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비트 왕조
왕조, 이슬람 제국, 베르베르
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1:05:49
11세기 베르베르 유목민들이 세운 무슬림 왕조. 서마그레브와 알안달루스에 광대한 제국을 건설하며 서지중해 최초의 베르베르 대제국을 이룩했습니다. 특히 사그라하스 전투에서 기독교 세력을 대파하며 레콩키스타를 저지 이베리아 반도의 이슬람 세력을 수호했습니다. 마라케시를 수도로 삼아 사하라의 이슬람화와 도시화를 이끌고 아프리카와 스페인 간 문화 교류의 가교 역할을 했습니다. 짧은 전성기 후 급격히 쇠퇴했습니다.
- 이븐 야신 추방
- 무라비트 왕조 건국
- 사하라 종단 무역로 장악
- 아그마트 정복 및 수도 이전
- 아달라흐 이븐 야신 전사
- 아부 바크르, 유수프에게 권력 이양 및 결혼
- 마라케시 건설 및 천도
- 페스 정복
- 자이나반, 유수프 이븐 타쉬핀과 결혼
- 마그레브 통치권 분할
- '아미르 알 무슬리민' 칭호 수여
- 우지다 및 틀렘센 정복
- 사그라하스 전투 (레콩키스타 저지)
- 아부 바크르 이븐 우마르 전사
- 이베리아 반도 재진출 및 타이파 합병 시작
- 코르도바, 세비야 점령 및 알 무타미드 압송
- 엘 시드, 발렌시아 점령
- 발렌시아 함락 실패
- 발렌시아 재탈환
- 유수프 이븐 타쉬핀 사망 및 알안달루스 대부분 장악
- 우클레스 전투 대승 및 카스티야 후계자 전사
- 사라고사 점령 (마지막 타이파 멸망)
- 발레아레스 제도 점령
- 사라고사 상실
- 쿠탄다 전투 대패
- 프라가 전투 승리 및 알폰소 1세 사망
- 타슈핀 이븐 알리 소환 (무와히드 반란 대응)
- 알리 이븐 유수프 사망
- 타쉬핀 이븐 알리 전사
- 마라케시 함락 및 무라비트 왕조 멸망
1040
[이븐 야신 추방]
종교적 엄격함으로 인해 구달라 부족에게 추방당한 아달라흐 이븐 야신은 람투나 부족의 야히야 이븐 우마르의 초청을 받았습니다.
1050
[무라비트 왕조 건국]
야히야 이븐 우마르와 아달라흐 이븐 야신은 엄격한 말리키 이슬람을 바탕으로 '알 무라비틴' 교단을 창설하고, 사하라 베르베르 부족들을 통합하며 강력한 신정국가의 기틀을 다졌습니다.
1054
[사하라 종단 무역로 장악]
무라비트 왕조는 사하라 종단 무역의 핵심 거점인 시질마사와 아우다고스트를 정복하며 서북아프리카와 사하라 이남 지역으로 영향력을 확대했습니다.
1055
1058
[아그마트 정복 및 수도 이전]
무라비트 왕조가 번영하는 상업 도시 아그마트를 정복하고 임시 수도로 삼았습니다.
이는 무라비트 왕조가 사하라 지역을 넘어 북아프리카로 진출했음을 알리는 중요한 전환점이었습니다.
1059
1061
[아부 바크르, 유수프에게 권력 이양 및 결혼]
아부 바크르가 사촌 유수프 이븐 타쉬핀에게 권력을 이양하고 베르베르 귀족 자이나반 나프자위야와 결혼했습니다.
이는 무라비트 왕조의 실질적인 권력이 유수프 이븐 타쉬핀에게 넘어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1070
[마라케시 건설 및 천도]
아부 바크르가 새로운 수도 마라케시 건설을 시작했습니다.
이 도시는 1070년경 완공되어 무라비트 왕조의 최종 수도가 되었으며, 제국의 번영과 확장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마라케시의 정확한 설립 연도에 대해서는 학자들마다 의견이 분분하며, 1062년부터 1078년까지 다양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1060년대에서 1070년대 사이에 새로운 수도가 건설된 것은 분명합니다.
[페스 정복]
유수프 이븐 타쉬핀이 모로코의 중요한 도시 페스를 정복하며 마그레브 지역의 세력을 크게 확장했습니다.
이는 무라비트 왕조의 북아프리카 지배력 강화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페스 정복 시기는 1069년부터 1075년 사이로 학자들마다 이견이 있으나, 로널드 메시에는 1070년 3월 18일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1071
[남부 반란 진압]
아부 바크르가 사막 무역로를 위협하던 구달라 부족의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남부로 향했습니다.
이로써 사막 지역에 대한 무라비트 왕조의 통제권이 강화되었습니다.
[자이나반, 유수프 이븐 타쉬핀과 결혼]
아부 바크르의 아내 자이나반이 이혼 후 그의 사촌 유수프 이븐 타쉬핀과 결혼했습니다.
자이나반은 이후 유수프의 중요한 정치적 조언자가 되어 제국 발전에 기여했습니다.
[유수프 이븐 타쉬핀, 북부 대리인으로 임명]
아부 바크르가 남부로 돌아가면서 유수프 이븐 타쉬핀을 마그레브 지역의 대리인으로 임명했습니다.
이는 유수프가 북부 지역에서 자신의 권력을 공고히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마그레브 통치권 분할]
아부 바크르가 마그레브 통치권을 놓고 유수프 이븐 타쉬핀과 대립하는 대신, 그의 권력을 인정하고 남부 사하라 지역 통치에 집중하기로 합의했습니다.
1073
['아미르 알 무슬리민' 칭호 수여]
유수프 이븐 타쉬핀이 바그다드의 아바스 칼리파로부터 '아미르 알 무슬리민'(무슬림들의 사령관)이라는 권위 있는 칭호를 받으며 무라비트 왕조의 정당성을 국제적으로 인정받았습니다.
1079
1081
[우지다 및 틀렘센 정복]
유수프 이븐 타쉬핀이 우지다를 점령한 후, 마그라와 군대를 격파하고 틀렘센을 정복하여 동방 진출의 전진 기지로 삼았습니다.
1082
1083
[세우타 점령]
무라비트 왕조가 지브롤터 해협 남단의 요충지 세우타를 점령하며 이베리아 반도의 알안달루스 지역으로 진출할 교두보를 확보했습니다.
1086
[알헤시라스 점령]
유수프 이븐 타쉬핀이 타이파들의 지원 요청을 받아들여 알헤시라스를 점령했습니다.
이곳은 무라비트 왕조가 이베리아 반도로 진출하는 핵심 거점이 되었습니다.
[사그라하스 전투 (레콩키스타 저지)]
유수프 이븐 타쉬핀이 이끄는 무라비트 왕조가 사그라하스 전투에서 카스티야-레온 연합군을 대파하며 기독교 세력의 레콩키스타(재수복 운동)를 저지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이 승리로 무슬림 이베리아(알안달루스)는 일시적으로 안정을 되찾았습니다.
1087
[아부 바크르 이븐 우마르 전사]
무라비트 왕조의 초기 지도자 아부 바크르 이븐 우마르가 타간트 지역의 전투 중 화살에 맞아 전사했습니다.
1088
[알레도 요새 탈환 실패]
유수프 이븐 타쉬핀이 다시 이베리아 반도로 건너와 알레도 요새 탈환을 시도했으나, 타이파들 간의 내부 분열과 기독교 세력의 증원 소식으로 인해 결국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고 철수했습니다.
1090
[이베리아 반도 재진출 및 타이파 합병 시작]
유수프 이븐 타쉬핀이 이베리아 반도에 다시 상륙하여 부패한 타이파 왕국들을 직접 통치하기로 결정하고, 말리키 율법학자들의 지지를 얻어 타이파 합병을 시작했습니다.
1091
[코르도바, 세비야 점령 및 알 무타미드 압송]
무라비트 왕조가 코르도바를 장악하고 세비야로 진격, 카스티야 군대를 격파했습니다.
세비야의 타이파 통치자 알 무타미드는 사로잡혀 북아프리카로 압송되며 알안달루스 통합이 가속화되었습니다.
1092
[무르시아 점령]
유수프 이븐 타쉬핀의 아들 이븐 아이샤가 무르시아를 항복시킴으로써 알안달루스 동부 지역에 대한 무라비트 왕조의 통제력을 강화했습니다.
1094
[엘 시드, 발렌시아 점령]
엘 시드가 발렌시아를 장기간 포위한 끝에 항복을 받아내고 도시를 직접 통치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무라비트 왕조가 이베리아 반도에서 겪는 첫 번째 좌절 중 하나였습니다.
[발렌시아 함락 실패]
무함마드 이븐 이브라힘이 이끄는 무라비트 군대가 발렌시아를 공격했으나, 엘 시드의 지휘 아래 양면 전술에 패퇴하며 알안달루스 진출 이래 첫 번째 주요 패배를 겪었습니다.
1097
[콘수에그라 전투 승리]
유수프 이븐 타쉬핀이 직접 지휘하는 무라비트 군대가 콘수에그라 전투에서 카스티야의 알폰소 6세를 패퇴시키며 다시 한번 기독교 세력에 대한 우위를 입증했습니다.
1102
[발렌시아 재탈환]
엘 시드의 사망 이후, 무라비트 사령관 마즈달리가 발렌시아를 대규모로 침공하여 도시를 재탈환했습니다.
이로써 발렌시아는 다시 이슬람의 통치 아래 들어왔습니다.
1104
[함마드 왕조와 평화 조약 체결]
유수프 이븐 타쉬핀이 함마드 왕조와 평화 조약을 체결하며 알제를 무라비트 왕조의 최동단 거점으로 확립했습니다.
1106
[유수프 이븐 타쉬핀 사망 및 알안달루스 대부분 장악]
유수프 이븐 타쉬핀이 사망했습니다.
그의 통치 기간 동안 무라비트 왕조는 사라고사를 제외한 알안달루스 전역을 장악하며 제국을 크게 확장했습니다.
1107
[알리 이븐 유수프의 알안달루스 행정 개편]
알리 이븐 유수프가 알안달루스를 방문하여 동생 타밈을 총독으로 임명하고 수도를 그라나다로 정하는 등 행정 체계를 개편했습니다.
이는 이베리아 반도에 대한 무라비트의 통치력 강화를 목표로 했습니다.
1108
[우클레스 전투 대승 및 카스티야 후계자 전사]
무라비트 왕조가 우클레스 전투에서 카스티야-레온 연합군을 대파하고 알폰소 6세의 아들이자 후계자인 산초 알폰세즈를 전사시켰습니다.
이 승리는 무라비트의 군사적 위용을 다시 한번 과시했습니다.
1109
[알폰소 6세 사망 및 무라비트의 이베리아 반도 재침공]
카스티야의 알폰소 6세가 사망하자, 알리 이븐 유수프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대규모 군대를 이끌고 이베리아 반도로 진격했습니다.
1110
[사라고사 점령 (마지막 타이파 멸망)]
무라비트 왕조가 사라고사를 점령하며 이베리아 반도의 마지막 독립 타이파 왕국을 종식시켰습니다.
이로써 알안달루스 전역이 무라비트 왕조의 직접적인 통치 아래 놓이게 되었습니다.
1111
[리스본 및 산타렘 점령]
무라비트 왕조의 세비야 총독 이븐 아부 바크르가 리스본과 산타렘을 점령하며 이베리아 반도 서부의 타구스 강을 따라 국경을 확보했습니다.
1115
[마즈달리 전사]
유수프 이븐 타쉬핀의 충성스러운 장군 마즈달리가 코르도바 북부에서 진격 중 전사했습니다.
이는 무라비트 왕조에 큰 인재 손실을 가져왔습니다.
[발레아레스 제도 점령]
무라비트 왕조가 바르셀로나를 포위한 후 철수했지만, 같은 해 카탈루냐인과 피사 공화국이 잠시 차지했던 발레아레스 제도를 점령하며 지중해에서의 영향력을 확대했습니다.
1117
[코임브라 공격]
알리 이븐 유수프가 코임브라를 공격하여 막대한 전리품을 얻었으나 도시 점령에는 실패했습니다.
이는 무라비트 왕조가 더 이상 독보적인 패권을 유지할 수 없음을 시사하는 신호였습니다.
1118
[사라고사 상실]
아라곤의 알폰소 1세가 프랑스 십자군의 지원을 받아 사라고사를 공격하여 점령했습니다.
이는 무라비트 왕조가 알안달루스에서 영토를 상실하기 시작하는 중요한 전환점이었습니다.
1120
[쿠탄다 전투 대패]
사라고사 상실을 만회하려던 알리 이븐 유수프가 쿠탄다 전투에서 아라곤 군대에 대패했습니다.
이 패배는 무라비트 왕조의 군사적 약화를 여실히 보여주었습니다.
1121
[코르도바 반란 발생]
과중한 세금 문제로 인해 코르도바에서 대규모 반란이 발생했습니다.
이 반란은 무라비트 왕조의 알안달루스 통치에 대한 현지 주민들의 불만을 드러냈습니다.
1129
[타슈핀 이븐 알리, 알안달루스 군사 재편]
알리 이븐 유수프가 아들 타슈핀 이븐 알리를 알안달루스로 보내 군사 조직을 재편하고 기독교 세력의 압박에 대응하도록 했습니다.
1134
[프라가 전투 승리 및 알폰소 1세 사망]
야히야 이븐 알리 이븐 가니야가 이끄는 무라비트 군대가 프라가 전투에서 아라곤의 알폰소 1세('전사왕')를 크게 무찌르고 그를 전사시켰습니다.
이는 무라비트 왕조의 일시적인 반격의 성공이었습니다.
1138
[타슈핀 이븐 알리 소환 (무와히드 반란 대응)]
알리 이븐 유수프가 급성장하는 무와히드파 반란에 대응하기 위해 유능한 아들 타슈핀 이븐 알리를 마라케시로 소환했습니다.
이는 알안달루스에서의 무라비트 왕조 권위 약화로 이어졌습니다.
[이베리아 반도 전투 패배]
무라비트 왕조가 레온-카스티야의 알폰소 7세에게 패배하고, 이듬해에는 포르투갈의 아폰수 1세에게 우리크 전투에서 패배하며 이베리아 반도에서 지속적인 열세를 겪었습니다.
1143
[알리 이븐 유수프 사망]
장기간 제국을 통치했던 알리 이븐 유수프가 사망했습니다.
그의 사망은 급성장하는 무와히드파 반란 앞에서 무라비트 왕조의 쇠퇴를 가속화하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1146
[타쉬핀 이븐 알리 전사]
무와히드파 반란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던 타쉬핀 이븐 알리가 오랑 근처 전투에서 패배 후 탈출하다 절벽에서 떨어져 사망했습니다.
1147
[리스본 상실 및 이베리아 반도 혼란]
포르투갈이 무라비트 왕조로부터 리스본을 정복했습니다.
이베리아 남서부에서는 무리둔족의 대규모 반란이 일어나는 등 무라비트의 이베리아 지배력이 급격히 약화되었습니다.
[마라케시 함락 및 무라비트 왕조 멸망]
무와히드 세력에 의해 수도 마라케시가 함락되며 무라비트 왕조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이는 북아프리카와 알안달루스의 지배 세력이 교체되는 중요한 전환점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