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제5공화국

대한민국, 정권, 공화국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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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1: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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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정권, 공화국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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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9년 12.12 군사반란과 1980년 5.17 쿠데타를 거쳐 전두환이 정권을 장악하며 탄생한 대한민국의 다섯 번째 공화국입니다. • 1981년부터 1988년까지 존속하며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무력 진압하는 등 강압적인 통치로 민주화 요구를 억압했습니다. • 7년 단임제 통금 해제 교복 자율화 등 유화 정책을 펴며 4공화국과 차별성을 부각하기도 했습니다. • 3저 호황으로 경제적 성과를 거두었으나 대기업 편중 및 인권 탄압 논란도 심화되었습니다. • 박종철 고문치사 이한열 최루탄 사망 등으로 민주화 요구가 증폭되어 6월 항쟁과 6.29 선언을 통해 막을 내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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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

[10.26 사건 및 신군부 등장]

박정희 대통령 사망 이후, 전두환, 노태우를 중심으로 하는 신군부 세력이 실권을 장악하기 시작한 사건입니다.

이는 제5공화국 성립의 배경이 되었습니다.

[12.12 군사 반란]

신군부 세력이 병력을 동원하여 군사권을 차지한 사건으로, 10.26 사건 이후의 혼란을 틈타 권력 장악을 가속화했습니다.

1980

[컬러 TV 방송 시작]

1980년부터 컬러 TV 방송이 시작되어 경제 성장의 상징적인 징표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K공작계획 실시]

보안사가 민주화 여론을 잠재우고 군부의 정치 참여를 정당화하기 위한 'K공작계획'을 실시했습니다.

[전두환, 중앙정보부 장악]

보안사령관 전두환이 중앙정보부장 서리가 되어 국내의 모든 정보 기관을 장악, 정권 장악의 기반을 다졌습니다.

[5.17 비상계엄 전국확대 및 광주 민주화 운동 진압]

신군부 세력이 '비상계엄 전국확대 조치'를 내리고, 이에 항거한 광주 민주화 운동을 무력으로 진압하며 정권을 장악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 걸린 쿠데타(약 5개월)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신군부는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를 설치하여 정권을 장악했습니다.

[전두환, 제11대 대통령 당선]

통일주체국민회의를 주체로 실시된 간선제에 따라 전두환이 제11대 대통령에 당선되었습니다.

[제1차 전두환 정부 출범]

전두환 대통령의 취임식과 함께 남덕우 국무총리 등 주요 장관들이 임명되며 제1차 전두환 정부가 공식 출범했습니다.

[제5공화국 헌법 공포]

임기 7년의 단임제 대통령제 등을 골자로 하는 제8차 헌법 개정이 이루어지고 제5공화국 헌법이 공포되었습니다.

1981

[주요 사회복지 관련 법안 제정]

전두환 정부는 노인복지법, 아동복지법, 장애인복지법 등 여러 사회복지 관련 법안을 제정하며 복지 제도의 기틀을 마련했습니다.

[레바논과 수교]

대한민국이 레바논과 수교를 맺으며 외교 관계를 확대했습니다.

[전두환, 제11대 대통령 취임 (제5공화국 공식 출범)]

대통령 선거인단에 의해 전두환이 대통령으로 선출되고 취임하면서 대한민국 제5공화국이 공식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제2차 전두환 정부 제1기 내각 출범]

제5공화국 대통령으로 당선된 전두환이 교통부 장관과 체신부 장관을 임명하며 제2차 전두환 정부 제1기 내각을 구성했습니다.

[노동부 및 정무 제1장관직 신설]

제2차 전두환 정부에서 노동부 장관과 정무 제1장관직이 신설되는 개각이 단행되었습니다.

[전두환 대통령 광복절 연설 (국권피탈 책임 발언)]

전두환 대통령이 광복절 기념식에서 한국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국권피탈에 한국의 책임이 일부 있었다는 발언을 해 일본 언론에서도 크게 보도되었습니다.

1982

[민족화합민주통일방안 제의]

전두환 정부는 정권 안정을 위해 북한에 비정치적, 비군사적 교류부터 점진적으로 하자는 '민족화합민주통일방안'을 제의했습니다.

역대 정권 중 처음으로 남북정상회담도 제의했습니다.

[제2차 전두환 정부 제3기 내각 단행]

경제 부처를 중심으로 하는 개각이 단행되어 제2차 전두환 정부의 제3기 내각이 구성되었습니다.

[부산 미국문화원 방화사건]

미국의 5.18 광주 민주화 운동 방조 의혹에 대한 반감이 형성되면서 부산 미국문화원 방화사건이 발생, 반미 운동의 시작을 알렸습니다.

[제2차 전두환 정부 제4기 내각 단행]

11개 부처 장관을 교체하는 대규모 개각이 단행되어 제2차 전두환 정부의 제4기 내각이 구성되었습니다.

[제2차 전두환 정부 제5기 내각 단행]

국무총리와 3개 부처 장관의 임명이 연이어지며 제2차 전두환 정부의 제5기 내각이 구성되었습니다.

[전두환 대통령 광복절 연설 (극일 강조)]

일본 정부의 역사 교과서 왜곡 문제로 반일 감정이 고조되던 시기, 전두환 대통령은 맹목적 반일보다 실력으로 일본을 이기는 '극일'주의를 강조했습니다.

1983

[파키스탄과 수교]

대한민국이 파키스탄과 수교를 맺으며 외교 관계를 확대했습니다.

[아일랜드와 수교]

대한민국이 아일랜드와 수교를 맺으며 서유럽과의 관계를 강화했습니다.

[광주 민주화 운동 3주기 및 김영삼 단식투쟁]

광주 민주화 운동 3주기를 맞아 전두환 정권의 야당 인사 탄압에 저항하는 의미에서 김영삼이 23일간 단식투쟁을 시도했습니다.

[아웅산 묘소 폭탄 테러 사건 (역대 최대 외교 참사)]

버마(현 미얀마)의 아웅산 묘소에서 북한 공작원에 의한 폭탄 테러가 발생, 서석준 부총리 등 17명의 대한민국 고위 인사가 사망하고 14명이 부상한 역대 최대 규모의 외교 참사로 기록되었습니다.

당시 전두환 대통령은 무력 보복 계획을 승인하지 않았으며, 10월 20일 특별담화에서 "최후의 인내이며, 다시 도발이 있을 경우 반드시 응징할 것이다"라고 발표했습니다. 이 사건으로 5공화국 정부의 대북정책이 경직되기도 했습니다.

[제2차 전두환 정부 제6기 내각 단행]

아웅산 묘소 테러 사건으로 생긴 정부 공백을 메우기 위해 대규모 개각이 발표되었습니다.

1984

[통일벼 권장 정책 공식 중단]

군사 쿠데타와 시민 학살로 정권을 잡은 전두환 정부가 민심을 달래기 위해 대량의 쌀을 수입했고, 이듬해부터 통일벼 계열에 대한 권장 정책이 사실상 중단된 후 1984년에 농민의 자유로운 품종 선택이 공식 허용되었습니다.

[브루나이와 수교]

대한민국이 브루나이와 수교를 맺으며 외교 관계를 확대했습니다.

[노인 지하철 무임승차 제도 도입 (최초)]

전두환 정부는 만 65세 이상 노인에게 지하철 무임승차 제도를 도입하여 사회복지 확충에 기여했습니다.

이는 대한민국 최초의 주요 복지 제도로 기록됩니다.

[북한, 남한 수재 물자 지원 제안]

남한에 홍수 피해가 발생하자 북한이 조선적십자회 이름으로 쌀 5만석, 시멘트 10만 톤 등 수재 물자 지원을 제안했고, 전두환 대통령은 아웅산 테러에도 불구하고 이를 전격 수용했습니다.

이후 남북 적십자 회담과 1985년 이산가족 고향방문, 예술공연단 교환 방문, 남북 최초 경제회담으로 이어지며 남북 관계 물꼬를 텄습니다.

1985

[기계모내기 TV 방송 등장]

농촌의 모내기 일손 돕기를 장려하던 과거와 달리, 1985년경부터 기계모내기 모습이 TV 방송에 등장하며 농업 기계화의 진전을 보여주었습니다.

[제12대 국회의원 총선거 및 신한민주당 돌풍]

전두환 대통령이 야당 돌풍 최소화를 위해 겨울로 투표일을 정했으나, 창당 한 달도 안된 신한민주당이 수도권 대도시에서 압승을 거두며 제1야당으로 급부상하는 '돌풍'을 일으켰습니다.

[제2차 전두환 정부 제7기 내각 단행]

총선거에서 신한민주당이 약진하자 쇄신 차원에서 12개 부처 장관을 경질하는 개각이 단행되었습니다.

[서울 미국문화원 점거 농성 사건]

부산 미문화원 방화사건 이후 반미 운동이 가속화되면서 학생들이 서울 미문화원 점거 농성을 벌였습니다.

[북한 허담 비밀특사 서울 방문 (남북정상회담 논의)]

전두환 대통령의 남북정상회담 제의에 따라 북한의 허담 비밀특사가 서울을 방문하여 전두환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논의를 타진했습니다.

[남북 이산가족 고향방문 및 예술공연단 교환]

북한의 수재 물자 지원 제안 수용 이후, 151명의 남북 이산가족이 판문점을 넘어 서울과 평양을 방문하며 재회의 기쁨을 나누었고, 예술공연단 교환 방문도 이루어졌습니다.

이는 남북관계 개선의 중요한 전환점입니다.

1986

[현대자동차 포니, 엑셀 미국 수출 시작]

현대자동차의 포니와 엑셀이 미국으로 수출되기 시작하면서 대한민국이 자동차 산업에서 선진국과 어깨를 겨루게 되는 첫 신호탄을 쏘아 올렸습니다.

[수입자유화율 91.5% 달성]

선진국의 시장 개방 압력이 높아지면서 공산품뿐 아니라 농축산물까지 수입 자유화 폭이 확대되어 1986년 기준 수입자유화율이 91.5%에 도달했습니다.

이는 대기업에 유리했으나 농촌 경제에는 타격을 주었습니다.

[제2차 전두환 정부 제8기 내각 단행]

8개 부처 장관이 교체되는 개각이 단행되어 제2차 전두환 정부의 제8기 내각이 구성되었습니다.

[제2차 전두환 정부 제9기 내각 단행]

민정당의 당직 개편에 이어 10개 부처 장관을 새로 임명하는 개각이 단행되어 제2차 전두환 정부의 제9기 내각이 구성되었습니다.

[이민우 구상 발표]

신한민주당 총재 이민우가 전두환 정권이 민주화 조치를 먼저 단행할 경우 내각제 개헌을 수용할 수 있다는 '이민우 구상'을 발표, 야권 내분으로 이어졌습니다.

이로 인해 양김(김영삼, 김대중) 중심의 대통령 직선제 개헌파와 이철승 등의 내각제 개헌파가 반목하며 신한민주당에서 탈당하여 통일민주당이 창당되었습니다.

1987

[부탄과 수교]

대한민국이 부탄과 수교를 맺으며 외교 관계를 확대했습니다.

[1인당 GNP 3천 달러 돌파 (경제 성장)]

수출 호조에 힘입어 국민총생산이 급속히 성장하여 매년 평균 성장률이 10% 내외를 유지했으며, 1987년 기준 1인당 GNP가 3천 달러를 넘어서며 중진국에서 선진국으로 넘어가는 문턱에 서게 되었습니다.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민주화 운동 촉발)]

경찰의 강압수사 과정에서 서울대학교 학생 박종철이 고문으로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 이는 6월 항쟁을 촉발하는 주요 계기가 되었습니다.

[형제복지원 압수 수색 및 전두환 친필 서신 발견]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으로 시끄럽던 시기, 검찰이 부랑아 수용소인 부산 형제복지원 원장실을 압수 수색하던 중 전두환 대통령의 친필 서신이 발견되어 충격을 주었습니다.

서신에는 거리의 부랑아를 소탕하라는 지시사항이 담겨 있었으며, 당시 담당 검사는 형제복지원의 운영 주체가 전두환 정권이었다고 증언했습니다. 이 사건은 5공화국의 인권유린 실태를 드러냈습니다.

[제2차 전두환 정부 제10기 내각 단행]

국무총리와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 등 3개 부처 장관을 교체하는 중규모 개각이 시행되었습니다.

[이한열 최루탄 피격 (6월 항쟁 심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으로 촉발된 학생 시위 중, 연세대학교 학생 이한열이 경찰이 쏜 최루탄에 맞아 사경을 헤매게 되면서 시민들의 분노가 폭발, 6월 항쟁이 더욱 격화되었습니다.

[6월 민주 항쟁 대규모 시작 및 노태우 대통령 후보 선출]

4.13 호헌조치에 반대하여 각계 단체가 총결집된 '민주화추진 국민운동본부'가 '6.10 민주화 장정대회'를 개최하며 전국적인 6월 항쟁이 시작되었습니다.

같은 날 노태우는 민주정의당 대통령 후보로 선출되었습니다.

[6.29 선언 발표 (제5공화국 몰락의 시작)]

계속되는 6월 항쟁으로 최대 위기를 맞은 전두환 정권은 민주정의당 대통령 후보 노태우를 내세워 '시국수습방안', 즉 6.29 선언을 발표했습니다.

이는 제5공화국 헌법 개정을 통한 대통령 직선제 도입의 약속으로, 사실상 5공화국 몰락의 신호탄이 되었습니다.

[노태우, 제12대 대통령 취임]

6.29 선언 발표 이후 노태우가 제12대 대통령으로 취임하며 정권 이양의 절차를 밟기 시작했습니다.

[이한열 사망]

6월 9일 최루탄에 맞아 사경을 헤매던 이한열이 결국 사망하면서, 민주화를 향한 시민들의 염원은 더욱 뜨겁게 타올랐습니다.

[제2차 전두환 정부 제11기 내각 단행]

6.29 민주화 선언으로 민정당 총재직에서 물러난 전두환이 국무총리와 8개 부처 장관을 교체하는 마지막 개각을 단행했습니다.

[대한항공 858편 폭파 사건]

북한 공작원 김승일과 김현희에 의해 대한항공 858편이 폭파되는 대규모 테러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이는 1988 서울 올림픽 방해를 목적으로 한 북한의 대민 테러로 강력히 규탄받았습니다.

[제13대 대통령 선거 (국민 직접 선거 재개)]

1971년 이후 16년 만에 국민에 의한 직접선거 형태의 대통령 선거가 치러졌습니다.

민주화 세력의 분열 속에서 5공 주역이었던 노태우가 제13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습니다.

1988

[제5공화국 종식 및 노태우 대통령 취임]

국민 직접 선거로 선출된 노태우가 제13대 대통령으로 재취임하면서 대한민국 제5공화국은 공식적으로 막을 내리고 제6공화국이 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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