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드루 카네기
철강왕, 사업가, 자선가, 기업인
최근 수정 시각 : 2025-10-18- 22:24:56
앤드루 카네기는 스코틀랜드에서 태어나 가난을 딛고 미국 철강 산업을 제패한 전설적인 철강왕입니다. 평생 축적한 막대한 부의 90% 이상을 사회에 환원하며 부의 복음 철학을 몸소 실천한 위대한 자선가로 평가받습니다. 그는 미국 전역에 수천 개의 공공도서관을 건립하고 카네기 멜런 대학교 등 세계적인 교육·문화 기관을 설립하여 지식 확산과 인류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했습니다. 역사상 가장 큰 부를 축적하고 이를 아낌없이 나눈 인물로 오늘날까지도 기부와 사회 공헌의 상징으로 남아있습니다.
1835
[앤드루 카네기, 스코틀랜드에서 태어나다]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던 '철강왕' 앤드루 카네기가 스코틀랜드 던펌린의 귀족 가문 후예로 태어났습니다.
그의 일생은 인류 역사상 가장 큰 부를 축적하고 나누는 이야기로 기억됩니다.
스코틀랜드 파이프 던펌린에서 태어난 카네기는 이후 미국으로 이주하여 철강 산업의 거물이 됩니다.
1848
[가난을 피해 미국 피츠버그로 이주]
어머니의 구멍가게 운영에도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카네기 가족은 새로운 기회를 찾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피츠버그로 삶의 터전을 옮깁니다.
이는 훗날 '철강왕'의 기반이 되는 중요한 결정이었습니다.
가난으로 스코틀랜드에서 어려움을 겪던 카네기 가족이 더 나은 삶을 찾아 미국 피츠버그로 이주합니다.
1853
[펜실베이니아 철도회사 취직, 사업가 잠재력 발현]
전보배달원, 전신기사 등 여러 직업을 전전하던 앤드루 카네기가 펜실베이니아 철도회사에 취직하며 사업가로서의 잠재력을 깨우기 시작합니다.
이는 그가 막대한 부를 쌓는 첫걸음이 됩니다.
여러 직업을 거친 후 앤드루 카네기가 펜실베이니아 철도회사에 입사하여 본격적인 사회생활을 시작합니다.
1865
[침대차·유정사업 투자로 막대한 부 축적 시작]
남북전쟁에 종군했던 카네기는 펜실베이니아 철도회사 근무를 마친 후, 장거리 여행자를 위한 침대차와 유정사업 등에 과감히 투자하며 사업가로서의 역량을 폭발시킵니다.
이 시기 그는 엄청난 부를 축적하기 시작합니다.
펜실베이니아 철도회사에서 퇴사한 앤드루 카네기는 침대차와 유정사업에 투자하며 큰 부를 벌기 시작합니다. 이로써 그는 단순한 직장인이 아닌 사업가로서의 길을 걷게 됩니다.
1892
['철강왕'의 탄생, 카네기철강회사 설립]
카네기가 마침내 자신의 이름을 건 '카네기철강회사'를 설립하며 '철강왕'으로서의 위엄을 드러냅니다.
그의 회사는 훗날 세계적인 철강회사 US 스틸의 모태가 됩니다.
앤드루 카네기가 카네기철강회사를 설립합니다. 이 회사는 이후 카네기회사로 개칭되며 그의 철강 제국을 상징하는 핵심 사업체가 됩니다.
1902
[천문학적 기부, 2,500개 이상 도서관 건립의 시작]
카네기가 당시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천문학적인 금액인 2,500만 달러를 기부하며 워싱턴 카네기협회를 설립합니다.
그의 기부는 미국 전역에 무려 2,500개 이상의 공공도서관을 짓는 초석이 되었으며, 지식과 교육을 통한 사회 환원의 상징으로 남았습니다.
앤드루 카네기가 2,500만 달러를 기부하여 워싱턴 카네기협회를 설립, 공공도서관 건립을 적극 지원합니다. 이는 그의 자선 활동의 중요한 시작점이 됩니다. 그는 뉴욕에 900만 달러를 기부하여 공공도서관을 세운 것을 시작으로 전 세계에 2,509개의 도서관을 지었습니다.
1919
['부의 복음'을 실천한 철강왕, 영면하다]
사업 일선에서 은퇴한 후 18년간 자선사업에 몰두하며 평생 모은 재산의 90% 가량인 3억 5천만 달러를 사회에 환원한 '철강왕' 앤드루 카네기가 8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납니다.
그는 부의 대물림을 혐오하며, '부의 복음' 철학을 몸소 실천한 진정한 자선가로 역사에 기록되었습니다.
앤드루 카네기가 기관지 폐렴으로 사망합니다. 그는 사망 전까지 카네기회관, 카네기공과대학, 카네기교육진흥재단 등 교육·문화 분야에 3억 달러 이상을 기증했으며, 국제사법재판소 건물인 평화궁을 짓고 카네기 멜런 대학교를 설립하는 등 전 세계적으로 막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는 '많은 유산은 의타심과 나약함을 유발하고, 비창조적인 삶을 살게 한다'는 신념으로 재산의 대부분을 사회에 환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