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셰익스피어
극작가, 시인, 문학가
최근 수정 시각 : 2025-10-19- 03:07:49
• 영국 최고의 극작가이자 시인으로 평가받는 인류 문학의 거장. • 《로미오와 줄리엣》 《햄릿》 등 인간 내면을 통찰한 걸작 희곡을 다수 집필. • 대학 교육 없이도 탁월한 통찰력과 언어 구사 능력으로 당대 최고의 명성을 누림. • 그의 작품은 현대 영어의 풍부한 표현력에 크게 기여했으며 시대를 초월한 문학적 유산으로 자리매김. • 잉글랜드는 넘길 수 있어도 셰익스피어는 못 넘긴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압도적인 위상을 자랑.
1564
[셰익스피어 탄생 (세례)]
잉글랜드 스트랫퍼드어폰에이번에서 비교적 유복한 상인의 아들로 태어났다.
정확한 탄생일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날 세례를 받았다.
8남매 중 셋째이자 맏아들로 태어났으며, 아버지는 유복한 상인이자 읍장으로, 풍족한 소년 시절을 보냈다. 당시 잉글랜드는 율리우스력을 사용하고 있었다.
1577
주로 성경과 고전을 통해 읽고 쓰는 법을 배웠고, 라틴어 격언도 암송했다. 문법학교에서는 문법, 논리학, 수사학, 문학 등을 배웠으며, 특히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가 상상력의 원천이 되었다. 대학 교육은 받지 못했지만, 타고난 언어 구사 능력과 무대 예술 감각, 인간에 대한 심오한 통찰력으로 위대한 작가가 될 기반을 다졌다.
1582
다음 날인 11월 28일, 해서웨이의 두 이웃이 결혼에 아무런 장애 요인이 없음을 보증하는 보증서를 보냈다.
1583
1585
[쌍둥이 출산 후 고향 떠남 (유랑기)]
쌍둥이 햄닛과 주디스를 얻은 후 고향을 떠나 약 7~8년간 행적이 불분명한 유랑기를 보냈다.
이 유랑기 동안의 행적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아 '잃어버린 시기(lost years)'로 불리기도 한다.
1590
[런던 정착 및 극작가 활동 시작]
수도 런던에 도착하여 본격적인 극작가 활동을 시작했다.
1592년경에는 이미 유명한 극작가로 언급되었다.
엘리자베스 여왕 통치 시기 런던은 인구가 붐비고 활기 넘치는 도시였으며, 특히 대중 여흥을 위한 연극이 빈번히 열려 셰익스피어가 성장하는 데 기반이 되었다. 동시대 극작가 로버트 그린은 그를 '대학도 안 나온 주제에' 연극을 양산한다며 비난하기도 했다.
1593
[시인으로 명성, 궁내부장관 극단 전속 작가]
페스트 유행으로 극장들이 문을 닫자, 시인으로서의 재능을 살려 장시 《비너스와 아도니스》를 발표하며 명성을 얻었다.
이후 런던 연극계 양대산맥 중 하나인 '궁내부장관 극단'의 전속 극작가가 되었다.
이듬해인 1594년에는 장시 《루크리스》를 발표했다. 이 시들은 통제되지 않는 정욕으로 인한 죄와 도덕적 혼란을 다루었으며, 셰익스피어 생전에 여러 번 재출간될 정도로 인기를 얻었다. 이 극단은 1599년 템스강 남쪽에 '글로브 극장'을 신축했고, 1603년 엘리자베스 1세 승하 후 제임스 1세 즉위와 함께 '국왕 극단'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1595
[《한여름 밤의 꿈》 상연 및 극작가로서 성장]
낭만 희극 《한여름 밤의 꿈》을 상연하며 호평을 받아 습작기를 벗어나 본격적인 성장기에 진입했다.
이 기간 동안 《뜻대로 하세요》, 《12야》, 《베니스의 상인》 등 낭만희극과 《헨리 4세》, 《줄리어스 시저》 등 역사극, 그리고 첫 비극 《로미오와 줄리엣》을 상연하며 비극, 희극, 사극이라는 모든 장르에서 탁월함을 인정받아 명성을 쌓았다.
1601
[4대 비극 포함 위대한 걸작들 집필 시작]
《햄릿》, 《오셀로》, 《리어 왕》, 《맥베스》 등 인류 고전으로 남을 '4대 비극'을 포함한 위대한 작품들을 집중적으로 창작하며 원숙기에 돌입했다.
이 시기 작품들은 깊은 인생 통찰과 걸출한 등장인물 창조를 보여주며 셰익스피어를 세계 문학사에서 불후의 명성을 지닌 작가로 만들었다. 비극 외에도 음울한 분위기의 '다크 코미디'와 로마 시대를 배경으로 한 비극 《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 등을 집필했다.
1609
[《셰익스피어의 소네트》 출간]
셰익스피어의 비희곡 작품을 담은 마지막 책이자 그의 시적 재능을 보여주는 《셰익스피어의 소네트》가 출간되었다.
이 책은 사랑을 주제로 한 총 154편의 14행시(소네트)를 담고 있다. 생전에 출판된 그의 연극 작품이 아닌 유일한 시집으로 평가받는다.
1610
당시에는 극작가들이 작품 활동을 그만두고 완전히 은퇴하는 일이 보기 드물었으며, 말년에도 런던을 계속 방문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1612년에는 법정에 증인으로 출석하기도 했다.
1613
이 시기 동안 대중의 감성적인 기호에 부합하는 비희극인 《심벨린》, 《겨울밤 이야기》, 《폭풍우》 등을 상연했다. 특히 《폭풍우》는 셰익스피어의 달관된 인생관을 잘 보여주는 수작으로, 그의 고별사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1616
고향의 성 트리니티 교회에 안장되었으며, 그의 흉상 아래에는 '판단은 네스터와 같고, 천재는 소크라테스와 같고, 예술은 버질과 같은 사람. 대지는 그를 덮고, 사람들은 통곡하고, 올림포스는 그를 소유한다'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맏딸 수재나는 셰익스피어의 부동산을 물려받았고, 직계 혈통은 1670년 수재나의 외동딸 엘리자베스가 자녀 없이 사망하면서 끊기게 되었다.
1623
[희곡 전집 《퍼스트 폴리오》 출간]
셰익스피어 사망 후, 그의 희곡 전집인 《퍼스트 폴리오》(First Folio)가 극단 동료들의 노력으로 출간되었다.
이 전집에는 셰익스피어의 희곡 36편이 실려 있으며, 희극, 사극, 비극으로 분류되어 있다. 이 출판물은 오늘날 셰익스피어 연구에 있어 매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