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륜

문신, 정치인, 유학자, 외교관, 역사가, 책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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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1:0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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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신, 정치인, 유학자, 외교관, 역사가, 책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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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륜은 고려 말 조선 초를 살았던 지략가이자 정치가입니다. * 태종 이방원의 최측근 책사로 두 차례 왕자의 난을 기획하고 이방원의 왕위 등극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 조선 건국 후 6조 직계제 저화 발행 신문고 설치 등 국가 기틀을 다지는 데 주도적으로 참여했습니다. * 뛰어난 외교 능력으로 명나라와의 관계 안정화에도 크게 기여했습니다. * 태종이 나의 장자방이라 칭할 만큼 깊은 신뢰를 보였던 인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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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47

[고려 말 조선 초 핵심 인재, 하륜 탄생]

고려 충목왕 3년, 순흥부사를 지낸 하윤린과 진주 강씨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훗날 태종 이방원의 책사이자 조선 건국의 기틀을 다지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게 될 인물의 시작을 알렸습니다.

1360

[수재 하륜, 학문의 첫 관문 통과]

고려 공민왕 9년, 최고 교육기관인 국자감의 입학 시험인 국자감시에 합격하며, 미래를 위한 학문의 길을 본격적으로 닦기 시작했습니다.

1365

[고려 문과 급제, 관료 생활 시작]

공민왕 14년, 문과에 급제하며 관료로서 첫 발을 내디뎠습니다.

스승 이인복은 그의 비범함을 알아보고 동생의 딸과 결혼시켰으며, 또 다른 스승 이색도 시험관이었습니다.

1369

[권신 신돈에게 맞서다 파직되다]

감찰규정으로서 당시 권력을 쥐고 있던 신돈의 측근 비리를 탄핵하고, 신돈의 과도한 권력을 비판하다 지영주군사로 좌천, 결국 파직당했습니다.

불의에 굴하지 않는 강직한 면모를 보여주었습니다.

1371

[영주목 치적으로 복직, 실무 능력 인정]

신돈이 사형당하자 지영주군사로 복직되어 영주목을 잘 다스렸고, 안렴사 김주에게 그 치적을 높이 평가받아 유능한 행정가로서의 면모를 각인시켰습니다.

1380

[모친상으로 잠시 관직에서 물러나다]

어머니 진주 강씨의 상을 당해 관직에서 물러났습니다.

이는 권문세족 이인임과 거리가 멀어지고 신진사대부들과 가까워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1383

[3년 상 마치고 복직, 인재 양성에도 힘쓰다]

어머니의 3년 상을 마친 뒤 사간원 우부대언 등으로 복직했습니다.

퇴청 후에는 별도의 서실을 열어 후학을 가르쳤으며, 훗날 세종의 명재상이 되는 윤회를 배출하기도 했습니다.

1388

[최영의 요동 정벌 반대하다 유배, 이성계 등극의 기회를 잡다]

최영의 요동 공격이 실현 불가능하다고 강력히 반대하다 양주로 유배되었습니다.

그 해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으로 최영이 제거되자 복직하며, 이성계 세력과 관계를 맺을 기회를 잡았습니다.

1391

[고려 멸망을 앞두고, 조선 건국 세력과 뜻을 모으다]

윤이 이초의 변 이후 복직하여 전라도 도순찰사가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스승 이색, 동문 정몽주와 같이 조선 건국에 반대했으나, 정도전의 권유로 권근과 함께 이성계의 역성혁명에 참여하기로 결심했습니다.

1392

[이성계의 조선 건국에 합류, 핵심 관료로 발탁]

고려 멸망 후 낙향했으나,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자 경기좌우도관찰사로 기용되었습니다.

경기도의 부역 제도를 개편하여 전국적인 실시의 계기를 마련하며 새 왕조의 기틀을 잡는 데 기여했습니다.

1393

[수도 한양 천도 주도, 명나라 외교 난제 해결]

정도전과 함께 계룡산 천도의 부당함을 역설하고 한양 천도를 강력히 주장하여 성공시켰습니다.

또한 정도전의 표전문이 불손하다는 명나라의 문책에 직접 사신으로 가서 해명하는 외교적 역량을 발휘했습니다.

명나라 태조 홍무제가 정도전이 지은 표전문이 불손하다고 문제 삼자, 하륜은 정도전을 대신해 명나라에 가 해명했습니다. 이 일로 인해 권근, 노인도, 정탁은 억류되었으나, 하륜의 뛰어난 외교술로 명나라와의 관계를 회복하는 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하지만 이 일로 정도전과 사이가 틀어져 잠시 계림부윤으로 좌천되기도 했습니다.

1398

[권력의 판도를 바꾼 제1차 왕자의 난 핵심 책사]

충청도 도관찰사로서 병력을 이끌고 한성부에 이르러 이방원(훗날 태종)을 도와 정도전, 남은, 심효생 등을 기습 제거하고 세자 이방석과 이방번을 숙청하는 데 결정적인 공을 세웠습니다.

이 공로로 정사공신 1등에 책록되고 진산군에 봉해졌습니다.

사람의 관상을 잘 보던 하륜은 이방원의 비범함을 알아보고 그의 심복이 되었습니다. 이방원의 야심을 간파하고 제1차 왕자의 난을 실질적으로 계획하고 지휘하며, 정도전 일파를 숙청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이후 정당문학이 되고 우정승에 올랐습니다.

1399

[명나라 외교 정상화에 기여, 정종 왕위 승인 받아내다]

명나라 홍무제의 국상에 진위 겸 진향사로 가서 조문하며, 동시에 정종의 왕위 승습을 승인받아 귀국했습니다.

이는 조선의 외교적 안정에 크게 기여한 중요한 성과였습니다.

1400

[두 번째 왕자의 난 지휘, 태종 즉위의 1등 공신으로]

제2차 왕자의 난 때도 이방원을 도와 박포 일당의 거병 계획을 미리 파악하고 회안대군 이방간과 박포를 체포, 유배시키는 데 성공하며 이방원의 권력 장악에 결정적 기여를 했습니다.

태종 즉위 후 진산부원군, 좌명공신 1등에 책록되며 최고 권력의 실세로 부상했습니다.

하륜은 태종의 최측근이자 권력의 실세로서, 태종의 아버지인 태조 이성계가 환궁할 때 이성계의 노기를 미리 예측하고 이방원에게 대비책을 제시하여 위기를 모면하게 하는 등 뛰어난 지략을 여러 차례 보여주었습니다.

1401

[조선 초기 국가 시스템 설계, 경제 개혁과 인재 양성에 앞장서다]

태종 즉위 직후, 왕권 강화를 위해 6조 직계제 도입을 주도하고 재상의 권한을 축소했습니다.

또한 저화 발행을 건의하여 화폐 유통을 도모하고, 좌주문생제 혁파, 호패법, 신문고 설치 등 조선 초기의 중요한 제도 개혁을 이끌었습니다.

그의 문하생인 윤회가 과거에 급제하자 적극적으로 후원했습니다.

1402

[최고 관직 좌정승 역임, 역사서 편찬과 대명 외교에 공헌]

문하좌정승에 올랐으며, 이첨과 함께 《동국사략》을 편수하는 등 역사서 편찬에 적극 참여했습니다.

또한 명나라 영락제 즉위를 축하하는 등극사로 가서 조선 왕조의 정식 승인을 표하는 고명인장과 태종의 책봉 고명을 받아오는 등 외교 관계 회복에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1408

[조선 최고위직 영의정부사에 오르다]

태종 8년에 영의정부사에 임명되며 조선의 최고위직에 올랐습니다.

이듬해에는 군정을 개정하고 영춘추관사로서 《태조실록》 편찬을 지휘하는 등 국정 전반에 걸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습니다.

1416

[태종이 극진히 신뢰한 책사, 향년 70세로 별세]

노환을 이유로 치사(관직에서 물러남)를 청했으나 태종은 만류하며 윤허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거듭 청하여 허락받고 진산부원군에 임명되어 물러났습니다.

태종의 명으로 조상들의 능침을 순찰하던 중 함길도 정평군 관아에서 향년 70세로 객사했습니다.

태종은 하륜의 치사를 허락하며 진주의 전세 100결을 하사했으나, 하륜은 이를 사사로이 쓰지 않고 동리 노인들을 위해 사용했으며, 교서를 모셔둘 '벽오당'을 짓고 태종의 친필 현판을 받았습니다. 그의 죽음 후 태종은 그를 자신의 '장자방'이라 칭하며 극진히 애도했고, 묘정에 배향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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