촐라 왕조

왕조, 제국, 해상 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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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1:0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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촐라 왕조는 기원전 3세기부터 1279년까지 남인도 타밀라캄 지역에 존재하며 광대한 해양 제국을 건설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댐을 축조하고 최강의 해상 전력으로 인도양을 지배하며 전성기를 누렸습니다. 브리하디스와라 사원 같은 위대한 건축물을 남겼고 예술 문학 종교 등 다방면에서 찬란한 문화적 유산을 꽃피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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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촐라 왕조의 기원]

기원전 3세기, 인도 남부 타밀라캄에 타밀족 계통의 촐라 왕조가 세워졌습니다. 이는 마우리아 제국의 아소카 황제 비문에서도 언급될 정도로 오랜 역사를 자랑합니다.

기원전 3세기경, 카베리강 유역에 우라이유르를 수도로 하여 촐라국이 건국되었습니다. 이들은 판디아, 체라와 함께 타밀라캄의 주요 군주국 중 하나였습니다. 촐라에 대한 가장 오래된 언급은 마우리아 제국의 아소카 황제 통치 기간인 기원전 3세기에 만들어진 비문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아소카 황제 비문 속 촐라]

마우리아 제국의 아소카 황제는 자신의 석주 비문에서 촐라를 복속되지 않았지만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남쪽의 왕국 중 하나로 언급했습니다.

기원전 273년부터 기원전 232년까지 새겨진 아소카 석주 비문에서 촐라는 아소카에게 복속되지 않았지만 그와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왕국들 중 하나라고 언급되었습니다. 이는 촐라 왕조의 독립적인 위상을 보여줍니다.

[스리랑카 원정]

촐라 왕자 엘랄란이 스리랑카의 아누라다푸라 왕국을 지배하며 섬에도 영향력을 떨쳤습니다.

초기 스리랑카의 역사서인 《마하밤사》에 따르면, 엘랄란이라는 이름의 촐라 왕자가 기원전 205년부터 기원전 161년까지 아누라다푸라 왕국을 지배했다는 기록이 존재합니다. 이를 통해 촐라가 일찍이 스리랑카섬에도 영향력을 행사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120

[카리칼라의 황금기]

서기 120년부터 210년까지 재위한 카리칼라 왕은 전기 촐라의 전성기를 이끌었습니다. 그는 촐라 왕조를 칸치푸람과 카베리강 유역으로 확장하고, 대규모 토목 공사를 통해 농업 발전을 이끌었습니다.

카리칼라 왕은 촐라 왕조를 칸치푸람과 카베리강 유역으로 확장시켰습니다. 그는 촐라국의 수도를 카베리파타남으로 천도하고, 아누라다푸라 왕국에서 잡아온 포로 1만 2천여명을 동원하여 카베리강에 160km에 이르는 거대한 제방을 쌓아 관개농사를 짓도록 하는 등 전기 촐라를 크게 성장시켰습니다. 이 제방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댐 중 하나였습니다.

130

[카리칼라의 베니 전투 대승]

카리칼라 왕은 베니 전투에서 체라와 판디아 연합군을 격파하고 11개 벨리르들을 물리치는 등 강력한 군사력을 과시했습니다.

서기 130년경, 카리칼라 왕은 베니 전투에서 체라 국왕 페루체랄라탄과 맞붙었습니다. 이 전투에서 카리칼라가 뒤에서 쏜 화살에 맞은 것을 치욕으로 여긴 페루체랄라탄이 자살했다는 기록이 전해집니다. 어쨋든 베니 전투에서 체라·판디아 연합군을 격파하고 11 벨리르들을 물리친 카리칼라의 승리는 촐라의 위세를 드높였습니다.

250

[전기 촐라 멸망과 암흑기 시작]

카리칼라 왕 사후 촐라 왕국은 체라·판디아 연합군의 공세에 밀려 쇠퇴하기 시작했고, 서기 250년경 판디아에게 점령당하며 전기 촐라 시대가 막을 내렸습니다. 이후 약 600년간 '공위기'가 이어집니다.

카리칼라 왕 사후 촐라는 체라·판디아 연합군의 군세에 밀리며 점차 쇠퇴하였습니다. 서기 250년경 판디아에 점령당하면서 전기 촐라는 막을 내리게 되었고, 서기 3세기부터 팔라바가 타밀나두를 지배하기까지 약 3세기 동안의 과도기에 대한 정보는 거의 없어 '공위기'로 불립니다.

550

[팔라바의 촐라 지배 시작]

전기 촐라의 마지막 왕 차리칼란 3세가 사망한 후, 촐라는 팔라바의 왕 심하비슈누에 의해 팔라바의 지배하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촐라의 세력이 약화될 무렵, 차리칼란 3세는 칼라브라와 무타라이야르를 몰아내고 팔라바 왕 트릴로사나 팔라바를 물리쳐 톤다이나두를 차지했지만, 그의 사후인 서기 550년에 팔라바의 왕 심하비슈누에 의해 촐라는 팔라바의 지배하에 놓였습니다. 이후 촐라 왕실은 타밀나두 남부를 떠나 팔라바에 속한 북부 지역과 안드라프라데시 남부로 이주하게 됩니다.

639

[현장의 텔루구 촐라 기록]

7세기경 안드라프라데시주에서 촐라 왕국(텔루구 촐라)이 번성했습니다. 중국인 순례자 현장은 639-640년에 칸치푸람을 방문하여 이 '쿨리야 왕국'에 대한 기록을 남겼습니다.

7세기경 오늘날 안드라프라데시주에서 촐라 왕국이 번성했는데, 이 텔루구 촐라는 상감 시대 초기 촐라의 후손임을 자처했습니다. 639-640년 칸치푸람을 방문한 중국인 순례자 현장은 그곳에서 수개월 동안 머무르며 텔루구 촐라를 가리키는 "쿨리야 왕국"에 대한 글을 남겼습니다. 그는 《대당서역기》에서 이들이 촐라 차리칼란 왕조에 속하며, 영토의 위치와 규모를 언급했습니다.

848

[비자얄라야의 촐라 제국 건국]

팔라바의 지배를 받던 촐라 지역에서 촐라 왕가의 후예 비자얄라야가 판디아와 팔라바의 갈등을 틈타 탄자부르를 점령하고 독립을 선포하며 촐라 제국을 부활시켰습니다.

8세기경 촐라 지역은 팔라바 왕국의 지배를 받고 있었지만, 촐라 지역의 토후이자 촐라 왕가의 후예인 비자얄라야가 판디아와 팔라바 사이의 갈등을 이용해 848년에 탄자부르를 점령하고 수도로 삼은 후 팔라바 왕국으로부터 독립을 선포하면서 촐라 왕조가 부활하였으며, 촐라 제국이 형성되었습니다. 이는 3세기부터 이어진 공위기의 끝을 알리는 중요한 사건이었습니다.

885

[아디티야 1세의 팔라바 정복]

아디티야 1세 치하의 촐라 제국은 마두라이의 판디아 왕조를 격파하고 팔라바 왕국을 멸망시키며 톤다이만달람을 점령, 세력을 크게 확장했습니다.

885년 아디티야 1세 치하의 촐라 제국은 팔라바 제국과 함께 마두라이의 판디아 왕조를 격파하고 칸나다 지방의 상당 부분을 점령했으며 서강가 왕조와 혼인 관계를 맺었습니다. 이후 아디티야 1세가 팔라바 왕국을 멸망시키고 톤다이만달람을 점령하면서 촐라의 영토를 크게 확장했습니다.

925

[파란타카 1세의 영토 확장]

아디티야 1세의 아들 파란타카 1세는 스리랑카를 정복하고, 발랄라 전투에서 라슈트라쿠타의 크리슈나 2세를 물리치며 촐라의 위세를 공고히 했습니다.

925년 아디티야 1세의 아들 파란타카 1세는 스리랑카를 정복했습니다. 또한 그는 발랄라 전투에서 라슈트라쿠타의 크리슈나 2세를 물리침으로써 촐라 제국의 군사적 역량을 다시 한번 입증했습니다.

1000

[라자라자 1세의 토지 개혁]

촐라 제국의 전성기를 이끈 라자라자 1세는 제국의 자원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1000년에 대규모 토지 측량을 실시했습니다.

라자라자 1세는 지칠 줄 모르는 정력을 지닌 통치자로서, 자신의 제국을 왕실의 통제 하에 촘촘한 행정망으로 통합함과 동시에 지방 자치를 강화했습니다. 그는 제국의 자원을 효과적으로 정리하기 위해 1000년에 대규모 토지 측량을 실시하여 제국의 내정을 안정화하고 효율적인 세금 징수를 가능하게 했습니다.

1010

[브리하디스와라 사원 완공]

라자라자 1세는 힌두교 지원에 힘쓰며 1010년에 남인도 지역의 대표적인 사원 중 하나인 브리하디스와라 사원을 건설했습니다. 이 사원은 당시 인도 사원 중 가장 크고 높았습니다.

라자라자 1세는 1010년에 오늘날 남인도 지역의 대표적인 사원들 중 하나인 브리하디스와라 사원을 짓는 등 힌두교 지원에 힘을 쏟았습니다. 이 사원은 촐라 건축의 성숙함과 웅장함의 발전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건축물로, 당시 모든 인도 사원 중 가장 크고 높은 규모를 자랑했습니다.

1014

[라젠드라 1세의 즉위]

라자라자 1세의 아들 라젠드라 1세가 촐라 제국의 황제로 즉위하며 촐라 제국의 전성기를 이어받았습니다.

1014년부터 촐라 제국의 황제로 즉위한 라젠드라 1세는 그의 아버지 라자라자 1세의 업적을 계승하며 촐라 제국의 최전성기를 이끌게 됩니다. 그는 이후 광대한 정복 활동을 통해 제국의 영토와 영향력을 더욱 확장시켰습니다.

1017

[라젠드라 1세의 스리랑카 정복]

라젠드라 1세는 스리랑카섬의 아누라다푸라 왕국을 정복하고 국왕 마힌다 5세를 생포하며 스리랑카 전역을 촐라의 지배하에 두었습니다.

1017년, 라젠드라 1세는 스리랑카섬의 아누라다푸라 왕국을 정복한 후 아누라다푸라 국왕 마힌다 5세를 생포했습니다. 이로써 촐라는 스리랑카섬에 대한 지배권을 확고히 하게 됩니다.

1024

[라젠드라 1세의 갠지스강 원정]

라젠드라 1세는 1019년부터 1024년까지 북쪽으로 원정하여 오디샤를 정복하고 벵골의 팔라 제국을 물리치며 갠지스강 유역까지 세력을 확장했습니다.

1019년부터 1024년까지 라젠드라 1세는 북쪽의 오디샤를 정복하고 벵골 지역의 팔라 제국을 물리침으로써 갠지스강 유역까지 진출하는 대규모 원정을 성공적으로 이끌었습니다. 이 원정을 기념하기 위해 그는 '강가이콘다 촐라'(갠지스 정복자 촐라)라는 칭호를 얻었습니다.

1025

[라젠드라 1세의 해양 제국 완성]

라젠드라 1세는 해군을 통해 동남아시아 지역에 진출, 스리위자야 해군을 무찌르며 인도양의 제해권을 장악했습니다. 이는 스리위자야의 쇠퇴를 야기했습니다.

1025년, 라젠드라 1세는 해군을 통해 동남아시아 지역에 진출하여 스리위자야 해군을 무찌르며 인도양 지역의 제해권을 장악했습니다. 당시 기록에 의하면 스리위자야의 수도인 팔렘방을 비롯해 탐브라링가, 케다 등 스리위자야 도시 14곳이 촐라 제국에 의해 점령되거나 약탈당했다고 합니다. 이 원정은 말레이 연대기에도 기록될 정도로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1070

[쿨로퉁가 1세의 즉위]

아티라젠드라 암살 후, 라젠드라 찰루키아(쿨로퉁가 1세)가 촐라 황제로 즉위하며 촐라 제국은 '후기 촐라' 또는 '찰루키아-촐라' 시대로 전환되었습니다.

1070년 비라라젠드라의 아들 아티라젠드라가 내란으로 암살되자, 라젠드라 찰루키아는 쿨로퉁가 1세로서 촐라 황제에 즉위하면서 후기 촐라 또는 찰루키아-촐라 시대를 시작했습니다. 그는 동찰루키아 왕족이었으나 촐라 황실과 혼인 관계를 맺어 촐라 왕위를 계승하게 됩니다.

1075

[벵기 지역 촐라 제국 편입]

쿨로퉁가 1세는 삼촌 비자야디티야 7세의 사망 후 동찰루키아 왕조를 끝내고 벵기 지역을 촐라 제국의 속주로 편입시켰습니다.

쿨로퉁가 1세는 그의 삼촌 비자야디티야 7세와 화해하고 벵기를 평생 통치할 수 있도록 허락했습니다. 1075년 비자야디티야가 죽으면서 동찰루키아 왕조는 끝났고, 벵기는 촐라 제국의 속주가 되어 쿨로퉁가 1세가 아들들을 대리인으로 보내 통치하게 됩니다.

1190

[서찰루키아 왕국 멸망]

쿨로퉁가 3세는 호이살라와 협력하여 1185년부터 1190년까지 서찰루키아와의 일련의 전쟁에서 승리하며 찰루키아 왕국을 최종적으로 해체시켰습니다.

11세기 후반부터 찰루키아 왕국은 이미 해체되기 시작했으며, 쿨로퉁가 3세 지배하의 촐라는 촐라 황제의 사위인 비라 발랄라 2세가 지배하던 호이살라를 지원하며 찰루키아의 해체를 가져오는데 협력했습니다. 1185년부터 1190년까지 소메슈바라 4세와의 일련의 전쟁에서 승리하며 서찰루키아를 물리쳤고, 이로써 이름으로만 존재했던 찰루키아 왕국은 최종적으로 해체되었습니다.

1215

[촐라 제국의 쇠퇴 시작]

1215년~1216년 쿨로퉁가 3세가 마라바르만 순다라 2세에게 패배하면서 촐라 제국의 세력이 쇠퇴하기 시작했으며, 랑카섬에 대한 통제권도 상실했습니다.

쿨로퉁가 3세가 통치할 때까지 촐라 행정과 영토 보전은 1215년까지 안정적이고 번영했지만, 그의 치세에 해당하는 1215~16년에 마라바르만 순다라 2세에게 패배한 후 촐라 세력의 쇠퇴가 시작되었습니다. 그 후 싱할라 세력이 부활하며 랑카섬에 대한 통제권도 상실한 촐라는 랑카섬에서 쫓겨났습니다.

1279

[촐라 왕조의 종말]

1279년, 마지막 촐라 황제 라젠드라 3세가 판디아 왕조의 마라바르만 쿨라세카라 1세에게 패배하며 촐라 제국은 완전히 멸망했습니다.

라젠드라 3세의 마지막 기록 연대는 1279년입니다. 호이살라가 마라바르만 쿨라세카라 1세에 의해 1279년경 칸나누르 쿠팜에서 패주하고 같은 전쟁에서 마지막 촐라 황제 라젠드라 3세가 패주하며 촐라 제국은 완전히 멸망했습니다. 이로써 기원전 3세기부터 존재했던 촐라 왕조는 13세기 말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졌습니다.

1500

[동남아시아에 남은 촐라의 유산]

믈라카 술탄국의 술탄들은 촐라 황제의 후손이라 주장했으며, 오늘날 말레이시아와 필리핀 세부섬에도 촐라의 후예들이 존재했다는 전설이 전해집니다. 이는 촐라의 광대한 영향력을 보여줍니다.

믈라카 술탄국의 술탄들은 말레이 연대기 《세자라 멜라유》에서 자신들이 촐라 황제의 후손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오늘날 말레이시아에는 이름이 촐란 또는 출란으로 끝나는 수많은 제후들이 존재하고 있으며, 필리핀 세부섬에 존재하던 세부 왕국의 라자들도 자신들을 촐라 황가의 후손이라고 여겼습니다. 이는 촐라의 문화적, 정치적 영향력이 동남아시아 지역에 깊이 뿌리내렸음을 시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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