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제3공화국
대한민국, 공화국, 헌정 체제, 박정희 정부
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1:06:26
5.16 군사정변 이후 박정희 대통령의 직접 선거로 출범했습니다. 강력한 경제 개발 5개년 계획 추진과 사회간접자본 확충으로 급속한 산업화를 달성했습니다. 반공주의와 기능 양성 교육을 중시했으나 재벌 중심의 자본 집중 심화 민주주의 억압 노동 운동 확산 등의 문제점도 나타났습니다. 해외 광부 파견 베트남 전쟁 파병 한일 국교 정상화 등 대외 정책을 적극적으로 펼쳤습니다. 1972년 10월 유신 선포로 막을 내렸습니다.
- 5.16 군사정변 발생
- 서독에 광부 1진 파견, 해외 기술 근로자 파견 시작
- 제3공화국 헌법, 국민 투표로 공포 및 시행
- 박정희, 제5대 대통령으로 직접 선출
- 대한민국 제3공화국 정식 출범
- 대한민국 최초 국군 해외 파병 (베트남 전쟁)
- 박정희 대통령, 한국 국가원수 최초 유럽 방문 (서독)
- 박정희 대통령, 최초로 미국 공식 방문
- 6.3 학생운동 발생, 한일협정 반대 시위 격화
- 한일기본조약 조인, 국교 정상화 합의
- 한일기본조약 비준서 교환, 공식 수교
- 아시아 태평양 이사회 (ASPAC) 창설 주도
- 박정희 대통령, 최초로 필리핀 방문
- 박정희, 제6대 대통령으로 재선 성공
- 새마을 운동 제창 및 시작
- 경부고속국도 건설 착공
- 국민교육헌장 제정 및 반포
- 향토 예비군 창설
- 중학교 입시시험 폐지 등 입시 개혁안 발표
- 삼선개헌, 국민 투표로 통과
- 경부고속국도 완전 개통
- 수출 10억 달러 달성, 경제 성장의 쾌거
- 새마을 운동 제창 및 시작
- 박정희, 제7대 대통령으로 다시 당선
- 비적성 공산권 국가와의 통상 허용, 할슈타인 원칙 폐지
- 전국 최초 민방공훈련 실시
- 대연각호텔 대형 화재 발생
- 녹색혁명 추진 및 통일벼 개발
- 7.4 남북 공동 성명 발표, 남북 통일 원칙 합의
- 8.3 긴급경제조치 발표
- 10월 유신 선포로 제3공화국 종료
- 쌀 국내 완전 자급자족 달성
1961
[서유럽 국가들과 수교 확대 (벨기에, 그리스, 네덜란드, 포르투갈)]
대한민국이 벨기에, 그리스, 네덜란드, 포르투갈 등 서유럽 국가들과 수교를 맺으며 외교 관계를 확대했습니다.
이는 서구 제국과의 우호 관계를 강화하고 경제 협력을 모색하기 위한 다변 외교의 일환이었습니다.
[한일회담 재개 추진]
제1차 경제개발계획의 부진을 겪던 대한민국 정부가 경제개발 자금 확보와 미국의 압력으로 일본과의 오랜 회담을 다시 본격적으로 추진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한일 국교 정상화의 물꼬를 트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5.16 군사정변 발생]
군사 세력이 정권을 장악하여 대한민국의 정치 지형을 뒤흔든 사건입니다.
이는 제2공화국을 무너뜨리고 군정 시대를 열었으며, 이후 제3공화국의 출범으로 이어지는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한독 차관협정 체결]
대한민국과 서독 간에 '차관협정'이 체결되었습니다.
이는 경제 개발에 필요한 자금 확보를 위한 중요한 조치로, 이후 독일과의 경제 협력이 심화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서독에 광부 1진 파견, 해외 기술 근로자 파견 시작]
대한민국 정부가 서독에 광부 1진 123명을 파견하며 해외 기술 근로자 파견 사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외화 획득과 국내 실업 문제 해소에 기여하며 '살아있는 천사'로 불릴 만큼 성공적인 해외 진출 모델이 되었습니다.
이 파견 사업은 1960년 여름 제2공화국 정부의 백영훈 대표단이 서독 경제부 노동국장과 만나 3천만 달러 차관을 빌리는 조건으로 광부 5천 명, 간호사 2천 명 파견에 합의한 것이 시작이었습니다.
1962
[중동 국가들과 수교 확대 (이란, 요르단, 이스라엘, 사우디)]
대한민국이 이란, 요르단, 이스라엘, 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의 주요 국가들과 수교를 맺으며 외교 지평을 넓혔습니다.
이는 경제 협력 및 국제적 지위 강화를 위한 다변 외교 노력의 일환이었습니다.
[서유럽 국가들과 수교 확대 (아이슬란드, 스위스, 룩셈부르크)]
대한민국이 아이슬란드, 스위스, 룩셈부르크 등 서유럽 국가들과 수교를 맺으며 외교 지평을 넓혔습니다.
이는 자유 우방과의 관계 증진을 위한 지속적인 노력이었습니다.
[제1차 의무교육시설확충 5개년 계획 추진]
교육 환경 개선을 위해 '제1차 의무교육시설확충 5개년 계획'이 추진되었습니다.
이는 초등 의무 교육의 질을 높이고 교육 기회를 확대하기 위한 국가적 노력이었습니다.
[한독 경제협력의정서 체결]
대한민국과 서독 간에 '경제협력의정서'가 체결되었습니다.
이는 양국 간의 경제 협력을 더욱 공고히 하고, 한국의 경제 발전에 필요한 지원을 확대하기 위한 노력이었습니다.
[해양경찰 발족]
대한민국의 해양 안보와 치안을 담당할 '해양경찰'이 공식 발족했습니다.
이는 해양 주권 수호와 해상 범죄 예방을 위한 국가 방위력 강화의 일환이었습니다.
[제3공화국 헌법, 국민 투표로 공포 및 시행]
5.16 군사정변 이후 새로운 헌법이 국민 투표를 통해 공포되고 시행되었습니다.
이 헌법은 대한민국의 세 번째 공화 헌정 체제인 제3공화국의 법적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1963
[유럽 국가들과 수교 확대 (오스트리아, 바티칸 시국)]
대한민국이 오스트리아와 바티칸 시국과 수교를 맺으며 유럽 지역과의 외교 관계를 더욱 강화했습니다.
이는 국제 사회에서의 대한민국의 입지를 넓히는 데 기여했습니다.
[한독 경제고문단 설치 협정 체결]
대한민국과 서독 간에 '경제고문단 설치에 관한 협정'이 체결되었습니다.
이는 독일의 경제 개발 경험과 기술을 한국에 전수받기 위한 구체적인 협력 체계를 마련한 것입니다.
[근로자의 날 법정 공휴일 지정 법률 제정]
근로자의 권익과 노동의 가치를 존중하기 위한 '근로자의 날 제정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었습니다.
이는 대한민국 근로자들에게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중요한 법적 조치였습니다.
[사립학교법 공포]
사립학교 운영의 기준을 제시하는 '사립학교법'이 공포되었습니다.
이는 사학의 건전한 발전과 교육의 공공성 확보를 위한 법적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국사교육 통일방안 선포]
국민들에게 통일된 역사 인식을 심어주기 위한 '국사교육 통일방안'이 선포되었습니다.
이는 국가 이념과 정체성 확립에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박정희, 제5대 대통령으로 직접 선출]
국민의 직접 선거로 치러진 제5대 대통령 선거에서 박정희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습니다.
이는 5.16 군사정변의 주역이 민주적인 절차를 통해 국가의 수장이 되는 중요한 사건이었습니다.
[대한민국 제3공화국 정식 출범]
국민 투표로 제정된 헌법과 직접 선거로 선출된 대통령을 기반으로 대한민국 제3공화국이 공식적으로 문을 열었습니다.
이는 대한민국의 세 번째 공화정 시대를 알리는 역사적인 순간이었습니다.
1964
[대한민국 최초 국군 해외 파병 (베트남 전쟁)]
대한민국이 미국의 요청에 따라 베트남 전쟁에 군대를 파병했습니다.
이는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의 국군 해외 파병'으로 기록되었으며, 외화 획득과 군 현대화에 기여했으나, 수많은 인명 피해와 고엽제 문제 등 논란을 낳기도 했습니다.
1965년부터 휴전협정이 조인된 1973년까지 파병이 이어졌으며, 후방지원부대, 맹호부대, 청룡부대, 백마부대 등 총 31만 2,853명의 병력이 파견되었습니다.
[시도 단위 교육자치제 실시]
교육의 민주성과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시도 단위 '교육자치제'가 실시되어 교육행정권이 시도 교육청에 위임되었습니다.
이는 지역 특성을 반영한 교육 정책 수립의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식량증산 7개년 계획 발표]
식량 자급을 목표로 하는 '식량증산 7개년 계획'이 발표되었습니다.
이 계획은 이듬해부터 본격적으로 시행되어 식량 생산량 증대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프랑스와 팔당 수력발전 차관계약 조인]
팔당 수력발전소 건설을 위한 프랑스와의 차관계약이 공식적으로 조인되었습니다.
이는 한국의 에너지 자립과 산업 발전을 위한 중요한 인프라 구축에 해외 자본과 기술이 활용된 사례입니다.
[박정희 대통령, 한국 국가원수 최초 유럽 방문 (서독)]
박정희 대통령이 서독 대통령의 초청으로 독일을 공식 방문했습니다.
이는 대한민국 국가원수로서 '최초의 유럽 방문'으로, 루트비히 에르하르트 수상과의 면담에서 라인강의 기적 사례와 함께 경제 개발에 대한 중요한 조언과 지원을 약속받았습니다.
[한독 경제협력협정 체결, 대규모 차관 확보]
박정희 대통령의 독일 방문 중 '한독 경제협력협정'이 체결되어, 1억 5,900만 마르크 규모의 대규모 차관을 공여받았습니다.
이는 대한민국의 경제 개발을 위한 중요한 재정적 기반이 되었습니다.
1965
[초음속 전투기 도입, 공군 전력 강화]
공군 전력 강화를 위해 '초음속 전투기'가 도입되었습니다.
이는 자주국방 정책의 일환으로, 현대적인 공군력을 구축하는 데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 최초로 미국 공식 방문]
박정희 대통령이 린든 존슨 미국 대통령의 초청으로 미국을 공식 방문했습니다.
이는 대한민국 국가원수로서 '최초의 미국 방문'으로, 양국 관계의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출발 전 김포공항에서 자주와 자립을 강조했으며, 5월 17일 한미정상회담, 5월 18일 미국 순방, 5월 22일 피츠버그 철강회사 방문 및 케이프 케네디 우주기지 로켓 발사 시험 참관 등의 일정을 소화했습니다. 특히 피츠버그 방문은 종합제철공장 건설에 대한 그의 열망을 보여주었습니다.
[6.3 학생운동 발생, 한일협정 반대 시위 격화]
한일 국교 정상화 추진에 반대하는 학생들과 야당의 '6.3 학생운동'이 격렬하게 일어났습니다.
'굴욕외교'를 주장하며 시내 곳곳에서 시위대와 경찰, 군인 간의 충돌이 발생했고, 정부는 비상계엄령과 휴교령을 발표하며 강경 진압에 나섰습니다.
이 운동으로 김종필 공화당 의장이 사임하는 등 큰 파장을 불러왔습니다.
[한일기본조약 조인, 국교 정상화 합의]
한국과 일본 양국 간의 국교관계를 정상화하는 '한일기본조약'이 조인되었습니다.
이는 1951년부터 이어져 온 14년간의 지루한 회담 끝에 이루어진 것으로, 양국 관계의 새로운 장을 열었습니다.
이 조약을 통해 '재산과 청구권에 관한 문제 해결과 경제협력' 협정 등이 함께 체결되어 일본으로부터 대일 청구권 자금을 받게 되었습니다.
[한일기본조약 비준서 교환, 공식 수교]
한일기본조약의 비준서가 교환됨으로써 대한민국과 일본은 공식적으로 수교 관계를 맺게 되었습니다.
이로써 양국 대사가 교차 임명되고 일본 장관급 인사의 한국 방문이 이루어지는 등 관계가 본격화되었습니다.
1966
[박정희 대통령, 말레이시아 공식 방문]
박정희 대통령이 말레이시아를 공식 방문하여 이스마일 나시루딘 국왕 및 툰쿠 압둘 라만 총리 등과 회담을 가졌습니다.
이는 동남아시아 국가들과의 관계를 강화하고 경제 협력을 모색하기 위한 중요한 외교 활동이었습니다.
[아시아 태평양 이사회 (ASPAC) 창설 주도]
대한민국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협력을 강화하기 위해 '아시아 태평양 이사회(ASPAC)' 창설을 주도했습니다.
서울에서 제1차 각료회의를 개최하여 한국, 호주, 대만, 일본 등 9개국을 회원국으로 하는 지역 협력 기구를 출범시켰습니다.
이는 한국 외교의 다변화와 지역 안보 협력의 초석을 다지는 중요한 노력이었습니다.
[김두한 국회의원, 국회 오물투척사건 발생]
한국비료 사카린 밀수 사건과 관련한 대정부 질문 중, 김두한 국회의원이 국무위원들에게 인분을 투척하는 초유의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이 사건은 당시 정치권의 혼란상과 사회적 분노를 상징적으로 보여주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 최초로 필리핀 방문]
박정희 대통령이 한국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필리핀을 방문했습니다.
이는 아시아 태평양 지역 내 우호 관계를 다지고 지역 안보 협력을 강화하기 위한 중요한 외교적 행보였습니다.
1967
[박정희, 제6대 대통령으로 재선 성공]
박정희 대통령이 1967년 대통령 선거에서 다시 당선되며 제6대 대통령으로 취임했습니다.
이는 그의 강력한 리더십이 계속될 것임을 보여주었습니다.
[제2차 의무교육시설확충 5개년 계획 추진]
제1차 계획에 이어 '제2차 의무교육시설확충 5개년 계획'이 추진되었습니다.
이는 의무 교육의 확대와 교육 환경 개선을 위한 정부의 지속적인 노력이었습니다.
[하인리히 뤼브케 서독 대통령 방한]
하인리히 뤼브케 서독 대통령이 박정희 대통령의 초청으로 대한민국을 방문했습니다.
이는 양국 간의 굳건한 우호 관계와 경제 협력을 확인하는 자리였으며, 한국의 제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지원 등을 약속했습니다.
[제7대 국회의원 선거 실시]
전국적으로 제7대 국회의원 선거가 실시되어, 소선거구제를 통해 131명의 지역구 의원과 정당 득표율에 따라 44명의 전국구 의원이 선출되었습니다.
총 175명의 국회의원이 구성되며 제3공화국의 의회 구성을 확립했습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창립]
농수산물 유통 및 개발을 전담하는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가 창립되었습니다.
이는 농어촌 근대화와 식량 생산 증대에 기여하기 위한 정부의 노력의 일환이었습니다.
1968
[새마을 운동 제창 및 시작]
전국의 농어촌을 현대화하고 주민들의 자조정신을 고취하기 위한 '새마을 운동'이 제창되고 시작되었습니다.
'근면, 자조, 협동'을 기치로 낙후된 농촌의 생활 환경 개선과 소득 증대에 크게 기여한 국가적인 운동으로 평가됩니다.
[경부고속국도 건설 착공]
대한민국 경제 발전에 중요한 축이 될 '경부고속국도' 건설이 시작되었습니다.
이는 전 국토의 일일 생활권 시대를 여는 대규모 사회간접자본 확충 사업의 시작을 알리는 것이었습니다.
[국민교육헌장 제정 및 반포]
새로운 시대에 필요한 바람직한 한국인상을 제시하고 '국적 있는 교육'을 강조하기 위한 '국민교육헌장'이 제정되어 반포되었습니다.
이는 당시 교육의 방향을 제시하는 핵심적인 문서였으며, 국민 교육의 지침이 되었습니다.
[기동타격대 창설]
국가 안보 강화를 위해 '기동타격대'가 창설되었습니다.
이는 비상 상황 발생 시 신속하고 효율적인 대응을 목표로 한 전력 증강 조치였습니다.
[향토 예비군 창설]
북한의 위협에 대비하고 자주국방 태세를 강화하기 위해 '향토 예비군'이 창설되었습니다.
이는 전 국민의 안보 의식을 고취하고 국토 방위 역량을 강화하는 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중학교 입시시험 폐지 등 입시 개혁안 발표]
과열된 입시 경쟁을 해소하고 교육의 정상화를 위해 '중학교 입시시험 폐지'를 포함한 입시 개혁안이 발표되었습니다.
이는 교육 제도의 큰 변화를 예고하는 것이었습니다.
[대학교 입시 예비고사제 도입]
대학교 입시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예비고사제'를 1969년부터 실시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이는 대입 전형에 새로운 변화를 가져온 제도였습니다.
1969
[삼선개헌, 국민 투표로 통과]
박정희 대통령의 3선 연임을 가능하게 하는 제6차 개헌안이 국민 투표를 통해 통과되었습니다.
이는 박정희 장기 집권의 기반을 마련한 중요한 정치적 사건입니다.
[고교생 및 대학생 군사 교련 훈련 시범 실시]
7개 시군의 고등학생과 대학생을 대상으로 군사 교련 훈련이 시범적으로 실시되었습니다.
이는 학생들의 안보 의식을 높이고 비상시 국가 동원 능력을 확보하기 위한 정책이었습니다.
[농업기계화 8개년 계획 확정]
농업 생산성 향상을 위한 '농업기계화 8개년 계획'이 확정되었습니다.
이는 농촌 근대화와 식량 증산을 위한 정부의 강력한 의지를 보여주는 정책이었습니다.
[대기업 내 이공계 실업학교 부설 지시]
공장 근로자들의 기술 교육과 인력 양성을 위해 금성사 등 7개 대기업체에 회사 내 이공계 실업학교 부설을 지시했습니다.
이는 산업 인력 양성을 위한 실용적인 교육 정책이었습니다.
[농어촌근대화촉진법 승인]
농어촌의 현대화와 발전을 촉진하기 위한 '농어촌근대화촉진법'이 승인되었습니다.
이는 낙후된 농어촌의 생활 개선과 생산성 향상을 위한 법적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1970
[경부고속국도 완전 개통]
1968년 착공된 경부고속국도가 2년 만에 완전 개통되었습니다.
이 고속도로는 대한민국 산업 발전을 촉진하고, 전국을 일일 생활권으로 연결하며 물류 혁명을 가져온 '경제 대동맥'으로 평가받습니다.
[수출 10억 달러 달성, 경제 성장의 쾌거]
대한민국이 수출액 10억 달러를 달성하는 기념비적인 기록을 세웠습니다.
이는 경공업 위주의 수출 주도형 경제 성장 전략이 성공적으로 추진되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지표로, '한강의 기적'을 상징하는 쾌거였습니다.
[한독 광부협정 체결]
대한민국과 서독 간에 '광부협정'이 체결되어 한국 광부들의 서독 파견을 위한 법적 기반이 마련되었습니다.
이는 양국 간 인적 교류와 경제 협력을 더욱 활성화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장기종합교육계획시안 마련 및 발표]
대한민국 교육의 미래를 위한 '장기종합교육계획시안'이 마련되고 발표되었습니다.
이 안에는 1986년까지 의무교육을 단계적으로 확대하고, 의무교육 기간을 9년으로 연장하며, 교육세를 신설하는 등의 내용이 포함되어 교육 시스템의 큰 변화를 예고했습니다.
[새마을 운동 제창 및 시작]
전국의 농어촌을 현대화하고 주민들의 자조정신을 고취하기 위한 '새마을 운동'이 제창되고 시작되었습니다.
'근면, 자조, 협동'을 기치로 낙후된 농촌의 생활 환경 개선과 소득 증대에 크게 기여한 국가적인 운동으로 평가됩니다.
[한독 문화협정 체결]
대한민국과 서독 간에 '문화협정'이 체결되었습니다.
이는 양국 간의 문화 교류를 증진하고 상호 이해를 높이는 데 기여할 중요한 협정이었습니다.
[관세청 개청]
수출입 관련 업무를 총괄하는 관세청이 새롭게 문을 열었습니다.
이는 늘어나는 무역 규모에 발맞춰 효율적인 관세 행정을 구축하고 국가 재정 수입을 확보하기 위한 조치였습니다.
1971
[박정희, 제7대 대통령으로 다시 당선]
박정희 대통령이 1971년 대통령 선거에서 김대중 후보를 꺾고 다시 대통령에 당선되었습니다.
이로써 그의 장기 집권이 더욱 확고해졌습니다.
[비적성 공산권 국가와의 통상 허용, 할슈타인 원칙 폐지]
박정희 대통령이 비적성 공산국가와의 통상 관계를 허용하겠다는 방침을 선언하고, 국교 수립의 기본 원칙이던 할슈타인 원칙을 전면 폐지했습니다.
이는 국제적 데탕트 분위기 속에서 다변화된 외교 정책을 추구하려는 대한민국의 중요한 전환점이었습니다.
[아르헨티나 해외 농업 투자 시도]
박정희 정부가 국가 예산을 들여 아르헨티나에 광대한 토지를 구입하고 국민 일부를 이주시켜 농사를 짓도록 했습니다.
이는 해외 농업 투자를 통한 식량 자원 확보를 목표로 했으나, 기후 부적응과 황무지 문제 등으로 초기에는 성공적이지 못했습니다.
초기 실패에도 불구하고, 농업에 적합했던 '산 하비에르' 지역의 땅 소유권은 나중에 이주 농민들에게 이전되어 현재까지 아르헨티나와의 돈독한 관계를 이어가는 기반이 되었습니다.
[주한미군 지상군 일부 병력 철수]
닉슨 행정부의 정책에 따라 주한미군 지상군 1개 사단 병력 약 2만 명이 철수했습니다.
이는 한국군의 현대화를 지원하는 조건으로 이루어졌으며, 한국의 자주국방 역량 강화에 대한 압박으로 작용했습니다.
[내수용 생산업체 수출 의무화 지시]
내수 시장을 주력으로 하던 생산업체들에게도 수출을 의무화하라는 지시가 내려졌습니다.
이는 국가 수출 증대와 외화 획득을 극대화하기 위한 정부의 강력한 의지를 반영한 조치였습니다.
[전국 최초 민방공훈련 실시]
전국적으로 '최초의 민방공훈련'이 실시되었습니다.
이는 비상 상황 발생 시 국민들의 안전을 확보하고 국가 방위 태세를 점검하기 위한 중요한 훈련이었습니다.
[대연각호텔 대형 화재 발생]
서울 대연각호텔에서 대형 화재가 발생하여 167명의 사망자가 발생하는 참사가 일어났습니다.
이는 당시 대한민국에서 발생한 '최악의 화재 사고' 중 하나로 기록되었습니다.
1972
[제3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 및 인력개발 계획 실시]
대한민국의 지속적인 경제 성장을 위한 '제3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같은 해 '제3차 인력개발 5개년 계획'도 확정되어 산업 구조 고도화에 필요한 인재 양성에 집중했습니다.
[녹색혁명 추진 및 통일벼 개발]
식량 자급을 위한 '녹색혁명'이 추진되었고, 이의 일환으로 다수확 품종인 '통일벼'가 개발되었습니다.
통일벼는 대한민국 쌀 생산량 증대에 혁혁한 공을 세워 1976년 쌀 완전 자급자족을 달성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7.4 남북 공동 성명 발표, 남북 통일 원칙 합의]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로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이 북한을 방문하여 김일성 주석과 만나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의 3대 통일 원칙을 합의하고 '7.4 남북 공동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이는 분단 이후 '최초로 남북한 당국'이 통일 문제를 논의하고 합의한 역사적인 사건으로, 국제적 데탕트 분위기 속에서 이루어졌습니다.
[8.3 긴급경제조치 발표]
박정희 정부가 '8.3 긴급경제조치'를 발표하며 기업 사채 동결 등 경제 전반에 걸친 강력한 긴급 명령을 내렸습니다.
이는 기업의 부채 부담을 완화하고 경제 안정을 도모하기 위한 비상 조치였습니다.
[10월 유신 선포로 제3공화국 종료]
박정희 대통령이 헌법을 개정하여 유신체제를 선포하면서 제3공화국은 막을 내렸습니다.
이로써 대한민국은 새로운 정치 체제인 유신 시대로 진입하게 되었습니다.
1973
[대덕연구단지 조성사업 추진 시작]
과학 기술 교육 진흥을 목적으로 '대덕연구단지' 조성사업이 추진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대한민국의 과학 기술 발전을 위한 장기적인 투자의 시작을 알리는 것이었습니다.
1976
[쌀 국내 완전 자급자족 달성]
통일벼 개발을 통한 '녹색혁명'의 성공으로, 대한민국은 쌀 국내 자체 생산 및 완전 자급자족을 달성했습니다.
이는 만성적인 식량 부족 문제를 해결하고 국가 경제 안정에 크게 기여한 역사적인 성과였습니다.
[국비 장학생 선발 유학 제도 신설]
우수 인재 양성과 해외 선진 기술 습득을 위해 '국비 장학생 선발 유학 제도'가 새롭게 마련되었습니다.
이는 대한민국의 미래 발전을 위한 인재 투자에 중요한 발걸음이었습니다.
[공단 근로자 위한 야간중학 개설 지시]
영세 기업체들이 밀집한 공단 근로자들의 교육 기회 확대를 위해 '야간중학 개설'이 지시되었습니다.
이는 노동자들의 학력 향상과 삶의 질 개선에 기여하기 위한 정책이었습니다.
1978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설립]
한국학 및 한국문화 연구의 본산을 조성하기 위해 '한국정신문화연구원'이 설립되었습니다.
이는 대한민국 고유의 정신문화와 정체성 확립에 기여하기 위한 국가적 노력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