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하

왕조, 옛 나라, 불교 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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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1:0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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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조, 옛 나라, 불교 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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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북서부에 존재했던 탕구트족의 왕조. 1038년 건국되어 1227년 몽골에 의해 멸망했다. 송 요나라와 삼국 관계를 형성하며 독자적인 문자 불교 중심 문화를 꽃피웠다. 동방의 피라미드라 불리는 왕릉 등 유적을 남겼으나 몽골의 철저한 살육으로 민족의 흔적을 찾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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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3

[탕구트 이계천, '하왕' 자처하며 독립의 기틀 마련]

9세기 후반, 평하부의 탕구트 족장 탁발사공이 당나라로부터 '이'씨 성을 하사받고 하국공에 봉해지면서 탕구트족 세력의 기틀이 마련됐다.

그의 후손인 이계천은 983년 스스로 '하왕'을 칭하며 송나라에 대한 독립 의지를 강하게 드러냈다.

이는 훗날 서하 건국의 중요한 발판이 되었다.

1005

[이덕명, 송나라와 화의 맺고 '조'씨 성 하사받다]

이계천의 아들 이덕명이 송나라의 공격을 성공적으로 막아낸 후, 송나라와 화의를 맺었다.

이 과정에서 송 황실로부터 '조'씨 성을 하사받고 은주, 유주 절도사의 직책까지 받으며 송나라와의 관계를 안정화시켰다.

이는 서하 건국 전 외교적 역량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건이다.

1032

[서하의 실질적 개창, 이원호 세력 확장]

탕구트족의 중심 세력이자 탁발씨의 후예였던 조원호(이원호)가 송나라 황실 귀족 세력의 속박에서 벗어나 실질적으로 서하를 개창했다.

이 시기부터 이원호는 독립적인 세력을 구축하며 미래 서하 왕조의 기반을 다졌다.

1038

[서하 경종 이원호, 황제를 칭하고 독립국가 선포!]

조원호(이원호)가 송나라 황실로부터 하사받았던 '조'씨 성을 버리고 조상들의 성인 '이'씨로 돌아왔다.

그는 스스로 황제를 칭하고 국호를 '대하(大夏)', 즉 서하로 정식 선포하며 독립적인 황조의 시대를 열었다.

이와 함께 독자적인 서하 문자를 제정하고 관제를 확립하는 등 자주적인 국가의 면모를 갖추기 시작했다.

송나라는 서하 황제의 지위를 인정하지 않았고, 이는 이후 양국 간의 긴장으로 이어졌다. 서하 문자는 탕구트어 기반의 표의문자로, 한자에서 파생되었으나 완전히 독자적인 체계를 갖추었다는 점에서 세계 최초의 사례 중 하나로 꼽힌다.

1041

[호수천 전투, 송나라에 막대한 피해를 입히다!]

송나라가 서하 황제의 지위를 인정하지 않자, 서하는 송나라 영토 근처에 병력을 집결시키며 압박했다.

결국 양국 간에 '호수천 전투'가 벌어졌고, 서하군이 대승을 거두며 송나라군 1만 3천 명 이상을 전사시키는 치명적인 피해를 입혔다.

이 승리는 서하의 군사적 강대함을 과시하는 계기가 되었다.

1044

[송-서하 강화, 송나라가 사실상 서하에 조공을 바치다]

호수천 전투 이후 2년간의 전쟁으로 양국 모두 피로가 누적되었고, 송나라는 서하와 요나라의 동맹을 우려하여 서하의 강화 요청을 받아들였다.

송나라는 매년 비단 13만 필, 은 5만 냥, 차 2만 근을 서하에 보내는 조건으로 서하 황제를 '하국왕'으로 봉하는 강화를 맺었다.

이는 사실상 송나라가 서하에게 조공을 바치는 형태로, 서하의 위상을 크게 높였다.

1202

[몽골 제국, 서하 침략 시작! 칭기즈 칸의 첫 공격]

당시 국력을 급격히 신장시키던 칭기즈 칸이 이끄는 몽골 제국이 서하를 침략하기 시작했다.

이 침략은 서하에게 닥쳐올 긴 시련의 시작이었으며, 몽골의 공격은 무려 6번에 걸쳐 반복되며 서하의 국력을 점차 고갈시켰다.

1206

[서하 내부 혼란: 양종 이안전, 환종을 시해하고 즉위]

몽골의 침략으로 국력이 약화되고 내부 부패가 심화되자, 서하 왕실 내에서 권력 다툼이 벌어졌다.

왕의 사촌인 이안전이 당시 황제였던 환종 이순우를 시해하고 스스로 황제(서하 양종)의 자리에 올랐다.

그는 몽골 침입에 대비해 군사력 증강에 힘썼다.

1207

[양종, 몽골에 항복! 딸을 칭기즈 칸에게 보내다]

서하 양종은 즉위 후 몽골의 대대적인 침입을 받게 되었다.

수도가 함락될 위기에 처하자, 그는 결국 몽골에게 항복하고 자신의 딸을 칭기즈 칸에게 보내 혼인시키는 굴욕을 감수했다.

이로 인해 서하는 몽골의 영향권 아래 놓이게 되었다.

1211

[또 다른 쿠데타: 신종 이준욱이 양종을 퇴위시키다]

몽골에 대한 굴욕적인 항복 이후, 서하 내부의 혼란은 가중되었다.

왕의 조카인 이준욱이 반역을 일으켜 양종을 퇴위시키고 황제(서하 신종) 자리에 올랐다.

양종은 그 해 사망했다.

이와 함께 금나라와의 오랜 전쟁으로 서하의 국력은 더욱 급속히 쇠퇴하기 시작했다.

1226

[칭기즈 칸의 분노! 서하, 마지막 침공을 받다]

서하가 칭기즈 칸의 서정(서방 원정) 참가를 거부하자, 칭기즈 칸은 크게 분노하며 서하에 대한 마지막 대규모 침공을 단행했다.

이는 서하의 멸망을 알리는 결정적인 군사 행동이었다.

1227

[서하, 몽골에 의해 비극적 멸망... 말제 이현 암살]

몽골 제국의 끈질긴 침략과 내부 혼란으로 인해 서하의 국력은 완전히 소모되었다.

결국 마지막 황제 말제 이현은 몽골 제국에 항복을 요청했으나, 칭기즈 칸의 죽음(1227년 8월) 직후 몽골 장수들의 반격 우려로 암살당하고 서하는 완전히 멸망했다.

칭기즈 칸은 서하인들을 철저히 살육하라는 유언을 남겼고, 이로 인해 서하인의 흔적은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

서하인에 대한 몽골군의 살육은 매우 철저하게 이루어졌으며, 현재는 순수 서하인의 후손을 발견하기 어렵다는 기록도 있다. 다만 모든 서하인이 학살된 것은 아니며, 일부 살아남은 이들은 몽골 제국의 지배 계급인 '색목인'으로 편입되기도 했다. 서하는 독자적인 문자, 불교 중심의 문화, 그리고 '동방의 피라미드'라 불리는 웅장한 왕릉 유적을 남겼으나, 몽골의 철저한 파괴로 그 문화적 유산마저 큰 피해를 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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