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정치인, 대통령, 인권변호사
최근 수정 시각 : 2025-10-12- 12:04:04
대한민국 제16대 대통령. 고졸 출신 최초 사법시험 합격 후 인권 변호사로 활동하며 민주화 운동에 기여. 권위주의와 지역주의 타파를 주창하며 노풍을 일으켜 대통령에 당선. 재임 중 탈권위적 리더십을 보였으나 탄핵소추 및 측근 비리로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함. 퇴임 후 검찰 수사 중 서거하며 사회에 큰 파장을 남김. 현재까지도 정치적 역사적으로 다양한 평가를 받고 있는 인물이다.
- 노무현 출생
- 고졸 출신 유일 사법시험 합격
- 인권 변호사 활동의 시작, 부림 사건 변론
- 대우조선 노동자 사망 사건 변론 및 구속
- 정치 입문, 제13대 국회의원 당선
- '청문회 스타'로 대중적 인지도를 얻다
- '3당 합당' 거부, 김영삼과 결별
- 언론사 상대 명예훼손 소송 승소
- 제14대 총선에서 재선 실패
- 부산광역시장 선거 낙선
- 제15대 총선 서울 종로구 낙선
- 새정치국민회의 입당, 김대중 지지
- 서울 종로구 재보궐 선거 당선, 6년 만에 국회 복귀
- 지역주의 타파를 위한 험지 출마와 '노사모' 탄생
- 제6대 해양수산부 장관 취임
- '노풍'을 일으킨 국민 경선제 승리
- 정몽준 후보와의 단일화 극적 승리
- 정몽준 후보의 대선 후보 단일화 파기 선언
- 대한민국 제16대 대통령 당선
- 대한민국 제16대 대통령 취임, '참여정부' 출범
- '대통령과 전국 검사와의 대화' 생중계 논란과 탈권위적 이미지
- 이라크 파병 결정 (자이툰부대)
- 특별 교부금 제도 개선 지시
- "대통령직 못해 먹겠다" 발언
- 새천년민주당 탈당
- 측근 비리 의혹과 재신임 선언
- 신행정수도법 국회 통과
- 며느리의 '유모차 해프닝' 논란
- 형 노건평 비리 의혹과 남상국 사장 투신 사건
- 헌정 사상 최초 대통령 탄핵소추안 국회 가결
- 헌법재판소, 탄핵심판 기각 및 직무 복귀
- 열린우리당 '수석 당원'으로 입당
- 신행정수도특별법 위헌 판결
-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추진 지시
- 청와대 업무관리시스템 'e지원' 특허 취득
- 행정도시 특별법 국회 가결
- 동북아 역사재단 설립 지시
- 리움 미술관 방문 및 이건희 회장 내외와 만남
- 헌법재판소법 개정, 탄핵 심판 소수 의견 공개 의무화
-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 서훈 추서
- 황우석 사건 관련 PD수첩 비판 글 게시 논란
- 세계 최초 '국민과의 인터넷 대화' 온라인 생중계
- 여론조사, '담임 선생님' 3위 '속 썩일 대통령' 1위
- 열린우리당 신당 창당 반대 의지 피력
- 역대 대통령 최저 국정 지지율 기록
- 황우석 사건 관련 인물 재발탁 논란
- 4년 연임제 헌법 개정 제안
- 열린우리당 탈당 선언
- 정치적 발언과 '선거 중립' 논란
- APEC 정상회담에서의 외교적 논란
- 국가 원수 최초 도보로 군사분계선 넘어 평양 방북
- 2차 남북정상회담 개최 및 10.4 선언 발표
- "호남 의원들과는 정치 못해먹겠다" 발언 논란
- 서울대생 여론조사, 국정수행 부정적 평가
- 퇴임 후 고향 봉하마을 귀향, 첫 사례 기록
- 대통령 기록물 유출 논란
- 인터넷 토론 사이트 '민주주의 2.0' 개설
- 한국 정치학회 인터뷰, 보수주의 비판
- 친형 노건평, 세종증권 매각 비리 혐의로 구속 수감
- 권양숙의 박연차 금품 수수 의혹 관련 사과문 게재
- 전직 대통령 최초 검찰 소환 조사
- 권양숙의 '논두렁 시계' 진술 보도 논란
- 봉화산 부엉이 바위에서 투신 자살, 서거
- 검찰, 뇌물 수수 의혹 수사 '공소권 없음' 종결
- 국민장으로 엄수된 장례
-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 출범
- 회고록 '성공과 좌절' 베스트셀러 1위 기록
- 봉하마을 묘소 인분 투척 사건
- 딸 노정연, 외화 불법 송금 혐의 유죄 확정
- '논두렁 시계' 국정원 조작 의혹 폭로
1946
1975
[고졸 출신 유일 사법시험 합격]
독학으로 4번째 도전 끝에 30세의 나이로 제17회 사법시험에 합격, 당시 유일한 고졸 합격자라는 기록을 세우며 주위의 이목을 끌었다.
1981
[인권 변호사 활동의 시작, 부림 사건 변론]
김광일 변호사의 권유로 '부림 사건' 변론에 참여하며 인권 변호사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그는 이 사건을 통해 자신의 인생이 바뀌었다고 회고하며, 고문당한 학생들의 공포에 피가 거꾸로 솟는 듯했다고 밝히며 인권 문제에 눈을 뜨게 된다.
1987
[대우조선 노동자 사망 사건 변론 및 구속]
거제도 대우조선 파업 현장에서 경찰이 쏜 최루탄에 노동자가 사망하자 이상수 등과 함께 사인 규명 작업에 나섰다가 제삼자 개입 및 장식 방해 혐의로 경찰에 구속되고 변호사 업무정지 처분을 받는다.
1988
[정치 입문, 제13대 국회의원 당선]
재야 활동을 하던 중 통일민주당 총재 김영삼의 공천을 받아 부산 동구에서 제13대 국회의원에 당선되며 본격적인 정치인의 길에 들어섰다.
['청문회 스타'로 대중적 인지도를 얻다]
제5공화국 비리 특별조사위원회 청문회에서 장세동, 전두환 등 주요 증인들을 상대로 차분하고 논리적인 질의와 치밀한 추궁을 펼치며 '청문회 스타'로 전국적인 인지도를 얻었다.
특히 텔레비전으로 중계된 5공 청문회에서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 명패를 던지는 등의 언동으로 국민적 관심을 집중시켰다.
1990
['3당 합당' 거부, 김영삼과 결별]
김영삼, 노태우, 김종필 총재가 민주자유당을 창당하기로 한 '3당 합당'에 대해 '밀실 야합'이라 규정하며 공개적으로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이는 후원자였던 김영삼과 결별하고 자신의 정치적 소신을 분명히 하는 계기가 되었다.
1991
[언론사 상대 명예훼손 소송 승소]
'주간조선'이 자신의 부동산 투기 및 호화 요트 소유 의혹을 보도하자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하여 1년여 만에 승소 판결을 받아내며 언론과의 관계에서 강경한 입장을 보였다.
이 기사는 선거에도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분석된다.
1992
[제14대 총선에서 재선 실패]
민주당 후보로 부산 동구에 출마했으나 2위로 낙선하며 재선에 실패했다.
이는 그에게 정치적 좌절감을 안겼다.
1995
[부산광역시장 선거 낙선]
민주당 후보로 부산광역시장 선거에 출마하여 36.7%의 득표율을 얻었으나 지역감정의 벽을 넘지 못하고 낙선했다.
1996
[제15대 총선 서울 종로구 낙선]
제15대 총선에서 서울 종로구에 통합민주당 후보로 출마했으나 신한국당의 이명박 후보, 새정치국민회의의 이종찬 후보에 밀려 3위로 낙선했다.
1997
[새정치국민회의 입당, 김대중 지지]
제15대 대선을 앞두고 김원기 등과 함께 새정치국민회의에 입당하여 김대중을 지지했다.
그는 군사정권 후예 심판과 50년 만의 정권교체를 이루기 위해 김대중과의 연대를 선택했다.
1998
[서울 종로구 재보궐 선거 당선, 6년 만에 국회 복귀]
한나라당 이명박 의원이 선거법 위반으로 의원직을 상실하자 치러진 재보궐 선거에서 서울 종로구에 새정치국민회의 소속으로 출마하여 당선, 6년 만에 국회에 복귀하며 정치적 재기에 성공했다.
2000
[지역주의 타파를 위한 험지 출마와 '노사모' 탄생]
당선 가능성이 높았던 서울시 종로구 공천을 거절하고 "지역주의 벽을 넘겠다"는 의지를 표명하며 부산 북·강서을 지역구에 새천년민주당 후보로 출마했으나 낙선한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네티즌들이 자발적으로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를 조직하며 그의 중요한 정치적 자산이 된다.
[제6대 해양수산부 장관 취임]
국회의원 낙선 후 김대중 정부의 제6대 해양수산부 장관으로 임명되어 2001년 3월 25일까지 재임했다.
2002
['노풍'을 일으킨 국민 경선제 승리]
제주를 시작으로 전국 16개 시도를 돌며 진행된 새천년민주당 국민 경선제에서 압도적인 1위였던 이인제 후보를 제치고 파란을 일으키며 '노풍'의 주인공이 되었다.
특히 광주 경선에서의 승리는 지역주의 극복의 상징으로 평가받았다.
[정몽준 후보와의 단일화 극적 승리]
정몽준 후보와의 대선 후보 단일화 여론조사에서 자신에게 불리한 여론조사 방식을 수용하는 '승부수'를 던져 극적으로 승리하며 지지율을 끌어올렸다.
[정몽준 후보의 대선 후보 단일화 파기 선언]
대선 투표 전날 밤 10시, 정몽준 후보가 노무현 후보의 '미국과 북한과 싸우면 우리가 말린다'는 발언을 문제 삼아 민주당과의 선거 공조를 파기하면서 대선 막판 위기를 맞았다.
그러나 이는 오히려 진보 진영 지지층 결집을 이끌어내는 의외의 효과를 낳았다.
[대한민국 제16대 대통령 당선]
개표 초반 뒤지고 있었으나 막판 역전에 성공하며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를 57만 표 차이로 꺾고 대한민국 제16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선거 기간 동안 인터넷을 중심으로 젊은 층의 표심을 이끌어냈으며,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그를 "세계 최초의 인터넷 대통령이 로그온(Log-on) 했다"고 논평했다.
2003
[대한민국 제16대 대통령 취임, '참여정부' 출범]
국회의사당 앞마당에서 총 48,500명이 참석한 가운데 제16대 대통령 취임식을 거행하며 '참여정부'를 공식 출범시켰다.
선거 과정처럼 취임식 티켓도 온라인으로 응모를 받아 배포하며 화제를 모았다.
['대통령과 전국 검사와의 대화' 생중계 논란과 탈권위적 이미지]
검찰 개혁과 인사를 놓고 일선 검사들과의 토론회를 '대통령과 전국 검사와의 대화'라는 제목으로 방송 3사를 통해 전국에 생중계했다.
이 자리에서 "이쯤 되면 막 하자는 거죠”라는 발언으로 논란이 되기도 했으나, 권위적이지 않은 '토론하는 대통령'의 모습을 보여주며 주목받았다.
[이라크 파병 결정 (자이툰부대)]
미국의 이라크 침공 후 한국을 비롯한 동맹국에 파병 요청이 있자 "국익을 위해 파병해야 한다"라며 이라크 파병이 '전략적 선택'이라고 표현한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하고 이라크 파병을 결정했다.
이는 군사정권이 아닌 행정부에서 최초로 결정한 해외 파병으로 기록된다.
[특별 교부금 제도 개선 지시]
원칙대로 운용되지 못하고 자의적으로 유용되던 특별 교부금에 대해 폐지 또는 보통 교부금에 통합하는 등 개선을 명령하며 개혁 의지를 드러냈다.
[청남대 국민 개방 지시]
자신의 지시에 따라 역대 대통령 별장이었던 청남대가 개방되고 모든 관리권이 충청북도로 이관되었으며, 현재는 관광지로 활용되고 있다.
["대통령직 못해 먹겠다" 발언]
각종 사회적 갈등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오자 "이러다가 대통령직 못해 먹겠다는 생각이, 위기감이 생긴다"며 국정 운영의 어려움을 솔직하게 토로했다.
이 발언은 이후 그의 대표적인 어록 중 하나로 회자된다.
[새천년민주당 탈당]
정치적 기반과 당내 갈등 속에서 새천년민주당을 탈당했다.
이는 당시 소속 의원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측근 비리 의혹과 재신임 선언]
청와대 총무비서관 최도술의 SK그룹 비자금 수수 의혹, 김두관 행정자치부 장관 해임 건의안 가결, 윤성식 감사원장 임명 동의안 부결 등 문제가 계속 발생하자 "국민에게 재신임을 묻겠다"고 선언하며 위기 돌파를 시도했다.
[신행정수도법 국회 통과]
국회에서 여야 합의로 신행정수도법이 통과되며 지방 균형 발전을 위한 주요 정책 추진에 박차를 가했다.
2004
[며느리의 '유모차 해프닝' 논란]
며느리 배정민이 개인 홈페이지에 "150만 원짜리 유모차가 사고 싶은데 엄마 아빠(노무현, 권양숙 추정)에게 사 달라고 졸라야겠다"는 글을 올린 이른바 '유모차 해프닝'이 벌어져 논란이 되었다.
이후 며느리는 홈페이지를 폐쇄했다.
[형 노건평 비리 의혹과 남상국 사장 투신 사건]
친형 노건평이 대우건설 남상국 사장으로부터 청탁성 뇌물을 수수한 사실이 보도되자, 언론 브리핑에서 "대우건설의 사장처럼 좋은 학교 나오시고 크게 성공하신 분들이 시골에 있는 별 볼일 없는 사람에게 가서 머리 조아리고 돈 주고 그런 일 이제는 없었으면 좋겠다"며 남 사장을 질타했다.
다음 날 남 사장은 한강에 투신하며 큰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다.
노건평은 이 사건으로 유죄가 인정되어 집행유예 판결을 받았다.
[헌정 사상 최초 대통령 탄핵소추안 국회 가결]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열린우리당 지지 발언을 선거중립 의무 위반으로 인정하자, 야3당이 탄핵소추안을 발의하여 국회에서 찬성 193표, 반대 2표로 가결시켰다.
이로써 헌정 사상 최초로 대통령 직무가 정지되고 고건 국무총리가 직무 권한 대행을 맡게 되었다.
[헌법재판소, 탄핵심판 기각 및 직무 복귀]
탄핵소추안 가결 후 직무가 정지되었으나, 헌법재판소가 소추안을 기각하며 대통령 직무에 복귀했다.
탄핵을 주도했던 새천년민주당, 한나라당, 자유민주연합은 이후 제17대 총선에서 여론의 역풍에 휩싸여 참패했다.
[열린우리당 '수석 당원'으로 입당]
제1당이 된 열린우리당에 '수석 당원'으로 입당하여 열린우리당을 공식적인 여당으로 만들었다.
[신행정수도특별법 위헌 판결]
헌법재판소가 "신행정수도특별법은 서울을 수도로 보아온 관습헌법에 어긋나는 일"이라며 위헌 판결을 내리면서 그가 선거 공약으로 내걸었던 행정수도 이전 계획이 좌절되었다.
'관습 헌법'이라는 개념이 동원된 이 판결은 일부 여론의 수긍할 수 없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추진 지시]
국가의 새로운 성장 동력 확보를 위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추진을 지시하며 경제 정책의 주요 방향을 설정했다.
이는 이후 많은 사회적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2005
[청와대 업무관리시스템 'e지원' 특허 취득]
자신이 직접 고안한 청와대 업무관리시스템 'e지원'을 강태영 비서관 등과 함께 개발하여 특허를 취득했다.
이는 세계 최초로 대통령이 직접 행정 업무 시스템을 개발하고 특허를 받은 사례로, 청와대 업무의 종이 서류를 없애고 온라인으로 지시 및 결재를 간소화하는 데 기여했다.
[행정도시 특별법 국회 가결]
신행정수도특별법이 위헌 판결이 나자, 몇몇 부분을 수정한 '행정도시 특별법'이 국회에서 가결되었다.
이로써 세종특별자치시 건설의 법적 기반이 마련되었다.
[동북아 역사재단 설립 지시]
중국과 일본의 역사 왜곡 및 영유권 주장에 체계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동북아 역사재단' 설립을 지시했다.
[리움 미술관 방문 및 이건희 회장 내외와 만남]
새로 개관한 리움 미술관을 방문하여 이건희 삼성 회장 내외와 함께 부부 동반으로 미술관을 관람했다.
이 만남은 재벌과의 화해 무드를 연출하며 주목받았다.
[헌법재판소법 개정, 탄핵 심판 소수 의견 공개 의무화]
헌법재판소법 개정안이 통과되어 탄핵 심판에서도 소수 의견 공개가 의무화되었다.
이는 사법부의 투명성 강화를 위한 중요한 조치로 평가받았다.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 서훈 추서]
광복 60주년을 맞아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 47명을 포함한 214명의 순국선열과 애국지사에게 서훈을 추서했다.
이는 지난 3·1절 서훈에 이어 주요 사회주의 활동가에 대한 재조명으로 역사적 평가를 확대하는 계기가 되었다.
[황우석 사건 관련 PD수첩 비판 글 게시 논란]
청와대 홈페이지에 "PD수첩이 황당한 취재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심지어 협박과 위협도 한다고 한다.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는 글을 올리며 PD수첩의 황우석 줄기세포 진위 취재에 대해 부정적인 언급을 했다.
이후 줄기세포가 가짜로 판명되면서 논란의 중심에 섰다.
2006
[세계 최초 '국민과의 인터넷 대화' 온라인 생중계]
청와대 영빈관에서 네티즌들과 "국민과의 인터넷 대화"를 갖고 포털 사이트를 통해 온라인 생중계로 대국민 토론회를 진행했다.
이는 세계 최초로 시도된 인터넷을 통한 전자 민주주의 구현의 초석을 쌓은 '사건'으로 평가받았다.
[여론조사, '담임 선생님' 3위 '속 썩일 대통령' 1위]
SBS-리얼미터가 조사한 '담임 선생님으로 모시고 싶은 사람' 여론조사에서 3위를 차지했다.
또한 '학창시절 선생님 속을 가장 썩였을 것으로 생각되는 대통령' 1위에 꼽히며 그의 솔직하고 때로는 파격적인 이미지를 반영했다.
[열린우리당 신당 창당 반대 의지 피력]
여당 내 신당 창당 움직임에 대해 "나는 신당을 반대한다.
말이 신당이지 지역당을 만들자는 것이기 때문이다"라며 열린우리당 사수 의지를 피력했다.
그는 지역주의 정치의 극복을 강조하며 신당 창당에 반대했다.
[역대 대통령 최저 국정 지지율 기록]
국정운영 지지도가 5.7%를 기록하며 당시까지 재임했던 대한민국 대통령 가운데 최저치를 기록했다.
이는 임기 말 김영삼 전 대통령의 8.4%보다 2.7%포인트 낮은 수치였다.
[황우석 사건 관련 인물 재발탁 논란]
황우석 사건으로 물러났던 박기영 전 대통령 정보과학기술 보좌관을 정책기획위원으로 발탁하며 "박 전 보좌관이 정책기획위원을 맡을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도덕적 문제를 일으켰다고 판단하지는 않는다"고 발언해 다시 논란을 빚었다.
2007
[4년 연임제 헌법 개정 제안]
집권 5년차 신년 연설에서 5년 단임제를 4년 연임제로 개헌할 것을 제안하며 정치 개혁에 대한 의지를 드러냈다.
[정치적 발언과 '선거 중립' 논란]
참여정부 평가포럼 특강에서 한나라당 후보들을 비판하며 선거법 위반 논란에 휩싸였다.
6월 민주항쟁 기념식에서는 "대통령에 '정치적 중립' 요구하는 선거법 고쳐야 한다"고 주장하며 언론과 기득권 세력 비판에 나서는 등 임기 말 적극적인 정치적 발언을 이어갔다.
[APEC 정상회담에서의 외교적 논란]
호주 APEC 정상회담에서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에게 "평화조약에 대해 더 분명히 말해 달라"고 여러 차례 요구하며 외교적 결례 논란을 일으켰다.
워싱턴 정가에서는 부시 대통령뿐만 아니라 현장의 미국 기자들도 놀랐다는 반응이 나왔다.
[국가 원수 최초 도보로 군사분계선 넘어 평양 방북]
TV 방송으로 생중계되는 가운데 차량으로 군사분계선에 도착, 국가 원수로는 사상 처음으로 도보로 군사분계선을 넘어 북측 지역으로 진입하여 평양으로 향했다.
이는 대한민국 역사상 전무후무한 장면으로 기록된다.
[2차 남북정상회담 개최 및 10.4 선언 발표]
평양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제2차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하여 '남북 관계 발전 및 평화 번영을 위한 선언(10.4 남북정상선언)'을 발표했다.
["호남 의원들과는 정치 못해먹겠다" 발언 논란]
무안공항 개항식 후 광주-전남 주요 인사 오찬 간담회에서 "호남 뭉치자는 말만 하며 저급한 말만 쓰는 호남지역 국회의원들과는 답답해서 일을 못해먹겠다"고 발언하여 한동안 지역 비하 논란을 일으켰다.
[서울대생 여론조사, 국정수행 부정적 평가]
서울대 등 서울지역 7개 대학 학생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 대학생의 65.4%가 그의 국정수행을 잘못했다고 답했으며, 아주 잘했다는 평가는 0.9%에 그쳤다.
2008
[퇴임 후 고향 봉하마을 귀향, 첫 사례 기록]
차기 대통령인 이명박의 취임식에 참석한 후 KTX를 타고 고향인 경남 김해 봉하마을로 귀향했다.
그는 퇴임 후 고향으로 내려간 첫 대통령으로 기록되며, 봉하마을은 지지자 및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아 관광지로 급부상했다.
[대통령 기록물 유출 논란]
국가기록원과 뉴라이트 전국연합이 그가 대통령 기록물을 사사로이 봉하마을로 옮긴 것을 '불법 무단 유출'로 검찰에 고발하면서 수사가 진행되었다.
그는 개인 자금으로 구매한 e-지원 시스템 서버 반환 요구에 개인 재산이라며 거부하기도 했다.
[인터넷 토론 사이트 '민주주의 2.0' 개설]
건전한 토론 문화 조성을 취지로 인터넷 토론 사이트 '민주주의 2.0'을 개설했다.
이는 사용자 참여 중심의 인터넷 환경인 '웹 2.0'에서 착안한 이름으로 체계적 토론을 통해 더 나은 민주주의 공동체를 만들어 가자는 뜻을 담고 있었다.
[한국 정치학회 인터뷰, 보수주의 비판]
한국 정치학회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에게 위협이 되는 보수주의를 '조중동의 논리이자 강자의 논리'로 규정하며 강하게 비판했다.
[친형 노건평, 세종증권 매각 비리 혐의로 구속 수감]
친형 노건평이 세종증권 매각 비리 의혹과 관련하여 농협의 인수 청탁과 함께 29억여 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 수감되었다.
이는 그의 퇴임 후 첫 친인척 구속으로 큰 충격을 주었다.
2009
[권양숙의 박연차 금품 수수 의혹 관련 사과문 게재]
검찰이 정상문 전 청와대 비서관을 체포하자, 자신의 개인 공식 홈페이지에 부인 권양숙이 박연차로부터 돈을 받아 사용했다는 내용의 사과문을 게재했다.
그는 "저와 제 주변의 돈 문제로 국민 여러분의 마음을 불편하게 해 드리고 있습니다.
송구스럽기 짝이 없습니다"라고 밝혔다.
[전직 대통령 최초 검찰 소환 조사]
박연차 정관계 로비 의혹 수사와 관련하여 오전 8시 봉하마을 사저를 출발, 오후 1시 20분경 대검찰청에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하여 오후 11시 20분경까지 13시간 넘게 조사를 받았다.
이는 전직 대통령으로서는 헌정 사상 최초의 검찰 소환이었다.
[권양숙의 '논두렁 시계' 진술 보도 논란]
부인 권양숙이 박연차로부터 받은 1억원짜리 시계 두 개를 '논두렁에 버렸다'고 검찰에 진술했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며 '증거 인멸' 논란과 함께 큰 비판 여론이 형성되었다.
이 발언은 이후 조작 논란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봉화산 부엉이 바위에서 투신 자살, 서거]
검찰 수사 중 압박감을 이기지 못하고 고향인 봉화산 부엉이 바위에서 투신 자살했다.
양산부산대학교병원에서는 두부 외상과 다발성 골절 등을 직접적인 사망 원인으로 발표했다.
이는 한국 사회에 큰 충격과 논란을 남겼다.
[검찰, 뇌물 수수 의혹 수사 '공소권 없음' 종결]
그의 사망으로 법무부는 뇌물 수수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를 '공소권 없음'으로 종결 처리했다.
[국민장으로 엄수된 장례]
당초 유족들은 가족장을 추진했으나, 전 국민적인 추모 열기와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를 고려하여 국민장으로 엄수되었다.
경복궁 흥례문 앞뜰에서 영결식이 치러졌고, 봉하마을에는 100만 명 이상, 전국적으로 500만 명 이상의 추모객이 분향소를 방문했다.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 출범]
참여정부 시절 인사들을 중심으로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이 출범했다.
노무현의 정치 슬로건이었던 '사람사는세상'을 이름으로 내걸고 전직 대통령 기념사업 및 민주당계 정치세력의 싱크탱크 역할을 한다.
[회고록 '성공과 좌절' 베스트셀러 1위 기록]
사후 출간된 회고록 《성공과 좌절 (노무현 대통령 못 다 쓴 회고록)》이 출간 열흘 만에 베스트셀러 판매량 1위를 기록하며 고인에 대한 뜨거운 관심과 애도를 반영했다.
2010
[봉하마을 묘소 인분 투척 사건]
봉하마을 노무현 묘소에 62세 남성이 인분과 비난 유인물 22장을 투척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는 경찰 진술에서 노무현이 재직 중 좌익세력을 도왔다는 불만 때문에 범행을 계획했다고 밝혔다.
이 사건은 사회적으로 큰 논란을 일으켰다.
2013
[딸 노정연, 외화 불법 송금 혐의 유죄 확정]
딸 노정연이 외화 100만 달러를 불법 송금한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아 징역 4월에 집행유예 1년이 확정되었다.
이는 그의 가족과 관련된 금품 수수 의혹을 다시금 수면 위로 올렸다.
2015
['논두렁 시계' 국정원 조작 의혹 폭로]
당시 박연차 수사를 담당했던 이인규 전 대검찰청 중수부장이 언론에 "권양숙 여사가 1억 원짜리 시계를 논두렁에 버렸다"는 진술은 국정원의 조작이었으며, 피의사실 과장 보도도 국정원의 공작 수준이었다고 폭로하여 큰 파장을 일으켰다.
이 폭로는 검찰 수사의 공정성에 대한 의문을 증폭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