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나라
거란족 왕조, 정복 왕조, 중국사, 동아시아 제국
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1:05:49
- 거란족 야율아보기가 건국한 정복 왕조입니다. - 거란족과 한족을 이원적으로 지배하는 독특한 통치 체제를 유지했습니다. - 송나라와 전연의 맹을 맺고 경제적·문화적 번영을 누리며 동아시아 강국으로 부상했습니다. - 독자적인 거란 문자 및 뛰어난 건축 기술을 선보였습니다. - 여진족이 세운 금나라의 공격으로 멸망했습니다.
907
[당나라 멸망과 야율아보기의 부상]
천하를 호령하던 당나라가 멸망하자, 거란족 질라부의 야율아보기가 여러 부족을 통합하고 카간의 자리에 오르며 새로운 시대를 예고합니다.
이는 훗날 요나라 건국의 초석이 됩니다.
916
[거란국 건국]
야율아보기가 스스로를 천황제라 칭하며 거란국을 건국합니다.
이로써 요나라의 역사가 시작되며, 거란족은 강력한 통일 국가의 기틀을 마련합니다.
925
[발해 영토 확장]
거란국이 발해의 중요 영토인 요동반도를 차지하며 동북아시아에서의 영향력을 확대합니다.
이는 훗날 발해 멸망의 전조가 됩니다.
926
[발해 멸망 및 만주 정복]
거란국이 거란도를 통해 발해의 수도 상경용천부를 함락시키며 발해를 완전히 멸망시키고 만주 전역을 정복합니다.
이로써 요나라는 동북아시아의 새로운 강자로 떠오릅니다.
아율아보기는 중국 한족들 2만 9천 호를 상경임황부 남쪽으로 강제 이주시키고 한족 지배를 위한 전진 기지를 운영했습니다.
936
[연운십육주 획득 및 국호 '요' 변경]
요 태종은 후진의 건국을 도운 대가로 전략적 요충지인 연운십육주를 획득하고 국호를 '요'로 바꿉니다.
이로써 요나라는 중국 본토에 깊이 발을 들이게 됩니다.
연운십육주 획득은 요나라가 중원 지역으로 영향력을 확장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으며, 이는 이후 북송과의 관계에도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946
후량 주천충의 일가 2천 명이 상경임황부로 끌려가 노예가 되는 등 요나라의 가혹한 통치는 한족의 반발을 불러일으켰습니다.
947
[국호 '대요' 공식화]
건국 당시 '거란'이었던 국호가 '대요'로 공식 변경됩니다.
이는 제국의 위상을 더욱 공고히 하려는 의지를 보여줍니다.
984
[독락사 관음각 건립]
허베이성에 독락사 관음각이 건립됩니다.
이 건물은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축물로, 요나라의 뛰어난 건축 기술과 당나라 건축 양식 계승 능력을 보여줍니다.
1004
[전연의 맹 체결]
송나라를 공격하여 '전연의 맹'을 맺습니다.
송나라는 요나라를 사대하고 막대한 세폐를 바치게 되며, 이를 통해 요나라는 재정을 확충하고 경제적·문화적으로 크게 융성하게 됩니다.
성종은 이 시기에 정치 및 군사 조직을 정비하고 법전을 편찬, 공포하는 등 강력한 중앙집권 체제를 갖추어 동북아시아의 강국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1054
[산시성 목탑 건립]
산시성에 8층 규모의 목탑이 건립됩니다.
이 탑은 당시로서는 전대미문의 규모와 기술력을 자랑하는 건축물로, 요나라의 건축 역량을 상징합니다.
1125
[금나라에 의한 요나라 멸망]
동만주에서 일어난 여진족 아구다가 세운 금나라의 협공을 받아 황제 천조제가 사로잡히면서 요나라는 멸망합니다.
요나라 황족 야율대석은 서쪽으로 망명하여 중앙아시아 지역에 서요를 건국하며 명맥을 이어나갔으나, 이후 서요 역시 칭기즈칸에 의해 멸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