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이라크 전쟁

전쟁, 분쟁, 국제 관계, 중동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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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1:0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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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이라크의 이란 침공으로 시작된 전쟁. 샤트알아랍강 획득과 이란 혁명정권 타도가 목표였으나 이란의 예상 밖 저항으로 8년간 지속된 소모전입니다. 백만여 명의 사상자를 낸 비극적인 전쟁으로 지역 및 국제 정세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최신 무기 사용과 민간인 학살 화학무기 사용 등 참혹한 양상으로 전개되었으며 2003년 마지막 포로 교환으로 최종 마무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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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

[이란 혁명 발생 및 중동 정세 변화]

이란에서 이슬람 혁명이 성공하며 친미 팔레비 왕조가 붕괴, 중동 지역에 일시적인 힘의 공백이 발생했습니다.

이란의 강경 시아파 정부 집권은 이라크와의 오랜 갈등을 격화시켰고, 서방 국가들은 이란을 견제하기 위해 이라크에 막대한 지원을 시작했습니다.

양국은 이슬람 정통 계승과 페르시아 상속자임을 자처하며 호르무즈 해협과 샤트알아랍 강 수로의 영유권을 두고 역사적 분쟁을 겪고 있었습니다. 이란 혁명 이후 이란의 시아파 정부는 이라크 내 반정부 세력 지원 및 시아파 박해를 비난했고, 이라크는 내정 간섭 중지를 경고하며 맞받아치는 등 긴장이 고조되어 국경 무력 충돌로 확대되었습니다. 팔레비 왕조의 붕괴로 중동 제일의 군사강국 지위를 얻은 이라크의 제국주의적 팽창 정책 또한 주요 원인으로 작용했습니다.

1980

[이라크의 국경 조약 폐기 선언]

이라크는 1975년 체결된 이란과의 국경 조약을 불평등하다고 선언하고 폐기했으며, 호르무즈 해협의 3개 도서와 샤트알아랍 수로에 대한 주권을 주장했습니다.

이는 며칠 뒤 전면 침공의 직접적인 명분으로 작용했습니다.

[이란-이라크 전쟁 발발]

이라크 사담 후세인은 선전포고 없이 이란을 침공하며 이란-이라크 전쟁이 발발했습니다.

주요 목표는 샤트알아랍강 획득 및 이란 혁명정권 타도였습니다.

이라크는 이란의 내부 혼란과 군사력 약화를 틈타 단기간 내 승리를 예상했으나, 예상치 못한 이란 국민의 강렬한 저항에 부딪혔습니다.

당시 이란은 '이란 인질 사건'으로 서방의 경제봉쇄 위기에 놓였고, 혁명 후유증으로 재정이 파탄 나고 혁명 정부 내부의 권력 다툼이 심화되는 등 혼란스러운 상황이었습니다. 특히 팔레비 당시 중동 제일의 전력을 자랑하던 정규군마저 혁명 과정에서 약화되고 군수품 공급이 중단되어 실질적인 전력을 기대하기 어려웠습니다. 이에 이라크 자신을 비롯한 군사 전문가들은 전쟁이 단기간 내 이라크의 완전한 승리로 끝날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이란의 강력한 반격과 전쟁 장기화 조짐]

이라크의 예상과 달리 이란 정규군, 혁명수비대, 민병대가 반격에 나서며 전쟁 양상이 변화했습니다.

단기간에 끝날 것으로 보이던 전쟁은 수십만 명의 사상자와 막대한 전쟁 비용이 투입되는 미증유의 소모전으로 8년 동안 계속되었습니다.

이란의 권위적 지도하 시아파 이슬람주의에 기초한 영웅적 저항은 이라크의 조기 종전 시도를 무산시키고, 오히려 이란 측이 이라크 영내로 진입하며 전세가 더욱 심화되었습니다. 이란은 전쟁 수행을 위해 OPEC의 공시가 이하로 원유를 덤핑 판매하여 산유국들과 마찰을 빚기도 했습니다.

1983

[서방의 최신 무기 공급으로 전세 격화]

프랑스가 이라크에 최신예 미라지 전폭기, 엑조세 미사일 등 치명적인 무기 판매를 승인하면서 이란-이라크 전쟁은 더욱 격렬해졌습니다.

이는 이란의 강력한 반발과 서방 원유 수송로의 중추인 호르무즈 해협 봉쇄 위협으로 이어졌습니다.

전쟁 초기부터 영국과 프랑스는 이라크에 상당량의 무기를 판매했으며, 미국은 후세인 정권의 무차별적인 화학무기 사용과 민간인 학살도 묵인하는 등 이라크에 대한 외교, 경제, 군사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이란은 프랑스가 이라크에 무기를 공급할 경우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겠다고 선언했고, 이라크는 이란 항만 지역에 기뢰를 부설했다고 발표하며 중대 위기로 치달았습니다.

1984

[유조선 전쟁 및 화학무기 사용 확산]

양측은 상대국의 유조선을 무차별 공격하기 시작하며 페르시아만 항해를 위협했습니다.

이라크는 이란 영공 전역을 '전쟁 지역'으로 선포하고 국제적으로 금지된 화학무기(독가스)를 사용하는 등 전쟁은 최악의 국면으로 치달았습니다.

페르시아만 유조선에 대한 무차별 공격은 주변국(특히 GCC)들과 석유 공급의 대부분을 중동에 의존하고 있는 서방측 석유 소비 국가들을 극도로 긴장시켰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가 이란 전투기를 격추하는 사건이 발생하고 국제 연합의 중재도 무산되는 등 사태는 더욱 악화되었습니다. 이 시기 중동 전역은 레바논 내전의 격화까지 겹쳐 폭탄 테러, 여객기 납치, 외국인 납치사건 등이 다발하며 '테러의 해'로 지칭될 만큼 혼란 속에 휩싸였습니다.

1986

[이란-이라크 전쟁의 국제적 파급 효과 (미국 이란-콘트라 사건)]

이란-이라크 전쟁의 여파는 미국으로까지 확대되어, 이란에 대한 무기 판매와 관련한 '이란-콘트라 사건'이 불거지는 등 국제 정세에 복합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란-콘트라 사건은 미국이 이란에 무기를 판매하고 그 수익금으로 니카라과의 반군 '콘트라'를 지원했다는 스캔들로, 미국 행정부에 큰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1988

[이란-이라크 전쟁 종결]

유엔 안보리의 휴전 명령에도 불구하고 이라크는 전쟁을 계속했으나, 결국 1988년 8월 20일 전쟁이 종결되었습니다.

이 전쟁은 양측 모두 백만여 명의 사상자와 막대한 경제적 손실을 입은 무의미한 소모전으로 기록되었습니다.

전쟁의 결과는 '전쟁 이전으로 되돌림(Status quo ante bellum)'으로, 유엔 결의 619에 기초한 유엔 이란-이라크 전쟁 감시 위원회의 감찰하에 진행되었습니다.

2003

[마지막 전쟁 포로 교환으로 전쟁 최종 마무리]

이란-이라크 전쟁 발발 23년 후인 2003년에 마지막 전쟁 포로가 교환되며, 길고 비극적이었던 이란-이라크 전쟁이 최종적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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