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구

해적 집단, 밀무역 세력, 역사적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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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1:0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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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적 집단, 밀무역 세력, 역사적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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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세기부터 16세기 한반도와 중국 연안을 누비며 약탈과 밀무역을 일삼던 해적 집단 왜구. 초기엔 일본 규슈 출신이 주를 이뤘으나 16세기 후기 왜구는 중국인 중심의 다국적 세력으로 변모했습니다. 원명교체기와 일본 남북조시대의 혼란을 틈타 세력을 키워 고려와 명나라 멸망의 한 요인이 될 정도로 극심한 피해를 안겼습니다. 고려는 최무선의 세계 최초 함포 공격 진포대첩과 이성계의 황산대첩 박위의 대마도 정벌 등으로 반격했으며 조선시대에도 대마도 정벌과 방어 정책을 펼쳤습니다. 1588년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해적금지령 등으로 결국 그 횡포가 멈추었습니다. 단순한 해적이 아닌 시대적 혼란 속 복합적인 집단으로 역사의 큰 흐름을 바꾼 존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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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

[신라 금성 공격]

4세기 말, 백제, 가야와 연합한 왜(倭)가 신라의 수도인 금성(경주)을 공격하여 큰 피해를 입혔습니다.

이는 왜(倭)의 한반도 침입이 일찍이 삼국시대부터 있어 왔음을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400

[광개토태왕의 왜구 격퇴]

고구려 광개토태왕이 신라의 구원 요청을 받고 출정하여, 신라를 침략한 왜(倭)를 쫓아내고 최종적으로 왜구를 물리쳤습니다.

광개토태왕은 낙동강 하류 지역에 신라인을 관리자로 배치하여 왜의 발호를 막았습니다.

1223

[왜구, 김해 최초 출몰]

고려 시대 기록상 왜구가 처음으로 김해 지방에 출몰했습니다.

이후 약 100여 년간은 침입이 10여 차례에 불과했지만, 1350년부터는 본격적으로 그 활동이 활발해지며 고려를 위협하기 시작했습니다.

1350

[고려에 왜구 침입 본격화]

고려 충정왕 2년부터 왜구의 침입이 본격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남해안에서만 약탈하던 왜구는 점차 서해와 내륙까지 활동 반경을 넓히며 양민 학살을 자행했습니다.

수도 개경의 치안까지 위협받아 고려 조정이 천도를 고려할 정도로 피해가 극심했습니다.

1376

[홍산대첩 승리]

서해안 일대를 노략질하던 왜구가 금강을 타고 부여를 약탈한 후 공주까지 점령하며 내륙으로 진출하자, 최영 장군이 이끄는 고려군이 홍산면 일대에서 대승을 거두었습니다.

이 승리로 금강을 통한 내륙 진출을 막고 왜구의 기세를 크게 위축시켰습니다.

1380

[진포해전 대승 (세계 최초 함포 공격)]

500여 척의 왜선이 전북 금강 하류 진포(현 군산)에 침입해 내륙을 유린했습니다.

이에 나세, 심덕부, 최무선 장군이 이끄는 고려군이 출격, 최무선이 발명한 화포를 이용해 정박해 있던 왜선 500척을 '세계 최초로 함포 공격'하여 모조리 불태우는 대승을 거두었습니다.

이 승리는 해상 전투의 판도를 바꾼 기념비적인 사건입니다.

화포 공세에 모든 선박을 잃은 왜구들은 내륙으로 도망쳤습니다. 진포해전은 고려군이 자체 제작한 화기로 거둔 승리이자, 최초로 군선에 화포를 장착하여 함포 공격이 감행된 해상전투라는 점에서 그 의의가 큽니다.

[황산대첩 대승 (이성계, 아지발도 사살)]

1378년 지리산 방면으로 침입했던 왜구들이 1380년 진포해전에서 패배한 왜구들과 합세하여 내륙에서 극심한 피해를 입혔습니다.

이에 이성계가 이끄는 고려군은 황산 북서쪽에서 왜구의 용맹한 장수 아지발도를 사살하며 대승을 거두었고, 왜구의 기세를 크게 꺾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1383

[관음포대첩 승리]

진포와 황산에서의 대패를 설욕하기 위해 왜구 120척이 합포(현 마산) 앞바다에 침입해 왔습니다.

급히 출동한 해도원수 정지가 이끄는 고려 수군이 화포 공격으로 왜선 17척을 격침시키며 대승을 거두었고, 이후 왜구는 고려 수군에 대한 두려움을 갖게 되었습니다.

1389

[박위의 1차 대마도 정벌 성공]

소규모 왜구 침입이 계속되자, 고려 조정은 왜구의 근거지를 뿌리뽑고자 경상도원수 박위가 이끄는 병선 100여 척으로 대마도를 전격 공격했습니다.

미처 대비하지 못하고 정박 중이던 왜선 300여 척을 불태우고 잡혀있던 고려인 100여 명을 구출하는 등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이 정벌은 수세적이었던 고려의 왜구 전략을 공세적으로 전환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당시 명나라도 고려가 왜구 활동을 방조한다고 의심했고, 일본 또한 주변국과 관계 개선 및 중앙 정부 인정을 위해 왜구 문제 해결의 필요성을 느끼던 시기였습니다.

1394

[조선 수군, 왜선 3척 노획]

조선 건국 초, 수군 첨절제사 김빈길과 만호 김윤검, 김문발 등이 왜적의 배 3척을 나포하고 전멸시키는 성과를 올렸습니다.

이는 조선 초기의 왜구 방어 대책이 효과적으로 시행되고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장용검, 왜선 9척 노획]

왜구가 충청도 안성에 침입하자, 수군 만호 장용검이 왜선 9척을 성공적으로 노획하며 조선의 해안 방어 역량을 과시했습니다.

1396

[윤형, 이의경 왜선 1척 노획]

동래 만호 윤형과 석포 천호 이의경이 왜구의 배 1척을 나포하고 군기와 갑옷을 바쳤습니다.

이는 조선 수군의 꾸준한 왜구 토벌 활동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왜적, 경상도 대규모 침입 및 성 함락]

왜적 120척이 경상도에 대규모로 침입하여 병선 16척을 탈취하고 수군 만호 이춘수를 전사시켰습니다.

동래, 기장, 동평성을 함락시키며 조선 초기에 발생한 큰 규모의 왜구 침입 사례로 기록되었습니다.

[왜구, 동래성 포위 후 퇴각]

왜구가 동래성을 포위했으나 함락에 실패하고 물러가면서 병선 21척을 불살랐습니다.

이 전투에서 수군 만호 윤형과 임식이 전사하는 등 조선 또한 왜구와의 전투에서 피해를 입었습니다.

1419

[이종무의 2차 대마도 정벌 (기해동정)]

세종 원년, 조선은 왜구 문제의 근원을 뿌리뽑기 위해 이종무를 총사령관으로 삼아 대마도를 다시 정벌했습니다.

강력한 군사적 조치와 더불어 삼포(부산포, 웅천, 염호)를 개항하여 정식 무역을 유도하는 유화책을 병행하며 일본과의 교린 관계를 유지하려 노력했습니다.

이 정벌은 1406년 전라도, 1408년 충청도에 왜구가 들어와 물품을 빼앗고 병선을 불사르는 등 피해가 지속되자 조선의 강력한 의지를 보여준 사례입니다.

1510

[삼포왜란 발발]

조선의 삼포(부산포, 염포, 제포)에 거주하던 일본인들이 무역 관련 불만으로 일으킨 대규모 항쟁입니다.

조선이 왜구 토벌과 회유 정책을 병행했음에도 불구하고 크고 작은 왜변이 계속해서 발생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건입니다.

1544

[사량진왜변 발생]

전라남도 사량진 일대에 왜구가 침입하여 큰 피해를 입힌 사건입니다.

이는 조선 중기에도 왜구의 침략이 지속되었으며, 조선의 해안 방비 체계가 여전히 취약했음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1555

[을묘왜변 발생]

전라남도 일대를 중심으로 대규모 왜구 침략이 발생한 사건입니다.

이로 인해 조선은 비변사를 상설 기구로 전환하는 등 국방 체제를 강화하게 되었고, 임진왜란 이전에 발생한 주요 왜변 중 하나로 꼽힙니다.

1567

[명나라 해금정책 완화]

명나라가 강력히 통제하던 해금정책(海禁政策)을 완화하면서, 밀무역에 종사하던 중국인들이 주축이 된 후기 왜구의 활동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점차 왜구의 활동이 감소하는 요인 중 하나가 됩니다.

1587

[정해왜변 발생]

임진왜란 직전 발생한 왜변으로, 전라남도 강진 등지에 왜구가 침입하여 피해를 입힌 사건입니다.

크고 작은 왜변이 계속적으로 일어났음을 보여주는 마지막 주요 기록 중 하나입니다.

1588

[도요토미 히데요시 해적금지령 선포]

일본의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해적금지령을 선포하고 지방 영주들을 효과적으로 통제하면서 왜구가 사실상 근절되었습니다.

이는 막부의 적극적인 노력과 더불어 동남아시아를 통한 서양 세력과의 무역으로 더 큰 이익을 얻을 수 있었던 당시 일본의 상황과도 관련이 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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