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당

조선 정치, 정치 체제, 붕당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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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1: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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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정치, 정치 체제, 붕당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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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이후 학문적 유대를 기반으로 한 양반 정치 집단입니다. 공론에 입각한 상호 비판과 견제를 통해 정치 균형을 유지하며 외척과 공신 세력의 횡포를 견제하는 긍정적 기능을 수행하기도 했습니다. 현대 정당 정치와 유사성을 지니며 식민사관에 의해 당쟁으로 왜곡된 시각과 달리 순기능적 측면이 부각되는 독특한 정치 운영 형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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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75

[동서분당 발생: 붕당정치의 시작]

이조전랑직 임명 문제를 두고 김효원과 심의겸이 대립하면서 사림파가 서울 동쪽에 살던 김효원 계열의 '동인'과 서쪽에 살던 심의겸 계열의 '서인'으로 분열되었습니다.

이를 '동서분당'이라 하며, 조선의 본격적인 붕당정치가 시작된 세계 최초의 사건입니다.

이조전랑은 비록 5~6품의 낮은 직위였으나, 삼사의 공론을 수렴하고 후임자를 천거할 수 있어 권력 경쟁의 핵심 요직이었습니다.

붕당 시작의 근본 원인은 훈구 정치 청산과 국정 운영 방식에 대한 선·후배 세대 간 입장 차이, 그리고 제한된 관직을 둘러싼 경쟁에 있었습니다. 이 동서분당은 기성 관료와 신진 관료의 이해 충돌, 학파와 지연의 차이, 척신 정치에 대한 태도 차이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입니다.

1589

[기축옥사 발생]

정여립 모반 사건인 '기축옥사'를 계기로 서인이 정권을 장악하고 동인 세력을 배제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 사건에 동인 중 일부 급진 세력이 연루되어 처벌받으며 서인에 대한 동인의 반감이 크게 증폭되었습니다.

1591

[건저문제 (정철 실각)]

동인 세력이 정철이 세자 책봉을 왕에게 건의한 '건저문제'를 빌미로 정철 일파를 정계에서 몰아냈습니다.

선조가 동인의 편을 들어주면서 동인은 다시 세력을 회복하게 되었고, 이 사건을 계기로 동인 내에서 정철 처벌 수위를 놓고 분열이 가속화되었습니다.

[동인의 남인·북인 분열]

건저문제 이후, 동인은 강경파인 이산해 중심의 조식·서경덕계 '북인'과 온건파인 류성룡 중심의 이황계 '남인'으로 공식적으로 분열되었습니다.

기축옥사 때 서인에게 큰 피해를 입었던 조식·서경덕계가 북인에 속하며 서인에 대한 강한 반감을 드러냈습니다.

1592

[임진왜란 발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이끄는 일본군이 조선을 침략하며 임진왜란이 발발했습니다.

전쟁으로 인한 혼란 속에서 남인이 일시적으로 정권을 잡고 서인 및 북인과의 공존 체제를 유지하려 했습니다.

1608

[북인의 대북·소북 분열 및 대북 집권]

일본과의 화의 계획 실패 후 강경책을 주장하던 북인이 득세했습니다.

북인은 광해군을 지지하는 '대북'과 영창대군을 지지하는 '소북'으로 다시 분열되었고, 광해군이 즉위하면서 대북이 정권을 장악하게 됩니다.

서인과 남인에 비해 학문적 기반이 부족했던 대북은 왕권 중심의 강력한 정치를 지향하며 다른 당파의 배제를 꾀했습니다.

1623

[인조반정 발생]

광해군과 대북 세력의 강력한 정치에 반발한 서인과 남인이 연합하여 '인조반정'을 일으켰습니다.

이로 인해 대북 세력은 정계에서 숙청되었고, 이후 조선 정치의 주도권은 서인과 남인에게로 넘어갔습니다.

인조반정 이후 북인 세력은 정계에서 완전히 배제되거나 남인에 흡수되었습니다. 정권을 잡은 서인은 형식적으로 남인과 연합 정국을 구성했으나, 효종의 북벌론 국시화와 함께 성리학적 대의명분에 충실한 서인의 입지가 더욱 커졌습니다.

1680

[경신환국 및 서인의 노론·소론 분열]

숙종대에 이르러 서인과 남인의 대립이 극심해지던 중, '경신환국'을 통해 남인이 몰락하고 서인이 정권을 장악했습니다.

이후 서인은 송시열 중심의 '노론'과 윤증·박세채 중심의 '소론'으로 분열되어 본격적인 당쟁의 격화 양상을 보였습니다.

이때부터 붕당은 상호 비판을 넘어 서로를 숙청하고 정치적으로 제거하려는 극단적인 형태로 변질되기 시작했습니다. 상복 기간에 대한 논쟁이었던 '예송'이 이러한 붕당 변질의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1689

[기사환국 발생]

숙종이 후궁인 희빈 장씨를 총애하며 인현왕후를 폐위하려 하자 서인이 반대하고 남인이 찬성하며 정국이 급변하는 '기사환국'이 일어났습니다.

이로 인해 남인이 다시 집권하고 희빈 장씨가 중전이 되었으며, 서인 세력이었던 인현왕후는 폐비되었습니다.

1694

[갑술환국 발생]

남인의 실정으로 숙종의 마음이 돌아서면서 노론과 소론이 다시 정계에 복귀하는 '갑술환국'이 일어났습니다.

이 환국을 통해 남인은 완전히 제거되었고, 희빈 장씨는 사약을 받았으며 폐위되었던 인현왕후가 복귀했습니다.

이후 영조 즉위 때까지 노론과 소론 간의 당쟁이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이러한 첨예한 대립은 정치인들의 부패를 막아 백성들의 삶이 안정되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했습니다.

1724

[영조의 탕평책 실시]

영조는 즉위와 동시에 오랜 당쟁의 폐단을 해결하고자 '탕평책'을 선포했습니다.

이는 노론과 소론 간의 화해를 유도하고 당파에 구애받지 않고 인재를 고르게 등용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담고 있었습니다.

이로써 이전까지의 격렬한 당쟁은 표면적으로 사라지는 듯했습니다.

영조는 탕평책을 지지하는 거대한 '탕평당'을 형성하여 세력의 안정화를 꾀했습니다. 그의 뒤를 이은 정조는 영조의 탕평책을 계승하되, 옳고 그름을 명백히 가리는 '준론탕평'을 통해 자신의 국정 철학에 부합하는 세력을 중용했습니다.

1762

[임오화변으로 인한 시파·벽파 분열]

영조의 탕평책 하에서도 붕당 간의 대립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특히 사도세자의 죽음을 둘러싼 '임오화변'을 계기로 그의 죽음을 동정하는 '시파'와 정당성을 주장하는 '벽파'로 붕당이 새롭게 분열되었습니다.

노론은 대체로 벽파에, 소론과 남인은 시파에 속하며 당쟁의 양상이 더욱 복잡해졌습니다.

1801

[신유박해 발생 (붕당정치 종말의 서막)]

정조 승하 후 순조의 수렴청정을 하던 대왕대비 정순왕후 김씨는 '신유박해'를 빌미로 국내 천주교 신자를 탄압하며 시파 세력을 모두 숙청했습니다.

이 사건으로 남인과 시파는 재기 불능 상태가 되었고 벽파가 조정을 완전히 장악하며 붕당정치 종말의 서막을 열었습니다.

신유박해 이후 순조의 외척인 안동 김씨 김조순이 정권을 잡는 세도정치가 시작되면서 붕당은 정치 세력으로서의 의미를 상실하고 조선의 독특한 붕당정치 체제는 사실상 막을 내리게 됩니다. 사색당파는 정치적 당파이자 학파의 성격을 지녔으나, 시파·벽파 및 공서파·신서파는 정치적 당파일 뿐 학파와는 무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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