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종 (조선)
조선 국왕, 대한제국 추존황제, 세도정치, 천주교 박해
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1:06:48
- 조선 24대 국왕 8세 최연소 즉위로 순원왕후 수렴청정. - 안동 김씨와 풍양 조씨의 세도정치가 극에 달한 혼란기 통치. - 삼정의 문란 빈번한 자연 재해로 민생고 심화. - 척사윤음 발표 김대건 처형 등 천주교를 강력히 박해. - 23세에 후사 없이 승하 정조 직계 단절.
1827
[왕세손 이환의 탄생]
순조의 장남 효명세자와 세자빈 조씨(신정왕후) 사이에서 원손 이환(헌종)이 창경궁 경춘전에서 태어났어요.
조선의 미래를 책임질 귀한 생명이었죠.
1829
[왕세손 책봉 계획 발표]
순조가 왕명을 내려 다음 해에 왕손 이환을 왕세손으로 책봉하겠다고 천명했어요.
이는 어린 헌종의 미래 권력 승계를 미리 알리는 중요한 발표였습니다.
1830
[아버지 효명세자의 갑작스러운 승하]
헌종의 아버지인 효명세자가 갑작스럽게 승하했어요.
헌종은 아직 어린 나이였기에 이 죽음은 왕실에 큰 충격을 주었고, 헌종의 왕위 계승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조선 마지막 왕세손 책봉]
아버지 효명세자의 승하 4개월 후, 어린 이환이 창덕궁 인정전에서 왕세손으로 책봉되었습니다.
이는 정조 이후 71년 만의 일이었고, 헌종은 조선 역사상 마지막 왕세손이라는 특별한 기록을 남겼습니다.
1834
[8세 최연소 국왕 즉위와 순원왕후의 수렴청정]
할아버지 순조의 뒤를 이어 경희궁 숭정문에서 8살의 어린 나이로 즉위했습니다.
조선 국왕 중 가장 어린 나이로 즉위한 기록을 세웠으며, 이로 인해 할머니 순원왕후가 6년간 수렴청정을 시작했습니다.
1835
[풍양 조씨 조인영의 이조판서 임명]
수렴청정 중인 대왕대비 순원왕후가 헌종의 외조부 조만영의 아우인 조인영을 추천과 전형 없이 이조판서에 임명했어요.
이는 안동 김씨와 풍양 조씨의 세도정치가 본격화되는 신호탄이었습니다.
[세도정치 핵심 인물들의 요직 독점]
순원왕후의 오빠 김유근이 훈련대장으로, 조만영이 어영대장으로 임명되며 대왕대비와 왕대비 일족들이 중요 요직을 독점하기 시작했어요.
풍양 조씨의 권력 입문이 가속화되었죠.
1836
[대왕대비와 왕대비에게 존호 상존]
할머니 순원왕후에게 '명경' 존호를, 어머니 신정왕후에게 '효유' 존호를 올렸어요.
이는 왕실의 위계를 공고히 하고, 두 대비의 권위를 높이는 의례였습니다.
[남응중 모반 사건 발생 및 처형]
정조의 이복 동생 은언군의 손자를 추대하고 청주성을 점령하려던 남응중의 반란이 천기영의 고발로 발각되어 실패했어요.
역모자들은 일본 도피를 시도했지만 거절당하고 능지처참되었습니다.
1837
[안동 김씨 효현왕후 왕비 책봉]
안동 김씨 가문의 영흥부원군 김조근의 딸 효현왕후를 왕비로 책봉했어요.
이는 세도정치 시기 왕실 혼인이 권력 유지의 중요한 수단이었음을 보여줍니다.
1839
[천주교 기해박해 시작]
교황 그레고리오 16세가 조선대목구를 설정하고 서양 신부들이 입국하자 천주교 교세가 확산되기 시작했어요.
이에 보수적인 풍양 조씨 세력이 집권하면서, 순원왕후의 지시로 대대적인 천주교 탄압인 기해박해가 시작되었습니다.
[천주교 박해를 위한 우의정의 주청]
신정왕후의 측근인 우의정 이지연이 대왕대비에게 천주교 '사학'을 끝까지 파헤쳐 강하게 처벌할 것을 요청했습니다.
이는 기해박해의 직접적인 도화선이 되었습니다.
[기해박해의 정점, 대규모 천주교인 처형]
조선에 입국한 파리 외방전교회 소속 프랑스인 사제들(앵베르, 모방, 샤스탕)과 정하상, 유진길 등을 비롯해 119명의 천주교인들이 투옥되고 처형당했습니다.
오가작통법이 이웃간 연좌제로 변질되어 천주교도 색출에 사용되었으며, 앵베르 주교, 모방 신부, 샤스탕 신부 등 프랑스인 사제들과 정하상, 유진길 등을 포함한 총 119명의 천주교인들이 처형되었습니다.
[순원왕후의 천주교 척결 척사윤음 반포]
대왕대비 순원왕후가 한글로 '척사윤음'을 내려 백성들에게 천주교를 강력히 경고하고 멀리할 것을 지시했어요.
이는 기해박해의 강경한 분위기를 더욱 확산시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1841
[새로운 서양 선교사들의 조선 입국]
기해박해 이후 공석이 된 조선대목구에 장조제프 페레올 주교와 마리니콜라앙투안 다블뤼 신부 등이 김대건 신부와 함께 라파엘호를 타고 조선에 입국했어요.
이는 새로운 천주교 박해의 불씨가 됩니다.
1843
[왕비 효현왕후의 승하]
안동 김씨 출신의 정비 효현왕후가 승하했어요.
이는 헌종의 짧은 생애와 함께 안동 김씨 세도에도 영향을 미쳤을 사건입니다.
1844
[민진용 역모 사건]
몰락한 노론 출신 민진용이 이원덕 등과 함께 은언군의 손자 이원경(회평군)을 임금으로 추대하려 했으나 실패하여 능지처참되었습니다.
철종 즉위 후 관련 기록이 세초되어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게 되었죠.
[새로운 왕비 효정왕후 책봉]
효현왕후 승하 후, 남양 홍씨 가문의 익풍부원군 홍재룡의 딸 효정왕후를 새로운 왕비로 책봉했어요.
이때 헌종과 효정왕후의 가례 모습을 그린 <헌종가례진하도 병풍>은 보물로 지정되어 그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습니다.
1846
[조선 최초의 신부 김대건 처형 (병오박해)]
조선에 재입국한 김대건 신부가 선교 활동 중 체포되어 새남터에서 처형되었습니다.
이는 기해박해에 이은 대규모 천주교 박해인 병오박해의 대표적인 사건으로, 조선 천주교 역사에 큰 아픔을 남겼습니다.
김대건은 '조선 최초의 신부'라는 기록을 가지고 있습니다.
기해박해 이후 조선대목구에 새로 임명받은 장조제프 페레올 주교, 마리니콜라앙투안 다블뤼 신부와 함께 입국했던 조선 최초의 신부 김대건이 관헌들에게 체포되어 새남터에서 처형되었습니다.
1848
[유일한 혈육 옹주의 요절]
헌종과 숙의 김씨 사이에서 태어난 유일한 자녀인 옹주가 태어난 해에 요절했습니다.
헌종은 결국 후사 없이 승하하게 되는 비운을 맞았습니다.
1849
[23세 젊은 나이에 승하, 정조 직계 혈통 단절]
오시(오전 11시~오후 1시)에 창덕궁 중희당에서 23세의 젊은 나이로 승하했습니다.
후사를 남기지 못하면서 정조의 직계 자손이 단절되는 역사적 전환점이 되었고, 사도세자의 증손자인 철종이 왕위를 계승하게 됩니다.
1908
[대한제국에서 '성황제'로 추존]
대한제국 순종 때 '성황제'로 추존되며, 정식 시호는 '체건계극중정광대지성광덕홍운장화경문위무명인철효성황제'가 되었습니다.
이는 제국의 위상에 맞춰 왕실 조상들을 격상시킨 조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