얄타 회담
국제 회담, 정상회담, 제2차 세계 대전
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1:04:46
2차 세계대전 막바지 연합국 수뇌들이 모여 전후 세계 질서를 설계한 역사적인 회담입니다. 특히 독일의 분할 점령과 UN(국제연합) 창설의 기반을 다지는 등 인류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한국의 운명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얄타 밀약설이라는 흥미로운 비화도 낳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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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타 회담 개최]
제2차 세계 대전의 막바지, 나치 독일의 패색이 짙어지자 연합국 최고 수뇌들이 흑해 연안 얄타에 모여 회담을 시작했습니다.
미국의 루스벨트 대통령, 영국의 처칠 총리, 소련의 스탈린 서기장이 한자리에 모여 전후 세계 질서를 논의할 역사적인 순간이었습니다.
[독일 분할 점령 및 유엔 창설 기반 합의]
8일간의 뜨거운 논의 끝에 얄타 회담이 막을 내렸습니다.
가장 중요한 합의는 나치 독일을 미국, 영국, 프랑스, 소련 4개국이 분할 점령한다는 원칙을 세운 것입니다.
또한, 인류 평화를 위한 UN(국제연합) 창설의 기초를 다지고, 전쟁의 주요 전범들을 뉘른베르크 재판에 회부하기로 합의했습니다.
이는 전후 세계의 지도를 그리는 결정적인 발판이 되었습니다.
[이승만, 유엔 총회 참석 좌절]
얄타 회담 직후인 4월, 이승만은 유엔 창립총회에 참관인 자격으로라도 참석하여 한국의 독립 보장을 받으려 했습니다.
하지만 한인 사회의 극심한 분열과 대표성 문제로 인해 미국조차 한국 대표성에 의문을 제기하며 결국 그의 노력은 수포로 돌아갔습니다.
[이승만, '얄타 밀약설' 주장으로 국제사회 파문]
이승만은 공산주의에서 전향한 소련인 내부자 '에밀 구베로'의 정보를 인용하며, 얄타 회담에서 '전후 한반도를 소련의 영향력 하에 두기로 했다'는 이른바 '얄타 밀약설'을 폭로했습니다.
이 충격적인 주장은 당시 국제 여론에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그는 약소국이 강대국의 비밀 협정에 희생되는 것을 막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했습니다.
에밀 구베로라는 인물이 제공한 내용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한국을 태평양전쟁 후까지 소련의 세력하에 두되 이 전쟁이 끝날 때까지 미영 양국은 한국 독립에 대해 아무 공약도 하지 않기로 약속되어 있다. 미국이 소련의 요구에 제한을 가할 것을 결정짓지 않는다면 한국의 운명은 명백히 소련의 지배를 받게 될 것이다."
[이승만, 미 의원들에게 얄타 밀약설 폭로 전문 발송]
이승만은 얄타 밀약설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미국 상·하원 의원들에게 직접 전문을 발송하며 미국 국민에게 한국의 자유를 수호해달라고 호소했습니다.
이 폭로가 언론을 통해 대대적으로 보도되자, 결국 미국 국무성과 백악관까지 나서서 '밀약은 없었다'는 공식 부인 성명을 발표해야 했습니다.
이는 국제 외교 무대에서 한국의 독립을 위한 이승만의 처절한 노력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