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거란 전쟁
전쟁, 역사, 고려, 거란
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1:05:57
고려와 거란(요나라)이 993년부터 1019년까지 약 26년간 세 차례에 걸쳐 벌인 대규모 전쟁입니다. 이 전쟁은 고려의 자주성과 영토를 수호하고 동아시아의 세력 균형을 재편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서희의 탁월한 외교 담판 강조의 용감한 항쟁 강감찬의 귀주대첩 등 드라마틱한 사건들이 펼쳐지며 한국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926
[거란, 발해 멸망과 고려의 강경 대응]
거란족, 발해를 멸망시키며 고려와 운명의 악연을 시작합니다.
고려 태조 왕건은 발해 유민을 품고 거란을 '금수지국'이라 부르며 강한 적대감을 드러냈습니다.
옛 고구려의 후계 국가인 발해의 멸망은 고려에 큰 충격을 주었고, 고려 태조는 발해 유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며 북진 정책의 기조를 다졌습니다. 이는 이후 고려와 거란 간의 길고 긴 대립의 서막이 됩니다.
942
[고려 태조, 요나라 사신과 낙타를 굶겨 죽이다]
요나라의 선물 공세에 고려 태조가 파격적인 응답을 합니다.
요 태종이 보낸 낙타 50필과 사신 30명을 유배 보내고 낙타는 굶겨 죽이는 강경책으로 거란에 대한 단호한 적대 의사를 천명했습니다.
이 충격적인 사건은 당시 동아시아 국제 관계에서 고려가 거란에 대해 얼마나 적대적이고 단호한 태도를 취하고 있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이는 고려의 북진정책을 대내외에 과시하는 상징적인 행위였습니다.
985
[송나라, 고려에 거란 협공 제의]
송나라가 고려에 거란 협공을 제의하며 동아시아 국제 외교전의 판이 커집니다.
이는 요나라를 국제적으로 고립시키려는 움직임으로, 고려가 국제 정세의 중요한 축으로 부상했음을 보여줍니다.
송나라의 제의는 요나라가 고려와 송나라 사이의 관계 단절을 요구하는 중요한 배경이 됩니다. 요나라 입장에서는 고려와 송나라의 연합이 큰 위협이었기 때문입니다.
986
[요나라, 정안국 멸망으로 고려 침공 준비]
요 성종, 발해 유민의 마지막 보루 '정안국'을 멸망시키며 고려 침공의 전초를 다집니다.
요나라는 압록강 중류에 위치한 발해 유민의 독립국가를 멸망시키며 고려의 숨통을 조여오기 시작했습니다.
정안국 멸망은 요나라가 주변국을 정리하고 본격적으로 고려를 공격할 준비를 하고 있음을 명확히 보여주는 사건이었습니다. 이는 고려에게 직접적인 위협으로 다가왔습니다.
991
[요나라의 대규모 군사 기지 건설]
요나라, 압록강 유역에 군사 기지를 건설하며 고려 침공을 본격적으로 준비합니다.
요 성종은 위구, 진화, 내원 등 압록강 유역에 대규모 성곽을 쌓으며 군사력을 전진 배치했습니다.
요나라의 이러한 움직임은 고려에게 전쟁의 임박을 알리는 명백한 신호탄이었습니다. 고려는 이에 맞서 광군을 양성하고 서북 지역의 방어 태세를 강화하며 긴장 상태에 돌입합니다.
993
[제1차 고려-거란 전쟁 발발과 서희의 담판]
요나라의 선봉장 소손녕이 무려 80만이라는 대군을 이끌고 고려를 침공하며 제1차 고려-거란 전쟁이 발발합니다! 하지만 고려는 서희의 탁월한 외교 담판으로 싸움 없이 '강동 6주'를 얻어내며 전 세계 역사에 유례없는 승리를 기록합니다.
요나라는 고려와 송나라 간의 관계 단절을 요구하며 고려를 고립시키려 했습니다. 그러나 서희는 ‘고구려 계승’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요나라의 요구를 오히려 기회로 바꾸어 강동 6주를 획득하는 외교적 쾌거를 이루었습니다. 이는 고려의 영토를 압록강까지 넓히는 동시에, 외교의 힘으로 전쟁을 승리로 이끈 세계사적 사건입니다.
1010
[제2차 고려-거란 전쟁 발발과 개경 함락]
강조의 정변을 구실 삼아 요 성종이 40만 대군을 이끌고 제2차 고려-거란 전쟁을 일으킵니다! 고려의 수도 개경이 함락되고 현종이 나주로 피난 가는 등 최대의 위기를 맞았으나, 양규, 김숙흥 등의 활약으로 간신히 버텨냅니다.
강조가 목종을 시해한 사건은 요나라에게 고려 침공의 명분을 제공했습니다. 요 성종은 대규모 병력을 이끌고 직접 침공하여 고려에 막대한 피해를 입혔습니다. 전쟁 초반 고려의 강조가 큰 패배를 당하고 처형당했으나, 고려군은 게릴라 전술과 청야 전술로 요나라 군대를 지치게 했고, 결국 요 성종은 현종의 형식적인 입조 약속을 받고 철수하게 됩니다.
1015
[요나라, 흥화진 재침공]
제2차 전쟁 이후 소강상태가 이어지던 중, 요나라의 소적렬이 다시 흥화진을 침공하며 끝나지 않는 전운이 감돕니다.
이는 고려의 방비 태세를 시험하고 전선을 유지하려는 요나라의 의도를 보여주는 사건이었습니다.
요나라의 재침공은 2차 전쟁 이후에도 고려에 대한 압박을 늦추지 않으려는 시도였습니다. 고려는 국경 지역의 방비를 강화하며 끊임없이 침략에 대비해야 했습니다.
1018
[제3차 고려-거란 전쟁 발발과 귀주 대첩]
요나라의 마지막이자 가장 큰 침공으로, 소배압이 10만 대군을 이끌고 제3차 고려-거란 전쟁을 감행합니다! 강감찬 장군이 지휘하는 고려군은 귀주에서 거란군을 전멸에 가깝게 격파하며 기적적인 승리를 거둡니다.
귀주 대첩은 한국사 3대 대첩 중 하나로 손꼽히는 전투입니다. 압도적인 병력 열세에도 불구하고 강감찬 장군의 탁월한 전술과 지략, 그리고 고려군의 투혼으로 거란군을 궤멸시켰습니다. 이 승리로 고려는 동아시아의 독립국으로 확고히 자리매김하게 됩니다.
1019
[고려-거란 전쟁 최종 종결과 동아시아 세력 재편]
26년간 이어진 고려-거란 전쟁이 마침내 종결됩니다.
고려는 형식상 요나라의 연호를 사용하는 대신, 요나라가 집착했던 국왕 친조와 강동 6주 반환을 끝까지 거부하며 실리를 지켜냈습니다.
전쟁 결과, 고려는 독립적인 위상을 확고히 하고 송나라-고려-요나라 3국 간의 대등한 세력 균형이 형성되었습니다. 요나라는 고려 침략 실패로 요동 지배권이 흔들리는 등 큰 타격을 입었습니다. 또한 고려는 이후 침입에 대비하여 압록강부터 동해안까지 '천리장성'을 쌓고 개경에 '나성'을 축조하는 등 국방력을 더욱 강화했습니다. 양국 간 사행무역과 밀무역이 성행하며 문화 교류도 활발히 이루어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