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프리 초서
작가, 시인, 관료, 외교관, 철학자
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1:05:16
영시의 아버지로 불리는 중세 영문학의 거장입니다. 프랑스어나 라틴어가 아닌 자국어 영어로 작품을 쓴 최초의 작가 중 한 명으로 문학사에 새로운 지평을 열었습니다. 대표작인 미완성 설화집 캔터베리 이야기를 통해 당대 사회의 다양한 인간 군상을 생생하게 묘사하며 시대를 뛰어넘는 통찰력을 보여주었습니다.
1343
[제프리 초서의 탄생]
부유한 포도주 상인의 아들로 잉글랜드 런던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이름 '초서'는 '제화공'을 뜻하는 프랑스어에서 유래했습니다.
1357
[귀족 사회에 첫발을 내딛다]
아버지의 주선으로 얼스터 백작 부인 엘리자베스 드 버러의 시동이 되었습니다.
이로써 그의 이름이 공식 기록에 처음으로 등장하며 귀족 사회에 발을 들여놓았습니다.
1359
[백년 전쟁 참전]
백년 전쟁의 일환으로 에드워드 3세의 프랑스 침공에 라이오닐 앤트워프 공작과 함께 영국군 일원으로 참전했습니다.
이는 그의 첫 군사 경험이었습니다.
1360
[국왕이 몸값을 낸 전쟁 포로]
프랑스 랭스 포위공격 중 전쟁 포로로 붙잡혔지만, 영국 국왕 에드워드 3세가 직접 몸값 16파운드를 지불하여 석방되었습니다.
이는 국왕이 그의 가치를 높이 평가했음을 보여줍니다.
1366
[왕실과의 인연을 맺어주다]
필리파 로이엇과 결혼했습니다.
그의 아내는 여왕의 시녀였으며, 이 결혼을 통해 초서는 왕실과의 유대를 더욱 공고히 했습니다.
1387
[불멸의 명작 《캔터베리 이야기》 집필 시작]
미완성으로 남았음에도 영문학의 최고 걸작 중 하나로 손꼽히는 《캔터베리 이야기》의 집필을 시작했습니다.
이 작품은 다양한 순례자들의 이야기를 통해 당시 영국의 사회상과 인간 군상을 생생하게 그려냈습니다.
1400
[영국의 위대한 시인, 삶을 마치다]
잉글랜드 런던의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56세 또는 5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