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조 (조선)

조선 국왕, 군주, 작가, 정치인, 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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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10-07- 19: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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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조 (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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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제7대 국왕. 세종의 둘째 아들이자 문종의 친동생. 계유정난으로 김종서 황보인 등 권신을 숙청하고 조카 단종을 폐위시킨 뒤 즉위하여 왕세자를 거치지 않고 즉위한 최초의 군주이자 정변으로 집권한 기록을 남겼다. 6조 직계제와 직전법을 시행하며 강력한 왕권 강화를 추진했고 《경국대전》 《월인석보》 등 서적 편찬을 주도했다. 불교를 숭상했으나 사육신 숙청 등 가혹한 통치로 비판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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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7

[세조 탄생]

조선 태종의 셋째 왕자인 충녕대군(세종)과 경숙옹주 심씨(소헌왕후)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영특하여 아버지 세종과 형 문종에게 인정받았으며, 궁 밖에서 자라 민간의 삶을 이해하는 경험을 했다.

1428

[진평대군 봉작과 정희왕후와의 결혼]

세종의 아들 이유(李瑈)가 '진평대군'에 봉작되었다.

같은 해 10월, 당시 군기감 부정 윤번의 딸 윤씨(후일 정희왕후)와 결혼하여 왕실 내 지위를 확립했다.

이후 1433년 '함평대군', '진양대군'으로 차례로 개봉되었다.

1439

[정치 활동 시작 및 토지 제도 개혁 주도]

부왕 세종의 병환과 자신의 재능을 인정받아 정사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종친들을 관리하는 종부시 제조와 토지 제도 개혁을 담당하는 전제상정소 도제조를 역임하며 농지 분배 재개혁을 주관했다.

또한 《치평요람》, 《역대병요》 등 서적 편찬을 감독하고 훈민정음으로 불서를 번역하는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했다.

1445

[진양대군에서 수양대군으로 개봉]

진양대군이었던 이유가 '수양대군'으로 다시 개봉되었다.

이 군호는 훗날 그가 권력을 잡고 왕위에 오르기 전까지 가장 널리 알려진 그의 칭호가 된다.

1453

[조선 역사상 가장 극적인 정변, 계유정난 주도]

어린 조카 단종이 즉위하자, 김종서, 황보인 등 권신들이 황표정사를 통해 권력을 강화하는 것에 불만을 품었다.

수양대군은 한명회, 권람 등과 공모하여 안평대군을 비롯한 김종서, 황보인 등의 권신들을 주살하는 '계유정난'을 일으켰다.

이 사건으로 그는 영의정부사 겸 섭정이 되어 조선의 실질적인 권력을 완전히 장악하는 데 성공했다.

단종 즉위 후 김종서 등의 신권이 비대해지자, 수양대군은 1453년 10월 한명회, 권람 등과 병력을 동원하여 황보인, 김종서, 정분 등을 죽이고 아우 안평대군을 강화도로 유배 보냈다. 이후 병조판서, 이조판서 등을 겸하며 스스로 영의정부사 겸 섭정이 되어 조정을 장악했다. 이는 왕위를 향한 그의 야심을 드러낸 결정적인 행동이었다.

1455

[왕권 강화를 위한 6조 직계제 부활과 직전법 시행]

즉위 초 세조는 왕권 강화를 최우선 목표로 삼아 중앙 집권 체제를 확립했다.

그는 세종대의 의정부서사제를 폐지하고 태종이 실시했던 '6조 직계제'를 부활시켜 왕이 직접 6조 판서들의 정무를 결재하도록 했다.

또한 과전법을 수정하여 현직 관리에게만 토지를 지급하는 '직전법'을 시행하여 국가의 재정 기반을 강화했다.

세조는 왕이 직접 6조 판서들의 업무를 관장하는 6조 직계제를 통해 신하들의 권한을 대폭 축소하고 왕권을 강화했다. 예조 참판 하위지 등 일부 신하들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 제도를 강행했으며, 이는 왕권 중심의 강력한 통치를 지향하는 세조의 의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정책이었다.

[조카 단종을 폐위하고 조선 제7대 국왕으로 즉위]

계유정난으로 실권을 장악한 지 2년 만에 조카 단종으로부터 명목상 선위의 형식을 빌어 왕위를 넘겨받았다.

이로써 세조는 조선에서 최초로 왕세자를 거치지 않고 즉위한 임금이자, 정변을 일으켜 왕위에 오른 군주라는 기록적인 사실을 남겼다.

그의 즉위는 훗날 사림 세력의 오랫동안 비판과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세조는 단종을 강제적으로 폐위하고 조선의 새 왕으로 등극했다. 이로 인해 생육신과 사육신 등의 격렬한 반발이 발생했으며, 이후 단종 복위 운동을 저지하기 위한 대규모 숙청을 단행하게 된다.

1456

[단종 복위 운동 주도 세력 '사육신' 대숙청]

성삼문, 박팽년, 하위지, 이개, 유성원, 김문기 등 집현전 학사 출신 관료들이 단종 복위를 꾀하다 세조의 측근 김질의 밀고로 발각되었다.

세조는 이들을 비롯한 관련자 6백여 명의 남성 일족을 처형하고, 여성들은 공신의 노비로 삼는 대대적인 숙청을 감행했다.

단종 또한 '노산군'으로 강봉되어 영월로 유배되었고, 결국 죽음을 맞이했다.

이 사건으로 집현전도 폐지되었다.

사육신은 단종 복위를 위해 세조 3부자 제거 계획까지 세웠으나 김질의 밀고로 좌절되었다. 세조는 이들을 친국하며 회유를 시도했으나, 박팽년은 자신을 신하가 아닌 '거(巨)'라 칭하고 세조의 녹을 받지 않는 등 끝까지 저항했다. 이들의 죽음은 조선 시대 충절의 상징으로 기억되며, 관직을 버리고 초야에 묻힌 생육신도 등장하는 등 큰 파장을 일으켰다.

1457

[《경국대전》, 《동국통감》 등 국가 주요 서적 편찬 시작]

왕권을 강화하고 국가 체제를 정비하기 위해 법전인 《경국대전》, 역사서인 《동국통감》, 《국조보감》 등 방대한 서적 편찬 사업을 시작했다.

또한 백성들의 교화를 위해 《오륜록》, 《대명률강해》 등을 편찬하고, 《운회》를 한글로 번역하는 등 학문과 문화 발전에도 크게 기여했다.

세조는 비록 집현전을 폐지했지만, 국가 운영에 필수적인 법전과 역사서를 편찬하고 활판 인쇄술을 장려하여 서적 보급을 확대했다. 특히 자신의 친필로 《대불정여래밀인수증요의제보살만행수능엄경》을 간행하는 등 문화 사업에 적극적이었다.

[형수 현덕왕후 폐서인 및 동생 금성대군 처형]

아들 의경세자의 죽음과 단종 복위 운동에 형수 현덕왕후(문종비이자 단종의 생모)의 친정이 연루되자, 세조는 현덕왕후를 폐서인 시키고 능을 이장하는 조치를 취했다.

같은 해 9월, 동생 금성대군이 또다시 단종 복위 계획을 세우다 발각되자 그 또한 처형하는 등 왕실 내 반대 세력에 대한 숙청을 이어갔다.

현덕왕후 폐서인에 대해서는 야사에서 세조가 악몽을 꾼 후 현덕왕후의 원혼 때문이라 여겨 묘를 파헤쳤다고 전하기도 하나, 실록에는 친정의 역모 연좌로 인한 조치로 기록되어 있다. 금성대군의 죽음은 세조가 즉위 후에도 왕실 내 반대파를 철저히 제거했음을 보여준다.

1459

[《월인석보》 간행 및 불교 진흥 정책]

아버지 세종대왕과 장남 의경세자의 명복을 빌기 위해 《월인석보》를 간행했으며, 이후 1461년 간경도감을 신설하여 불경을 국역하고 《원각경》을 편찬하며 원각사를 창건했다.

그는 유교를 국교로 하는 조선에서 파격적으로 불교에 깊이 귀의하며 왕실 사찰 중수 및 창건을 지원하는 등 불교 융성 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했다.

말년에 악몽과 나병에 시달리며 불교에 더욱 심취했다. 불교는 왕실의 안녕을 비는 종교적 신앙으로서 필요하다고 보았으며, 유학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승려 신미를 왕사로 받들고 궁내에 불당을 짓는 등 호불 정책을 펼쳤다. 특히 금강산 사찰들에 매년 쌀과 소금을 지원하는 '세헌'을 실시하기도 했다.

1467

[함경도 이시애의 난 평정]

함경도 회령에서 이시애가 단종 폐위 등을 명분으로 대규모 반란을 일으키자, 조카 귀성군 준과 강순을 파견하여 이시애의 난을 신속하게 평정했다.

이는 세조의 강력한 중앙 통제력과 군사력을 다시 한번 과시한 사건이었다.

1468

[왕위 전위 후 승하, 파란만장한 삶의 마무리]

나병과 거듭된 악몽, 불면증에 시달리며 건강이 악화되자, 측근들에게 왕세자(예종)의 보필을 부탁하고 음력 9월 7일 왕세자에게 왕위를 물려주었다.

그리고 다음날인 음력 9월 8일, 수강궁 정전에서 향년 52세로 승하하며 파란만장한 생을 마감했다.

그의 능은 경기도 양주의 광릉이다.

세조는 자신의 죽음이 임박했음을 깨닫고 재위 14년 만에 아들 예종에게 왕위를 넘겼다. 그의 사후 명나라에서 '혜장'이라는 시호를 받았고, 묘호는 '세조'로 정해졌다. 일부 무속인들에 의해 신으로 숭배되기도 했으며, 복개당과 해인사 등에 그의 영정이 봉안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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