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즈텍 제국

고대 국가, 제국, 문명, 연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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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1:0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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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국가, 제국, 문명, 연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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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각동맹으로 시작된 아즈텍 제국은 1428년부터 1521년까지 멕시코를 지배한 강력한 군사 연합입니다. 정복 전쟁으로 영토를 확장하고 전 국민 의무 교육을 시행한 세계 최초의 문명 중 하나였습니다. 다신교 신앙을 가졌으며 공물 수취와 자치권 보장으로 제국을 통치했습니다. 에르난 코르테스의 에스파냐 정복자들에 의해 멸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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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8

[삼각동맹 결성]

테파넥 제국의 폭정에 맞서 테노치티틀란, 텍스코코, 틀라코판 세 도시국가가 힘을 합쳐 삼각동맹을 결성하고, 당시 멕시코 지역을 다스리던 테파넥 제국을 무너뜨렸습니다.

이 동맹은 훗날 아즈텍 제국으로 발전하게 되는 초석이 되었습니다.

테파넥 제국의 왕 테조조목 사망 후, 후계자 분쟁 속에서 막스틀라가 왕위에 올랐고, 그는 테노치티틀란의 지배자 치말포포카를 암살하는 등 폭정을 일삼았습니다. 이에 테노치티틀란, 텍스코코, 틀라코판이 연합하여 막스틀라를 상대로 전쟁을 벌였고, 114일간의 포위 끝에 1428년 아스카포찰코를 멸망시켰습니다. 이후 삼각동맹의 지도자 이츠코아틀은 아즈텍인들의 노예 시절 기록들을 불태우고, 아즈텍인들이 실제보다 더 주도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역사를 다시 썼습니다.

1440

[몬테수마 1세 즉위와 제국 강화]

아즈텍 제국의 황제로 즉위한 몬테수마 1세는 제국의 영향력과 국력을 크게 신장시켰습니다.

조세 제도를 개혁하고, 정복지에 감찰관을 파견하여 직접 세금을 걷었으며, 반란 세력 진압을 위해 왕조 교체나 총독 파견 등 강력한 통치를 펼쳤습니다.

몬테수마 1세는 제국 주변 소규모 도시의 왕들을 제국에 협조적인 인물로 교체했습니다. 특히 귀족과 평민을 분리하고, 간음 및 범죄에 대한 형벌을 명문화하는 새 법령을 발표했습니다. 또한 종교적 색채가 강한 학교와 평민을 위한 '텔포크칼리', 귀족을 위한 '칼메칵' 등 의무 교육 제도를 마련했습니다. 특히 칼메칵은 재능있는 평민도 입학하여 심지어 왕의 자리에 오를 수 있게 한, 세계 그 어디서도 찾아보기 힘들었던 전 국민 의무 교육 시스템이었습니다. 1450~1454년 대기근 이후 '꽃의 전쟁'이라는 인신공양용 포로 확보를 위한 상징적인 전쟁 풍습을 대대적인 행사로 자리매김하게 했습니다.

1473

[틀라텔롤코 반란 진압]

멕시코의 상업 중심지인 틀라텔롤코가 테노치티틀란에 대항하여 쿠데타를 일으켰으나, 악사야카틀 황제에 의해 진압당했습니다.

틀라텔롤코는 자치권을 빼앗겼지만, 상인 보호 역할은 유지했습니다.

틀라텔롤코는 정복 전쟁에서 얻은 전리품 덕분에 부유해졌음에도 테노치티틀란의 지배를 원치 않아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악사야카틀은 반란을 진압하고 서부와 북서부 지역으로 전쟁을 확대하려 했으나, 타라스카족에게 패배하며 실패했습니다. 악사야카틀의 후계자인 티속도 전쟁을 이어갔지만, 1486년 멕시코 계곡에서 사망했습니다.

1486

[아우이소틀의 잔혹한 제국 확장]

뛰어난 명성만큼이나 악명 높은 학살의 대가로 알려진 아우이소틀이 8대 황제로 즉위했습니다.

그는 즉위 후 반란국들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대신전 완공식에서 대규모 인신공양과 식인 행위를 벌이는 등 상상하기조차 힘든 잔혹한 제식을 치렀습니다.

그는 꾸준한 정복 전쟁으로 태평양 연안 지방과 오하카 지방을 점령하며 제국의 국경을 확장했습니다.

아우이소틀은 남부 열대지방에 식민지를 두어 카카오 농장을 개발하고, 타라스카족 경계에 보초를 세웠습니다. 1491년~1495년 태평양 연안 지방을 점령했으며, 몬테수마 1세부터 시작된 오하카 지방 정복 전쟁에서도 승리했습니다. 1500년 소코누스코 원정을 단독으로 성공시켰으나, 동맹국들의 비협조로 더 이상의 영토 확장은 중단되었습니다. 그의 통치 기간 중 멕시코 계곡은 번영했고, 인구 증가에 따라 대규모 관개 공사와 도시 재건축을 통해 홍수로 무너졌던 테노치티틀란을 완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단장했습니다.

1502

[몬테수마 2세 즉위와 제국의 위기]

아즈텍 제국의 9대 황제로 즉위한 몬테수마 2세는 제국의 영토를 오늘날 온두라스와 니카라과까지 뻗어 나가게 하며 역사상 최대 판도를 이루었습니다.

하지만 종속 부족들에게 과도한 제물과 조공을 요구하여 내부적인 불만을 키웠고, 스페인 정복자 에르난 코르테스의 침공 시기에 제국을 통치했습니다.

몬테수마 2세는 숙부 아우이소틀의 뒤를 이어 황제가 되었으며, 우이칠로포치틀리 신앙에 깊이 영향을 받아 숙명론적 태도를 보였습니다. 그는 언젠가 턱수염을 가진 백인 신 케찰코아틀이 돌아올 것이라는 예언에 대한 두려움과 기대를 동시에 가졌습니다. 코르테스를 매수하려 했으나 실패했고, 그를 수도 테노치티틀란으로 유인했으나 오히려 자신이 포로가 되었습니다. 황제가 포로로 잡히자 백성들은 그에게 등을 돌렸습니다.

1520

[몬테수마 2세의 비극적인 최후]

에스파냐군의 포로가 된 몬테수마 2세는 백성들을 설득하려다 돌과 화살에 맞아 사흘 뒤 사망했습니다.

스페인 기록에 따르면 백성들의 공격으로 사망한 것이지만, 아즈텍인들은 스페인인들이 황제를 죽였다고 여겼습니다.

몬테수마 2세는 코르테스 일행이 도시를 포위당하자 아즈텍 백성들에게 스페인군과 협력할 것을 설득하기 위해 나섰으나, 격분한 군중의 돌과 화살에 맞아 치명상을 입고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의 죽음은 이후 스페인군이 테노치티틀란을 탈출하려다 대패한 '슬픔의 밤' 사건으로 이어지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슬픔의 밤: 스페인군의 대패]

몬테수마 2세 사망 후, 스페인 정복자 코르테스 일행이 테노치티틀란을 탈출하려다 아즈텍군의 맹공격을 받아 거의 대부분 사망하고 무기를 대거 탈취당했습니다.

이 사건은 스페인군에게 '슬픔의 밤'(La Noche Triste)으로 기억되는 치욕적인 대패였습니다.

코르테스는 자신의 부관 알바라도가 봄 축제 중 아즈텍 귀족 1만 명을 학살한 사건으로 인해 도시 분위기가 격앙되자 탈출을 시도했습니다. 그러나 아즈텍인들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혀 대부분의 병력을 잃고, 소수의 군마와 함께 간신히 탈출했습니다. 이후 오툼바 전투에서 기적적인 승리를 거두어 동맹국 틀락스칼라까지 도달했습니다.

[치명적인 천연두의 확산]

스페인 정복자들에 의해 아메리카 대륙으로 유입된 치명적인 천연두가 아즈텍 제국에 창궐하여 수많은 아즈텍인들이 사망했습니다.

심지어 황제마저 목숨을 잃을 정도로 전염병은 제국에 엄청난 타격을 주었습니다.

천연두는 아즈텍인들의 저항력을 크게 약화시키는 결정적인 요인이 되었고, 이로 인해 마지막 황제인 쿠아우테목이 즉위하게 되었습니다. 쿠아우테목은 몬테수마의 직계도 아니었고, 몬테수마의 자식들을 죽여 많은 귀족들의 반감을 샀습니다.

1521

[아즈텍 제국의 최종 멸망]

스페인 정복자 에르난 코르테스 군대와 그들의 동맹인 원주민 부족들의 연합군에 의해 아즈텍 제국의 수도 테노치티틀란이 함락되며 아즈텍 제국이 완전히 멸망했습니다.

마지막 황제 쿠아우테목은 최후의 항전을 시도했으나 역부족이었습니다.

쿠아우테목은 모든 국경 수비대를 불러들이고 테노치티틀란으로 가는 길목을 파괴하는 등 최후의 항전 의지를 보였습니다. 그러나 텍스코코 호수를 관장하던 텍스코코가 코르테스에 항복하고 군대를 지원하면서 상황은 악화되었습니다. 결국 아즈텍 제국은 1521년 8월 13일 항복하고, 테노치티틀란은 점령당했습니다. 스페인인들이 원주민을 쉽게 이긴 주요 요인은 총과 대포에 대한 공포심, 말과 군견 등 미지의 동물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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