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스쿠 다 가마
탐험가, 항해사, 부왕, 발견자
최근 수정 시각 : 2025-10-18- 02:14:38
• 유럽인 최초로 대서양과 아프리카를 거쳐 인도로 가는 해상 항로를 개척한 위대한 탐험가입니다. • 포르투갈의 동방 무역 시대를 열어 유럽 경제 판도를 바꾼 대항해시대의 핵심 인물입니다. • 뛰어난 항해술과 대담함으로 미지의 바다를 정복하며 세계 역사의 흐름을 바꿨습니다. • 다만 점령지에서 자행한 잔혹한 행위로 인해 식민주의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인물입니다.
- 대항해시대의 개척자, 바스쿠 다 가마 탄생
- 대항해시대의 개척자, 바스쿠 다 가마 탄생
- 세계를 바꿀 위대한 항해, 리스본을 떠나다
- 대서양 우회 항로 선택, 미지의 바다를 가르다
- 희망봉을 돌아 새로운 세계의 문턱에 서다
- 말린디에서 인도 항로 안내자 만나다
- 대망의 인도 항로 개척 성공! 유럽인 최초
- 몬순의 시련, 형의 죽음과 배의 희생
- 영웅의 귀환, 국왕의 열렬한 환영
- 복수와 교역을 위한 제2차 대규모 원정 시작
- 인도 상륙, 공포로 물든 응징의 시작
- 이슬람 순례선 미리호 학살, 피로 물든 바다
- 캘리컷에 대한 무차별 함포 사격 감행
- 막대한 향신료와 함께 영웅의 귀환
- 인도 부왕으로 세 번째 원정, 마지막 임무
- 위대한 탐험가의 쓸쓸한 최후, 코친에서 영면하다
1460
[대항해시대의 개척자, 바스쿠 다 가마 탄생]
포르투갈 남서부 시느스에서 지역 사령관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의 어린 시절은 베일에 싸여 있지만, 일찍이 수학과 항해술을 배우고 산티아고 기사단에 입단하며 미래의 위대한 항해사로서 기틀을 다졌습니다.
1469
[대항해시대의 개척자, 바스쿠 다 가마 탄생]
포르투갈 남서부 시느스에서 지역 사령관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의 어린 시절은 베일에 싸여 있지만, 일찍이 수학과 항해술을 배우고 산티아고 기사단에 입단하며 미래의 위대한 항해사로서 기틀을 다졌습니다.
1480
[미래를 위한 첫걸음, 기사단 입단]
젊은 다 가마는 주앙 왕세자(훗날 주앙 2세)가 단장으로 있던 산티아고 기사단에 입단하며 군사적 경험과 조직력을 익히게 됩니다.
이는 훗날 대규모 원정을 이끄는 데 중요한 자산이 됩니다.
1492
[프랑스 약탈선 사건 해결, 국왕의 신임 얻다]
프랑스 선박이 포르투갈 선박을 약탈하는 분쟁이 발생하자, 다 가마는 국왕 주앙 2세의 명을 받아 알가르브로 급파됩니다.
그는 프랑스 선박을 억류하는 기지로 문제를 해결하며 국왕의 깊은 신임을 얻었고, 이는 그의 미래를 밝히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1497
[세계를 바꿀 위대한 항해, 리스본을 떠나다]
인도 항로 개척이라는 포르투갈의 숙원을 이루기 위해, 바스쿠 다 가마는 마누엘 1세 국왕의 명을 받아 4척의 함선과 170명의 선원을 이끌고 리스본 벨렝항을 출발합니다.
약 80년 전 엔히크 항해왕자가 대서양 탐사를 시작한 이래 최고로 염원했던 목표를 향한 인류 역사상 가장 중대한 항해 중 하나였습니다.
항해 전날 밤, 다 가마와 선원들은 산타 마리아 성당에서 기도로 밤을 새웠습니다. 그의 함대는 기함인 상 가브리엘호를 포함해 상 라파엘호, 베히우호, 수송선으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항해의 첫 기착지, 카나리아 제도]
리스본을 떠난 다 가마 함대는 항해의 첫 경유지로 카나리아 제도에 도착했습니다.
이곳에서 잠시 숨을 고른 후, 목적지인 인도를 향한 기나긴 여정을 계속 이어갔습니다.
[케이프베르데 제도에서 중간 보급]
케이프베르데 제도에 도착한 함대는 중간 보급을 받고 항해를 위한 재정비를 마쳤습니다.
이후 아프리카 연안을 벗어나 대서양 중간 지대로 크게 우회하는 과감한 항로를 선택하며, 맞바람과 폭풍을 피하려는 전략적 움직임을 보였습니다.
[대서양 우회 항로 선택, 미지의 바다를 가르다]
케이프베르데 제도를 떠난 함대는 바르톨로뮤 디아스의 조언에 따라 시에라리온 앞바다에서 대서양 중간 지대로 대폭 우회하는 항로를 택했습니다.
이는 기니만의 무풍지대와 적도 이남의 무역풍을 피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으로, 약 3개월간 육지에서 9600km 떨어진 망망대해를 항해하는 위험천만한 여정이었습니다.
[희망봉을 돌아 새로운 세계의 문턱에 서다]
90여 일간의 대서양 횡단 끝에 다 가마 함대는 마침내 희망봉을 회항하는 데 성공합니다.
이는 인도로 향하는 항로가 코앞에 다가왔음을 의미하는 역사적인 순간이었습니다.
[디아스도 포기했던 강을 넘어서다]
바르톨로뮤 디아스가 배를 돌렸던 그레이트 피시 강을 통과하며 다 가마 함대는 미지의 동아프리카 연안으로 진입했습니다.
이는 선배 항해사의 한계를 넘어서는 중요한 진전이었습니다.
1498
[모잠비크 입항, 위장과 탈출의 연속]
모잠비크에 입항한 다 가마 일행은 아랍인들의 적대를 피하기 위해 무슬림 행세를 하며 술탄을 알현했습니다.
그러나 보잘것없는 선물과 이내 드러난 정체로 인해 지역민들의 의심을 사게 되었고, 결국 3월 29일 모잠비크에서 도망치듯 빠져나와야만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수송선을 잃는 피해를 입었습니다.
[몸바사의 적대적 분위기, 신속한 철수]
모잠비크를 떠난 함대는 몸바사에 입항했지만, 그곳 역시 적대적인 분위기였습니다.
며칠 머무르지 못하고 신속하게 그곳을 떠나야 했습니다.
[말린디에서 인도 항로 안내자 만나다]
몸바사와 분쟁 중이던 말린디는 포르투갈인들에게 우호적이었습니다.
다 가마는 이곳에서 인도 남서 해안의 캘리컷까지 원정을 안내할 유능한 항해사를 고용하는 데 성공합니다.
일부 기록에 따르면 이 항해사는 유명한 아랍 항해자 이븐 마지드였다고 전해집니다.
[인도를 향한 마지막 여정의 시작]
새로운 항해사와 함께 다 가마 일행은 말린디를 떠나 마침내 인도를 향한 마지막 여정을 시작했습니다.
긴 항해의 끝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습니다.
[대망의 인도 항로 개척 성공! 유럽인 최초]
리스본을 떠난 지 316일 만에, 다 가마의 원정대는 마침내 인도의 번성한 무역항 캘리컷에 도착했습니다! 이는 유럽인이 대서양과 아프리카 남해안을 거쳐 인도까지 해상으로 항해한 '세계 최초'의 역사적인 순간이었습니다.
엔히크 항해왕자의 염원이었던 인도 항로가 80년 만에 그의 손으로 개척된 것입니다.
이로써 포르투갈은 동방 무역의 새로운 길을 열고 유럽과 인도 간 직접 교역의 시대를 열었습니다.
[이슬람 상인의 방해 속, 귀국길에 오르다]
캘리컷에 도착한 다 가마는 힌두 통치자 자모린에게 무역을 청했지만, 현지 상권을 장악한 이슬람 상인들의 거센 방해에 부딪혔습니다.
포르투갈에서 가져온 상품들은 현지인들의 흥미를 끌지 못했고, 적대적인 분위기 속에 통상 조약 체결은 좌절되었습니다.
결국 다 가마는 향신료를 구입한 후 도착한 지 3개월 만에 서둘러 귀국 길에 올랐습니다.
1499
[몬순의 시련, 형의 죽음과 배의 희생]
귀국 항해는 순탄치 않았습니다.
몬순의 영향으로 인도양 횡단에만 132일이 소요되었고, 선원의 절반이 사망하고 괴혈병에 시달렸습니다.
인원 부족으로 3척의 배를 유지할 수 없게 되자, 다 가마는 상 라파엘호를 침몰시키고 인원을 재배치했습니다.
귀국 중 아조레스 제도에 하선하여 병든 친형 파울루를 간호했으나, 끝내 파울루는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힘든 여정이었습니다.
[함대의 일부 귀환, 희소식을 전하다]
니콜라우 코엘류 선장의 베히우호가 먼저 리스본에 도착하여 귀환 소식을 전했습니다.
이는 길고 힘들었던 원정의 성공을 알리는 첫 신호탄이었습니다.
[영웅의 귀환, 국왕의 열렬한 환영]
마침내 바스쿠 다 가마가 리스본으로 귀환했습니다.
국왕 마누엘 1세는 성대한 축하연을 열어 그의 귀국을 거국적으로 환영했으며, 그에게 '돈(Don)'이라는 경칭과 '인도양의 제독(Admiral of the Indian Seas)'이라는 명예로운 칭호를 하사했습니다.
비록 4척 중 2척만 돌아왔고 많은 희생이 있었지만, 이 항해는 투자 원금의 60배에 달하는 막대한 배당금을 안겨주며 포르투갈에 엄청난 경제적 성공을 가져왔습니다.
1502
[복수와 교역을 위한 제2차 대규모 원정 시작]
이전 원정의 실패와 캘리컷 교역소 습격 사건에 대한 응징을 위해, 바스쿠 다 가마는 1500명의 인원과 20척의 중무장 선박으로 구성된 대규모 제2차 원정대(선발대 15척)를 이끌고 리스본을 출발했습니다.
이번 원정은 무력을 동원해서라도 인도 서안 지역의 도시 국가들과 무역 협정을 체결하려는 목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후발대 리스본 출발, 함대 전력 보강]
선발대가 떠난 후, 나머지 5척의 함대가 리스본을 출발하여 바스쿠 다 가마의 주력 함대와 합류하기 위해 인도로 향했습니다.
이는 포르투갈의 강력한 의지를 보여주는 대규모 원정이었습니다.
[동아프리카 교역 거점 확보와 킬와 술탄국 정복]
모잠비크에 도착한 다 가마는 교역소를 설치하고 소팔라와 무역 협정을 체결했습니다.
나아가 동아프리카 해안의 강력한 도시 국가였던 킬와 술탄국을 조공국으로 만들며 포르투갈의 영향력을 크게 확장했습니다.
[인도 상륙, 공포로 물든 응징의 시작]
인도양을 횡단한 다 가마 함대는 안제디바섬에 도착하자마자 강력한 무력 행사를 시작했습니다.
오노르 항구를 초토화시켜 인근 지역을 공포에 떨게 했고, 바테킬라 지역은 즉시 굴복하는 등 그의 압도적인 힘을 과시했습니다.
[이슬람 순례선 미리호 학살, 피로 물든 바다]
다 가마 함대는 이슬람 순례선 미리호를 나포하여 승객들의 몸값 지불 약속과 애원에도 불구하고 약 300명을 잔인하게 살육하고 배를 불태워 침몰시켰습니다.
이 충격적인 사건은 인도 현지인들에게 포르투갈에 대한 엄청난 증오심을 불러일으키며 갈등의 골을 깊게 만들었습니다.
포르투갈인들은 이 외에도 여러 선박을 약탈하고 시체를 매달아 사격 연습을 했으며, 현지 통치자에게 시체 토막을 '카레 재료로 쓰라'는 모욕적인 메시지와 함께 보내는 등 극도로 잔인한 만행을 자행했습니다. 이는 중세 유럽인의 사고방식, 즉 '불신자는 지옥에 가야 마땅하며, 이교도는 현세에서 고통받아도 동정할 필요 없다'는 편협한 인식이 반영된 것이었습니다.
[캘리컷에 대한 무차별 함포 사격 감행]
칸나노르와 교역 협상을 마친 다 가마는 캘리컷 앞바다에 도착하여 교역소 습격 사건에 대한 책임과 이슬람 상인 추방을 요구했습니다.
자모린이 이를 거부하자, 11월 1일 포르투갈 전함들이 캘리컷 항에 대해 무차별적인 함포 사격을 퍼부어 심각한 피해를 입혔습니다.
다 가마는 생포한 포로들의 손과 발을 잘라 모욕적인 서신과 함께 자모린에게 보내는 등 잔혹한 위협을 이어갔습니다.
1503
[막대한 향신료와 함께 영웅의 귀환]
다 가마는 캘리컷과의 전투 후 코친, 퀼론과 거래를 진행하고 막대한 양의 향신료(후추 1700톤, 계피 등 400톤)를 싣고 인도를 출발해 리스본으로 귀환했습니다.
그는 국왕에게 코친과 칸나노르에 대한 수비대 보강의 절실함을 보고하며 인도 무역 거점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명령 불복종의 대가, 외숙부의 비극적 죽음]
다 가마가 인도를 떠나기 전, 말라바르 해안 순찰을 명하며 잔류시켰던 외숙부 비센테 소드레는 이 첩보를 묵살한 채 함대를 홍해로 이동시켜 이슬람 상선을 약탈하는 데 몰두했습니다.
결국 4월경 폭풍을 만나 배가 침몰하며 그 역시 사망하는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했습니다.
그의 죽음은 코친에 대한 캘리컷의 침공으로 이어져 포르투갈의 인도 거점이 위기에 처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1519
[신항로 개척 공로, 비디게이라 백작 작위 받다]
신항로 개척의 위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국왕 마누엘 1세로부터 비디게이라 백작 작위를 수여받았습니다.
이는 그의 공헌에 대한 포르투갈 왕실의 최고 예우였습니다.
1524
[인도 부왕으로 세 번째 원정, 마지막 임무]
국왕 주앙 3세의 정책 고문으로 등용된 다 가마는 인도 현지 공관의 부패를 바로잡기 위해 '부왕'이라는 최고 직급으로 임명되어 세 번째이자 마지막 인도 원정을 떠났습니다.
4월에 리스본을 출발하며 새로운 임무를 수행하기 위한 여정을 시작했습니다.
[인도 부왕으로 부임, 기강 확립에 나서다]
인도에 도착한 다 가마는 전임 총독을 체포하여 본국으로 압송하는 등 강력하게 기강을 바로잡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열악한 환경 속 그의 건강은 점차 악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위대한 탐험가의 쓸쓸한 최후, 코친에서 영면하다]
인도 부왕으로 부임하여 활발히 활동하던 바스쿠 다 가마는 말라리아에 걸려 인도 코친에서 숨을 거두었습니다.
그의 시신은 포르투갈 리스본의 제로니무스 수도원에 안치되었고, 그의 죽음과 함께 대항해시대의 한 거인이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졌습니다.
2013
[바스쿠 다 가마의 기록, 세계 유산이 되다]
바스쿠 다 가마의 첫 인도 항해를 생생하게 기록한 '바스쿠 다 가마의 첫 인도 여행기'가 유네스코 세계 기록 유산으로 지정되었습니다.
이 육필 원고는 그의 위대한 여정을 마치 독자가 직접 경험하는 듯한 생생한 묘사로 가득하며, 작성 시기는 1500~1550년 사이로 추정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