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고슬라비아 전쟁

전쟁, 민족 분쟁, 역사, 유고슬라비아 해체

num_of_likes 123

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1:04:39

등록된 키워드의 연표를 비교해서 볼 수 있습니다!
?
연혁 비교
no image
전쟁, 민족 분쟁, 역사, 유고슬라비아 해체
report
Edit

1991년부터 2001년까지 유고슬라비아 연방 영토에서 벌어진 일련의 전쟁. 민족주의와 종교적 갈등이 얽혀 발발했으며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의 독립 선언이 촉발제였습니다. 특히 보스니아에서 민족청소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낸 극심한 인권 유린이 자행되었습니다. 전쟁은 유고슬라비아 연방의 해체와 7개 신생국 탄생으로 막을 내렸습니다. 서방의 오판과 정치 지도자들의 이익 추구가 전쟁 장기화의 원인으로 지목됩니다.

연관 연혁
  1. 등록된 연관연혁이 없습니다.
주요사건만
최신순

1980

[티토 사망과 리더십 공백]

유고슬라비아의 최고 지도자 요시프 브로즈 티토가 사망하면서, 민족 간의 갈등을 중재하던 강력한 정치적 리더십이 사라지게 됩니다.

이는 이후 유고슬라비아 연방 해체와 민족 분쟁의 서막을 알리는 중요한 전환점이 됩니다.

티토의 사망은 유고슬라비아 연방 내 다양한 민족 간의 균형을 유지하던 핵심 축이 사라졌음을 의미했습니다. 이 공백을 틈타 민족주의를 앞세우는 정치 세력들이 부상하기 시작했으며, 이는 연방의 불안정성을 심화시키는 계기가 됩니다.

1987

[밀로셰비치, 세르비아주의 표방]

슬로보단 밀로셰비치가 유고슬라비아 연방의 새 대통령이 된 이후, 공공연히 세르비아인의 우월성을 강조하는 세르비아주의를 표방하기 시작합니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크로아티아계 우스타샤의 학살을 교묘히 이용해 크로아티아인을 탄압했으며, 연방 인구의 6분의 1을 차지하는 무슬림을 적으로 간주했습니다.

밀로셰비치의 세르비아주의 팽배는 크로아티아인을 비롯한 다른 민족들의 민족주의 감정을 자극하며 상호 대립을 심화시켰습니다. 이는 유고슬라비아 연방 내 민족 갈등을 폭발 직전으로 몰고 간 핵심 요인 중 하나입니다.

1991

[크로아티아 전쟁 발발 및 인종적 적개심 표출]

슬로베니아 전쟁에 이어 크로아티아 내 세르비아계 주민들이 크로아티아의 독립에 반대하며 크로아티아 전쟁이 발발합니다.

새 헌법에서 소수 민족으로 분류된 세르비아계는 이에 반발하여 반란을 일으켰고, 세르비아계가 장악한 연방 정부와 유고슬라비아 인민군은 이를 지원합니다.

연방 정부의 통제 하에 있던 유고슬라비아 인민군은 유엔의 묵인 아래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의 지역 방위군을 무장 해제시키고 크로아티아 내 세르비아계 반군을 지원했습니다. 이 전쟁 초기 세르비아계는 크로아티아 경찰에게 무차별 발포하고 시신을 훼손하는 등 비인도적인 모습을 보여 양 민족 간 인종주의적인 적개심이 극대화되었습니다. 세계 유산인 두브로브니크와 북부 부코바르가 파괴되는 등 큰 피해가 발생했으며, 서유럽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이러한 공격을 방관했다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유고슬라비아 전쟁 발발]

유고슬라비아 연방의 해체를 막으려는 세르비아계와 분리 독립을 선언한 공화국들 사이의 충돌이 본격화되며 유고슬라비아 전쟁이 시작됩니다.

처음에는 '내전'으로 불렸으나, 연방 해체 이후에는 더 이상 내전으로 정의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 전쟁은 유고슬라비아 연방의 6개 구성 공화국 모두에게 영향을 미쳤으며, 2001년에 발생한 알바니아계의 봉기까지 포함하여 광범위한 지역과 기간에 걸쳐 진행되었습니다.

[슬로베니아·크로아티아 독립 선언 및 슬로베니아 전쟁 발발]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가 유고슬라비아 연방으로부터의 독립을 선언하면서 전쟁이 더욱 격화됩니다.

특히 슬로베니아 국경에서 '10일 전쟁'이라 불리는 슬로베니아 전쟁이 시작되어 유고슬라비아 인민군이 투입됩니다.

슬로베니아군은 국경수비대와 지역방위군으로 유고슬라비아 인민군에 대항했으며, 도로를 차단하고 진지를 구축하며 저항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수십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으나, 짧은 교전 끝에 종결되었습니다.

[슬로베니아 휴전 협상 및 인민군 철수]

슬로베니아 전쟁이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브리유니 섬에서 정전 협상이 시작됩니다.

협상 결과 양측은 교전을 중단하고 3개월간의 휴전을 선언합니다.

휴전 선언 이후, 1991년 10월 26일까지 유고슬라비아 인민군은 슬로베니아 지역에서 완전히 철수합니다. 이는 슬로베니아가 비교적 짧은 기간 내에 성공적으로 독립을 확보했음을 보여줍니다.

1992

[보스니아 전쟁 발발 및 인종 청소의 확산]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에서 보스니아인과 크로아티아인이 한 축이 되고, 유고슬라비아 연방군을 중심으로 한 세르비아인이 다른 한 축이 되어 '보스니아 전쟁'이 발발합니다.

특히 세르비아주의를 내세운 유고슬라비아 연방군은 점령 지역에서 보스니아인에 대한 인종 청소를 자행했습니다.

1991년 3월 크로아티아의 프라뇨 투지만과 유고슬라비아 연방의 슬로보단 밀로셰비치는 보스니아 분할에 초점을 맞춘 카라도르데보 조약을 협상했습니다. 전쟁이 발발하자 세르비아의 지원을 받은 보스니아 내 세르비아계 민병대는 보스니아의 3분의 2를 점령하며 약탈, 방화, 강간, 학살 등 극악한 범죄를 저질렀습니다. 특히 수많은 이슬람 지도자들이 처형되고 보스니아인들이 추방되는 등 대량 난민 발생이 세르비아계의 전쟁 목적 그 자체였다는 비판이 제기되었습니다. '민족청소'라는 신조어가 이 시기에 등장하며 유고슬라비아 전쟁 중 가장 참혹한 양상으로 전개되었습니다. 구유고슬라비아 국제형사재판소는 당시의 민간인 학살에 대한 책임을 물어 밀로셰비치와 믈라디치를 기소했습니다.

[유엔 평화유지군 파견]

국제 사회의 비판 속에 유엔 평화유지군이 파견되지만, 보스니아 내에서 벌어지는 대량 학살과 인종 청소를 막지는 못했습니다.

유엔은 민간인 학살 방지를 위해 크로아티아 내에 유엔 관할 구역을 설정하고 1995년까지 관리했으나, 대량 학살을 막는 데는 역부족이었습니다.

1994

[NATO의 세르비아 공격 선언]

보스니아에서 자행되는 세르비아계의 인종 청소를 막기 위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가 세르비아에 대한 공격을 선언합니다.

이듬해에는 주요 군사 거점에 대한 폭격도 개시합니다.

NATO의 개입은 국제 사회가 유고슬라비아 전쟁의 참혹함에 대해 더 이상 방관할 수 없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전환점이었습니다.

1995

[크로아티아 전쟁 종결]

크로아티아군이 세르비아계에 대한 공세에서 승리하면서, 잔혹했던 크로아티아 전쟁이 종결됩니다.

이 승리로 크로아티아는 독립을 공고히 할 수 있게 됩니다.

세르비아계와 크로아티아계 양측 모두에게 막대한 피해를 입힌 전쟁은 크로아티아군의 승리로 막을 내렸습니다.

[스르프스카 공화국 합병 및 보스니아 전쟁 종결]

보스니아 내 세르비아계가 세운 스르프스카 공화국이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에 합병되면서, 3파전으로 가장 참혹했던 보스니아 전쟁이 일단락됩니다.

이 합병은 국제 사회의 중재와 NATO의 군사적 압박 속에 이루어졌으며, 보스니아의 미래를 결정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1998

[코소보 전쟁 전면전 확대]

1995년부터 제한적으로 발생하던 코소보 전쟁이 알바니아계 소수 민족의 독립 요구와 세르비아 정부 간의 충돌로 전면전으로 확대됩니다.

이 전쟁은 나중에 마케도니아와 남부 세르비아로도 확산됩니다.

코소보에서는 슬라브계 정부와 자치 내지 독립을 추구한 알바니아계 소수 주민들 간의 인종적, 정치적 갈등이 전쟁으로 이어졌습니다.

1999

[NATO의 코소보 개입 및 세르비아군 격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가 코소보에 개입하여 세르비아군을 대규모 폭격으로 격퇴합니다.

보스니아와 달리 코소보에서의 인종청소는 미국의 즉각적인 개입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미국은 코소보가 튀르키예와 같은 전통적인 '세계의 화약고'에 인접해 있어 국제 대전으로 확산될 것을 우려했습니다. NATO의 개입으로 마케도니아와 남부 세르비아의 무력 충돌도 다자간 협상을 통해 종결되었으며, 코소보 유엔 잠정 통치구역이 설정되고 NATO 산하 코소보군이 창설되었습니다.

2001

[유고슬라비아 전쟁 공식 종결]

유고슬라비아 연방의 해체와 여러 신생국의 탄생이라는 결과와 함께, 거의 10년간 이어진 유고슬라비아 전쟁이 공식적으로 종결됩니다.

전쟁 후 유고슬라비아는 몬테네그로,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북마케도니아, 세르비아, 슬로베니아, 코소보, 크로아티아의 일곱 나라로 분리되었습니다. 전쟁의 장기화와 막대한 피해에 대해서는 서유럽 국가들이 연방 유지를 강력히 희망했기 때문이라는 비판이 제기되었습니다.

2015

[ICJ, 세르비아 대량학살 혐의 무죄 판결]

국제사법재판소(ICJ)는 세르비아군이 내전에서 전쟁 범죄를 저질렀음을 인정하면서도, 크로아티아 인에 대한 '전체 또는 일부' 학살 의도가 있었음을 크로아티아가 입증하지 못했다며 세르비아의 대량학살 혐의는 없다고 판결했습니다.

이 판결은 유고슬라비아 전쟁의 복잡한 진실과 법적 책임 소재에 대한 논쟁을 다시금 불러일으켰습니다.

비교 연혁 검색
search
키워드 중복 확인
close
댓글 게시판
이전 다음 위로 이동 아래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