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나라
고대 왕조, 봉건 국가
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1:05:36
중국 역사상 가장 오래 존속한 왕조 (790년간)입니다. 상나라를 이어 중원을 지배하며 봉건제의 기틀을 마련했습니다. 서주와 동주로 나뉘며 혼란스러운 춘추전국시대를 포괄합니다. 중국 철학의 황금기로 평가받는 제자백가 사상이 꽃피운 시기입니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 천명 사상 등 중화 문명의 근간을 형성했습니다.
BC 1k
[주나라 건국]
상나라의 폭정에 맞서 주 무왕이 45,000여 명의 군대와 300여 개의 전차를 이끌고 목야 전투에서 승리하며 주나라를 건국했습니다.
중국 역사상 가장 오래 존속할 왕조의 시작이었습니다.
본래 상나라의 서부 제후국이었던 주는 주 문왕 시대에 '국'으로서 정체성을 확립했으며, 무왕 사후 주공 단과 성왕의 시대에 통치 체계가 완성되며 봉건제의 기틀을 다졌습니다.
[주공 단의 섭정 및 천명 사상 확립]
어린 성왕을 대신해 숙부 주공 단이 섭정을 하며 권력을 잡자 3명의 왕자들이 반란을 일으켰으나, 주공 단은 이를 효과적으로 진압하고 국가의 기틀을 다졌습니다.
또한 상나라 멸망의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천명' 사상을 도입했습니다.
이 '천명' 사상은 왕이 통치자의 역할을 다하지 못하면 천명이 다른 사람에게 옮겨갈 수 있다는 개념으로, 이후 중국 역사의 중요한 통치 이념이 되었습니다.
BC 8C
[견융의 침략과 서주의 멸망]
미녀 포사에게 빠져 국정을 소홀히 하던 주 유왕이 인근 제후와 견융 연합군의 공격으로 수도 호경이 함락되고 살해당했습니다.
이로써 275년간 이어졌던 서주 시대가 비극적으로 막을 내렸습니다.
유왕은 웃음이 없던 포사를 웃게 하기 위해 거짓 봉화를 올려 제후들을 속이는 것을 즐겼습니다. 결국 진짜 견융이 쳐들어왔을 때 아무도 이를 믿지 않아 지원군이 오지 않았다는 일화가 전해집니다. 유왕 사후 귀족들이 평왕을 옹립하고 수도를 낙읍으로 옮기며 동주 시대를 열었습니다.
[동주 시대의 시작]
수도를 낙읍으로 옮기며 주나라는 동주 시대를 맞이했습니다.
이 시기부터 주 왕실의 권위는 땅에 떨어지고, 지방의 유력한 제후들이 천하의 패권을 다투는 혼란과 격변의 시대가 시작됩니다.
동주는 크게 춘추시대(BC 770~403)와 전국시대(BC 403~221)로 나뉩니다. 주 왕실의 상징성 덕분에 명목상으로는 약 500년간 더 존속할 수 있었습니다.
BC 5C
[제후국의 독립 선언 (전국시대 시작)]
주나라 왕실이 한나라, 초나라, 위나라를 독립적인 국가로 인정하며 왕실의 권위는 더욱 유명무실해졌습니다.
이는 제후들이 더 이상 주나라의 봉신이 아닌 독립적인 존재임을 공식적으로 선언하게 된 계기이자, 본격적인 전국시대의 서막이었습니다.
이후 제후들은 번영과 쇠퇴를 거듭하며 서로를 공격하거나 협력하며 갖가지 사건들을 일으켰고, 주나라는 천자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습니다.
BC 4C
[위 혜왕의 칭왕 선언]
위나라 혜왕이 스스로를 주나라 천자와 동격인 '왕'이라 칭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를 계기로 다른 제후국들도 앞다투어 왕을 자칭하며, 주나라 왕의 권위는 회복 불능의 상태로 추락했습니다.
이제 제후들은 주나라와 자신들이 동등한 국가라고 여기게 되었고, 주나라의 통치력은 완전히 상실되었습니다.
BC 3C
[주나라 멸망]
주나라의 마지막 왕인 난왕이 진나라의 공격으로 살해당하며 790년간 중국을 지배했던 주 왕조가 공식적으로 멸망했습니다.
이는 길고 혼란스러웠던 동주 시대와 전국시대의 종말을 알리는 상징적인 사건이었습니다.
난왕 사후 몇몇 왕족들이 잔존 세력을 다스렸으나, 이마저도 기원전 249년에 진나라에게 완전히 멸망당하며 주나라는 역사 속으로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