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

중국 왕조, 고대 국가, 통일 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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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1:0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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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왕조, 고대 국가, 통일 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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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는 기원전 202년부터 220년까지 약 400년간 이어진 중국의 통일 왕조다. 고조 유방이 건국했으며 왕망의 신나라에 의해 잠시 단절되었다가 후한으로 재건되었다. 중국 역사상 가장 강대했던 시기 중 하나로 한족의 기원이 되었다. 경제 과학 기술 분야에서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었으며 유교를 통치 이념으로 삼았다. 특히 세계 최초의 종이 제작과 실크로드 개척은 인류 문명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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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 3C

[한나라 건국]

진나라 이후의 통일 왕조 한나라가 고조 유방에 의해 건국되었다.

약 400년간 지속되며 중국 역사상 가장 강대했던 시기 중 하나로, 오늘날 중국의 약 92%를 차지하는 한족의 기원이 된다.

이는 중국 역사에서 첫 번째 황제가 등장한 통일 왕조의 시작을 알리는 중요한 사건이다.

BC 2C

[백등산 전투와 흉노와의 화친]

유라시아 초원지대의 강자인 흉노족이 한나라 군대를 백등산 전투에서 크게 물리쳤다.

이 패배로 한나라는 흉노에게 막대한 전쟁 보상금을 지불하고 공주를 보내는 형태의 굴욕적인 화친 조약을 맺게 된다.

이는 한나라 초기의 대외 관계와 국방 상황을 보여주는 주요 사건이다.

[오초칠국의 난 발생]

제후국들의 자치권이 점차 축소되면서 가장 큰 규모의 반란인 오초칠국의 난이 발발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한나라는 제후국의 크기와 군사력을 더욱 엄격하게 제한하는 법을 제정하고, 왕들은 명목상의 지배자로 전락하며 황제 중심의 중앙집권 체제가 강화되었다.

[무제 즉위 및 흉노 전쟁 시작]

한나라 역사상 가장 강력한 황제로 평가받는 무제가 즉위하며 대외 정책에 큰 변화가 일어났다.

그는 흉노의 지속적인 침입에 맞서 전방위적인 전쟁을 선포하고 약 30년간의 대규모 원정을 시작했다.

이로 인해 흉노는 크게 약화되고 한나라는 영토를 확장하며 강대국으로 발돋움한다.

[장건의 서역 탐험]

외교관 장건이 서역으로 대규모 탐험을 떠나 대완, 강거, 대하 등 다양한 국가들과 접촉했다.

이 탐험은 후일 로마 제국까지 이어지는 세계적인 교역로인 실크로드의 기초를 다진 세계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사건이다.

한나라는 이를 통해 서역과의 교류를 본격화했다.

이 탐험으로 한나라의 비단이 로마에 수출되고 로마의 유리제품이 수입되는 등 동서양의 경제 문화 교류가 시작되었다.

[마읍 매복 작전 실패와 흉노 전쟁 본격화]

흉노 선우 암살을 위한 마읍 매복 작전이 실패한 후, 무제는 흉노 영토에 대규모 병력을 이끌고 공격을 시작했다.

이는 한나라와 흉노 간의 전면적인 전쟁을 알리는 서막이었다.

[흉노 북방 축출 및 경제 정책 변화]

한나라의 곽거병과 위청 장군이 흉노족을 고비 사막 북쪽으로 완전히 축출하며 흉노와의 대규모 전쟁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동시에 무제는 전쟁 비용 마련을 위해 소금, 철 산업을 국영화하고 화폐 제도를 정비하는 등 경제 정책에 큰 변화를 주었다.

이는 중앙 집권적 경제 체제의 시작을 알린다.

[남월국 정복 및 한사군 설치]

한나라는 남월국을 정복하여 오늘날의 광둥, 광시, 베트남 북부까지 세력을 확장했다.

또한 한반도 북부에 현도군과 낙랑군 등 4개의 군을 설치하며 동북아시아 지역으로도 영향력을 확대했다.

이는 한나라의 영토 확장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건이다.

[뎬국 정복]

한나라가 뎬국을 정복하며 중국 남서부 지역으로 영향력을 넓혔다.

BC 1C

[서역도호부 설치]

실크로드 무역로를 보호하고 서역 국가들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해 서역도호부를 설치했다.

이는 한나라가 서역 지역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하고 안정적인 무역 환경을 구축하려는 의지를 보여주는 사건이다.

[흉노의 항복]

오랜 전쟁 끝에 흉노의 호한야 선우가 한나라에 항복하고 속국이 되었다.

이는 흉노족과의 기나긴 전쟁에서 한나라가 최종적인 승리를 거두었음을 의미하며, 한나라의 국방력이 절정에 달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다.

[질지 선우의 죽음]

호한야 선우와 왕권을 다투던 질지 선우가 현재 카자흐스탄 타라즈 지역에서 벌어진 질지 공성전에서 살해당했다.

이로써 흉노족의 분열과 약화가 더욱 심화되었다.

2

[한나라 인구 조사]

전국적인 인구 조사가 실시되어 1,236만여 가구에 5,767만여 명의 인구가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당시 한나라의 번성한 사회상과 행정 역량을 보여주는 구체적인 기록이다.

8

[신나라 건국으로 전한 멸망]

섭정이었던 왕망이 천명을 주장하며 반란을 일으켜 신나라를 건국하면서 전한이 멸망했다.

왕망은 노비제 폐지, 토지 국유화 등 급진적인 개혁 정책을 펼쳤으나 결국 실패로 돌아가면서 한나라의 맥이 잠시 끊기게 된다.

11

[황하 대홍수 발생]

황하의 대홍수가 발생하여 수천 가구의 농가가 사라지고 대다수가 도적단이나 반란에 참여하면서 신나라 사회의 혼란이 가중되었다.

23

[왕망의 죽음과 신나라 멸망]

대홍수로 인한 농민 반란이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반란군이 수도 미앙궁까지 진격하여 왕망을 살해하면서 신나라가 멸망했다.

이는 왕망의 개혁 실패와 사회 혼란이 극에 달했음을 보여주는 사건이다.

25

[광무제의 후한 건국]

광무제 유수가 여러 군주들을 물리치고 낙양을 새로운 수도로 정하여 후한을 건국했다.

이로써 약 400년간 지속될 한 왕조의 두 번째 시대가 시작된다.

광무제는 무너진 왕조를 재건하고 혼란을 수습하며 후한의 기틀을 다진다.

40

[쯩 자매의 난 발생]

베트남에서 쯩 자매가 한나라에 대항해 반란을 일으켰다.

이 반란은 42년부터 43년까지 한나라 장군 마원에 의해 진압되었다.

50

[흉노족의 분열과 남흉노의 한나라 동맹]

흉노족이 남흉노와 북흉노로 갈라졌으며, 남흉노가 한나라에 협력하는 동맹 관계를 맺었다.

89

[북흉노 멸망]

한나라가 남흉노 및 선비족 병력을 이끌고 북흉노를 대규모 공격하여 완전히 멸망시켰다.

이로써 오랜 숙적이었던 흉노족은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지게 된다.

92

[환관 정치 개입 심화]

이 시기부터 환관들의 정치 개입이 점점 심화되고, 외척 세력과의 권력 다툼이 격화되면서 후한은 몰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이는 후한 말기 정치 혼란의 주요 원인이 된다.

97

[감영의 로마 사신 파견 시도]

한나라 장군 감영이 로마 제국과의 관계를 맺기 위해 사신으로 파견되었다.

비록 로마에 도달하지는 못했으나, 이는 한나라가 당시 서방의 강대국인 로마와의 직접적인 교류를 시도했던 세계사적 첫 시도 중 하나로 기록된다.

166

[로마 사절단의 한나라 방문]

로마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보낸 사절단이 후한 환제에게 도착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비록 상인들이었다는 시각도 있으나, 동서양 고대 제국 간의 공식적인 접촉 시도는 주목할 만하다.

167

[당고의 옥 시작]

대장군 두무가 환제를 설득하여 관료들을 풀어주었으나, 환관들이 이들을 반역죄로 몰아 영원히 관직에 나오지 못하게 하면서 '당고의 옥'이 시작되었다.

이는 환관과 관료들 간의 극심한 파벌 싸움이 심화되었음을 보여준다.

184

[황건의 난 및 오두미도 난 발생]

도교와 관련된 대규모 농민 반란인 황건의 난과 오두미도의 난이 전국 각지에서 동시에 발발했다.

이 반란들은 비록 진압되었으나, 한나라 중앙 정부의 통제력을 약화시키고 지방 장군들의 군사력을 강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하여 후한 멸망의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189

[하진 암살 및 환관 학살]

영제 사후 외척 하진이 환관들을 제거하려다 오히려 환관들에게 암살당했다.

이에 원소와 원술 형제가 궁궐을 포위하고 환관 2천여 명을 학살하면서 중앙 정부는 극심한 혼란에 빠졌다.

이 사건은 군벌 시대의 서막을 알리는 중요한 전환점이 된다.

191

[동탁의 낙양 방화 및 장안 천도]

정권을 잡은 동탁에 대항하여 원소 중심의 반 동탁 연합군이 조직되자, 동탁은 낙양에 불을 지르고 장안으로 도망쳐 수도를 옮겼다.

이는 한나라 수도의 황폐화와 중앙 정부의 통제력 상실을 보여주는 사건이다.

192

[동탁 암살]

동탁이 그의 양자 여포에게 암살당했다.

동탁의 죽음은 잠시 혼란을 가중시켰으나, 이후 여러 군벌들이 각자의 세력을 키우는 계기가 되었다.

196

[헌제의 허창 천도]

조조의 설득에 따라 후한 헌제가 수도를 허창으로 옮겼다.

이로써 조조는 헌제를 옹립하여 자신의 정치적 정당성을 확보하고 세력을 더욱 확장할 수 있었다.

200

[관도 대전]

황제를 차지하기 위한 조조와 원소의 대규모 전투인 관도 대전에서 조조가 원소를 크게 이겼다.

이 승리로 조조는 북방의 패권을 장악하며 삼국 시대의 주요 세력으로 부상한다.

208

[적벽 대전]

조조가 남방 통일을 위해 대규모 병력으로 손권, 유비 연합군을 공격했으나 적벽 대전에서 크게 패배했다.

이 패배로 중국은 조조(북), 손권(동), 유비(서)의 세 나라로 나뉘는 삼국 정립 시대로 접어들게 되었다.

220

[조조 사망]

위나라 건국의 기반을 다진 조조가 사망했다.

그의 사망은 아들 조비의 황위 찬탈을 위한 마지막 걸림돌이 제거되었음을 의미했다.

[후한 멸망]

조조의 아들 조비가 후한 헌제로부터 황제의 자리를 강제로 빼앗고 위나라를 건국하면서 후한이 멸망했다.

이로써 약 400년간 이어진 한나라의 통일 왕조 시대가 막을 내리고 삼국 시대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221

[유비의 촉한 건국]

한나라 황족의 후손인 유비가 한중과 파촉 지역에서 촉한을 건국하고 스스로 한소열제로 즉위했다.

비록 천하를 통일하지는 못했으나, 이는 한 왕조의 정통성을 계승하려는 시도로 평가된다.

263

[촉한 멸망 및 한나라 치세 종결]

유비의 아들인 유선이 통치하던 촉한이 위나라에 의해 멸망하면서, 기원전 202년 건국 이래 470여 년간 이어져 온 한나라의 치세가 완전히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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