킵차크 칸국
몽골 계승 국가, 칸국, 유목 제국
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1:05:51
칭기즈 칸의 장남 주치의 후손들이 다스린 몽골 제국의 서북부 계승 국가. 광대한 영토를 자랑하며 동유럽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했고 루스인들을 몽골의 지배 아래 두었음. 전성기에는 이슬람을 국교로 채택하고 문화적 경제적으로 번영했으나 내부 혼란과 티무르의 침공으로 쇠퇴. 결국 여러 타타르 칸국들로 분열되었고 러시아 제국에 의해 차례로 합병되며 역사의 막을 내림.
1227
[주치 울루스 영토 계승]
칭기즈 칸이 사망하기 전, 장남 주치가 맡기로 되어있던 서쪽 영토가 그의 아들 바투에게 계승되며 킵차크 칸국의 토대가 마련되었습니다.
칭기즈 칸은 몽골 제국의 영토를 네 아들에게 분봉했는데, 그의 사망 6개월 전 주치가 먼저 세상을 떠나자 주치 울루스의 영토가 바투 칸에게 넘어갔습니다.
1235
[바투의 서방 원정 시작]
바투 칸은 수부타이와 함께 서부 원정을 시작하여, 바슈키르인을 정복하고 이듬해 볼가강 불가리아를 침공했습니다.
1237
[우크라이나 초원지대 정복]
바투 칸은 오늘날 우크라이나 남부 초원지대를 정복하여 수많은 쿠만인과 킵차크인들을 서쪽으로 후퇴시켰고, 1239년까지 크림 반도의 쿠만인들을 축출했습니다.
1240
[키이우 루스 침공 및 복속]
바투 칸이 키이우 루스를 침공하여 약 3년간 루스 공국들을 복속시켰으며, 그의 사촌들은 남쪽 알라니아를 공격했습니다.
1241
[오고타이 칸 사망과 바투의 회군]
몽골 제국의 제2대 대칸 오고타이 칸이 사망하자, 바투는 빈 포위를 중단하고 볼가강 일대로 회군했습니다.
몽골인들이 폴란드와 헝가리를 습격하여 레그니차와 모히 전투에서 대승을 거두고 빈을 포위하던 중 오고타이 칸이 사망했습니다.
1242
[킵차크 칸국 건국]
바투 칸이 볼가강 하류의 사라이에 수도를 건설하고, 이로써 킵차크 칸국이 정식으로 건국되었습니다.
이는 몽골 제국 4대 칸국 중 하나입니다.
킵차크 칸국은 몽골 제국이 1259년에 분열되기 전부터 실질적인 기반을 마련했으며, 몽골 제국의 북서부 영토를 계승한 튀르크화된 칸국으로 발전했습니다.
1251
[뭉케 대칸 즉위와 인구 조사]
바투 칸의 강력한 지지 아래 뭉케가 대칸으로 즉위했으며, 바투는 몽골 제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중 한 명이 되었습니다.
몽골 제국 전역의 광범위한 인구조사가 시작되었습니다.
1256
[바투 칸 사망 및 베르케 칸 즉위]
칸국의 창시자 바투 칸이 사망했습니다.
그의 아들 사르타크가 계승했으나 급사했고, 이후 바투의 동생 베르케가 칸으로 즉위하며 이슬람으로 개종했습니다.
1262
[베르케-훌라구 전쟁 발발]
베르케 칸은 훌라구의 바그다드 침공과 무슬림 학살에 분노하여 일칸국과의 '베르케-훌라구 전쟁'을 시작했습니다.
킵차크 칸국은 테렉 강 전투에서 대승을 거두었으나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베르케는 독실한 무슬림으로서 훌라구의 아바스 왕조 침공과 칼리파 처형에 크게 분노했습니다. 노가이가 이끄는 군대가 캅카스의 일칸국 군대를 급습하여 테렉 강 전투에서 승리했지만, 킵차크 칸국도 막대한 피해를 입었습니다. 이 전쟁은 몽골 제국의 공식적인 분열을 상징하는 사건 중 하나입니다.
1266
[베르케 칸 사망 및 멩구 티무르 즉위]
베르케 칸이 사망하자 바투의 손자 멩구 티무르가 칸으로 즉위했습니다.
그는 쿠빌라이와 일칸국에 맞서 카이두를 지원하는 등 복잡한 외교 관계를 유지했습니다.
1267
[교역 활성화 및 종교적 관용]
멩구 티무르는 러시아 성직자들에게 면세장을 발부하고, 제노바인과 베네치아인들에게 카파와 아조프에서의 독점적인 무역권을 허가하는 등 상업을 장려했습니다.
1281
[이중 칸 시대 시작 (노가이 칸의 발호)]
멩구 티무르가 사망하고 그의 형 투다멩구가 계승했지만, 노가이 칸의 강력한 권위로 인해 킵차크 칸국은 사실상 두 명의 칸이 지배하는 '이중 칸 시대'로 접어들었습니다.
노가이는 불가리아, 리투아니아, 세르비아 등 발칸 지역에 대한 원정을 주도하며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했습니다. 그는 불가리아의 차르를 임명하고 세르비아 국왕에게 몽골의 패권을 인정하도록 강요하며 독자적인 외교 노선을 구축했습니다.
1287
[폴란드 침공 및 칸위 계승]
탈라부가와 노가이가 폴란드를 침공하여 황폐화시켰고, 탈라부가는 노가이의 도움을 받아 투다멩구로부터 칸위를 양위받았습니다.
1291
[탈라부가 처형 및 토크타 칸 즉위]
노가이에게 패배한 탈라부가가 토크타 칸의 명령으로 처형되고, 토크타가 칸으로 즉위했습니다.
그는 노가이와의 대립을 이어갔습니다.
1293
[모스크바 초토화]
토크타 칸은 러시아 북부의 블라디미르와 모스크바를 초토화시켰습니다.
노가이는 이를 통해 자신의 권력을 과시하려 했습니다.
1299
[노가이 칸 패사 및 이중 칸 시대 종결]
토크타 칸이 카감리크 전투에서 노가이 칸을 패사시키며 우익 전역을 장악하고, 이중 칸 시대가 종결되었습니다.
1304
[몽골 제국 재결합 선언 및 교역 재개]
토크타 칸은 원나라 황제의 패권을 승인하며 몽골 제국 분열 이후 중단되었던 모든 우편 중계지와 상업 네트워크를 재개시켰습니다.
이는 킵차크 칸국의 경제 성장에 기여했습니다.
1308
[카파 도시 파괴]
토크타 칸의 명령으로 크림반도 무역도시 카파가 파괴되었습니다.
이는 제노바 노예 무역에 대한 불만 때문으로 추정됩니다.
1312
[우즈베크 칸 즉위와 이슬람 국교화]
토크타 칸이 볼가강을 건너던 중 병사하고, 우즈베크 칸이 즉위했습니다.
그는 즉위하자마자 이슬람을 국교로 채택했습니다.
우즈베크 칸은 이슬람을 국교로 채택하고 칸국 영내의 몽골인들 사이에서 불교와 텡그리교를 금지하며 종교 정책에 반대하는 왕자들을 처형했습니다. 그의 통치 기간은 킵차크 칸국의 군사력이 절정에 달한 시기로 평가됩니다.
1333
[이븐 바투타의 사라이 방문 및 기록]
모로코 여행가 이븐 바투타가 킵차크 칸국을 방문하여 수도 사라이를 '가장 아름다운 도시 중 하나'이자 '훌륭한 바자르와 드넓은 거리가 있는 크고 아름다운 도시'로 묘사했습니다.
이븐 바투타는 사라이가 몽골인, 알란인, 킵차크인, 루스인 등 다양한 민족이 어우러져 살고 있으며, 무역 캐러밴을 통해 실크로드의 사치품과 스텝 지역의 상품들이 활발하게 거래되는 번영하는 도시라고 기록했습니다. 또한, 그는 킵차크 칸국의 말들이 인도로 대규모 수출될 정도로 많다고 언급했습니다.
1341
[우즈베크 칸 사망 및 자니베크 칸 즉위]
우즈베크 칸이 통치 28년만에 사망하고, 그의 장남 티니베크가 잠시 칸위를 이어받았다가 동생 자니베크에게 넘겨주었습니다.
1345
[흑사병 창궐과 경제적 몰락]
중세 흑사병이 크림반도를 강타한 후, 1346년 수도 사라이를 휩쓸며 약 8만 5천 명 이상이 사망하는 등 킵차크 칸국의 경제적 몰락의 주요 원인이 되었습니다.
전염병으로 인구가 급감하고 무역로에 발길이 끊기면서 킵차크 칸국의 경제력은 급격히 쇠퇴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자니베크 칸 시기에 발생한 가장 큰 위기 중 하나였습니다.
1356
[자니베크 칸의 영토 확장]
자니베크 칸은 중앙아시아 차가타이 칸국을 잠시 속국으로 만들고 캅카스 타브리즈를 점령하는 등 영토를 확장하며 '몽골 제국의 3개 울루스가 자신의 지배 하에 있다'고 자랑했습니다.
1357
[자니베크 칸 암살 및 대혼란 시작]
자니베크 칸이 그의 아들 베르디베크에게 암살당하며 킵차크 칸국의 '대혼란'이 시작되었습니다.
이는 정치적 안정과 경제적 번영이 이룩된 전성기의 끝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자니베크 칸의 죽음은 이후 25년간 킵차크 칸국 내부에 극심한 정치적 무질서를 가져왔습니다. 칸위 계승 분쟁이 빈번하게 발생하며 칸국은 급속도로 쇠퇴하기 시작했습니다.
1363
[리투아니아의 서부 영토 정복]
리투아니아 대공국이 블루 워터스 전투에서 승리한 후 킵차크 칸국의 서부 지역인 키이우와 포돌리아를 정복하며 서방 영향력을 확대했습니다.
1379
[킵차크 칸국 재통일 (토크타미시)]
백장 칸국의 칸이었던 토크타미시가 내전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사라이를 함락하고 킵차크 칸국을 일시적으로 재통일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1380
[쿨리코보 전투 대패]
드미트리 돈스코이의 모스크바 군대가 쿨리코보 전투에서 킵차크 칸국의 마마이 군대를 대패시키며 루스 공국들의 독립 시도가 가시화되었습니다.
1382
[모스크바 공방전 (토크타미시)]
토크타미시가 거짓 휴전을 통해 모스크바를 점령하고 3일간 불태워 황폐화시켰습니다.
대부분의 루스 공작들이 다시 킵차크 칸국에 복속을 청했습니다.
1395
[티무르의 침공과 킵차크 칸국 초토화]
티무르가 테렉 강 전투에서 킵차크 칸국 군대를 궤멸시켰고, 아스트라한, 사라이 등 주요 도시들을 모조리 파괴하여 칸국을 재기불능 상태로 만들었습니다.
티무르는 콘두르차 강 전투(1391년)에서 토크타미시를 물리친 데 이어, 1395년 테렉 강 전투에서 킵차크 칸국 군대를 완전히 궤멸시켰습니다. 이 승리 후 티무르 군대는 아스트라한, 사라이, 아조프 등 주요 도시들을 파괴하고 크림반도의 무역 도시들을 약탈했으며, 숙련된 장인들을 그의 본거지 사마르칸트로 끌고 갔습니다. 이는 킵차크 칸국 쇠퇴의 결정적인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1405
1406
1419
[에디구 전사 및 킵차크 칸국 와해]
권신 에디구가 전사하며 킵차크 칸국이 완전히 와해되고 여러 왕족과 토후들이 할거하는 분열의 시대가 도래했습니다.
에디구는 티무르 쿠틀루그와 함께 공동 통치자로 활동하며 루스 공국들을 재복속시키는 등 칸국의 위신을 회복하려 노력했으나, 그의 죽음과 함께 킵차크 칸국은 사실상 껍데기만 남은 상태가 되었습니다.
1428
[우즈베크 칸국 건국]
바라크의 후계자인 아불 하이르 칸이 카자흐 스텝 영토와 시르다리야강 북방을 아울러 우즈베크 칸국을 건국했습니다.
1438
1440
1449
1452
1458
[카자흐 칸국 건국]
아불 하이르 칸에게서 이탈한 주치의 후손 케레이와 자니베크가 20만 명의 유목민을 이끌고 카자흐 칸국을 건국했습니다.
1459
[이흐 칸국(대호드) 성립]
퀴취크 무함마드가 아들 마흐무드에게 계승되며 킵차크 칸국은 이 시점부터 '이흐 칸국' 또는 '대호드'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1466
1480
[우그라 강 대치 (타타르의 멍에 종식)]
이흐 칸국의 아흐메드 칸이 모스크바 대공 이반 3세와 우그라 강에서 대치하다 철수했습니다.
이는 약 2세기 동안 이어진 '타타르의 멍에'를 공식적으로 종식시킨 상징적인 사건입니다.
아흐메드 칸은 루스 공국들을 통합하고 종주권을 거부한 이반 3세를 응징하기 위해 군사 원정을 이끌었습니다. 그러나 실제 전투 없이 대치하다 철수했으며, 이는 러시아 역사에서 중요한 전환점으로 기록됩니다.
1502
[이흐 칸국 멸망 (사라이 약탈)]
오스만 제국의 속국이 된 크림 칸국이 이흐 칸국의 수도 사라이를 습격하고 약탈하며 이흐 칸국을 멸망시켰습니다.
마지막 칸인 셰이흐 아흐메드는 리투아니아로 피신했으나 감옥에서 사망했습니다. 이로써 킵차크 칸국 본류의 명맥은 완전히 끊어졌습니다.
1552
[러시아의 칸국 정복 시작]
모스크바 대공국은 러시아 차르국으로 거듭나며 주변 칸국들에 대한 확장주의 정책을 펼쳤고, 카잔 칸국(1552년), 아스트라한 칸국(1556년), 시비르 칸국(1582년)을 차례로 정복했습니다.
1783
[크림 칸국 러시아에 합병]
오스만 제국이 쇠퇴하자, 예카테리나 2세가 크림 칸국을 러시아에 합병하며 킵차크 칸국의 계승국 중 가장 오래 존속했던 칸국이 종말을 맞이했습니다.
크림 칸국은 킵차크 칸국의 명맥을 이으며 가장 오랜 기간 독립을 유지한 국가 중 하나였으나, 러시아 제국의 팽창 앞에 결국 무릎을 꿇었습니다.
1847
[카자흐 칸국 멸망]
러시아 제국이 카자흐스탄을 정복하며 카자흐 칸국이 멸망했습니다.
이는 킵차크 칸국의 마지막 주요 계승 국가의 종말을 의미했습니다.
19세기 러시아 제국은 중앙아시아로 지속적으로 팽창하여 히바, 부하라, 코칸트 칸국들을 합병하는 등 막대한 영토를 확보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