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무르 제국

이슬람 왕조, 튀르크-몽골 제국, 중앙아시아 국가, 페르시아 문화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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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1:0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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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왕조, 튀르크-몽골 제국, 중앙아시아 국가, 페르시아 문화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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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세기 후반부터 16세기 초까지 존속한 중세 후기 이슬람 왕조. 중앙아시아 이란 등 광범위한 영토를 지배하며 튀르크-몽골 및 페르시아 문화의 황금기를 이끌었다. 시조 티무르의 정복 활동으로 시작되었고 울루그 베그 시대에 티무르 르네상스라 불리는 문화적 전성기를 맞았다. 잦은 내전과 외부 세력의 침입으로 쇠퇴했으나 바부르가 무굴 제국을 건국하여 그 명맥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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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0

[차가타이 칸국 분열]

14세기 초반, 차가타이 칸국 내 유목 생활을 중시하는 세력과 정주화를 강조하는 세력 간의 갈등이 심화되며 칸국이 모굴리스탄 칸국과 서차가타이 칸국으로 양분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 분열은 이후 티무르 제국의 탄생 배경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1336

[티무르의 탄생]

티무르 제국의 시조인 티무르가 오늘날 우즈베키스탄의 샤흐리 삽스인 사마르칸트 인근 케쉬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몽골 제국의 바를라스 부족 출신으로, 훗날 세계를 뒤흔들 위대한 정복자가 됩니다.

1347

[차가타이 칸국 혼란 가중]

카라우나스 부의 아미르 카자간이 카잔 칸을 패배시킨 후 사망시키고 명목상의 칸을 내세워 차가타이 칸국의 실권을 장악했습니다.

이는 칸국의 혼란을 더욱 가중시키는 사건이었습니다.

1348

[모굴리스탄 칸국 성립]

동부 지역의 유력 부족인 두글라트 부를 중심으로 한 '모굴인'들이 투글루크 티무르를 칸으로 추대하며 서차가타이 칸국으로부터 떨어져 나갔습니다.

이로써 차가타이 칸국은 모굴리스탄 칸국(동차가타이 칸국)과 서차가타이 칸국으로 완전히 분열되었습니다.

1358

[서차가타이 칸국의 혼돈과 티무르의 등장]

카라우나스 부의 압둘라가 암살당하며 서차가타이 칸국은 무정부 상태에 돌입했습니다.

이 혼란 속에서 강력한 지도력을 바탕으로 티무르가 역사의 무대에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1370

[티무르 제국 건국]

티무르가 사마르칸트를 중심으로 서차가타이 칸국의 여러 유목 집단을 성공적으로 통합하며 티무르 제국을 건국했습니다.

이는 몽골 제국 서부의 광대한 영토를 재결집하는 위대한 시작이었습니다.

[티무르의 대정복 시대 시작]

제국 건국과 함께 티무르는 1405년까지 광범위한 정복 활동을 펼쳤습니다.

호라산, 페르시아, 이라크, 아제르바이잔을 정복하고 인도, 소아시아, 킵착 초원의 국가들을 속국으로 삼는 등, 과거 몽골 제국의 서부 영역을 거의 재통일하며 역사상 최대 규모의 정복자 중 한 명으로 기록되었습니다.

1405

[위대한 정복자 티무르의 서거]

중국 명나라 원정 도중 티무르가 사망했습니다.

그의 죽음은 제국에 1차 내전이라는 큰 혼란을 가져왔지만, 동시에 티무르가 이룩한 광대한 제국은 그의 후계자들에 의해 잠시 유지될 수 있었습니다.

[티무르 제국의 1차 내전 발발]

위대한 티무르의 갑작스러운 사망 이후, 그의 아들들과 손자들이 제위 계승을 두고 치열한 내전을 벌였습니다.

초기에는 할릴 술탄이 사마르칸트를 장악했으나, 그의 실책과 기근으로 민심을 잃었습니다.

1408

[카라 코윤루의 서부 영토 장악]

카라 코윤루의 수장 카라 유수프가 사르드루드 전투에서 티무르의 셋째 아들 미란 샤를 전사시키고 타브리즈, 아제르바이잔, 이라크를 장악했습니다.

이는 티무르 제국 서부 영토의 상당 부분을 상실하는 큰 타격이었습니다.

1409

[울루그 베그, 문화 부흥의 초석을 다지다]

샤 루흐의 아들 울루그 베그는 트란스옥시아나 총독으로 부임한 이래 과학자, 예술가들을 우대하며 학문과 예술을 적극적으로 장려했습니다.

그의 지원 덕분에 사마르칸트와 헤라트는 동부 이슬람 세계의 최고의 문화 중심지로 성장하는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1420

[샤 루흐, 1차 내전 종식 및 제국 재건]

티무르의 넷째 아들 샤 루흐가 할릴 술탄을 제압하고 1차 내전을 성공적으로 종식시켰습니다.

그는 헤라트를 근거지로 제국의 재건에 착수하며 혼란에 빠졌던 제국에 새로운 안정을 가져왔습니다.

[샤 루흐 치하의 문화적 융성]

샤 루흐의 통치 기간 동안 티무르 제국은 문화적으로 크게 번성했습니다.

그는 예술과 학문을 적극적으로 후원하여 수많은 학자, 예술가, 과학자들이 활동하며 페르시아-튀르크-몽골 문화가 조화된 독특하고 화려한 유산을 남겼습니다.

특히 헤라트와 마슈하드에는 아름다운 건축물들이 세워졌습니다.

1447

[샤 루흐의 서거]

안정적인 통치와 문화적 번영을 이끌었던 샤 루흐가 사망했습니다.

그의 죽음은 제국에 다시금 내전의 그림자를 드리우며, 울루그 베그의 즉위와 2차 내전의 시작을 알렸습니다.

[티무르 제국의 2차 내전 시작]

샤 루흐의 사망과 울루그 베그의 즉위에도 불구하고, 여러 티무르 일족들의 반란이 끊이지 않으며 제국은 다시 한번 내전의 기미를 보였습니다.

이는 제국의 국력을 심각하게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울루그 베그의 제위 계승]

샤 루흐의 사망 이후, 뛰어난 천문학자이자 수학자였던 울루그 베그가 제국의 통치자가 되었습니다.

그의 치세는 '티무르 르네상스'라 불리는 문화적 전성기를 꽃피웠으나, 군주로서의 역량 부족으로 짧은 재위 기간 동안 내란에 시달렸습니다.

1449

[울루그 베그의 비극적인 최후]

재위 2년 만에 울루그 베그는 발흐에서 반란을 일으킨 아들 압둘 라티프에게 붙잡혀 처형당했습니다.

그의 비극적인 죽음은 소련의 유골 조사를 통해 실증되었으며, 제국은 다시금 2차 내전의 소용돌이에 휘말렸습니다.

[울루그 베그 아들의 반역]

울루그 베그의 아들 압둘 라티프가 아버지를 처형하고 스스로 제위에 올랐습니다.

그러나 그 역시 1년 뒤 처형당하며 트란스옥시아나 지역은 극심한 무정부 상태에 빠져들었습니다.

1451

[아부 사이드의 권력 장악]

티무르의 손자인 아부 사이드가 혼란에 빠진 트란스옥시아나를 틈타 우즈베크인들의 지원을 받아 사마르칸트를 장악했습니다.

이는 2차 내전의 향방을 가르는 중요한 전환점이었습니다.

1458

[아부 사이드의 제국 재통일]

아부 사이드가 마침내 헤라트를 점령함으로써 티무르 제국의 2차 내전이 종식되었습니다.

그는 트란스옥시아나와 호라산 지역을 통합하며 쇠퇴하던 제국을 잠시 재건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1459

[아부 사이드의 통치와 제국의 약화]

아부 사이드는 헤라트와 사마르칸트를 동시에 지배하며 제국을 재통일했지만, 외부 세력에 대한 투사력은 약화되었습니다.

우즈베크인들의 침입을 막지 못했고, 아크 코윤루의 성장이 위협으로 다가왔습니다.

1469

[티무르 제국의 남북 분단]

아부 사이드 사망 후 짧은 내전을 거쳐 티무르 제국은 헤라트를 중심으로 한 남부(후세인 바이카라)와 트란스옥시아나의 북부(아부 사이드의 아들들)로 분단되었습니다.

이 시기는 비교적 평화로운 가운데 '티무르 르네상스'가 절정에 달했습니다.

[아부 사이드의 죽음과 제국의 재분열]

아부 사이드가 아크 코윤루와의 전쟁에서 크게 패하고 사망했습니다.

그의 죽음은 티무르 제국에 또 다른 재앙을 가져왔으며, 제국은 다시 남과 북으로 분열되어 '남북조시대'로 진입하게 되었습니다.

[티무르 르네상스의 절정]

티무르 제국의 '남북조시대' 동안, 특히 후세인 바이카라가 통치하던 헤라트에서는 티무르 르네상스가 절정에 달했습니다.

후세인 바이카라와 재상 알리셰르 나보이의 보호 아래 궁정을 중심으로 역대 최고의 화려한 문화가 꽃을 피웠으며, 이는 제국의 마지막 불꽃이었습니다.

1475

[티무르 제국의 급격한 쇠퇴 시작]

몽골-티무르조의 전통적인 분할 상속과 잦은 내전으로 인해 티무르 제국은 15세기 후반부터 급격한 쇠퇴의 길을 걸었습니다.

이는 아크 코윤루와 우즈베크인 등 외부 세력의 침략에 취약해지는 주요 원인이 되었습니다.

1495

[트란스옥시아나의 혼란 가중]

아부 사이드의 아들들이 대부분 사망하면서 트란스옥시아나는 큰 혼란에 빠졌습니다.

이 틈을 노려 북방의 우즈베크 유목민들이 대규모로 침공하기 시작하며, 제국의 몰락을 더욱 가속화했습니다.

1500

[우즈베크 칸국의 중앙아시아 장악]

북방의 강력한 우즈베크 칸 무함마드 샤이바니가 티무르 제국의 핵심 도시인 사마르칸트와 부하라를 점령했습니다.

이는 티무르 제국이 중앙아시아 영토에 대한 통제권을 상실했음을 의미하는 결정적인 사건이었습니다.

1501

[바부르의 좌절과 카불 후퇴]

페르가나 출신의 티무르 왕조 일원인 바부르가 잠시 사마르칸트를 탈환했으나, 곧 무함마드 샤이바니에게 패배했습니다.

그는 결국 중앙아시아를 포기하고 아프가니스탄의 카불로 후퇴하여 새로운 시작을 모색했습니다.

1506

[후세인 바이카라 사망과 헤라트 정권의 혼란]

문화적 전성기를 이끌었던 후세인 바이카라가 사망하자, 그의 두 아들들이 후계자 자리를 두고 내분을 일으켰습니다.

이는 우즈베크족의 위협에 단합하여 맞설 절호의 기회를 상실하게 만들었습니다.

1507

[티무르 제국의 공식적인 멸망]

무함마드 샤이바니가 마침내 티무르 제국의 마지막 주요 거점인 헤라트를 점령했습니다.

이로써 14세기 후반부터 이어진 티무르 제국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1526

[무굴 제국의 탄생]

카불에서 세력을 다진 바부르가 북인도로 진출하여 파니파트 전투에서 델리 술탄조를 격파했습니다.

이 승리는 후일 인도 아대륙 대부분을 지배하게 될 무굴 제국의 위대한 시작이었으며, 티무르 왕조의 명맥을 이어나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1857

[무굴 제국의 종말]

인도 아대륙을 지배했던 무굴 제국이 영국에 의해 폐지되면서, 티무르 제국의 유산은 마침내 역사 속으로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이는 하나의 위대한 왕조가 수백 년의 세월을 거쳐 완전히 막을 내리는 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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