추서]

대한민국 최고 등급 문화 훈장인 금관문화훈장(1등급)이 김소월 시인에게 추서되며 그의 문학적 업적이 다시 한번 빛을 발했습니다.

서울 남산에 그를 기리는 시비가 세워져 그의 정신을 기리고 있습니다.

1986

[한국 가곡의 1위 시인, 김소월의 위대한 유산]

조사 결과, 한국 가곡의 무려 20%가 김소월의 시에 곡을 붙인 것으로 발표되며, 가곡 시인 중 압도적인 1위를 차지했습니다.

이는 그의 시가 대중에게 얼마나 깊이 스며들었는지 보여주는 지표이자, 그의 문학이 지닌 영원한 생명력을 증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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