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자야나가라 제국
제국, 옛 국가, 남인도 문명, 힌두 국가
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1:05:43
남인도 중세 힌두 제국 비자야나가라 제국은 1336년부터 1646년까지 존재하며 데칸 지역 무슬림 침략에 맞선 힌두 세력의 정점을 상징합니다. 특히 크리슈나 데바 라야 황제 시기에 최전성기를 누렸으며 문화 예술 경제적으로 번성했습니다. 그러나 1565년 탈리코타 전투의 대패 이후 급격히 쇠퇴하여 1646년 최종 멸망했습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함피 유적이 제국의 영화를 증언하고 있습니다.
1336
[비자야나가라 제국 건국]
남인도 힌두 제국인 비자야나가라 제국이 하리하라 1세와 부카 라야 1세 형제에 의해 설립되었다.
이 제국은 13세기 말 튀르크-페르시아 무슬림의 침략에 맞서 남부 열강들이 통합하려는 시도의 정점으로 부상하며 주목할 만한 강대국으로 성장했다.
1374
[부카 라야 1세의 영토 확장]
하리하라 1세의 후계자인 부카 라야 1세는 아르콧과 마두라이의 술탄들을 격파하고, 서쪽으로는 고아, 북쪽으로는 퉁가바드라와 크리슈나 강 합류 지점까지 영토를 넓히며 '동쪽과 서쪽 해양의 군주'라는 칭호를 획득했다.
1407
[바흐마니 술탄국과의 협약 및 조공 시작]
비자야나가라 제국은 북부의 강자 바흐마니 술탄국과 협약을 맺고 매년 10만 훈, 진주, 코끼리 등의 공물을 바치게 되었다.
이는 제국 역사 내내 지속된 술탄국의 침공의 시작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1417
[바흐마니 술탄국의 침공]
바흐마니 술탄국이 비자야나가라 제국을 침공하여 더 많은 공물을 받아내고자 했다.
이러한 침공은 비자야나가라가 체납한 공물을 받기 위한 명목으로 15세기 내내 이어졌다.
1424
[데바 라야 2세 즉위]
가장 성공적인 상가마 왕조 통치자로 평가받는 데바 라야 2세가 제위를 계승했다.
그는 봉건 영주들을 진압하고 스리랑카와 버마에 대한 지배권을 확립하며 제국의 군사력을 증강시켰다.
당시 인도를 여행한 이탈리아 여행가는 데바 라야 1세를 당대 인도에서 가장 강력한 군주라고 묘사했으며, 데바 라야 2세 역시 강성한 통치를 이어갔다.
1443
[바흐마니 술탄국과의 전쟁 재발]
수년간의 평화 이후 바흐마니 술탄국과의 전쟁이 다시 발발했다.
페르시아 방문객 피리슈타는 데바 라야 2세의 군대 증강을, 페르시아 대사 압두르 라자크는 제국 내부의 반란으로 인한 혼란을 원인으로 주장했다.
1446
[말리카르주나 라야 즉위와 제국 위신 하락]
데바 라야 2세의 맏아들 말리카르주나 라야가 제위를 계승했으나, 가자파티 황제에게 라자흐문드라이 등 여러 지역을 점령당하며 비자야나가라 제국의 위신이 크게 떨어졌다.
비문에는 가자파티 황제가 '카르나타 왕의 양에게 하품을 하는 사자'로 묘사될 정도로 제국의 상황이 좋지 않았다.
1485
[살루바 왕조 건립]
끊임없이 공격해오는 바흐마니 술탄국에 맞서기 위해 군력이 증강되면서 군 지휘관들의 권세가 커졌다.
그중 가장 야심찼던 살루바 나라심하가 반란을 일으켜 상가마 왕조의 제위를 찬탈하고 살루바 왕조를 세웠다.
나라심하는 권력을 장악한 동시에 북부 국경을 방어하여 혼란스러운 제국 내부로 무슬림 세력이 침투하는 것을 막으려 노력했다.
1505
[툴루바 왕조 건립]
또 다른 군사령관인 툴루바 나라사 나야카가 반란을 일으켜 살루바 왕조를 몰아내고 툴루바 왕조를 세웠다.
이는 제국 내 권력 교체가 이어진 불안정한 시기를 보여준다.
1509
[크리슈나 데바 라야 즉위 및 제국 전성기 도래]
툴루바 왕조의 크리슈나 데바 라야가 즉위하면서 비자야나가라 제국은 최전성기를 맞이했다.
그는 무슬림과 힌두교도를 모두 영입하며 군사력을 강화하고 내치를 안정화하여 남인도 통제권을 확고히 했다.
포르투갈 여행자 도밍고 파에스는 크리슈나 데바 라야를 '모든 면에서 완벽한 왕'이라고 묘사하며 제국의 번성함을 증언했다.
1529
1542
[아츄타 데바 라야 사망과 섭정 체제 시작]
아츄타 데바 라야 사망 후, 그의 사촌 사다시바 라야가 새로운 황제로 즉위했지만, 실제 권력은 크리슈나 데바 라야의 양자이자 권력가였던 알리마 라마 라야의 섭정 아래 놓이게 되었다.
1565
[아라비두 왕조 건립 및 천도]
탈리코타 전투에서 알리마 라마 라야가 죽은 이후, 티루말라 데바 라야가 아라비두 왕조를 세우며 새롭게 제위에 올랐다.
그는 수도를 페누콘다로 옮겨 국가의 기틀을 다잡고 제국의 잔존 세력들을 모아 중흥기를 열려 시도했다.
[탈리코타 전투 패배 및 제국 쇠퇴]
제국 북부 술탄국들의 연합군과 탈리코타 전투가 벌어져 비자야나가라 제국은 대패하고 실권자 알리마 라마 라야는 참수당했다.
이는 제국의 세력이 크게 쇠퇴하는 결정적인 전환점이 되었다.
수도 함피는 약탈당해 폐허가 되었다.
비자야나가라군은 수적으로 불리했으며 술탄국 군대는 더 잘 갖춰져 있고 훈련되어 있었다. 구식 포병과 약한 말, 전통 활을 사용한 반면, 술탄국은 튀르크 전문 무장병의 포병, 페르시아 말, 금속 석궁을 사용했다. 전투 중 두 무슬림 장군(길라니 형제)이 배신하여 전세가 역전되었고, 알리마 라마 라야는 붙잡혀 참수당했다. 그의 죽음으로 비자야나가라군은 혼란에 빠져 완전히 패배했고, 술탄국 군대는 함피를 약탈해 오늘날과 같은 폐허로 만들었다.
1572
[티루말라 데바 라야 양위]
티루말라 데바 라야가 제위를 양위하고 제국의 영토를 세 아들에게 나누어 준 뒤, 1578년에 죽을 때까지 힌두교에 귀의한 삶을 살았다.
1614
[비자야나가라 제국 사실상 멸망]
아라비두 왕조의 통치 아래 제국은 계속 무너져 내렸고, 1614년에는 사실상 멸망 상태에 이르렀다.
이 시기에 마이소르 왕국, 케랄디 나야카 왕국 등 남인도 지역의 여러 왕국들이 독립을 되찾았다.
1646
[비자야나가라 제국 최종 멸망]
비자푸르 술탄국의 지속적인 공격으로 비자야나가라 제국은 마침내 1646년에 완전히 멸망했다.
이로써 남인도 역사에서 한 시대를 마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