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토리아 (영국)

영국 여왕, 인도 여제, 군주, 역사 인물, 빅토리아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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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10-15- 05:2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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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리아 (영국)
영국 여왕, 인도 여제, 군주, 역사 인물, 빅토리아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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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레이트브리튼 아일랜드 연합 왕국의 여왕이자 인도 제국의 여제. • 64년간 재위 영국 군주 중 엘리자베스 2세 다음으로 긴 통치 기록. • 해가 지지 않는 나라 대영 제국 최전성기 빅토리아 시대를 이끌었음. • 세계 영토 4분의 1 확보 등 제국주의 가속화. • 자녀들의 유럽 왕실 혼인으로 유럽의 할머니 별칭. • 혈우병 보인자로 유럽 왕실 혈우병 확산에 영향. • 성실하고 과단성 있는 통치로 국민적 지지와 번영 이끌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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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9

[빅토리아 공주 탄생]

런던 켄싱턴 궁전에서 켄트와 스트래선 공작 에드워드의 외동딸로 태어났습니다.

1820

[부친 에드워드 공작 서거]

태어난 이듬해 아버지가 일찍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후 어머니와 존 코로이 밑에서 성장하며 외숙부 레오폴드 1세의 보살핌을 받았습니다.

1831

[외숙부 레오폴드 1세, 벨기에 국왕 즉위]

빅토리아의 정신적 지주였던 외숙부 레오폴드가 벨기에의 왕으로 선출되어 떠났습니다.

1837

[영국 왕위 추정 상속인 등극]

할아버지 조지 3세의 직계 혈통이 끊기자, 빅토리아는 영국 왕위의 추정 상속인으로 등극하며 즉위가 확실시되었습니다.

왕실은 그녀의 연금과 양육비를 인상했습니다.

[영국 여왕 즉위 및 하노버 동군 연합 종료]

셋째 백부 윌리엄 4세 서거 후 18세의 어린 나이로 영국 여왕으로 즉위했습니다.

하노버 왕가가 여성 상속권을 인정하지 않아 영국과 하노버의 동군 연합은 빅토리아의 즉위와 함께 종료되었습니다.

1838

[영국 여왕 대관식 거행]

즉위 이듬해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성대한 대관식을 치렀습니다.

1839

[재위 초기 두 차례의 위기 겪어]

재위 초기, 휘그당 지지 성향으로 시녀 헤이스팅스 스캔들에 휩싸여 왕실 지지가 하락하는 위기를 겪었습니다.

또한 '침실 위기'로 불리는 정치적 논란에 휘말려 왕실 권위가 흔들리기도 했습니다.

[앨버트 공작과의 운명적인 만남]

대관식 후 혼사 문제가 거론되던 중, 외사촌인 독일계 앨버트 공작을 만나 그의 뛰어난 외모와 인품에 매료되어 사랑에 빠졌습니다.

1840

[앨버트 공작과 결혼]

깊이 사랑하고 신뢰했던 앨버트 공작과 결혼했습니다.

그는 빅토리아의 삶과 통치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평생의 동반자가 되었습니다.

[제1차 아편전쟁 발발]

청나라와의 무역 적자 해소를 위해 영국이 아편을 밀수입하자, 청이 아편을 몰수하고 불태우면서 영국이 군함과 병력을 파견하며 아편전쟁이 발발했습니다.

1841

[홍콩, 영국령으로 편입]

아편전쟁 결과로 체결된 난징조약에 따라 홍콩이 영국에 할양되며 식민지로 편입되었습니다.

1842

[난징조약 체결, 아편전쟁 종결]

아편전쟁 종결과 함께 난징조약이 체결되어 중국의 문호가 개방되고 반식민지화가 가속화되었습니다.

1856

[제2차 아편전쟁 발발]

영국과 프랑스가 연합하여 청나라를 침략하는 제2차 아편전쟁을 개시했습니다.

1857

[인도 세포이 항쟁 발생]

영국 동인도 회사의 착취와 반영 감정 고조로 인해 인도에서 대규모 세포이 항쟁이 발생했습니다.

1858

[인도 제국 수립 및 영국의 직접 통치 시작]

세포이 항쟁 진압 후, 영국은 무굴 제국을 멸망시키고 '인도 제국'을 세워 인도를 영국의 직접 통치 식민제국에 편입시켰습니다.

1860

[베이징 점령 및 베이징 조약 체결]

제2차 아편전쟁 중 영프 연합군이 베이징을 점령하고 베이징 조약을 체결, 중국으로부터 막대한 배상금과 이권을 확보했습니다.

1861

[부군 앨버트 공 사망 및 여왕의 은둔]

남편 앨버트 공작의 사망으로 큰 충격을 받아 국무에 손을 떼고 한동안 두문불출하며 은둔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이 시기 시종 존 브라운 등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세간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1876

[인도 제국 여제 작위 선포]

대영 제국의 번영과 확장을 상징하는 '인도 제국 여제' 작위가 선포되었습니다.

이는 영국 군주로서 최초의 황제 작위로, '해가 지지 않는 나라'의 위용을 더욱 공고히 했습니다.

1877

[인도 여제로서 통치 시작]

공식적으로 인도 제국의 여제로 군림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로써 빅토리아는 영국 여왕과 인도 여제를 겸하는 이중 군주가 되었습니다.

1887

[재위 50주년 '골든 주빌리' 기념]

영국 여왕으로서 50주년을 기념하는 '골든 주빌리(Golden Jubilee)'가 성대하게 거행되었습니다.

1897

[재위 60주년 '다이아몬드 주빌리' 기념]

재위 60주년을 기념하는 '다이아몬드 주빌리(Diamond Jubilee)'가 거행되었습니다.

이는 당시 영국 군주 중 가장 긴 재위 기간을 상징하는 행사였습니다.

1898

[파쇼다 사건 발발, 제국주의 갈등 심화]

아프리카 대륙 종단 정책을 추진하던 영국과 횡단 정책을 추진하던 프랑스가 수단의 파쇼다에서 충돌했습니다.

이는 제국주의 열강 간 영토 확장을 위한 갈등을 극명하게 보여주었습니다.

1901

[빅토리아 여왕 서거 및 하노버 왕조 종결]

2차 보어 전쟁이 한창이던 중 82세의 나이로 서거했습니다.

그녀는 하노버 왕조의 마지막 군주이자 '빅토리아 시대'를 상징하는 인물로 기록되었으며, 장남 에드워드 7세가 왕위를 계승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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